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시사맥(脈)]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시민들은 고문당하고 살인당했으며, 실종당했고, 독가스로 공격당하거나 자신들의 삶과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쳐야 했습니다.”

분쟁이 끊이지 않는 중동 국가 시리아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서게 됐습니다. 지난 12일 네덜란드와 캐나다가 민간인 고문 혐의로 알 아사드 정부를 제소했기 때문입니다. 웝크 훅스트라 네덜란드 외무부 장관은 제소를 청구하며 성명을 통해 위 내용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소 신청서에는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 이후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민간인 고문 등 반인권적 범죄를 저지르며 국제법을 무수히 어겼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무자비한 반정부 시위대 진압과 군부독재로 ‘시리아 학살자’라 불리는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연합뉴스
무자비한 반정부 시위대 진압과 군부독재로 ‘시리아 학살자’라 불리는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연합뉴스

알 아사드 정권은 바샤르 알 아사드의 아버지 하페지 알 아사드 전 대통령 때부터 50년간 독재를 이어온 세습 정권입니다. 2000년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반정부 시위대와 시민들을 잔혹하게 무차별 학살한 일로 ‘시리아 학살자’라는 별명을 얻으며 전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쳤습니다.

12년째 진행 중인 시리아 내전은 2011년 3월 시리아의 남부 소도시 다라의 어느 학교 담에 적힌 낙서로부터 시작됐습니다. 담에는 ‘민중은 정권의 퇴진을 원한다’는 구호가 적혀있었습니다. 경찰은 구호를 적은 이를 찾으려 대대적인 색출 작업에 나섰고, 10대 소년들을 체포했습니다. 경찰이 소년들을 잔혹하게 고문하는 과정에서 13세 소년이 사망했습니다. 

이 사건은 알 아사드 정권의 군부독재에 불만을 품고 있던 시리아 시민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죠. 시민들은 알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당시 아랍권에서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아랍의 봄’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었는데, 시리아에서도 곧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시위가 격화됨에 따라 정부의 무력 진압 또한 무자비하게 변해 갔습니다.

유엔과 BBC 등에 따르면 시리아 인구 2300만여 명 중 내전으로 사망한 인구는 50만 명이 넘습니다. 시리아인권네트워크(SNHR)는 50만 명 중 투옥 중 고문으로 사망한 시민이 1만 4449명에 달한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정부 감옥에 투옥되었던 수감자들은 투옥 당시 지독한 굶주림에 시달렸을 뿐만 아니라, 극심한 구타나 전기 충격, 신체 불로 지지기, 손톱과 치아 뽑기, 강간을 포함한 성 고문 등을 당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알 아사드 정권의 잔혹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사건으로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독가스 공격이 있습니다. 2013년 알 아사드 정권은 다마스쿠스 인근 반군 장악 지역인 구타에서 생화학무기인 사린 가스 공격을 감행해 최소 1400명의 민간인을 숨지게 했습니다. 2017년과 2018년에도 화학무기로 반군 지역을 수차례 공격한 바 있죠. 알 아사드 정권의 반인권적 행태에 서방 국가들은 강력한 경제·외교적 제재로 시리아에 압박을 가해 왔습니다. 인근의 아랍 국가들도 이에 적극 동참했습니다. 22개의 아랍 국가들로 이루어진 ‘아랍연맹(Arab League)’은 2011년 11월 시리아의 회원국 자격을 박탈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최근 시리아를 제소한 네덜란드와 캐나다는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2011년부터 시리아의 인권 상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고문을 중지하고 가해자들을 처벌할 것을 시리아에 지속적으로 권고해오기도 했죠.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양국은 유엔 고문방지협약에(CAT) 명시된 분쟁해결제도에 따라 시리아와 협상을 이루려 노력해왔지만 시리아는 양국의 문제 제기를 부인하고 비난으로 대응했습니다.

네덜란드와 캐나다 양국은 애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재판을 회부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시리아의 우방국인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되자 결국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시리아를 제소하게 됐습니다. 2020년 9월 먼저 제소를 결정한 네덜란드에 이어 이듬해 3월 캐나다도 합류했습니다.

시리아와 네덜란드, 캐나다는 모두 유엔 고문방지협약 가입국입니다. 유엔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한 국가들은 모든 육체적 또는 정신적 고문행위가 각국 형법에 의해 범죄로 규정되도록 하고, 이에 준하는 가혹 행위 및 그 미수에 관해서도 고문의 경우와 동일하게 처벌해야 하는 의무를 집니다.

만약 이번에 ICJ가 시리아에 대해 재판 관할권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 ICJ는 시리아 정부의 고문 행위에 책임을 묻는 첫 번째 국제 법원이 됩니다. 물론 시리아의 고문행위를 단죄하는 최초의 재판은 아닙니다. 지난해 1월 독일 법원이 이미 시리아의 한 전직 정보기관 요원에 대해 민간인 살인 및 고문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한 선례가 있기 때문이죠.  

네덜란드와 캐나다가 ICJ에 요청한 것은 현재 시리아에서 자행되고 있는 일체의 고문 행위 중단 명령과 수감자 석방, 고문 가해자 기소 및 처벌, 피해자에 대한 보상 제공 등입니다. 시리아 정부는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지만 이전부터 당국에 대한 제소의 적법성을 부인하고, 반군 고문 혐의를 반복적으로 부정해온 전적을 고려할 때 재판이 원만하게 진행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오히려 알 아사드 대통령은 최근 국제 외교무대에 복귀할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지난달 아랍연맹 회원국들은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이유로 시리아의 회원국 자격을 회복시켰습니다. 아랍 국가들은 내전 초기에는 알 아사드 정권을 비판하며 반군을 지지했습니다. 하지만 알 아사드 대통령이 이란과 러시아에게 군사 지원을 받아 내전이 사실상 정부군의 승리로 기울자 최근 수년간은 시리아와 관계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습니다.

아랍연맹에 복귀한 시리아는 내전 발발 이후 12년 만에 아랍연맹 정상회의에 참여했습니다. 지난달 19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제32회 아랍연맹 정상회의에 참석한 알 아사드 대통령은 연설에서 “전쟁과 파괴가 아닌 지역의 평화와 발전, 번영을 위한 아랍권의 연대를 위한 새로운 행동이 시작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시리아가 아랍연맹에 복귀함에 따라 서방 국가들의 단죄 움직임이 순탄하게 진행되기 힘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중동 지역의 복잡한 역학 관계뿐만 아니라 서방 대 반서방 구도 등 풀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번에는 국제사회가 알 아사드 정권에 적법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이 주의 시사맥(脈), 바샤르 알 아사드였습니다.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