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시사맥(脈)] 양곡관리법

물가가 고공행진 하는 가운데 홀로 떨어진 것이 있습니다. 바로 쌀값입니다. 2021년은 통계를 작성한 1979년 이후 쌀값 하락 폭이 가장 컸습니다. 그 전 해와 비교해 24.9%가 떨어지면서 최대 낙폭을 기록했습니다. 농민들은 지난해 8월부터 논을 갈아엎고 상경 투쟁을 벌이면서 쌀값 안정화 방안을 담은 ‘양곡관리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양곡관리법,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일까요?

지난해 9월 충남 보령시의 한 논에서 농민이 농기계를 이용해 수확을 1개월여 앞둔 볏논을 갈아엎고 있다. KBS
지난해 9월 충남 보령시의 한 논에서 농민이 농기계를 이용해 수확을 1개월여 앞둔 볏논을 갈아엎고 있다. KBS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시장격리, 즉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사들이는 조처를 의무화하는 것입니다. 기존 법안은 쌀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수확기 쌀값이 전년 대비 5% 이상 하락할 때 정부가 시장격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개정안은 ‘할 수 있다’를 ‘하여야 한다’로 강화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정치권 내 협상 결과나 재정 당국의 의지 등에 휘둘리지 않고, 기준에 맞으면 바로 초과 생산량을 사들여 쌀값이 폭락하는 걸 막자는 뜻이죠.

양곡관리법을 개정하자는 요구는 지난해 본격화했습니다. 정부가 쌀값이 떨어질 것을 예상하면서도 제때 시장격리를 하지 않아 쌀값이 급락했기 때문입니다. 2020년은 56일 이어진 기록적 장마로 쌀 생산량이 줄었습니다. 기후변화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죠. 반면 2021년 가을부터는 쌀값이 떨어질 조짐이 보였습니다. 기존 법안에 따르면 정부는 매년 10월 15일까지 ‘수급 안정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그해 말이 되어서야 불충분한 격리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이후 쌀값은 계속 떨어졌습니다.

결국 해가 바뀐 2022년 되고서야 정부는 2월(20만t)과 5월(12만 6000t), 7월(10만t) 세 차례에 걸쳐 시장격리를 시행했습니다. 또 9월에는 45만t의 네 번째 시장격리를 했습니다. 정부의 표현대로 ‘역대급 물량’이었지만, 이미 떨어진 쌀값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여당은 정부가 의무적으로 쌀을 수매할 경우 쌀 공급과잉 구조가 고착화하고 재정 부담이 늘어난다며 반대합니다. 국가 전반적으로 쌀 소비량이 떨어지는 가운데, 안정적인 판로확보를 계기로 쌀 공급량이 계속 늘어나면서 쌀을 사들여 보관하는 비용이 증가할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91년 116.3㎏이었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2013년 67.2kg, 2021년 56.9kg으로 꾸준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반면 농민들은 쌀 공급과잉 문제가 수입쌀과도 관계가 깊다고 주장합니다. 엄청나 전국쌀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에 따르면 2015년 쌀 시장 전면 개방 당시, 수입쌀 40만 8,700t에 대해서 5% 관세율할당으로 특혜를 줬습니다. 그러면서 수입쌀 40만 8,700t은 고스란히 국내 시장에 유입됐습니다. 문제는 당시 수입쌀은 국내 소비량의 8%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전체 쌀 소비가 줄어 12%를 차지한다는 점입니다. 농민들은 쌀 소비량이 줄어든 만큼 의무 수입량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농민과 환경단체 등은 또 농업을 경제 논리만으로 바라보는 시각에는 한계가 많다고 지적합니다. 농업은 대표적으로 자연과 공동체를 보존하는 역할을 합니다. 헌법 제123조 4항은 ‘국가는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유통구조의 개선에 노력하여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농·어민의 이익을 보호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농업과 농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음을 밝힌 것이죠. 농민의 소득을 보장하는 일은 지방소멸을 막는 방안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식량 자급 문제도 있습니다.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위기 등으로 국제 곡물 가격이 치솟았습니다. 인도는 밀과 쌀 수출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식량안보가 세계적인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2021년 기준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20.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입니다. 쌀은 자급률이 84.6% 수준이지만, 전년(92.9%)보다 크게 떨어졌습니다. 변화하는 기후와 흔들리는 곡물 공급망을 고려해서 안정적인 국내 식량 생산구조를 만드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농민에게 도움이 안 된다며 반대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된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입니다. 양곡관리법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이 주의 시사맥(脈), 양곡관리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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