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총선기획] 지역 현안에 대한 국회의원 후보 공약 비교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재외투표는 이미 종료됐고, 오는 5일부터 이틀간 사전투표가 진행된다. 제천·단양 지역구에는 모두 4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더불어민주당 이경용 후보는 금강유역환경청장과 프랑스 파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국 팀장 등을 역임했다. 현역 의원인 국민의힘 엄태영 후보는 제천시의회 의원과 민선 제3, 4기 제천시장 등을 거쳤다. 새로운미래 이근규 후보는 민선 제6기 제천시장을 지냈다. 무소속 권석창 후보는 익산지방국토관리청장과 제20대 국회의원 등의 이력이 있다.
지난달 28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후보들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곳곳에서 유권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 시기에는 후보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 모두 기사가 된다. 그런데 이들이 내건 공약을 자세히 분석하는 보도는 드물다. <단비뉴스>는 후보들이 선거공보와 기자회견 등을 통해 발표한 의료, 시멘트, 교통, 농정 분야의 공약에 대한 전문가와 시민단체 등의 의견을 들었다.
실현가능성 낮은 세명대 의대·닥터헬기…"의료·보건·복지 연계해야"
정부가 의대 입학정원 2000명 확대 방안을 내놓은 가운데, 제천·단양 국회의원 후보들도 공공의료를 강화하기 위한 공약을 발표했다. 각 후보의 선거공보와 7개 제천·단양 시민단체로 이뤄진 제천단양공공의료대책위원회가 각 후보에게 받은 정책질의답변서를 검토한 결과, 이경용 후보는 단계적 간병비 급여화와 마을 주치의제도 도입 등을, 엄태영 후보는 재택방문진료 실시를 공약했다. 이근규 후보는 세명대 의대와 한방간호대 설립 지원, 닥터헬기 도입 등을 약속했다. 권석창 후보는 따로 의료 분야 공약을 내지는 않았지만, 정책질의답변서를 통해 지역특화병원 연구와 유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경용 후보는 제천단양공공의료대책위 정책질의답변서에서 “마을 주치의제도를 통해 농촌 1차 의료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현행법상 실질적인 진료나 처방은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전북 고창군은 지난해 9월부터 경로당 606곳에 공중보건의사가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마을 주치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고창군보건소 이소영 건강증진과장은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 의료행위를 하면 불법이라 실질적인 진료나 처방은 어렵다”면서 “혈압이나 혈당을 재는 것, 건강상담과 영양 관리, 보건교육 위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엄태영 후보는 선거공보에서 “의료취약 지역 주민들을 위해 재택방문진료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엄 후보는 지난 21대 국회에서 보건의료 취약지역의 주민에게 방문진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른바 ‘방문진료법’을 발의했다. 지난 2018년 ‘노인 돌봄의 연속성 측면에서 바라본 의료·보건·복지 서비스의 이용과 연계’ 논문을 발표한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 돌봄은 의료 서비스만이 아니라, 보건, 복지도 함께 연계해야 한다”며 “의료와 보건, 복지가 통합적으로 함께 가야 이용자인 노인 입장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근규 후보가 선거공보를 통해 발표한 세명대 의대·한방간호대학 설립 공약과 관련해 세명대 김호현 부총장은 해당 공약을 사전에 세명대와 협의하고 낸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김 부총장은 “당선 후 의대 유치를 추진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면서도 “국가가 의료전문인력에 대한 부분은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어 실현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1대 국회에서 의대 설치에 관한 법안 12건이 발의됐지만, 모두 폐기됐다. 