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그린피스 환경감시선 ‘레인보우 워리어’ 기자간담회

“프랑스 안전원자력위원회의 위원 한 사람을 벨기에 브뤼셀에서 만났는데, 그가 말하기를 후쿠시마 같은 대형 원전사고는 ‘설마 다시 일어날까’가 아니라 ‘언제 일어날까’의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라더군요.”

숀 버니(53) 그린피스 독일사무소 수석원전전문가는 7일 부산 중앙동 부산항 1부두에 정박한 환경감시선 ‘레인보우 워리어’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후쿠시마의 현재, 사고가 주는 교훈’을 주제로 열린 이날 간담회에서 버니 수석은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는 많은 나라들도 일본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져야 할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후쿠시마 원전사고 5주기를 맞아 사고 해역 주변에서 실시한 방사능 오염 조사를 지휘한 뒤 이날 간담회에서 그 결과를 발표했다. 또 장다울(39)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선임캠페이너는 신규 원자로 건설승인을 앞둔 부산 고리원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 레인보우 워리어호에서 '후쿠시마의 현재, 사고가 주는 교훈'을 주제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 배지열

원전사고는 ‘설마’ 아닌 ‘언제냐’의 문제

그린피스가 확인한 후쿠시마의 방사능 오염 피해는 사고 5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형이었다. 버니 수석에 따르면 수천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이 사람 대신 방사능 폐기물로 가득 차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사고 후 지금까지 배출된 약 78만 톤(t)의 방사능 오염수도 원전 인근 임시탱크를 채우고 있다.

후쿠시마 지역에서 방사능에 오염된 토양 등을 제거하는 제염작업은 결과적으로 효과가 없었다. 수천 명이 투입됐지만, 작업은 거주지와 도로를 기준으로 반경 20미터(m) 내에서만 진행돼 역부족이었고, 인근 산림 지역에 축적됐던 방사성 물질이 다시 제염지역으로 흘러들어와 재오염시켰다. 사고 직후부터 지금까지 이뤄진 약 25번의 방사능 오염수준 측정 결과, 해당 지역의 오염 수치는 떨어지지 않았다.

버니 수석은 “후쿠시마 인근 이타테 마을의 경우 측정 지점 1만개 중 96% 이상이 일본 정부가 정한 제염목표 방사능 수치인 시간당 0.23 마이크로시버트(uSv)를 초과했다”며 “이 정도의 방사능을 연간으로 환산하면 1mSv의 방사선을 더 쬐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연간 1mSv는 일반인에게 허용할 수 있는 방사선량의 개인 한도를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가 권고한 수치로, 미량이지만 오랜 기간 노출될 경우 백혈병이나 암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전 세계 평균적으로 사람들이 자연 방사선을 연간 2.4mSv 받는 걸 감안할 때, 오염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더 많은 양의 방사선에 노출되는 것이다. 이러한 제염작업 실패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수만 명에 달하는 피난민들을 조만간 ‘재오염된 지역’으로 돌려보낼 계획이다. 이에 대해 숀 버니는 “명백한 범죄행위”라고 말했다.

▲ 국내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는 숀 버니 그린피스 수석 원전 전문가와 장다울 선임캠페이너. ⓒ 배지열

제염작업은 결과적으로 엄청난 양의 방사성 폐기물을 만들었다. 후쿠시마 현 내에만 현재 11만 3000여 곳의 방사성 폐기물 단지가 생겨났다. 지난해만 900만 세제곱미터(㎥)의 방사성 폐기물이 발생했는데 이는 사고 후 단 4년간의 제염작업으로 발생한 양에 불과하다. 버니 수석은 “전 세계적으로 방사성 폐기물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데, (후쿠시마에서) 그 양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 큰 문제가 방사능으로 인한 생태계 변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후쿠시마 사고는 동·식물에 피해를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확인한 후쿠시마 지역 생태계에는 이미 변화가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후쿠시마 지역에 있는 70%의 전나무에서 유전자 변이가 발견됐습니다. 수직으로 성장해야하는 전나무에서 새로운 가지나 순이 실종되는 돌연변이가 관측됐고, 작은 식물이나 진딧물, 지렁이도 유전자 변이를 일으켰습니다. 방사능 노출량이 클수록 변이는 더 심하게 일어났습니다.“

태평양으로 흘러들어가는 방사능 물질도 문제다. 그린피스는 강과 호수의 침전물에 방사능이 축적되고 있는 것을 확인했는데, 이는 결국 바다로 흘러들어가 생태계 전체가 방사능 오염물 ‘저장고’가 되는 결과를 만든다. 버니 수석은 “앞으로 약 100년간 후쿠시마 사고 현장으로부터 방출되는 방사능만큼의 방사능 물질이 후쿠시마 산림 생태계와 강을 통해 방출 될 것”이라며 수중 생태계의 위험을 경고했다.

