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④ 3장: 기자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➀ 서문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② 1장: 저널리즘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③ 2장: 진실; 첫 번째 그리고 가장 혼란스러운 원칙

기업인의 덕목은 최대 이윤을 주주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언론인은 어떨까?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3장은 이 질문에서 출발해 저널리즘의 가치를 설명한다. 언론인의 덕목은 이윤 확보가 아니다. 언론인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최우선이 되어야 할 원칙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바로 시민에 대한 충성이다.

이윤보다 시민을 위하는 일이 중요하다니, 지나치게 이상적인 이야기 같다. 언론 산업도 결국 산업이다. 이윤을 먼저 생각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남는다는 것일까. 뉴스가 여러 콘텐츠에 밀리는 이유도 저런 순진한 생각 탓은 아닐까. 저자들도 이런 의심을 알고 있다. 이들은 저널리즘의 ‘시민 충성’ 원칙이 결코 비현실적이지 않다고 차근차근 설명한다. 이윤만을 고려할 때 얻는 결과도 보여준다. 20세기 말, 미국 언론계는 시민보다 이윤을 우선으로 여긴 적이 있다. 그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시민을 잊은 언론의 실패

1980년대 초까지 미국의 신문사들은 독점 시장에 안주하고 있었다. 대량 인쇄시설을 갖춘 신문사는 부수를 늘리지 않고도 대부분의 광고를 빨아들여 막대한 수익을 냈다. 그런데 변화가 찾아왔다. 사람들은 광고에 투자하지 않는 대형 할인점에서 물건을 샀고, 기업들은 신문 대신 인터넷에 광고를 냈다. 1980년부터 1991년 사이 미국 대도시 신문의 광고는 8% 줄었다. 1991년 한 해 동안만 백화점 등 소매점 광고의 4.9%가 사라졌다.

1970년대 미국 버지니아주 신문에 실린 ‘시어스’ 백화점 광고. 1887년 개장한 ‘시어스’는 1980년대 월마트 등 대형 할인점에 밀려 시장 점유율을 잃었다. 2024년 현재 남은 매장은 1곳뿐이다.리치몬드타임즈디즈패치 누리집 갈무리
1970년대 미국 버지니아주 신문에 실린 ‘시어스’ 백화점 광고. 1887년 개장한 ‘시어스’는 1980년대 월마트 등 대형 할인점에 밀려 시장 점유율을 잃었다. 2024년 현재 남은 매장은 1곳뿐이다.리치몬드타임즈디즈패치 누리집 갈무리

광고 시장이 축소됐어도 언론사 경영자들은 이윤을 내고 싶었다. 이들은 원가부터 절감했다. 뉴스 부문 예산은 1992년부터 5년 동안 약 14% 줄었다. 회사 이윤에 도움이 되는 성과를 낸 기자에게 격려금을 주는 제도도 도입됐다. 즉 비판 기사의 논조를 누그러뜨리는 대가로 많은 수입을 보장하는 광고주가 있다면, 광고주의 요구에 맞추는 기자가 격려금을 받는 방식이었다. 공익을 위해 보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자들은 까다로운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이윤 전략은 미국 언론의 경제적 위기를 해결하지 못했다. 2004년부터 2022년까지 18년 동안 미국 신문 네 곳 중 한 곳이 문을 닫았다. 저자들은 기자의 소득을 회사의 재정적 실적과 연동하면서 기자가 충성해야 할 대상이 시민에서 특정 광고주로 바뀌었다고 지적한다. 수용자는 가장 먼저 그 사실을 눈치챘다. 갤럽 조사를 보면 언론에 관한 대중의 신뢰는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크게 하락했다. 2019년 미국 퓨(PEW) 연구소 조사에서 기자들을 매우 신뢰한다고 답한 수용자는 9%에 불과했다. 이윤 전략 이후 언론은 시민의 신뢰를 잃었다.

저자들은 수용자가 언론에 갖는 신뢰를 세 가지로 나눈다. 첫째, 수용자가 받는 콘텐츠가 정직하고 독자의 삶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라는 믿음이다. 둘째, 편집에 관한 뉴스룸의 의사결정은 수익을 고려하지 않았을 거라는 믿음이다. 셋째, 제공되는 뉴스가 상품 광고이거나 상업적·정치적 조작의 결과물이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 세 가지 믿음을 보장할 때 언론이 수용자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저자들의 생각이다. 이윤 전략이 이 믿음을 꾸준히 약화했고, 이제는 이 믿음을 다시 쌓아야 할 때다.