김 부총장은 “한방간호대학의 경우, 현재 일반 간호대학을 나와도 일반병원과 한방병원에 모두 취업이 가능해 특별히 (도입)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또 선거공보에서 “제천·단양 지역에 닥터헬기가 상주하는 응급의료체계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충북은 산악지형이 많아 닥터헬기 도입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실제 도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닥터헬기 도입 지역의 선정 기준과 관련해 중앙응급의료센터 윤순영 닥터헬기·현장이송팀장은 “닥터헬기는 해당 지역에 배치해서 운영할 수 있는 지역응급의료센터 이상의 의료기관이 있다면 신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법상 닥터헬기를 도입할 수 있는 제천의 지역응급의료센터는 명지병원과 제천서울병원 두 곳뿐이다. 충북도청 한찬오 보건정책팀장은 “제천은 기준은 충족하는데, 닥터헬기를 도입하려면 조종사와 부조종사, 의사와 간호사 등 전담 인력이 필요하다”며 “충북대병원도 의료인력이 부족해 닥터헬기 운영이 어렵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명지병원 총무과 관계자는 지난달 29일 취재진에게 닥터헬기를 도입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시멘트세·자원순환시설세 도입 공약했지만…“대기오염 최소화가 우선”
후보들은 시멘트공장 주변 대기오염 해결 방안으로 세금을 신설하자는 공약을 내놨다. 세금으로 공장 인근 주민의 대기오염 피해를 보상하고, 환경 개선 사업을 진행하자는 주장이다. 후보들이 주장하는 세금 부과 방식은 둘로 나뉜다. 이근규·권석창 후보는 시멘트지역자원시설세를, 엄태영 후보는 자원순환시설세 도입을 공약했다. 이경용 후보는 둘 다 도입하자는 입장이다.
시멘트지역자원시설세와 자원순환시설세의 차이는 세금 부과 대상이 다르다는 점이다. 시멘트지역자원시설세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시멘트에 부과된다. 따라서 시멘트 회사가 내야 하는 세금이다. 자원순환시설세는 시멘트 생산에 사용되는 연료인 쓰레기에 부과되므로, 폐기물 공급자가 내야 하는 세금이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후보들의 세금 도입 공약은 앞뒤가 안 맞는다고 비판했다. 주민이 피해를 본 뒤에야 세금을 걷어 보상하는 사후약방문이 아니라, 대기오염 최소화로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대기오염물질 배출 허용 기준 강화나 저감 시설 설치에 관한 구체적 계획을 공약한 후보는 없었다.
에코단양 이보환 대표는 국내 대기오염 물질 배출 허용 기준의 맹점을 지적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단비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WH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인) 질소산화물 배출 허용 기준이 시멘트공장에는 270ppm 적용되지만, 소각장엔 70ppm이 적용된다. 대기오염 물질 배출 허용 기준 강화 없이 세금 도입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실제로 KDB미래전략연구소에서 지난 2월에 발표한 ‘시멘트 산업 NOx(질소산화물) 규제와 저감 기술 동향’ 보고서를 보면, 산업별 질소산화물 배출량 가운데 시멘트공장이 차지하는 비율이 34%로 가장 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질소산화물을 배출하고 있는 시멘트공장에 작은 소각장들보다도 약 4배의 대기오염 물질 배출을 허용하고 있는 셈이다.
제천·송학환경사랑 박남화 대표는 시멘트공장이 대기오염 물질 저감 장치인 SCR(Selective Catalytic Reduction)을 의무 설치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SCR이란 시멘트 생산 과정에서 생기는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설비다. 한국자원리싸이클링학회가 2020년에 발간한 논문 ‘시멘트 산업에서의 질소산화물 저감 기술 동향’을 보면, 현재 국내 시멘트공장들이 사용하고 있는 저감 장치인 SNCR(Selective Non Catalytic Reduction)은 질소산화물 배출을 30~70%까지 줄이지만, SCR은 80~90%까지 저감할 수 있다.
박 대표는 지난달 30일 단비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선진국들은 시멘트공장에 SCR을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SCR을 설치한 시멘트공장은 한 곳도 없다”고 했다. 한국자원리싸이클링학회가 2020년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실제로 SCR이 전 세계 시멘트공장에 설치된 사례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포함해 10개 내외였다. 국내에서는 아세아시멘트가 업계 최초로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이 주관하는 탄소중립핵심기술 개발 국책과제의 하나로 SCR을 도입할 예정이다.
