4월 2일 ‘국제팩트체킹의 날’ 맞아 IFCN 현황 보고서 발간

매년 4월 1일은 만우절이다. 1년 중 단 하루, 사람들은 가벼운 거짓말로 서로 속이며 웃음을 나눈다. 만우절 다음날인 4월 2일은 ‘국제 팩트체킹의 날’(International Fact Checking Day)이다. 2017년, 국제 팩트체킹연맹(International Fact Checking Network, 이하 IFCN)이 팩트체크의 중요성과 팩트체커들의 노력을 대중에게 알리고,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지정했다.

세계 각국의 팩트체커들이 ‘2025 국제팩트체킹의 날’을 맞아 제작된 동영상에서 허위조작정보의 위험성과 팩트체킹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픽 주희PD
세계 각국의 팩트체커들이 ‘2025 국제팩트체킹의 날’을 맞아 제작된 동영상에서 허위조작정보의 위험성과 팩트체킹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픽 주희 PD

국제팩트체킹의 날이면 IFCN은 전 세계 팩트체크의 현황을 알리는 ‘팩트체커 현황 보고서’(State of the Fact-Checkers Report)를 발간한다. 지난달 31일에 공개된 ‘2024년 팩트체커 현황 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 팩트체크 기관들이 마주한 실질적인 위기와 변화하는 팩트체킹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팩트체킹 작업 중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사용하는 기관은 80%에 육박했다. 약 90%가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한 상황이다. 78%의 기관이 디지털 괴롭힘과 물리적인 위협을 겪고 있다. 이번 보고서는 IFCN이 지난 1월 22일부터 2월 7일까지 67개국 141개 팩트체크 기관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다.

숏폼과 AI 시대, 변화하는 팩트체킹 방식

지난해 팩트체크 기관들은 사회 이슈와 공중보건, 선거와 정치적 주장들을 주로 검증했다. 그래픽 김민성 기자

팩트체크 기관들이 다루는 주제를 보면, 허위조작정보의 양상을 알 수 있다. 2024년 팩트체크 기관들이 가장 많이 다룬 주제는 사회 이슈(95.7%)였다. 이어 공중보건(92.1%), 선거와 정치적 주장(90.0%) 순이었다. 2024년이 전 세계 인구 절반 이상이 투표에 참여한 ‘슈퍼 선거의 해’였다는 것이 반영된 결과다.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재난이 빈번해지는 것에 대응해 기후과학을 둘러싼 오정보를 검증하는 비율(70.0%)도 높았다. 각 팩트체크 기관들은 정치인의 발언과 같은 전통적인 정치 팩트체킹과 온라인에서 떠도는 오정보와 루머를 검증하는 데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생성형 AI의 발전은 팩트체킹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141개 팩트체크 기관 중 80%가 팩트체킹 과정에서 AI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AI를 가장 많이 활용하는 분야는 기초 자료 조사(53.6%)였다. AI를 무조건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 팩트체킹 과정에서 AI를 사용한다고 답한 기관 중 48.5%는 AI 사용 시 윤리적 문제와 편집상 우려(Ethical or editorial concerns)를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팩트체커들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용자에게 가 닿을지’에 있다. 세계 각국 팩트체크 기관들은 더 많은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유튜브나 틱톡에 숏폼을 올리거나, 인포그래픽이나 시각적 장치를 동원하고 X(구 트위터)나 스레드를 유통경로로 공략하기도 했다. 75%의 기관들은 사용자 참여를 높이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숏폼 영상제작’을 꼽았다.

탈진실의 시대에 부상한 팩트체크

IFCN의 로고. IFCN 누리집 갈무리

2016년, 영국 옥스퍼드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선정했다. 탈진실은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적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브렉시트(Brexit)로 불리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트럼프가 당선된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거치며 유권자들이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절차인 선거에서조차 사실보다는 개인적 신념과 감정에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이 확인됐다.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허위조작정보가 확산하고 탈진실 현상이 기승을 부리자, 그에 맞서는 팩트체크 저널리즘의 흐름도 확대됐다. 매년 전 세계 팩트체크 기관 수를 집계하는 듀크대 리포터스 랩에 따르면, 2015년 151개였던 팩트체크 기관은 2025년 현재 451개로 늘었다. 그 확산의 중심에 IFCN이 있다.

