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이 글은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절친했던 친구가 있었다. 감성적으로 예민한 친구라고만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꽤 오랜 기간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 같다.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내가 보기엔 자기 파괴적이었다. 오랫동안 씻지 않은 모습으로 등장하거나, 갑자기 화를 내거나 눈물을 터뜨렸고, 만나는 애인이 하루가 멀다고 바뀌는 식이었다. 처음엔 진정해 보라며 위로했고, 해결 방안을 찾아주려 하다가, 결국엔 타박했다. 친구의 감정 기복에 지쳐갔다. 다투는 일이 잦아졌고 조금씩 멀어지다 연락이 끊겼다. 시간이 지나 우연히 그 친구의 SNS를 통해 최근에 진단받았다는 우울증에 대한 글을 보게 됐다. 그제야 친구가 자주 괴로워했던 이유가, 내가 이따금 왜 ‘이겨내지 못하냐’고 타박했던 대상이, 바로 우울증이었구나 생각했다. 그때 우울증에 대해 조금 더 이해했더라면 어땠을까 후회하곤 한다. 이겨내려고 혼자 애쓰거나, 왜 이해를 못 하냐며 싸울 게 아니라 함께 병원에 가 봤어야 했다.

10년 넘게 지켜봐 온 친구였지만 그때의 나는 친구의 마음에 병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마음이 아플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병원에 갈 수도 없다. 그래서 정신과는 다른 병원처럼 접근성이 좋지 않다.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도 진입장벽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정신질환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은 좌우될 수 있다. 그간 정신질환은 범죄 서사, 사랑-구원 서사의 단골 소재였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에게 병력이 있다던가, 정신 질환이 오로지 사랑으로 치유된다는 식의 서사가 주를 이루었다.

괜찮다, 아픈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정신과 의사 지해수(오른쪽)과 유명 소설가 장재열(왼쪽)은 저마다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다. 자신의 병을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았다. 2014년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화면 갈무리
정신과 의사 지해수(오른쪽)과 유명 소설가 장재열(왼쪽)은 저마다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다. 자신의 병을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았다. 2014년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화면 갈무리

미디어에서 부정적으로 그려온 것과 달리, 정신질환은 치료와 관심이 필요한 영역이다. 정신질환이 유별난 캐릭터의 특징으로 소비되어서는 안되며, 치료가 필요한 질병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담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정신과’를 부정적으로 그리지 않고, 누구나 정신질환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드라마는 2014년 SBS에서 방영된 '괜찮아 사랑이야'였다. 벌써 10년 전에 방영된 드라마이지만 ‘정신질환’을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마음의 병으로 그리고 있다. 주인공인 정신과 의사 지해수(공효진)와 소설가 장재열(조인성)를 비롯해 등장하는 인물 모두 조금씩 강박, 불안 등의 정신 질환을 가지고 있다. 등장인물 모두가 ‘아프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마음이 아픈 것은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괜찮아 사랑이야는 정신질환을 이상한 것, 나쁜 것이 아니라 ‘치료와 관심’이 필요할 뿐이라는 당연한 이야기를 담담히 전해주었다.

서점가 1위를 차지한 정신과 상담일기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정신과 상담 일지를 기록해 마음의 상태를 파악하게 된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담고 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표지 이미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정신과 상담 일지를 기록해 마음의 상태를 파악하게 된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담고 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표지 이미지

드라마와 소설의 소재로 등장하던 정신질환이 ‘나’의 이야기로 소환된 건 에세이를 통해서였다. 2018년 발간된 에세이집 '죽고 싶지만 떡볶이가 먹고 싶어'는 기분부전장애(경도의 우울증)와 불안장애를 앓은 백세희 작가 자신의 경험을 자전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정신과에서 상담받은 경험을 대화체 형태로 썼다. ‘정신과 상담’이란 무엇인지 당사자의 목소리로 전해 독자의 반응을 이끌어 냈다. 나도 당시 대학교 안에 있는 대형서점에서 내내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차지하던 그 에세이를 호기심에 읽게 됐다. 드라마에서 잠깐 등장하던 정신과에서는 상담할 때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구나, 마음이 아픈 것도 치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그 책을 계기로 처음으로 학교 내에 있는 학생 정신건강 센터에 찾아가 보기도 했다. 많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진로나 진학 상담이 아닌 ‘마음 상담’이라는 것을 처음 경험했다. 대학교 4학년 때, 상담 선생님과 한 학기 동안 12차례에 걸쳐서 만났다. 선생님이 주로 상담 시간에 했던 일은 내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거나, 아니면 내가 했던 말을 반문하는 식이었다. 상담이라는 것은 이상한 것도, 부정적인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나의 마음 건강이 괜찮은 것인지를 파악하는 과정일 뿐이었다.

주인공인 정다은 간호사는 정신병동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정신질환자들의 아픔을 치유하며 성장해나간다. 얼핏 보기에 의학 드라마이지만, 실상은 환자의 내면에 더욱 집중했다는 점에서 다른 드라마와 차별점이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화면 갈무리
주인공인 정다은 간호사는 정신병동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정신질환자들의 아픔을 치유하며 성장해나간다. 얼핏 보기에 의학 드라마이지만, 실상은 환자의 내면에 더욱 집중했다는 점에서 다른 드라마와 차별점이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화면 갈무리

지난 11월 3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환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집중해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다른 의학 드라마들과 차별성을 보인다. 정신질환자들이 타인의 시선 때문에 움츠러들고, 자기 부정을 하다가 마침내 병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치료해 나가는 ‘내면의 변화’에 집중했다. 드라마는 정신병동 간호사 출신인 이라하 작가가 2017~20년 연재한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정신건강의학과 내 간호사와 환자들이 중심인 국내 드라마는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최초다. ‘정신병동에는 커튼이 없어서 종합병원에서 가장 먼저 아침이 온다’는 드라마 제목에는 정신병동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다.

