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제398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 수상작 – 한국일보 '출구 없는 사회적 공해 악취'

“귀농, 귀촌한 이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 가운데 하나가 악취라고 합니다.”

지난해 3월 어느 날, <한국일보> 미래기술탐사부의 아이템 회의에서 ‘농림축산식품부 공무원한테 들은 이야기’라며 어느 기자가 말을 꺼냈다. 축산업에 종사하는 원주민과 도심지를 떠나 농촌으로 온 외지인 사이에서 냄새가 분쟁의 불씨가 된다는 이야기였다. 2018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축사 악취 민원이 빈발하고 있는데,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해결하지 못해 주민 간 갈등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자료를 발표한 적도 있었다.

한국일보가 보도한 ‘출구 없는 사회적 공해, 악취’ 기사는 여기에서 시작했다. 취재팀은 기초취재에 돌입했다. 학계 전문가와 대한한돈협회 등 유관 단체 관계자들부터 만났다. 이들은 한결같이 “증가하는 악취 민원의 이면을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악취가 주민 간 다툼을 넘어 부동산 문제와도 얽혀 있었다. 악취가 단순한 환경오염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사회적 공해’라고 취재팀은 판단했다.

한국일보가 보도한 '출구 없는 사회적 공해, 악취' 기사는 인터랙티브로도 만들어졌다. 한국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한국일보가 보도한 '출구 없는 사회적 공해, 악취' 기사는 인터랙티브로도 만들어졌다. 한국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전국 단위의 악취 민원을 최초로 분석하다

취재팀은 악취 민원을 1차로 접수하는 전국 모든 기초지자체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청구한 정보는 2018년부터 2023년 6월까지 5년 6개월 동안 발생한 악취 민원의 장소와 구체 내용을 망라하는 것이었다. 최초 정보를 받은 뒤 부족한 내용이 발견되면 추가 정보를 요청하는 등 정보공개 청구에만 넉 달이 걸렸다.

사상 처음으로 종합한 악취 민원의 실태는 놀라웠다. 5년여 동안 전국에서 발생한 악취 관련 민원은 12만 6,689건에 이르렀다. 매일 평균 63건의 악취 민원이 접수된 것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악취의 실체를 측정한 경우는 26%에 불과했다.

취재팀은 5년 6개월 동안 전국 지자체에 접수된 12만 건의 악취 민원 데이터를 분석했다. 한국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취재팀은 5년 6개월 동안 전국 지자체에 접수된 12만 건의 악취 민원 데이터를 분석했다. 한국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이를 분석한 기사는 지난 10월 4일부터 11일까지 총 5편으로 한국일보 홈페이지와 지면에 연재됐다. 1편 ‘전국이 악취 민원 아수라장’에서는 전국에서 발생한 악취 의심 민원을 분석했다. 2편 ‘냄새는 어떻게 폭탄이 됐나’에서는 민원인, 공무원, 사업장을 심층 인터뷰했다. 3편 ‘악취행정 선진국 일본’ 편에서는 악취를 공해 요인으로 보고, 악취를 판정하는 전문가를 양성하면서, 꾸준히 제도를 개선하고 있는 일본의 현실을 보도했다. 4편 ‘미래 내다보는 네덜란드 악취관리’ 편에서는 농업 선진국으로 불리는 네덜란드의 축산악취 관리 방법과 관련 정책을 보도했다. 마지막 5편 ‘냄새도 갈등도 줄일 수 있다’에서는 국내 상황에 적합한 대안은 무엇일지 짚었다.

심층 인터뷰로 보여준 문제의 내막

“처음엔 냄새의 원인을 모르니까 남편이 '양말 안 빨았냐'고 물었어요. 집에서 양말 냄새가 난 거죠. 알고 보니 음식물 폐기장 냄새가 집안에 밴 것이었어요. 맘카페에 글을 올려봤어요. 그랬더니 '저희 집도 나요', '어디에서 나요' 이런 식으로 공론화가 되고 있었어요.”

취재팀이 서울 송파구 송파자원순환공원(음식물류폐기물처리시설) 인근 주민 A씨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취재팀은 서울 송파구의 음식물 폐기장 근처에 사는 주민과 제주시 애월읍 양돈단지 인근 주민을 대상으로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를 진행했다. FGI는 정량적 설문조사와 달리 자유로운 의견을 이끌어내는 정성적 설문조사 방법이다. 주민들은 수년간 지속되어 온 악취 피해와 지자체, 업체에 대한 불신, 제도에 대한 불만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악취로 고통받는 주민뿐만 아니라 악취를 유발하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를 관리하는 공무원의 이야기도 들었다. 악취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업장의 사정, 주민과 사업자 사이에 끼인 공무원의 처지까지 담아내어 사태의 복잡성을 균형 있게 보도한 것이다.

취재팀은 악취를 둘러싼 민원인과 공무원, 사업자를 심층 인터뷰해 보도했다. 한국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취재팀은 악취를 둘러싼 민원인과 공무원, 사업자를 심층 인터뷰해 보도했다. 한국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한 달간 이어진 후속보도

5차례에 걸친 연재 기사가 끝나자, 여러 곳에서 반응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전국의 악취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축산 악취 관련 전문가로 구성한 자문회의를 소집하고, 이 회의를 정례화기로 했다. 한국냄새향기학회는 추계학술대회 발표 자료에서 한국일보 기사를 직접 인용하면서, 관련자의 전문성 함양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 기사는 제398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소재를 대형 기획으로 의제화하면서 적절한 재미까지 빼먹지 않았다. 악취를 ‘환경오염’으로만 보지 않고 주민 간 갈등을 유발하는 ‘사회적 공해’로 확장했다”고 높게 평가했다.

*<한국일보>의 '출구 없는 사회적 공해 악취' 연재 기사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현장을 생생히 담은 인터랙티브 기사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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