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유쾌할 수 없는 '판도라'의 흥행요인

지방자치 시행과 함께 지역이기주의 문제가 등장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또는 지방정부와 지역주민들 간의 갈등이 빚어질 때마다 님비(NIMBY)라는 비판이 따라붙었다. 님비란 공공의 이익에는 부합하지만 자기 지역의 이익에는 부합하지 않는 시설을 두고 ‘내 뒷마당에서는 안 된다(Not In My Backyard)’며 반대하는 행동을 뜻한다. 이때 지역이기주의라는 비판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그 공공시설물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최소한의 전제가 있어야 한다.

▲ 한빛원전이 있는 전남 영광군 홍농읍의 계마항.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는 평균 250킬로미터(km)의 송전선을 지나 국내 전력수요의 38%를 차지하는 수도권 지역으로 공급된다. 그러나 막상 지역 주민들은 갈수록 생계가 막막해지는 처지에 몰리고 있다. © 구은모

원자력 발전이 공공의 이익?

공공의 이익을 가늠하려는 시도는 종종 여론조사로 대체된다. 산업자원부 산하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은 매년 여러 차례 <원자력 국민인식조사>를 실시하는데, 결과의 요지는 ‘국민들은 원자력발전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내 집 앞에 짓는 건 반대한다’는 것이다. 몇몇 언론들은 이를 인용해 님비 현상이라며 비판해왔다.

그러나 <판도라>가 보여준 원전 사고 시뮬레이션 상황은 ‘공공의 이익’이라는 전제가 허구임을 일깨운다. <한국탈핵>의 저자인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원자력발전소를 많이 보유하면 보유할수록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4위의 원전 대국이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전이 밀집해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고리원전의 반경 30km 내 인구는 약 340만명으로 후쿠시마의 16만명보다 21배나 높다. 해운대 해수욕장과 부산시청, 울산시청,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석유화학공업단지 등 주요 시설이 밀집해 있다. (관련기사: “사고 나면 끝장인데 떠날 수도 없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고농도오염지역 넓이가 남한 넓이쯤 됩니다. 전 일본 국토의 20%가 고농도 위험지역이 된 거죠. 만일 한국에 핵사고가 나면 국토 전체가 고농도 오염지역이 됩니다. 살 수 없는 땅이 되는 거예요.”

<판도라>의 주인공 재혁(김남길)은 연인 연주(김주현)의 오토바이가 고장나자 ‘기계에 수명이 있기 때문에 오래 쓰면 고장이 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이때의 기계는 원전을 비유한 것이다. 원전에 있는 200만개 이상의 부품과 시간이 지나면 벌어지는 6만 5천 개의 용접 부위를 사람이 일일이 점검할 수는 없다. 실제로 후쿠시마 원전 중 사고가 난 1~4호기는 모두 가동연수가 30년 이상 된 노후 원전이었다. (관련기사: 30년 된 고물차, ‘질주 면허’ 받다)

원전 옆 살았더니 온 가족이 암과 장애

원전을 들이지 않겠다는 주민들의 입장을 단순히 님비라고 비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원전과 가까운 마을에서 비정상적으로 높은 암 발병률이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전 주변 지역의 갑상선암 발병률은 다른 지역의 발병률에 비해 약 3배가량 높다. 지금까지 원전 주변 지역에서 무뇌아(無腦兒)나 대두아(大頭兒) 출산, 백혈병 등 방사선 피폭을 의심할만한 장애와 질병이 사회적 이슈가 된 일은 적지 않았다. 원전 이외에는 별다른 오염원이 없다. 반면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이 인근 주민의 건강에 영향을 줄 정도의 방사능을 배출하지 않았다’며 상관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관련기사: 원전 옆 살았더니 온 가족이 암과 장애)

▲ 기장군 곳곳에서 원전 운영에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장군은 세계 최대 원전 밀집 지역이다. ⓒ 이문예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전국 128개 지역에 환경방사선감지기를 설치해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원전 주변 지역과 수도권의 방사선량에 큰 차이가 없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원전 주변에서 발생하는 피폭은 더욱 치명적이다. 그것은 대부분 물이나 음식 등을 통해 인체로 흡입되는 ‘내부 피폭’이기 때문이다. 이때 피해는 1만 배 이상으로 커진다고 유럽방사선위험위원회(ECRR)의 최고 권위자 크리스토퍼 버스비 박사는 설명했다. 지난해 8월 21일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에서 열린 갑상선암 공동소송 2차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한 그는 한수원의 측정치에서 1만 배 이상을 곱해야 실제 피폭량을 측정할 수 있다며 한수원의 주장을 반박했다. (관련기사: “줄줄이 암 발병, 무관심하면 안 되죠”)

