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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참여 속 ‘안전한 폐로 전략’ 세워야
[원전재앙은 막자] ⑬ 서둘러야 할 노후발전소 해체계획
2016년 02월 05일 (금) 00:16:15 기민도 김민지 기자 kmdwhat1@naver.com

미국 메인주의 위스카셋 지역에 있는 양키 원전(Maine Yankee)은 1972년 가동을 시작한 뒤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1997년부터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즉시해체’ 방식으로 8년만인 2005년 폐로가 일단 끝나 원전 일대에 푸른 녹지가 조성됐다. 하지만 원전 터에는 아직 64개의 저장용기 속에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가 쌓여있다.

미국 정부가 고준위핵폐기물 처분장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원전운영사는 이 폐기물 관리에 연간 1000만 달러(약 120억 원)를 쓰고 있다. 회사 측은 미국 정부에 비용청구 소송을 내 일단 1억1000만 달러를 받았지만, 계속 발생하는 비용에 대해 다시 소송을 낼 계획이다. 세계 1위의 원전대국인 미국에는 지금까지 115기의 원전이 건설됐고, 이 중 16기가 폐로됐다. 12기는 녹지를 조성하는 단계까지 작업이 진행됐다. 하지만 폐로된 모든 원전에서 사용후핵연료는 영구처분될 날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쌓여있는 처지다.

   
▲ 미국 메인주의 위스카셋 지역에 있는 양키 원전은 해체 작업을 거쳐 녹지가 조성됐다. 하지만 원전 터에는 아직 64개의 저장용기 속에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가 쌓여있다. ⓒ 메인양키원전 홈페이지 제공

2020년대 수명만료 국내 원전 11기 줄줄이 철거해야  

한국수력원자력 등 국내 원전 운영주체와 관련 기업, 전문가들은 그동안 원전의 경제성 등 긍정적인 측면만을 홍보해 왔다. 그래서 모든 원전이 30~40년의 수명 종료 후 철거되어야 하며, 이런 폐로 과정에 최대 100년의 긴 시간과 1기 당 수천억 원의 비용이 든다는 ‘부담스런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맹독성 방사선을 내뿜는 사용후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10만년 이상 밀폐가 가능한 시설을 엄청난 돈을 들여 지어야 한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국내원전의 폐로는 내년 중반 가동이 중단되는 고리1호기를 시작으로 2020년부터 본격화한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 24기 중에서 절반인 12기의 설계수명이 오는 2030년까지 만료된다. 또 2051년까지 추가로 11기의 설계수명이 끝난다. 이 중 수명연장을 거쳐 계속운전을 하는 원전도 있겠지만, 설계수명이 지켜진다는 전제에서 폐로 비용을 추산하면 정부 기준으로 1기당 약 6000억원, 2051년까지 대략 15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는 이렇게 대략의 소요비용만 잡아놨을 뿐, 해체방식 결정과 관련기술 개발 등 필수적인 준비는 모두 ‘앞으로 하겠다’는 입장이다.

   
▲ 원전 설계 수명. ⓒ 기민도

시민단체인 에너지정의행동의 이헌석 대표는 <미국 사례를 통해 본 한국 핵발전소 폐로 정책의 과제>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원전의 해체비용 산정 등 폐로 준비가 매우 미흡하다고 비판했다. 보고서는 우선 해체방식에 대한 합의가 없다고 지적한다. 15~20년이 걸리는 즉시해체 방식이냐, 60~100년이 걸리는 지연해체 방식이냐에 따라 비용이 크게 달라지는데 아직 결정된 게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해체 비용이 주먹구구식으로 산정됐다고 보고서는 비판한다. 현행 핵발전소 해체비용은 같은 설비용량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 기당 6437억원으로 책정돼 있다. 고리 1호기는 설비용량이 587메가와트(MW), 월성 1호기는 679MW, 고리3, 4호기 등은 950MW이며 현재 건설 중인 원자력 발전소들은 1400MW인데 모두 일률적으로 비용이 계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폐로를 위한 비용 정산과 적립 주체, 즉시 혹은 지연 등 해체 방법, 폐기물 처리와 피폭 노동자의 문제, 폐로 이후 땅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에 대한 계획이 없다"며 "2017년 가동 중지가 결정됐으므로 내년까지 이러한 문제에 대해 확정을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체 방식, 비용 산정, 핵폐기물처리 등 모두 ‘안개 속’ 

고리원전민간환경감시기구 최선수 센터장은 폐로 과정에서 사용후핵연료 처리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꼽았다.