믿을 만한 기사를 기다리는 대중

신뢰가 다시 저널리즘의 자산이 될 수 있을까. 책은 여러 조사 결과를 제시하며 시민들이 여전히 믿을 만한 뉴스를 원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퓨 연구소 조사를 보면 뉴스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진 2012년에도 미국인 64%는 ‘특별한 관점과 연결되지 않은 뉴스가 더 좋다’고 답했다. 관점 없는 뉴스란 해석이나 주장을 넣지 않은 보도를 말한다. 한국은 어떨까. 2020년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보고서를 보면 한국인 52%가 ‘특별한 관점과 연결되지 않은 뉴스’가 더 좋다고 답했다. 조사를 진행한 모든 나라에서 대다수 시민은 관점이 없는 뉴스를 가장 선호했다. 대중은 지금도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보도를 기다리고 있다.

같은 관점의 뉴스, 관점이 없는 뉴스, 반대 관점 뉴스에 관한 선호도 그래프. 당시 한국 수용자가 다른 나라에 비해 같은 관점의 뉴스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그래프를 보면 모든 나라에서 관점이 없는 뉴스가 가장 선호도가 높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 이슈 2020년 6월호 갈무리
같은 관점의 뉴스, 관점이 없는 뉴스, 반대 관점 뉴스에 관한 선호도 그래프. 당시 한국 수용자가 다른 나라에 비해 같은 관점의 뉴스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그래프를 보면 모든 나라에서 관점이 없는 뉴스가 가장 선호도가 높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 이슈 2020년 6월호 갈무리

1896년 <뉴욕타임스>를 사들인 아돌프 옥스는 뉴스를 “불편부당하게, 두려움도 호의도 없이, 어떠한 정당이나 종파, 이익도 개입시키지 않고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1933년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유진 마이어도 “이 신문은 공공의 이익에 꼭 필요하다면 물질적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 생각은 시대를 넘어 전통이 됐다. 1999년 퓨 연구소 등이 실시한 설문에 답한 저널리즘 종사자 80%가 “독자·청취자·시청자를 위한 봉사가 첫 번째 의무”라고 했다. 이어진 심층조사에서는 기자 70%가 ‘최우선 충성 대상은 수용자’라고 답했다.

이 전통을 기억하여 시민의 기대를 충족하려면, 이해관계에서 독립하려는 노력에 더해 새로운 목표가 필요하다. 저자들은 “젊거나 소외된 독자를 발굴했는가, 새 플랫폼에서 독자를 얼마나 늘렸는가, 새로운 기사 쓰기 방식을 개발했는가” 등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는 고급 품질의 저널리즘 생산이 비용 증가와 이익 감소로 이어진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오히려 좋은 뉴스야말로 더 많은 구독자의 신뢰 확보를 보증한다.

와글와글 토론합시다

강민정 책에서는 언론사의 수입원이 광고 중심에서 수용자가 직접 내는 구독료로 이동하면서 저널리즘의 가치를 계산하는 기준이 더 바람직해졌다고 말한다. 구독 모델을 도입하면 방문자 수 대신 독자를 얼마나 늘렸는지, 소외된 독자를 얼마나 발굴했는지에 집중한다는 거다. 하지만 구독 모델이 오히려 특정 집단의 입맛에 맞는 기사만 써야 하는 토양을 만들어 보도가 편향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김창용 공감한다. 현실적으로는 충성심 원리에 따라 생산하기보다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해줄 때 더 큰 성공을 거두고 더 많은 구독자를 확보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언론의 책무가 있으니 그런 보도는 좋지 않지만, 상업적 성공을 고려하더라도 시민에게 충성하는 것이 옳다는 책의 주장이 맞는 것인지는 고민되는 대목이다. “설사 시민이 회사 수익에는 광고주보다 적게 기여하더라도 가장 중요하다”라고 하는데, 정말 그럴 수 있나 의문이다.