방사선 노출량과 암 발생 확률에는 ‘최소한의 값’이 없다는 미국국립과학아카데미(NAS)의 연구결과도 있다. 방사선 노출에 있어 최소한의 안전 기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노출량과 암 발생 확률은 비례하므로 방사선에 최대한 노출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언급도 포함되었다. 피폭으로 인한 암 발생 증가를 인정하면서도 실제 증가율은 매우 미미하다는 한수원의 주장과는 상반된다.

▲ 2011년 발간된 WHO 보고서 “Guidelines for Drinking-water Quailty(4th Edition)” 역시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기준치 이하의 방사선 노출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 <뉴스타파> 영상 갈무리
 

원전 주변 주민들의 소변에서는 대표적인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계속해서 검출되고 있다. 삼중수소는 주로 물의 형태로 존재하며 식수를 통해 섭취돼 내부피폭을 일으킨다. 물 분자를 형성하는 데 수소원자와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이 삼중수소 같은 방사성 물질에 노출되면 세포 내의 디엔에이(DNA) 염기서열이 끊어지거나 훼손되기 시작한다. 염기서열이 끊어지거나 훼손되면 우리 몸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수리 작업을 하는데, 이때 일부 작업이 잘못되면서 비정상적인 세포, 즉 암세포가 생긴다. 암 발생 확률이 방사선에 노출된 만큼 높아지는 이유다. (관련기사: ‘뜨뜻한 바다’에서 물고기는 떠나고)

발전소 주변의 환경오염

2014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바에 따르면 2004~2013년까지 10년간 국내 원전에서 배출한 방사성폐기물은 약 6,000조 베크렐(Bq)로 연간 인체 피폭기준치의 10억 배에 이른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엄격하게 방사능 농도를 통제하고 있다고 밝히지만, 폐기물 배출 기준이 총량이 아닌 농도이기 때문에 일정 정도 이하로 희석하기만 하면 전체 양은 아무리 많아도 상관없이 버릴 수 있다.

지난 10월에는 한수원이 발전 5사와 함께 2010년 이후 온배수에 섞어 바다에 무단 방류한 디메틸폴리실록산이 1만 톤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노출되면 호흡기 손상과 함께 태아의 생식 능력까지 해쳐 인체 유해물질로 규정된 디메틸폴리실록산은 바다 방류가 원천 금지돼 있다. 국회 산업자원통상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은 "이 물질이 포함된 발전소 온배수가 일부에서는 어류 양식 등에 사용되고 있어 어민과 일반 소비자에게까지 피해를 야기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유해물질 무단 방류는 “악취가 심하다”는 발전소 주변 어민들의 신고가 있고서야 수면 위로 떠올랐다.

부산시는 정부와 함께 2013년 12월 해수에서 염분을 제거해 수돗물을 만드는 해수담수화 공장을 기장군에 완공한 뒤, 2014년 말 기장군과 해운대구 송정동 일대 10만명에게 공급하려 했다가 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바닷물을 끌어오는 취수장이 고리 원전에서 불과 11km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는 미국국제위생재단(NSF)에 수질검사를 의뢰해 해수담수화 수돗물이 방사성 물질 등 수질기준을 모두 통과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수담수화 반대대책위는 미국국제위생재단의 공문에 삼중수소가 검출 한계치 이하라는 것이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는 공식입장이 담겨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미국국제위생재단은 <뉴스타파>를 통해 ‘부산상수도로부터 제출받은 샘플에 대해 검사 성적서를 발급했을 뿐 수질을 인증하거나 상수도 자체의 안전을 보장하는 의미는 없다’고 밝혔다. <뉴스타파>의 작년 7월 2일치 기사에 따르면 삼중수소는 입자가 작아 해수담수화 과정에서 전혀 걸러내지 못한다.