세계 최대의 원전단지가 된 부산 고리지역

장다울 선임캠페이너는 부산 고리 원전의 기록들을 제시하며 발표를 시작했다. 현재 고리 원자력발전소에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운영허가를 기다리는 신고리 4호기를 비롯해 총 8기의 원자로가 가동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총 188곳의 원전 부지가 있는데, 이 중 원자로가 6기 이상 밀집된 곳은 11곳밖에 없다. 이 중 일본에서 가동을 중단한 원전을 제외한 10곳을 비교하면 고리 원전이 총 설비용량이나 원자로 개수에서 압도적 1위다. 장 캠페이너는 “현재 신규 건설허가 단계에 있는 신고리 5,6호기가 승인되면 원자로 개수가 9개(고리 1호기 2017년 6월 가동중지 예정)로 늘어나고 설비용량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1만메가와트(MW)가 넘는 초대형 원전단지로 거듭나게 된다”고 우려했다.

▲ 세계 Top 10 대형 원전 단지 현황. ⓒ 그린피스 제공

고리 원전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할 경우 산림 비율이 각각 46%와 65%에 이르는 부산과 울산에서 현재 후쿠시마 지역에서 나타난 생태계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장 캠페이너는 “일단 산림이 오염되면 지속적으로 방사능 물질이 하천으로 유입되면서 강을 오염시키는데, 특히 이 지역의 식수원인 낙동강이 오염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인근에 가장 많은 주민이 사는 이곳에 신규 원전을 짓겠다는 것은 용납하기 힘들다”며 “고리 원전의 사고는 오랜 시간 동안 주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고리원전 인근 30km 내에는 340만 명에 이르는 주민이 있고, 주요 경제시설도 위치하고 있다. 전 세계 컨테이너 물동량 5위를 기록하고 있는 부산항이 32km 떨어져 있고, 울산의 자동차 산업단지와 석유화학 단지도 20km 이내에 있다. 장 캠페이너는 “원전 이내 30km는 (사고가 날 경우) 치명적인 영향으로 사람이 수십 년간 살 수 없는 지역을 의미한다”며 “실제 피해는 30km 내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고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경우 최대 1500km까지 방사능 물질이 확산됐다”고 말했다.

▲ 장다울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선임캠페이너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통해 부산 고리 원전도 사고가 일어나면 안전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 배지열

최근 부산 기장군에 설치된 해수담수화 시설도 위험성 논란이 일고 있다. 두산중공업에서 설치한 해수담수화 시설은 고리 원전으로부터 약 11km 떨어진 곳의 바닷물을 이용해 운영한다. 인근지역 주민투표결과 89.3%가 반대하고 있지만, 원안위는 가동 여부에 대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장 캠페이너는 "안전성에 불확실한 측면이 많다"며 "실시간 모니터링이 제대로 이뤄질지도 의문이며 고리 원전에서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었을 때 즉각적으로 시설이나 시민들한테 알리지 않을 경우 오염된 식수를 마실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시민의 ‘원전 증설 반대’에 정치권과 정부가 응답해야

그린피스에서는 최근 여론조사 기관 갤럽과 함께 부산 시민 1200명에게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한 입장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신고리 5,6호기를 추가로 짓는다는데 주민의 약 51% 가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그리고 신규원전에 대해 자신과 다른 입장을 가진 후보에게 투표하겠냐는 질문에는 ‘투표하지 않겠다’는 답이 44%로 나왔다. 장 캠페이너는 “후보를 선택하는 데 하나의 이슈만 영향을 주는 건 아니지만, 원전에 한해서는 선거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부산 시민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장 캠페이너는 “시민들도 반대하고, 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원전 주변에 사는 주민들을 생각해서라도 더 이상의 신규원전은 막아야 한다”며 “정치인들이 이 목소리에 응답해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 간담회에 참석한 기자들은 정책선거가 실종된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그린피스의 연구결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물었다. ⓒ 배지열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서 그린피스는 모든 후보들에게 ‘화석연료 산업계로부터 선거 자금을 받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버니 수석은 “시민들과 그린피스의 압력이 대선 승리 여부에 관계없이 차후 미국 에너지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미국이 점진적으로 재생에너지 산업을 더 성장시키는 정책적인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독일의 경우 현재 진보 진영의 사민당과 녹색당뿐만 아니라 보수 진영의 기민당까지 모두 단계적인 탈원전을 지지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도 오랜 기간 진행된 시민과 그린피스의 캠페인,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이고 경제성장에 적극적인 정당까지도 재생에너지 투자와 경제발전을 연계시키고 있는 것이다. 버니 수석은 일본과 한국 정부를 향해 “또 하나의 원전사고가 일어날 때까지 변화를 미뤄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 숀 버니 수석 원전 전문가는 원전을 운영하는 국가의 시스템은 원전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목적이며 이를 줄여나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 배지열

그린피스는 후쿠시마 조사결과를 부산에서 발표한 것에 대해 부산이 국내 인구 2위 지역이고 경제적으로 중요할 뿐 아니라, 시민들의 정치력도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장 캠페이너는 “(노후원전인) 고리 1호기를 폐쇄하기로 한 것처럼, 시민들의 거센 요구가 정치인들과 정부의 결정에 실질적인 영향을 준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에너지 정책뿐 아니라 시민들이 원하는 변화가 정치권에서 받아들여져 긍정적 변화가 일어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편집 :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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