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재앙은 막자] ⑩ 지역주민 건강권 소송

"가족 중에 성인이 넷인데 넷 다 병에 걸렸어요. 이게 말이 됩니까?"

지난해 5월 27일 부산 기장역에서 <단비뉴스> 취재진과 처음 만난 이진섭(52·부산시 기장군 기장읍)씨는 가족 이야기를 하다 치밀어 오는 분을 삭이지 못했다.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균도 아빠’로 알려진 그는 원래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25)을 위해 장애인운동을 하다 지금은 원전 주민 건강권 소송의 대표주자가 됐다. 그는 취재진과 고리원전까지 동행하며 원전 지역주민의 불안과 억울함을 토로했다.

고를 균(均), 길 도(道). 이씨는 아들의 인생이 고르고 평탄한 길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두세 살 무렵 자폐성 발달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후 아들을 포함한 장애인들이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는 일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러다 지난 2007년 부산 기장의 고리원전에서 6킬로미터(km) 떨어진 마을에서 20여년을 살아온 장모(79)가 위암 판정을 받았고 2011년에는 이씨 자신이 직장암 판정을, 이듬해 아내(51)가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다. 그는 '이 모든 게 원전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됐다. 이씨 부부는 균도를 가졌을 때 고리원전에서 3km 떨어진 기장군 장안면 좌천리에 살고 있었다. 아들의 장애 역시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능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빚지며 외로운 소송 계속하는 이유는

그의 막연한 의심이 2012년 7월 한국수력원자력을 대상으로 한 소송으로 번진 것은 당시 김종신 한수원 사장의 기자회견 때문이었다. 김 전 사장은 고리원전 1호기의 블랙아웃(전력공급중단) 사고를 은폐한 사실이 드러나 문제가 되자 부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장에서 한 기자가 “수도권에 원전을 짓지 않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그는 "수도권은 인구 밀집 지역이라 (사고 발생시) 대피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기사에서 그런 내용을 읽고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들었죠. 부산도 인구 밀집 지역인데 부산에는 원전을 증설하면서 수도권은 주민 안전을 이유로 지을 수 없다고 말하니 황당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 기자회견 후 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 등 시민단체와 인근 구의회들이 고리 1호기 폐쇄를 요구하는 등 원전 반대 운동이 본격화했다. 하지만 정작 원전이 있는 기장군의 의회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씨는 기장군과 군의회가 원전에서 나오는 경제적 이익에 눈이 멀어 주민 건강에 대한 위협을 방치하고 있다는 생각에 분노했다. 그래서 ‘균도 소송’을 시작했다.

▲ 이진섭씨는 2014년 6월 장애인 인권 문제와 원전 문제를 지역 주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지방선거에 기장군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 이진섭

‘원전 주민의 건강권을 주장하는 최초의 소송’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이 재판에 주목했다. 하지만 27개월의 지루한 공방이 이어지면서 사회적 관심은 희미해졌고, 균도 가족과 소송대리인인 서은경 변호사는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야 했다. 한수원은 줄곧 ‘원전이 인근 주민의 건강에 영향을 줄 정도의 방사능을 배출하지 않았다’는 주장으로 맞섰다.

2014년 10월, 1심 재판부인 부산지방법원은 이씨 아내의 갑상선암에 한해 한수원의 책임을 인정하고 15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갑상선암 발생에 방사선 노출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 이씨의 아내가 고리 1~4호기와 신고리 1~2호기 등 6개의 원전으로부터 약 10km 안팎에서 20년 가까이 거주했다는 점이 고려됐다. 특히 다른 암과는 달리 여성 갑상선암은 원전으로부터의 거리와 발병률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내용의 '원전 주변지역 주민 역학조사(서울대 안윤옥 교수팀, 2011년 발표)' 결과가 판결의 근거로 쓰였다. 이씨와 균도의 질병에 대한 원전 연관성은 인정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원전 지역 주민들의 건강권 주장 근거가 될 수 있는 판결이자 한수원에 배상책임을 지운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지금까지 원전 주변 지역에서 무뇌아(無腦兒)나 대두아(大頭兒) 출산, 백혈병 등 방사선 피폭을 의심할만한 장애와 질병이 사회적 이슈가 된 일은 적지 않았으나 소송으로까지 이어진 적은 없었다. 현재 한수원과 이씨 양측 모두 판결에 불복해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이씨는 아내의 질병 관련성만을 인정한 판결이 불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이렇게 의혹을 제기했으니 이제는 나라가 적극적으로 대답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균도 소송은 돈이 목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소송으로 빚을 졌는데요. 돈이 목적이었다면 이런 험한 소송은 시작도 못했을 겁니다. 그냥 국가에 묻고 싶었습니다. 폐쇄적으로 운영하면서 안전하다고만 말하는 원전이 진짜 안전한 발전인지를 말입니다."