▲ 인근 주민들은 정부, 지자체, 기업 등 3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만들어진 물을 식수로 사용하게 될 주민들의 동의를 누구도 구하지 않았다는 것이 기장군 해수담수화 사업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 <뉴스타파> 영상 갈무리

2020년대 수명만료 국내 원전 11기 줄줄이 철거해야

모든 원전이 30~40년의 수명 종료 후 철거되어야 하며, 이런 폐로 과정에 최대 100년의 긴 시간과 1기당 수천억 원의 비용이 든다는 ‘부담스러운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맹독성 방사선을 내뿜어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는 사용후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해 10만년 이상 밀폐가 가능한 시설을 엄청난 돈을 들여 지어야 한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한수원 등 국내 원전 운영주체와 관련 기업, 전문가들이 그동안 긍정적으로만 원전을 홍보해 왔기 때문이다. 한수원은 최근 6년간 홍보예산으로만 565억원을 쓴 것으로 드러나, 원전 위험성과 반대 여론 차단을 위해 예산을 과도하게 집행했다고 비판받았다. (관련기사: 주민 참여 속 ‘안전한 폐로 전략’ 세워야)

원전의 발전 단가에는 원전 및 핵폐기장 건설 보상비, 사고 발생 위험 비용, 노후원전폐로 및 환경복구 비용, 그리고 사용후핵폐기물 처분 비용 등이 제대로 산정되지 않았다. 이처럼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 ‘숨겨진 비용’을 고려하면 원전은 오히려 비싼 에너지라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에너지·환경단체뿐 아니라 국책기관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역시 원전의 숨은 비용을 발전 단가 형식으로 구체적으로 계산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했다. 과거 후쿠시마 제1 원전 1・2・6호기를 건설했던 GE의 제프 이멜트 회장도 다른 에너지원과 비교해볼 때 “원자력 발전은 정당화되기 어려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재생 에너지 급성장, ‘대안 있음’을 입증

2011년 독일 메르켈 정부는 “모든 원전을 2022년까지 폐기한다”고 선언했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투자로 ‘탈원전’은 물론 ‘탈화석연료’까지 100% 달성하겠다는 독일 정부의 전략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 등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며 순항하고 있다. (관련기사: 민주주의가 ‘탈핵 합의’를 낳았다)

한국에서도 미약하지만 시민의 각성과 참여를 통해 탈화석연료, 탈원전을 추구하는 ‘에너지정치’가 환경단체와 지자체를 중심으로 시작되고 있다. 서울시는 2012년 5월부터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을 시행 중이다. 에너지 절약과 소비 효율화, 신재생에너지 생산 확대 등을 통해 원자력발전소 1기 생산분의 전기를 절감하는 것이 이 사업의 목표다. 경기도 역시 지난해 6월 ‘에너지 비전 2030’을 선언하고 태양광 발전소 확대, 신재생에너지 타운 조성 등의 사업으로 2030년까지 전력자립도 70%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탄소 없는 섬’을 추진 중인 제주도는 2030년까지 도내에서 소비되는 모든 에너지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대체할 계획이다. (관련기사: 생명과 안전 ‘에너지 정치’로 지키자)

▲ 서울시, 경기도, 충청남도, 제주도 지자체장들은 지난해 11월 지역 에너지 전환을 위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고 협력해나가기로 했다. ⓒ 소셜방송 <라이브 서울> 화면 갈무리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전력생산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 회원국 중 꼴찌에 머물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5년 5월 기준 한국의 전체 발전량 대비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0.8%로 OECD 평균 7.7%에 크게 못 미친다. 정부가 원전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고수하면서 신재생에너지 연구개발과 투자는 사실상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핵전문가 이유진 녹색당 탈핵공동위원장은 “우리나라에서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수도권 지역에서 원전을 많이 대체하겠다는데, 정부는 오히려 원전을 추가해서 2024년까지 42기나 운용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관련기사: 지구가 망하면 일자리도 없다)

“시민들과 지자체의 인식과 행동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분명히 바뀌고 있는데, 국회와 정부는 아직까지 원전 옹호논리에 얽매여 있습니다. ‘핵마피아’ 세력에 대항하려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탈핵 공동체를 만들어 대응해야 합니다.”


편집 : 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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