조승연 그 전제는 시민의식 아닐까. 좋은 뉴스와 좋은 보도에 시민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 의지가 있는 세상인지, 아니면 뉴스는 일단 기본적으로 공공재로서 무료로 배급되는 것이라고 시민들이 받아들이는지,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대환 신문에는 독자가 있어야 광고주가 붙는다. 그런데 독자라는 본질에 접근하지 않고 광고주에게 접근하면 읽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게 된다. 반대로 독자라는 본질을 중요하게 여기면 독자가 늘면서 광고는 저절로 따라온다. 특정 이념과 관계없이 최대한 많은 시민을 대상으로 보게 하는 근본의 자세로 돌아가야 언론이 여러 다른 매체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로 이해했다.

콕 찍어 곱씹어 봅시다

안수찬 교수 1장에서는 저널리즘 제1의 원칙이 진실이라고 했다. 2장에서는 충성의 대상이 시민이라고 말한다. 그 반대는 뭘까? 광고주에 충성하거나, 주주나 투자자에 충성하거나, 개별 언론인의 이익에 충성하는 경우다. 저널리즘은 그런 게 아니라고 저자가 말하고 있다. 언론사는 손해를 보더라도 시민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원칙에 동의하거나 공감하는 것이 이 직업을 갖는 사람의 기본이다.

광고 모델을 둘로 나눠서 보자. 19세기 대중지였던 페니 페이퍼(Penny paper)는 싼값으로 확보한 엄청난 수의 구독자로 광고를 따냈다. 19세기 말 뉴욕타임즈를 인수한 아돌프 옥스는 달랐다. 신문값을 올리는 대신, 정확한 사실과 정보를 원하는 고급 독자를 겨냥했다. 그런데 이 모델에도 부작용이 있었다. 지불 능력이 큰 파워 엘리트에 초점을 맞춰 뉴스를 보도하게 됐다. 이 책은 그게 광고의 논리고 경영의 논리였다고 주장하면서 개탄한다.

디지털 환경이 조성되면서 그러한 광고 시장마저 붕괴했다. 새로운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된 거다. 20세기 초반, 기사와 광고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원칙을 정립한 뉴욕타임스가 디지털 환경에 대응하는 혁신보고서를 냈는데, 그 핵심은 뉴스룸과 마케팅을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광고와 기사를 합쳐야 한다는 게 절대 아니다. 뉴스룸도 독자에게 어떻게 기사를 전달할지 고민하라는 이야기였다. 더 많고 다양한 독자를 확보하는 데 초점을 두고 뉴스를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구독 모델에도 여러분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문제가 있다. 다만, 저자들은 구독 모델에서도 특정 집단이 아니라 전체 시민을 아울러야 한다고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이 원칙은 기자, PD 등 저널리스트에게만 전하는 말이 아니다. 저자들은 언론사주를 겨냥해서도 이런 점을 강조한다. “소유주는 반드시 시민 제일주의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령 이 언론사가 망할 걸 알더라도 진실을 보도하는 것이 최고경영자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거다. 만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워싱턴 포스트 사주가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할 때 했던 결정이 그런 것이다.

살짝 예습합시다

다음 기사에서는 이 책의 4장 <사실 확인의 저널리즘>을 다룬다. 어떻게 인식의 한계를 극복하여 사람들이 신뢰할 만한 정보를 생산할지, 특히 허위조작정보가 판치는 디지털 시대에 저널리스트가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담겼다.

‘저널리즘 책을 읽는 이들의 모임(이하 저책이책)’은 세명대 저널리즘 대학원생들이 참여하는 독서 동아리다. 저널리스트가 쓴 책, 저널리즘에 관한 책 등을 다양하게 읽는다. 그동안 매달 한 권을 함께 읽어 왔는데, 2023년 가을에는 평소와 다른 공부를 했다. 2023년 7월부터 12월까지 7차례에 걸쳐, <저널리즘 기본원칙> 개정 4판을 강독했다. 회원들은 매달 한 번 모여, 2~3개 장을 발제하고 토론했다. 각 장이 마무리될 때마다 동아리를 지도하는 안수찬 교수가 보완 설명했다.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이 쓴 이 책은 2001년 초판 발행 이후, 2007년 2판, 2014년 3판, 2021년 4판을 거치면서 줄곧 보완됐다. 책을 옮긴 이재경 전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 언론계에서 100여 년에 걸쳐 실천을 통해 만들어진 저널리즘의 원칙을 정리했다’고 이 책을 소개했다. 함께 공부하자는 마음으로 그 내용을 <단비뉴스> 독자에게 전한다. 각 장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고, 토론과 보완 설명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발췌하여 소개한다. 서문을 포함해 본문 11장을 모두 12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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