정신병동 간호사이자 환자가 된 주인공

드라마는 크게 두 개의 축으로 나뉘어 있다. 먼저 정신병동 간호사 정다은(박보영)이 ‘치료자’로서 처음 정신병동에 와서 정신질환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환자들을 치료해 나가는 성장 과정을 담았다. 드라마에는 조울증, 망상, 조현병 등 병원을 찾은 환자들의 다양한 증상이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이들의 치료 과정은 아무도 처음부터 정신질환자는 아니었으며, 정신질환은 치료를 통해 나아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뭔가를 넘치게 가졌다고 해서 정신병에 안 걸리냐? 반대로 뭐가 부족하면 정신병에 걸리고? 아마 오리나님은 아프다고 할 때마다 그런 말을 들었을 거야. 너 같은 애가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아프냐고."

간호사 정다은(왼쪽)은 유일하게 김서완(오른쪽)의 망상을 마음으로 이해하는 간호사였다. 김서완은 공무원 시험에 수차례 낙방하다가 게임에 빠지게 된다. 현실에서도 게임 속 화면이 보이는 망상에 빠진다. 퇴원 후에도 망상이 재발해 자살을 선택한다. 이 일을 계기로 주인공 정다은은 자신을 자책하며 깊은 우울증에 걸린다.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화면 갈무리
간호사 정다은(왼쪽)은 유일하게 김서완(오른쪽)의 망상을 마음으로 이해하는 간호사였다. 김서완은 공무원 시험에 수차례 낙방하다가 게임에 빠지게 된다. 현실에서도 게임 속 화면이 보이는 망상에 빠진다. 퇴원 후에도 망상이 재발해 자살을 선택한다. 이 일을 계기로 주인공 정다은은 자신을 자책하며 깊은 우울증에 걸린다.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화면 갈무리

두 번째 축은 환자가 된 주인공 정다은이 자신의 병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주인공은 자신이 치료하던 망상 환자 김서완이 퇴원 후 다시 망상이 재발하여 자살하자 깊은 우울감을 느낀다. 자신도 모르게 차도로 뛰어든 주인공은 우울증을 진단받는다. 자신의 일터이기도 했던 정신병원에 환자로 입원하게 한 정다은은 간호사인 자신이 치료법과 병명도 모르겠냐며 퇴원을 요구한다. 정신병동에 왔기 때문에 다시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병을 부정한다. 하지만 주변 동료들과 친구의 도움으로 자신이 그간 환자들에게 말해왔듯, 자신도 다시 회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얻게 된다.

제작발표회 인터뷰에서 이재규 PD는 드라마 대사 한 줄에 전하고자 한 주제가 담겨있다고 말했다. “약 먹어요. 버틴다고 버텨지는 병도 아니고 이긴다고 이길 수 있는 병도 아니고”. 이 PD도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었다. 3년간 병원도 안 가고 버틴 적도 있었다. 하지만 몸을 다치면 병원에 가는 것처럼 마음이 다쳤으면 병원에 가는 것이 얼마나 당연하고 중요한 일인지 말해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정신질환 치료를 방해하는 ‘낙인’

정신질환과 관련된 서사는 최근 들어 ‘정신질환자를 타자화’하는 것이 아닌 ‘환자의 내면 변화와 자기 고백’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변화해 나가고 있다. 특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낙인’이 환자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세밀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정신질환 ‘낙인’ 연구의 권위자인 패트릭 코리건 일리노이 공대 심리학과 석좌교수는 정신질환을 둘러싼 두 개의 낙인을 설명했다. 첫째로 대중적 낙인(public stigma)은 정신질환자를 혐오 대상으로 여기는 고정관념을 말한다. 정신질환자는 위험하고 예측이 어렵고, 도덕성이 낮아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는 잘못된 생각은 사람들이 이들을 기피하게 만든다. 둘째로 자기 낙인(self-stigma)은 정신질환자들이 자기 자신에게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자기 스스로를 나약하고 ‘사회 질서 밖의’ 부적응자라고 낙인찍게 된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는 대중적 낙인과 자기 낙인이 환자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1화에 나오는 오리나는 부족함 없이 컸지만, 자신의 조울증을 인정하지 않는 엄마 때문에 병세가 깊어진다. 정신질환을 기피해야 하는 것이라는 엄마의 인식 때문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된다. 주인공이 정다은도 정신질환을 가지게 된 자신에게 환자들이 치료받기 싫어할까 봐 걱정한다. 드라마는 정신질환자를 둘러싼 낙인이 환자의 내면을 파괴하고 치료를 방해한다는 경고를 보낸다.

편견과 오해를 바로잡는 더 많은 서사가 필요하다

미디어에서 정신질환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점차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양한 정신질환 관련 콘텐츠가 등장하는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마음의 병은 특수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닌, 누구에게나 다 해당될 수 있다는 것, 더 나아가 ‘필요하다면 병원에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메시지를 전한다. 등장인물 오리나와 정다은이 마음의 병을 치료했듯, 정신질환 또한 다른 병처럼 주변 사람들의 지지가 필수적이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드라마 콘텐츠가 정신질환을 묘사하는 방식의 작은 변화가 우리의 편견과 오해를 바로잡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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