“사용후핵연료가 제일 문제입니다. 콘크리트는 만년 가는데 사용후핵연료는 30만 년이 가는 연료입니다. (고리 1호기를 폐로하면서) 최종처분장이 고리 지역으로 올까 봐 주민들이 걱정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정부서울종합청사에서 열린 제5차 원자력진흥위원회 발표 자료에 따르면 사용후핵연로는 원전을 운영하는 전 세계 31개국의 공통 현안이지만 미국, 일본, 프랑스 등 22개 국가가 중간저장시설을 운영 중일뿐 영구처분시설을 만든 국가는 아직 없다. 핀란드만 공론화 과정을 거쳐 영구처분 부지를 선정하고 건설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가 20개월간의 활동을 바탕으로 지난해 6월 “영구처분시설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권고안을 제출했다. 이 권고안을 바탕으로 정부는 지난해 12월에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리시설 등에 대한 계획을 내기로 했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발표를 미뤘다.

   
▲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가 20개월간의 활동을 바탕으로 지난해 6월 “영구처분시설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권고안을 제출했다. ⓒ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페이스북 제공

미국 영국 등은 폐로 추진 과정 주민 참여 존중

고리 1호기가 있는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등 원전 인근 주민들은 폐로과정에서 방사성 물질이 누출돼 오염 피해를 입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불안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폐로 계획을 세우는 단계부터  지역 주민을 참여시키지만, 우리나라는 주민 대상 정보공개와 의견 수렴 등의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지적된다.

부산대 전홍찬(정치외교학) 교수의 논문 <원자력 폐로 체제에 대한 연구: 영국 체제가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영국은 폐로 현장마다 지역이해관계자 그룹인 SSG(Site Stakeholder Group)를 구성해 폐로전담기관인 원전폐로청(NDA)과 시민단체, 시의회, 언론 등의 대표가 소통하게 한다. NDA는 이해관계자들에게 폐로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과 안전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고 의사결정에 참여시킴으로써 폐로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인다.

이헌석 대표가 쓴 <미국 사례를 통해 본 한국 핵발전소 폐로 정책의 과제>에 따르면 미국 역시 해체과정 각 단계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발언할 기회를 주고 있다.  특히 각 핵발전소 폐로에 대한 계획서가 모두 인터넷에 공개되고, 주민들은 폐로 과정에서 회의 개최를 요청할 수 있다.

   
▲ 미국은 해체과정 각 단계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발언할 기회를 주고 있으며(사진 위) 영국 역시 폐로 현장마다 지역이해관계자 그룹을 구성해 주민 의견을 수렴한다(아래). ⓒ 메인양키원전(위) 영국 지역이해관계자그룹 홈페이지 제공

우리나라 원자력안전법(28조1항)도 발전용원자로운영자가 원자력 발전소를 해체할 때 주민의견이 반영된 해체계획서를 제출해야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그동안 원전건설 및 운영단계에서 주민의견 수렴이 요식행위에 그쳤던 것처럼 폐로과정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해체 계획 수립과정에서 주민 공청회 및 설명회를 열고 작업 진행 과정에서 주변 환경영향을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공개하는 등 주민과의 소통의무를 법에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술개발과 관련법 정비 등 구체적 준비 서둘러야

정부는 지난해 6월 고리 1호기의 폐로 계획을 발표하면서 “2050년에는 (세계) 발전용 원전해체 시장이 200조원 규모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고리 1호기 해체를 관련 산업 육성의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앞으로 폐로 시장이 커질 전망인 만큼 국내 기업들이 기술개발을 통해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울산과학기술대 김희령(기계 및 원자력공학부) 교수는 “전 세계 430여개 원전 중 가동 정지원전이 150여개, 이중 해체 완료된 게 19개인데, 군사관련 시설 등을 제외하면 원전해체시장이 약 200~300조원으로 추정된다”며 “한수원과 손을 잡고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들이 도전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고리 원전 해체 경험이 바탕이 되면 미래 세계 원전 해체 시장에 우리가 유리하게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원전 폐로의 산업적 전망에 성급한 기대를 걸기보다 ‘안전한 폐로’를 위한 준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탈핵에너지팀 안재훈 팀장은 “우리는 그동안 원전을 짓는 것만 고민했기 때문에 폐로 방법과 기술, 전문가, 법률 등이 부족하다”며 “원전을 짓기 전부터 폐로 계획을 세우고, 원전 운영 중에도 폐로 계획을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폐로를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원전 수명만료 시점에) 닥쳐서 하기는 어렵고, 폐로 준비가 안 된 것이 원전 수명 연장의 핑계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대참사 후 독일, 벨기에, 스위스, 프랑스 등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들은 원전을 폐기하거나 줄여가는 ‘탈원전’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설계수명을 넘긴 월성 1호기를 연장 가동하고, 새로운 원전을 증설하기로 하는 등 거꾸로 가는 모습이다. 노후 원전의 사고 가능성과 지역주민의 건강 피해, 대책 없는 핵폐기물 등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를 외면한 채 이처럼 ‘원전대국’으로 직진해도 되는 것일까. <단비뉴스>는 우리나라 원전 정책의 문제점과 원자력발전의 근본적 위험성을 짚어보고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에너지 체제’를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편집자) 

편집 : 문중현 기자

[기민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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