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 미성년 피의자 보도에서 언론이 지켜야 할 원칙

범죄 보도의 공익성과 미성년자 보호의 딜레마

미성년자가 피의자로 지목된 사건들이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강력 범죄나 도덕적으로 민감한 사건들이 특히 그렇다. 하지만 미성년자는 판단 능력이 불완전하고 신체적·정신적으로 충분히 성숙하지 않아 사회적으로 보호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언론은 미성년자가 피의자인 사건을 보도할 때 신중할 필요가 있다.

미성년자가 피의자인 범죄를 보도할 때는 보도의 공익성과 함께 미성년자인 피의자 보호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언론윤리의 기본 원칙은 사실성과 공익성, 독립성이다. 독립성에 문제가 없다면, 실제 보도 과정에서 살펴봐야 하는 것은 사실성과 공익성이다. 미성년자가 피의자인 사건이 이에 부합한다면 보도해야 한다. 충분한 사실 관계를 취재하고, 또 공적 논의에 도움이 되는 사안이라면 미성년자 범죄도 보도할 수 있다.

언론이 보도한 미성년자가 피의자인 사건은 소년 범죄에 대한 사회적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런 보도를 통해 이들에 대한 교육 문제나 법률 등 제도적 측면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다. 그럼 보도의 공익성도 인정될 수 있다.

언론의 미성년 피의자 보도, 낙인효과 조심해야

다시 말하지만, 우리 사회는 미성년자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피의자로 지목된 미성년자의 신상을 함부로 공개하거나, 사회적으로 그들을 낙인찍는 보도를 한다면 미성년자에 대한 보호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언론이 미성년 피의자를 보도할 때, 가장 우려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낙인효과’다.

낙인효과란 특정 개인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을 때, 그 평가에 맞춰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키거나, 사회적으로 그 평가에 갇혀버리는 현상을 의미한다. 미성년자가 피의자로 지목된 사건을 언론이 선정적으로 보도하면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힐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낙인은 청소년의 자아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향후 피의자가 반성하고 사회에 적응하려 노력하더라도 사회적 관계에서 배제될 위험이 커진다.

낙인효과는 디지털 환경에서 더욱 쉽게 나타난다. 언론 보도로 미성년자의 신상이 직접 공개되지는 않더라도, 인터넷과 SNS를 통해 사건과 관련된 정보가 빠르게 확산되고 신상 털기 등이 이어진다. 이런 디지털 시대에는 한 번 낙인이 찍히면 시간이 지나도 잘 지워지지 않는다. 한번 낙인이 찍힌 미성년 피의자의 재범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낙인효과가 이렇게 미성년자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언론은 미성년 피의자 보도에서 신중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잔혹범죄 저지른 미성년자, 신상 공개해도 될까?

디스패치가 지난 2021년 1월 22일 지하철에서 중학생들이 노인을 폭행한 사건의 영상을 게재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초상이 노출됐고, 언론중재위원회는 ‘시정권고 심의기준’ 제6조 제1항을 들어 수정 등의 조치를 권고했다. ‘2021년도 언론조정중재 사례집’ 갈무리
디스패치가 지난 2021년 1월 22일 지하철에서 중학생들이 노인을 폭행한 사건의 영상을 게재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초상이 노출됐고, 언론중재위원회는 ‘시정권고 심의기준’ 제6조 제1항을 들어 수정 등의 조치를 권고했다. ‘2021년도 언론조정중재 사례집’ 갈무리

언론은 소년보호사건의 경우 당사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공표해서는 안 된다. 지난 2021년 1월 22일 <디스패치>는 ‘“07년생 의정부 일진 근황”···지하철에서 노인 폭행하는 10대 중학생들’이라는 영상을 게재했다. 지하철에서 중학생들이 노인을 폭행한 사건을 보도한 것으로, 당시 영상에서는 피해자와 피의자의 얼굴이 그대로 공개됐다.

언론중재위원회는 해당 보도가 “소년 보호사건 당사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보도한 것으로, 아동 청소년 보호 기준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중재위는 ‘시정권고 심의기준’ 제6조 제1항 ‘언론은 소년보호사건에 관하여 사건 당사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내용을 공표하여서는 아니 된다’ 등 심의기준에 따라 수정 등의 조치를 권고했다.