IFCN은 2015년 미국 미디어연구 교육기관 포인터(Poynter)에 의해 설립됐다. 전 세계 팩트체커들의 자발적 연대기구이자, 팩트체커 양성의 요람 역할을 하고 있다. IFCN은 누리집에 팩트체커 교육을 위한 온라인 강좌를 제공하고, 세계 각국 팩트체크 기관의 동향을 파악해 해당 내용을 기사화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국경을 넘나들며 허위조작정보가 퍼지자 IFCN은 ‘#코로나바이러스 사실 동맹’(#Corona Virus Facts Alliance)이라는 협업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100여 개 국가의 팩트체커들이 참여해 40개 이상의 언어로 1만 7000여 개의 코로나19와 백신 관련 허위정보 및 오정보를 검증했다. IFCN은 2021년 허위정보 대응 노력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IFCN이 이룩한 가장 중요한 업적은 팩트체크 시 지켜야 할 규범을 정립했다는 것에 있다.

불편부당성과 투명성을 지켜라

IFCN의 5대 준칙. 그래픽 김민성 기자

IFCN은 2016년 9월 각국의 팩트체커들이 지켜야 할 규범으로서의 ‘준칙’(Code of Principles)을 제정했다. △비정파성과 공정성(Non-partisanship and fairness), △취재원 투명성(Transparency of Sources), △재정과 조직에 관한 투명성(Transparency of Funding & Organization), △검증방법의 투명성(Transparency of Methodology), △공개적이고 정직한 수정(Open and Honest Corrections)이 그것이다. 위 준칙의 핵심은 ‘불편부당성’과 ‘투명성’에 있다.

불편부당성은 검증 대상 선정에 있어 편향성을 배제하고, 누가 주장했든 동일한 수준의 증거 기준과 판단 기준을 적용할 것을 요구한다. 팩트체커들은 어떠한 정당, 정치인 또는 정치 후보와도 제휴하지 않으며 그들을 지지하거나 반대하지 않는다. 투명성은 팩트체커가 취재 과정을 팩트체크 뉴스 이용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공개하고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팩트체크에 사용된 모든 주요 증거의 출처를 명시하며, 해당 출처가 온라인에 공개되어 있는 경우 관련 링크를 함께 제공한다. 취재원을 밝히는 것이 개인의 신변 안전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한 실명 공개한다.

세계 각국 팩트체크 기관은 IFCN에 위 준칙을 준수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면, 심사 과정을 거쳐 서명기관(Signatory)이 되어 인증마크를 받을 수 있다. IFCN 누리집을 보면, 지난 3월 기준 IFCN의 서명기관은 모두 151개다. 대표적인 기관으로는 프랑스 <AFP>의 ‘팩추얼’(Factuel), 미국의 정치 전문 팩트체크 사이트 ‘폴리티팩트’(PolitiFact), <워싱턴포스트>의 ‘팩트체커’(Fact checker), <AP통신>의 ‘팩트체크’(Fact check) 등이 있다. 국내 언론 중에서는 <JTBC>와 <뉴스톱>이 과거 서명기관이었으나, 현재 <뉴스톱>은 서명기한이 만료됐고 <JTBC>는 갱신 절차를 밟고 있다.

온라인 괴롭힘과 물리적 공격, 재정압박의 위협

지난해 6월 사라예보에서 개최된 '글로벌팩트 11 컨퍼런스'에서 언론인이자 202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마리아 레사(오른쪽)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포인터(Poynter) 누리집 갈무리

‘국제 팩트체킹의 날’(International Fact Checking Day)과 더불어 IFCN이 개최하는 대표적 행사는 ‘글로벌팩트’(Glabal Fact)다. 글로벌팩트는 팩트체크만을 목적으로 하는 전 세계 유일의 컨퍼런스다. 전 세계 팩트체커들과, 언론인, 학자들이 모여 세계 각국의 팩트체크 기관이 처한 도전과 성공 사례를 공유한다. 2014년 처음 시작된 행사는 올해로 12회째를 맞아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다. 지난해 6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개최된 ‘글로벌 팩트 11’에서는 130여 개 팩트체크 기관이 공동 서명한 ‘사라예보 선언’(Sarajevo statement)을 발표했다.

팩트체커들은 최근 몇 년간 계속해서 온라인은 물론 물리적으로도 괴롭힘을 겪고, 위협을 받아왔다. 그래픽 김민성 기자
팩트체커들은 최근 몇 년간 계속해서 온라인은 물론 물리적으로도 괴롭힘을 겪고, 위협을 받아왔다. 그래픽 김민성 기자

선언문은 “최근 몇 년간 팩트체커들은 온라인 검열자라는 비난을 끊임없이 받아왔고, 이러한 공격 이후 많은 팩트체커들이 언어폭력과 신상털기, 조직적인 공격, 법적 위협, 정치적 압력, 심지어 신체적 폭력까지 겪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팩트체크를 ‘검열’로 낙인찍어 위축시키려는 움직임의 실상을 폭로했다. 선언에 참여한 팩트체크 기관들은 “팩트체킹은 거짓이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메시지, 또는 중요한 맥락이 결여된 메시지를 바로 잡고 명확히 하기 위해 추가적인 정보와 증거를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팩트체킹은 표현의 자유의 한 형태이지 검열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2024 팩트체크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팩트체크 기관들의 77.7%가 온라인 괴롭힘이나 신체적 위협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유형별로는 온라인 댓글을 통한 괴롭힘(66.2%)이 가장 많았다. 이어 신체적 위협과 괴롭힘을 모두 경험(10.1%), 신체적 위협만 경험(1.4%) 순이었다.