▲ 이진섭씨는 원전과 관련한 정보의 대부분을 비공개로 하며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정부의 행태를 지적하며 "(소송을 통해) 원전의 안전신화에 금이 가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이문예

이씨는 소송에서 일부 승소했지만 전체 소송비용의 95%를 스스로 부담해야 했기 때문에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졌다. 균도의 장애인수급비와 기초생활수급비, 얼마 되지 않는 이씨의 강연활동비 등으로 살아가는 살림에 엄청난 부담이지만 이씨는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균도 소송’이 540여명 공동소송의 불씨로

이씨의 안내로 배들이 정박한 기장군 장안읍의 한 해안가에 서자 북서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이 한적한 어촌 풍경을 그려냈다. 그러나 오른쪽으로 약간 시선을 옮기니 곧바로 둥근 지붕의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을과 불과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한 고리원전 1~4호기였다.

"전세계에서 이렇게 원전과 마을이 가까이 있는 곳도 드물 거예요. 파키스탄이나 대만 원전을 제외하고는 아마 원전과 마을이 가장 가까이 위치한 곳이 이곳일 겁니다."

▲ 원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형성돼 있다. ⓒ 이문예

이씨의 말대로 이처럼 원전과 가까운 마을에서 비정상적으로 높은 암 발병률이 보고됐다면 방사능 노출을 의심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한수원은 '원전과 주민 질병은 상관관계가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1990년 이후 고리원전 주변 지역에서 측정한 방사선량이 법적 연간 방사선량한도인 1밀리시버트(m㏜)에 크게 못 미치는 0.005m㏜ 안팎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원전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역의 방사선량과 원전 인근 마을의 방사선량에 큰 차이가 없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원전 지역 주민들은 한수원의 이런 주장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원전만 아니면 별다른 오염원이 없는 마을인데, 갑상선암 발병률이 다른 지역보다 3배가량 높은 이유를 설명할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대 백도명 교수팀의 ‘원전 주변주민 역학조사 관련 후속 보고서’에 따르면 원전 주변 지역 여성 갑상선암의 발병률은 원거리(원전에서 30km 이상 떨어진 지역)지역 여성 발병률에 비해 3.1배, 남성은 3.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껏 심증밖에 없어 주저했던 원전 지역 주민들은 균도 소송의 일부 승소 판결에 힘을 얻어 공동소송을 시작했다. 부산환경운동연합 등이 주도한 2014년 11월 1차 공동소송인단 모집을 시작으로 2015년 2월과 4월의 2차, 3차 모집을 통해 총 545명이 '갑상선암 공동소송'에 참여했다.

고리원전에서 8km 떨어진 마을에서 46년간 살아온 김부진(59)씨도 남성 갑상선암 피해자로서 소송에 참여했다. 김씨는 4년 전 갑상선암을 발견했다. 김씨의 부인도 3년 전 갑상선암을 발견하고 수술했다. 우연이라고 보기가 어려웠다. 암과 관련한 가족력도 없기 때문에 원전의 방사능 노출이 원인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원전에서 나오는 돈’ 때문에 침묵 강요하는 분위기