‘특정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에서는 미성년자 신상 공개를 금지하고 있다. 그래픽 하미래
‘특정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에서는 미성년자 신상 공개를 금지하고 있다. 그래픽 하미래

현행 법률은 미성년 피의자의 신상 공개를 금지한다. ‘특정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범죄신상공개법) 제4조 제1항은 피의자가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신상 정보 공개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소년법 제68조에 따라, 미성년 피의자의 신상이 유추될 수 있는 보도는 금지된다. 그래픽 하미래
소년법 제68조에 따라, 미성년 피의자의 신상이 유추될 수 있는 보도는 금지된다. 그래픽 하미래

언론이 미성년 피의자의 신상을 유추할 수 있도록 보도하는 것도 법적으로 금지된다. 소년법 제68조 제1항은 ‘조사 또는 심리 중에 있는 보호사건이나 형사사건에 대하여 성명·연령·직업·용모 등으로 비추어 볼 때 그자가 당해 사건의 당사자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정도의 사실이나 사진을 신문이나 그 밖의 출판물에 싣거나 방송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언론이 미성년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한 사례는 없을까? 지난 2020년 4월 17일 이른바 박사방 사건 공범의 신상이 공개된 것이 첫 미성년 피의자 신상 공개로 알려져 있다. 당시 경찰은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주요 공범인 ‘부따’ 강훈의 신상을 공개했다. 강훈은 당시 만 18세로, 2010년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를 도입한 뒤 10대 피의자로 신상이 공개된 첫 사례였다.

당시 경찰은 피의자 강훈이 미성년자가 아니라고 판단해 신상을 공개했다. 만 19세가 되는 해의 1월 1일을 맞이한 사람은 청소년으로 보지 않는다는 청소년 보호법 제2조 때문이다. 신상 공개 결정에 따라 언론은 강훈의 이름과 얼굴 등을 공개했는데, 이는 법적으로 미성년 피의자 신상을 공개한 사례라고 볼 수 없다. 결국 지금까지 청소년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한 적은 없는 셈이다.

아무리 소년범죄가 잔혹하더라도, 언론은 미성년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 사건의 본질을 보도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법은 미성년자의 인권 보호와 재사회화를 우선하고 있다. 언론도 언론중재위 시정권고 심의기준을 통해 신상 공개로 인해 발생하는 2차 피해와 사회적 낙인을 방지해야 한다.

미성년 피의자 보도에서 언론의 역할

그렇다면 언론은 미성년자가 피의자인 사건을 어떻게 보도해야 할까? 단순히 범죄 사실을 나열하고, 피의자에 대한 공분을 조장하는 방식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언론은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여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고,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지난해 보도된 딥페이크 성범죄의 주요 피의자 연령층은 주로 1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와 <세계일보>는 각각 미성년 피의자가 연루된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을 다룰 때 구조적 문제를 짚었다.

지난해 12월 4일 동아일보 12면에 실린 딥페이크와 미성년 피의자에 관한 보도다. 동아일보 12면 갈무리
지난해 12월 4일 동아일보 12면에 실린 딥페이크와 미성년 피의자에 관한 보도다. 동아일보 12면 갈무리

<동아일보>는 지난해 12월 4일 ‘‘딥페이크 봇’ 위험한 놀이… 성착취물 사건 5명 중 1명이 촉법소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며, 청소년들이 이를 단순한 놀이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디지털 환경에서 자라난 세대가 성인지 감수성과 윤리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기술을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현실을 짚었다. 또한 10대들에 대한 교육, 검거, 처벌뿐 아니라 문제가 되는 애플리케이션과 프로그램에 대한 조치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27일 세계일보 5면에 실린 딥페이크 범죄와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청소년 보호 대책 미흡 문제를 다룬 보도다. 세계일보 5면 갈무리
지난해 11월 27일 세계일보 5면에 실린 딥페이크 범죄와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청소년 보호 대책 미흡 문제를 다룬 보도다. 세계일보 5면 갈무리

<세계일보> 역시 딥페이크 범죄의 확산 배경을 다루면서, 청소년들의 낮은 윤리의식과 법적 제재의 미비를 주요 문제로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27일 ‘청소년 딥페이크 범죄 심각…“성평등교육 강화를”’이라는 기사에서 성평등에 초점을 맞춘 교육을 강조했다. 세계일보는 앞서 지난해 9월 27일에 ‘10대 딥페이크 범죄 급증…온라인 플랫폼 규제 강화 목소리’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피의자의 대다수가 미성년자인 이 사건에서 성평등 교육 강화의 필요성과 함께 온라인 플랫폼의 청소년 보호 대책 미흡 문제를 짚은 것이다.

이 두 보도는 미성년자 범죄 보도가 단순히 ‘범죄자 색출’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맥락을 짚고 있다. 청소년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강한 처벌뿐만이 아니라, 교육과 시스템 개선이다. 여기서 만약 언론이 미성년 피의자를 단순한 ‘가해자’로만 규정하고 보도한다면, 사회는 그들을 더 깊은 낙인 속으로 몰아넣게 된다.

미성년자 범죄 보도의 목적은 단순한 공분 유도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밝히는 데 있다. 언론은 미성년자 범죄를 개인의 차원으로만 보지 말고, 이를 발생시킨 환경적 요인과 구조적 문제를 분석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만 소년 범죄의 재발을 막고, 낙인효과를 최소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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