팩트체크 기관들이 맞닥뜨린 도전은 온라인 괴롭힘과 물리적 공격만이 아니다. 재정적 압박이 팩트체크 기관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1월 7일, 메타의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돌연 자사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왓츠앱 등을 통해 운영해 온 제3자 팩트체킹(Third Party Fact Checking) 프로그램을 미국 내에서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2016년 시작된 제3자 팩트체킹은 IFCN의 서명기관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스레드 등에서 발견한 오정보와 허위정보에 대해 팩트체크 결과를 노출하고, 이를 알고리즘에 반영하는 기능이다. 저커버그는 프로그램의 중단을 선언한 영상에서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검열(too much censorship)이 있었다”며 팩트체크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구글도 같은 달 유럽연합에 서한을 보내, 유럽연합의 허위정보 실천강령에서 요구하는 ‘제3자 팩트체크 기능’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메타의 제3자 팩트체킹 프로그램은 지난 10년간 팩트체크 기관의 가장 중요한 자금 출처였다. IFCN은 메타의 이번 발표로 팩트체크 기관들이 겪는 재정압박이 가속화 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래픽 김민성 기자
메타의 제3자 팩트체킹 프로그램은 지난 10년간 팩트체크 기관의 가장 중요한 자금 출처였다. IFCN은 메타의 이번 발표로 팩트체크 기관들이 겪는 재정압박이 가속화 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래픽 김민성 기자

‘2024 팩트체크 현황 보고서’를 보면 팩트체크 기관들은 메타의 이번 발표를 재정적 위협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사에 참여한 141개 기관 중 61.4%가 메타의 제3자 팩트체킹 프로그램에 참여해 활동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고 답했다. 메타에 대한 재정의존도가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메타의 이번 발표는 팩트체크 기관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다른 재원을 찾겠다’고 응답한 기관이 53.4%에 달했지만, 근무 직원이나 팩트체크 콘텐츠를 줄이겠다고 답한 기관이 59.4%로 더 많았다. 팩트체크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기관은 8.3%였다. 메타가 제3자 팩트체킹 프로그램 중단 방침을 전 세계로 확대한다면, 팩트체크 활동의 위축은 불가피하다.

시민들은 사실을 원한다

‘2025 국제팩트체킹의 날’을 알리는 포스터. IFCN 누리집 갈무리

플랫폼 기업들의 잇따른 팩트체킹 후퇴 움직임은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허위정보를 노출하지 않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시민들의 바람에 역행하는 것이다. 메타가 제3자 팩트체킹의 미국 내에서의 중단을 발표한 직후, 매사추세츠 공대(MIT)의 데이비드 랜드 교수는 미국인 약 1000명을 대상으로 ‘소셜미디어 기업이 자사 플랫폼에서 해로운 허위왜곡정보의 확산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를 여론조사 했다. 민주당 지지자(97%), 무당파(78%), 공화당 지지자(65%) 등 정치적 성향에 따라 차이를 보였지만, 압도적 다수(84%)가 이를 지지했다. 설문 응답자들은 독립적인 팩트체커가 ‘허위정보’로 판정한 게시물에 경고문구를 붙이고 검증된 정확한 정보 출처로 연결되는 링크를 함께 제공하는 방안도 지지했다.

보스톤대학(Boston Univeristy)이 지난 1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미국인들의 72%가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소셜미디어가 공공 건강 이슈에 관해 부정확한 정보들을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3명 중 약 2명(63%)은 공공 건강 이슈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통해 퍼질 경우, 독립적인 팩트체크 기관이 해당 콘텐츠를 검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답했다.

팩트체크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크지만, 팩트체크에 대한 위협 또한 거세다. ‘2024년 팩트체커 현황 보고서’에서 녹록지 않은 현실을 그대로 밝힌 IFCN은 아래의 문장으로 맞닥뜨린 도전을 헤쳐나갈 결의를 드러냈다. “시민들은 단지 사실을 알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사실을 요구하고 있다(Audiences aren’t just hungry for facts. They are demanding them.)”

* '2024년 팩트체커 현황 보고서'의 원문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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