외곽 교통망 정비·주차 공간 확보는 동일…구체적 이행 방안은 차이 커
후보들은 모두 외곽지역의 교통망 정비와 주차 공간 확보 등의 교통 공약을 내놨다. 이근규 후보를 제외하고는 모두 서울과의 철도 연결을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이행 방안에서는 차이가 컸다.
이경용 후보는 제천·단양 연계형 관광 공약의 거점이 되는 금성과 청풍, 수산면의 82번 국지도를 조기 완공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또 제천 시내에서 봉양읍, 백운면, 경기도 여주시를 잇는 도로를 개설하고, 서울에서 원주, 제천, 단양으로 이어지는 철도를 개설해 수도권 접근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또 동서고속도로 설계 당시부터 주민들의 요구가 컸던 어상천IC를 설치하고, 시멘트차량 우회도로를 개선해 단양 매포읍의 공기 질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엄태영 후보는 철도와 관련된 공약을 주로 내놨다. 제천·단양과 서울 강남구 수서역을 잇는 신 중앙선 KTX를 연결하고, 수도권 전철을 제천까지 연장해 수도권과의 연결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어 단양과 부산을 KTX로 연결하고, 충북선 철도 고속화 사업에 제천역을 포함하겠다고도 했다. 충청북도 내의 연결성 확보를 위해 괴산까지 고속도로 건설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외곽지역의 교통망 확충을 위해 제천 봉양읍과 강원 원주 신림면, 제천 수산면과 단양 단성면, 제천 수산과 금성면 사이에 국도와 국지도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반면 이근규 후보는 단양 어상천면, 가곡면과 맞닿아 있는 제천시 자작동의 갑산재에 터널을 건설하겠다는 공약과 함께 지정차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겠다는 비교적 단순한 공약을 내놨다. 다만 이 후보는 37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단양 읍내에 2층 규모의 지하주차광장을 짓겠다고 밝혔다. 이 지하주차광장 하나를 짓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단양군의 2024년 1년 예산 4404억 원의 80%를 훌쩍 넘는다. 단비뉴스 취재팀은 지난달 28일 예산 확보 방안에 대해 질문했지만, 이 후보 캠프는 답을 보내지 않았다.
권석창 후보는 철도와 도로망 모두에서 큰 규모의 공약을 내놨다. 엄태영 후보와 마찬가지로 수도권 전철을 도입하겠다는 공약에 더해 제천과 성남 분당, 서울 강남구 수서역, 인천을 잇는 열차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미 한 번 무산됐던 제천 덕산면-괴산 고속도로 사업을 재추진하고, 덕산IC를 설치하겠다고도 했다. 외곽 교통망 확충에 관한 공약도 가장 많았다. 금성면 532지방도 확장·포장 공사 조속 준공, 금성-수산면 도로 선형개량 공사 조기 준공, 봉양읍 38번 국도 개량, 수산면 관내 36번 국도 선형개량 등이 그 예다.
제천참여연대 김달성 대표는 후보들의 공약에 대해 “여론만 듣고 구색 갖추기만 한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새로운 연결망을 갖추기 전에 지역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데, (후보들의 공약에는) 그런 게 없어 보인다”며 “도로가 생활에 편리함을 주는 건 맞지만, 악영향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당장 제천시는 청풍면 권역에 새로운 도로가 난 뒤에 펜션이나 영세업자들이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교통 약자를 배려한 공약도 있어야 하는데, 관련 공약이 하나도 없다는 점은 아쉽다”고 덧붙였다.