그러나 갑상선암 공동소송에 마을 주민들이 모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기장 지역에는 미역과 다시마 판매를 생업으로 하는 주민들이 많다. 기장군청 해양수산과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전국에 유통되는 미역의 8%, 다시마의 9%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단일 지역으로는 엄청난 양이다. 원전이 바로 보이는 해안가에서 검정 그물망을 펼쳐놓고 미역과 다시마를 말리거나 거두어들이는 주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자칫 방사능 오염 문제로 이 지역이 부각되면 미역과 다시마 판매에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원전 문제가 부각되는 것을 경계하는 주민이 많다. 갑상선암으로 수술을 하고도 쉬쉬하는 주민도 있다. 의견이 다른 이웃이 서로 인사도 없이 등지고 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일부 주민들은 카메라만 보여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기자들이 미역, 다시마 작업을 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원전과 한 앵글에 담아내려다 제지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단비뉴스> 취재진이 도로에서 멀리 보이는 원전을 촬영하려 카메라를 돌리자 지역 주민으로 보이는 50대 중반의 두 남성이 “원전은 도대체 왜 찍으려 하는 건데?”라며 위협적인 표정으로 훑어보고 지나가기도 했다.

"여기도 내 싫어하는 사람들 많아요. 반핵운동, 공동소송 싫어하는 주민들이 있거든. 원전 때문에 마을로 나오는 기금이 좀 있습니다. 여긴 원전에 기대 생활하는 사람이 많고 기금이 지역 곳곳에 뿌려지기 때문에, 혹시나 원전이 없어지면 그 혜택 몬 받을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래서 지역 정치인들도 원전에 대해선 아무 말 몬합니다."

이씨가 말하는 기금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사업의 주체가 되고 원자력안전재단이 위탁 운영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을 말한다. 매년 전기생산량당 일정 금액을 산정해서 각 시·군에 지급하는데 주로 장학금, 전기요금보조사업, 소득 증대 사업, 공공시설사업 등에 쓰인다. 이 기금으로 체육시설을 건립한 곳도 있고, 목욕탕을 지어 지역 주민들의 공동 수입창출원으로 이용하는 지역도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원전산업정책과 김종범 사무관은 "온전히 주민들이 합의하고 원하는 사업에만 지원하고 있다"며 “내년에도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비'라는 이름으로 (경주시) 월성 원전 주변 지역에 약 80억원, 고리 원전 주변 지역에 약 200억 원 정도가 지원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원전 일자리 끊길까 병 걸리고 쉬쉬하는 주민도

▲ 기장군 곳곳에서 원전 운영에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장군은 세계 최대 원전 밀집 지역이다. ⓒ 이문예

‘원전 자금’이 갈라놓은 마을의 분위기는 곳곳에서 느껴졌다. <단비뉴스>의 취재에 도움을 준 김부진씨의 경우도 미역 작업장에서 인터뷰에 응하면서 “지역에서 왕따를 당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말을 아끼다 서둘러 마무리했다.

지난해 5월 19일 경주 월성 원전 인근의 양남면 나아리에서 만난 한 중년 남성은 취재의 취지를 설명하자 월성원전에서 청소일 하는 아내 이야기를 꺼내며 관심을 보였다. 직접 집까지 안내하며 아내와의 인터뷰 자리를 마련해 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건강에 대한 질문에 "전혀 문제없다", "병원에 다시 오라고는 했는데 별거 아니다"며 말을 돌렸다. 남편은 "암 맞습니더. 건강 안 좋아지니 일 그만 두라캐도 계속하겠다고 저럽니더. 일주일 후면 확실한 검사 결과가 나오니 그때 알려 줄께예"라며 전화번호를 건넸다.

동네에서 만난 60대 여성도 "그 집 엄마, 갑상선암 맞다. 근데 아니라카지예? 원전에서 일하니까 일 몬할까 그러지 뭐"라고 거들었다. 그러나 약속한 날 연락이 닿지 않아 여러 차례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남자는 "지는 아무것도 모릅니더"라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는 수신 거부 메시지만 흘러나왔다.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대참사 후 독일, 벨기에, 스위스, 프랑스 등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들은 원전을 폐기하거나 줄여가는 ‘탈원전’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설계수명을 넘긴 월성 1호기를 연장 가동하고, 새로운 원전을 증설하기로 하는 등 거꾸로 가는 모습이다. 노후 원전의 사고 가능성과 지역주민의 건강 피해, 대책 없는 핵폐기물 등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를 외면한 채 이처럼 ‘원전대국’으로 직진해도 되는 것일까. <단비뉴스>는 우리나라 원전 정책의 문제점과 원자력발전의 근본적 위험성을 짚어보고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에너지 체제’를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편집자) 

편집 : 박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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