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시사맥(脈)] 재의요구권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안을 다시 논의해 달라고 국회에 요구했습니다. 이른바 ‘재의요구권’을 행사한 겁니다. 지난달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이어 두 번째 재의요구권 행사였습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거대 야당이 여야 합의 없이 단독 처리한 법안을 윤 대통령이 저지한 겁니다. 취임 1년 만에 재의요구권을 두 차례나 행사한 것은 이례적입니다. ‘거부권’이라고도 불리는 ‘재의요구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의요구권(再議要求權)은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집행 기관이 의회의 결정에 이의가 있을 때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의회에 돌려보내는 권한입니다. 즉, 집행 기관이 의회에 대해 갖는 견제권입니다. 각급 지방자치단체에도 집행부가 의회에 대해 같은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헌법 제53조는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이 정부로 넘어오면 대통령이 15일 이내에 이를 공포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대통령은 15일 이내에 이의서를 첨부해 국회에 다시 심사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국회는 법률안을 다시 표결할 수 있는데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하고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법률안은 법률로 확정됩니다. 확정된 법률은 정부에 이송되고 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이를 공포하게 돼 있습니다.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1호’는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국민의 막대한 혈세를 들여서 모두 사들여야 하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며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재의를 요구한 이후 7년 만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3월 23일 의석수로 밀어붙여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법안이 다시 국회로 넘어왔습니다. 지난달 13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본회의에서 재표결됐지만, 재석 의원 290인 가운데 찬성 177명, 반대 112명, 무효 1표로 찬성이 ‘출석 의원 3분의 2’인 194명에 미달해 부결됐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번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서는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간호업무의 탈 의료기관화는 국민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한다며 재의요구 이유를 밝혔습니다. 간호법 제정안은 지난달 27일 여당인 국민의힘이 표결에 불참한 가운데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국회로 돌아온 간호법이 다시 본회의를 통과하기 위해선 출석의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하지만 야당 의석수가 거기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부결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소야대 속에 여야 사이에 극한 대립이 이어지면서 윤 대통령이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단독 처리한 법안을 재의요구권으로 맞서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야당이 과반을 차지하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여권으로서는 야당이 어떤 법률 제정을 강행할 경우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외에는 막을 방법이 없는 셈입니다.

이번 재의요구권 행사로 역대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발동한 사례는 모두 68건입니다. 대통령 거부권 조항은 1948년 7월 17일 제헌헌법에 명시됐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지금까지 행사된 재의요구권의 3분의 2인 45건을 행사했는데, 정치적 격변이 잦았던 건국 초기의 혼란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5건, 노태우 전 대통령 7건, 노무현 전 대통령이 6건을 행사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 1건, 박근혜 전 대통령 2건입니다. 최규하,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한 적이 없는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6건을 행사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재의요구권 행사는 정부의 성격보다는 국회와의 갈등 관계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른바 여소야대 국면이 아니라면 대통령이 국회를 상대로 거부권을 행사할 상황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낮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에 대해 민주당은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하는 태도라고 비판합니다. 특히 문제의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야당과 협의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반대로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재의요구권은 헌법에 규정된 정당한 국회에 대한 견제권이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야당이 쟁점이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법안을 계속 일방적으로 통과시키면서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강요하는 전술을 쓰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예산안 등을 처리하기 위해 야당의 협력이 필요한 대통령으로서는 거부권 행사가 부담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 관련 법안과 공영방송의 지배구조에 관한 방송법 개정안 등 여야의 입장 차이가 분명한 법안들이 줄줄이 국회 처리를 앞두고 있습니다. 내년 예산을 처리해야 하는 정기국회가 다가오면서 윤 대통령의 부담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 법안을 두고도 야당이 강행 처리하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상황이 반복될까요? 아니면 윤 대통령과 야당이 서로 협의를 통해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이 주의 시사맥, 재의요구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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