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KBS '추적 60분', 넷플릭스 '그날, 패러다이스'
태곳적부터 사람들은 그림으로 세상을 담아냈다. 젖어 있는 석회벽 위에 수채물감을 칠한 벽화부터 기름으로 분말 안료를 개어 만든 물감을 사용하는 유화까지, 화가들은 다양한 방식을 활용해 눈에 보이는 현실을 기록했다.
재난과 자연재해의 두려움도 그림의 주요 소재였다.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 앞에 한없이 무력하고, 거대한 자연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포착해 냈다.
러시아의 화가 카를 브률로프의 '폼페이 최후의 날'은 마치 화가 자신이 실제 현장을 지켜본 듯, 오래전 화산 폭발로 하루아침에 사라진 도시의 비극적인 최후를 생생하게 후대인들에게 전달해 준다. 이 작품은 자연재해라는 비극 속에서도 서로를 지키려는 민중의 숭고한 모습을 드러낸다. 카를 브률로프는 단순한 재난 묘사를 넘어, 인간의 감정과 도덕성, 자연의 압도적인 힘과 문명의 덧없음을 말하고자 했다. 그리고 사진과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비극적 재난의 슬픔과 공포, 인간 내면의 기록 임무는 상당 부분 미디어에 주어졌다.
미디어가 기록한 산불
2025년 3월 14일 청도를 시작으로 동시다발적인 산불이 전국에서 발생했다. 4만8000헥타르(ha) 이상의 임야가 불에 타 사라졌고 많은 인명피해도 뒤따랐다. 천 년 이상 지켜온 문화유산이 전소되는 등 예전 산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상처를 남겼다.
산불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모든 것을 없애 폐허로 만드는 산불은 매년 반복되고 기후변화로 인해 규모도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산불과 같은 대규모 재해가 인간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산불의 공포가 점점 더 커질 무렵, KBS '추적 60분'은 9명의 피디를 투입해 '긴급 취재, 사상 최악의 산불 현장에 가다'를 제작했다. 신속하게 현장의 위급한 상황을 알린 내용이 돋보이는 보도였다. <넷플릭스>의 2019년 다큐멘터리 '그날, 패러다이스'도 새삼 눈길을 끌었다. 2018년 미국 캘리포니아 패러다이스 지역에서 발생한 최악의 산불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주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재구성한 프로그램이다.
'추적60분'은 이번 대형 산불의 발화지인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을 시작으로 천년고찰 고운사와 최치원 문학관 등 주요 피해 지역을 찾아 흉포한 산불과 싸우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하회마을과 병산마을로 다가오는 불길에 대비하는 소방대원들의 긴장된 모습과 순식간에 전 재산을 잃어버린 이재민들의 허탈한 심정도 생생하게 담아냈다. 또한 애타게 기다렸던 비 소식에 기뻐하는 주민들의 표정 등 현장 밀착취재만이 전달할 수 있는 내용들도 이번 '추적 60분' 방송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였다.
'추적 60분'은 단순한 현장 전달에 그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스튜디오에 전문가들을 불러 이번 산불의 빠른 확산 속도와 초기대응의 실패 원인을 분석했고, 우리나라의 산불 진화 체계의 문제점과 기후변화로 인해 점점 건조해지는 환경 등 구조적인 측면들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다만 현장 취재물과 스튜디오 대담 부분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고, 전문가의 진단과 분석이 형식적이며 깊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대형 재난을 다루는 공영방송의 시사 프로그램으로서 다양한 측면에서 문제를 들여다보았다는 평가가 합당할 것이다.
'그날, 패러다이스'의 내러티브는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했다. 다큐멘터리는 산불이 발생하기 전 패러다이스 주민들의 일상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곧이어 강풍경보를 알리는 뉴스 보도의 오디오를 들려주며 위험하고 불길한 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날, 패러다이스'는 산불의 발생과 확산 과정을 주민들의 증언과 자료화면을 통해 분 단위로 재구성했다. 주민들이 살고 있는 주택가로 불길이 번지면서 스쿨버스로 어린 학생들을 인솔해 화염에 휩싸인 도로를 뚫고 탈출했던 교사, 불길에 포위된 주차장에서 몇 시간이나 갇혀 있었던 주민들과 경찰관의 모습은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그날, 그곳의 공포를 전달한다.
산불이 진화되고 난 후, 재로 변한 자신의 집터를 찾은 소방관이 추억을 담은 사진들과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마저 구해내지 못했다며 침울한 표정을 지을 때, 그의 슬픔은 시청자들에게 옮겨진다.
언론이 재난을 재현하는 방식
서로 다른 형식의 두 개의 프로그램은 모두 산불의 무서움과 그것을 마주한 인간의 무력함과 공포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스마트폰, CCTV, 소방관과 경찰관의 보디캠까지, 현장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 다양한 영상의 활용으로 공포와 무력함은 극대화되었다.
이 프로그램들을 보고 어느 시청자는 한 개인의 어처구니없는 실수 또는 안전 불감증이 거대한 재난이 되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삶의 터전이 파괴되는 것에 황당해했을 것이다. 또 다른 시청자는 기후변화가 가져올지도 모를 미래의 더 큰 재난을 걱정하며 전율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미디어의 재난 현장 보도는 그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특별히 커다란 흠을 잡기 어려운 두 개의 프로그램에 관해 끝내 떨쳐내지 못한 찝찝함을 덧붙이고자 한다. 분명 시사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는데 마치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재난영화를 본 것처럼 '엄청난 불구경'을 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남은 탓이다.
산불 현장의 공포를 극대화해야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현실적 요구와 더 큰 맥락 속에서 정확하고 입체적으로 사안을 전달해야 한다는 당위 사이에서 두 개의 프로그램 모두 전자를 선택한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진다. 아니면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없으면서 한편으론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는 대중미디어의 본질적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공연한 트집 잡기일 수 있다. 재난 보도들을 보면서 가끔 떠올렸던 질문을 이번 산불 다큐멘터리 두 편을 보면서 다시 던져본다. 미디어는 재난을 어떻게 재현해야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