“실효성도, 농정 철학도 안 보인다”…빈약한 농정 공약
제천·단양의 농업종사자는 1만 9000여 명이다. 제천과 단양 전체 인구의 10%로, 전국 평균의 2배를 훌쩍 넘는 수준이다. 후보별 농정 공약을 살펴보면, 이경용 후보는 농작물재해보험 공공성 강화, 전략 작물 수급안정 직불제, 귀농귀촌 생애전환마을 조성, 제천 청풍면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 추진, 인구소멸지역 농촌기본소득제 도입, 필수농자재 지원법 제정, 농민회관 설립 지원 등을 내놨다. 엄태영 후보는 농작물재해보험 정부 지원 확대, 농가 경영 안전망 구축을 위한 농정 예산 확충, 과도한 농지규제 완화, 식량주권 확보 위한 종자산업 지원 강화 등을 약속했다. 이어 이근규 후보는 반값 농자재 지원사업 확대 시행과 복합농업인회관 설립을, 권석창 후보는 반값 농약 프로젝트 추진, 스마트팜 시범사업 시행, 귀농귀촌전문학교 설립 등을 공약했다.
이에 대해 전국농민회충북도연맹 김기형 의장은 “일부 후보는 국회의원 공약인지 지역구 기초의원 공약인지, 조합장 공약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공약이 너무 허술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렇게 만족할 만한 후보는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엄 후보가 내건 ‘농지 규제 완화’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과도한 농지 규제를 완화해 농가 소득을 제고하겠다는 취지인데, 농민들은 회의적인 의견을 드러냈다. 농가 소득 제고가 아니라 토지주의 이득만 올려주는 정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제천농민회 김준철 사무국장은 “제천·단양 지역은 자작농보다 땅을 빌려 농사짓는 임차농이 더 많은데 농지 규제 완화로 땅값이 올라 임대료도 함께 오른다면 지주들은 좋을지 몰라도 농민들에겐 손해”라고 말했다. 김 의장 또한 “농지 규제 완화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농지 훼손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며 “농지 규제 완화를 주장하면서 식량주권을 말하는 엄 후보의 농정 철학이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김 사무국장은 이경용 후보와 이근규 후보가 내놓은 농업인회관(농민회관)의 정책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농민회관을 짓게 되면 건축 단계부터 추후 운영까지 상당한 규모의 국비와 지방비가 쓰일 수밖에 없는데, 농민회관이 주는 효용성이 이에 상응할 만큼 높냐는 것이다. 그는 “지금 지역 농민단체가 쓰는 건물이 좁아 어려움이 있는 건 맞지만 농민회관을 새로 짓고 운영하는 데에 막대한 세금이 들 텐데 그만큼 효율성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며 “밖으로 보이는 부분을 의식한 과시적인 정책처럼 보인다”라고 비판했다.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났다. 이번 선거는 제14대 총선 이후 32년 만에 최고 투표율인 67%를 기록한 가운데, 앞으로 4년간 국회를 구성할 국회의원 당선자 300명이 모두 정해졌다. <단비뉴스>는 총선을 두 달 앞둔 시점부터 본투표가 시작되기 전까지 글 기사와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형식으로 ‘2024 총선 기획’을 연속보도했다.
제22대 총선을 맞아 단비뉴스 기자·PD들은 유권자들의 의견을 듣고 각 정당과 후보들의 공약을 집중 점검했다. 먼저 충청북도 3대 도시인 청주·충주·제천시와 단양군의 역과 시장, 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 총선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제천·단양 후보들을 직접 만나 시민들이 궁금해하는 현안에 대해 물었고, 정치 현수막의 개수와 문구 등을 조사해 후보들의 전략을 분석했다. 전국 차원에서는 환경 전문가와 함께 주요 6개 정당의 기후 공약을 분야별로 점검했다. (편집자주)
<기사 차례>
④ ‘재생에너지 확충’ 대 ‘원전 중시’ 다시 형성된 전선
⑤ 제천·단양 국회의원 후보들은 무엇을 준비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