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KBS ‘지구 위 블랙박스’

극지의 얼음이 녹고 있다. 알고 있다. 섬나라가 바다에 잠기고 있다. 이것도 이미 알고 있다. 아마존강의 수위가 낮아지고, 아프리카 사바나 지대에선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 또한 어릴 적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어왔다. 그래서 모든 말에 공감한다. 과도한 탄소 배출은 나쁜 짓이고, 하루빨리 이를 제지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를 위한 지구는 없다. 그런데 왤까, 조금 지친 것 같다. 귀찮다는 핑계를 방패 삼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죄스럽긴 하지만, 나 하나 노력한다고 해서 세상이 극적으로 바뀔 리가 없을 것만 같다. 특히 마치 나를 계몽시키려는 듯 구는 TV 속 환경 프로그램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삶만이 옳다고 말하는 것 같아 피곤하다. 일반 제품보다 값비싼 환경 용품을 사기 위해 없는 돈을 보태란 건가. 자주 들리던 카페에는 맛 이상한 종이 빨대가 들어서고, 일부 지역에선 일회용 컵 보증금이라는 명목으로 평소보다 300원을 더 받아 가기 시작했다. 손에 잡히지도 않는 무형의 가치를 위해서 말이다.

2023년 지구. 친환경 정책을 반대하는 흐름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른바 ‘그린래시’(greenlash) 현상이다. 그린래시란 친환경을 뜻하는 ‘그린’(green)과 반발을 뜻하는 ‘백래시’(backlash)의 합성어로, 기후 위기 정책에 대한 거부 현상을 일컫는다. 영국 정부가 런던 시내 노후 공해 차량에 추가 요금을 부과하는 ‘초저배출 구역’을 확대하자. 시민들은 단속 차량을 훼손하고 감시 카메라를 부쉈다. 6월 네덜란드에선 정부가 질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가축 수를 감축하겠다고 하자 수천 명의 농부가 시위에 나섰다.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들도 국제사회가 공동 합의한 친환경 정책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올해 7월, 폴란드는 EU의 내연기관 자동차 금지 법안을 무효로 하기 위해 이를 유럽 사법재판소에 제소했다. 친환경에 앞장서던 프랑스와 벨기에마저도 EU의 친환경 법제화의 ‘일시 중단’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2023년은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 문제의 티핑포인트로 삼았던 해다. 2018년 그녀는 트위터에 ‘세계가 2023년까지 화석 연료 사용을 중단하지 않으면 인류는 멸망할 것’이라 말했다. 이제 2023년은 마지막 한 달만을 남겨놓고 있다. 당장 인류가 멸망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나, 지구 곳곳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는 빈도는 확실히 잦아지고 있다. 환경 보호에 대한 중요성을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현실에서 친환경 정책은 늘 뒷전이다.

‘지구 위 블랙박스’ 포스터, 출처 KBS 홈페이지
‘지구 위 블랙박스’ 포스터, 출처 KBS 홈페이지

그린래시가 아무리 거세어도 미디어는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환경 이슈를 다룰 책임이 있다. 공익성을 추구하는 공영방송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KBS가 공영방송 50년을 맞아 특별한 환경 기획을 선보였다. 지난 10월 9일부터 10월 24일까지 방영된 ‘지구 위 블랙박스’는 공상과학(SF) 드라마, 다큐멘터리와 음악이 어우러진 4부작 환경 프로그램이다. 제작 과정을 소개하는 4화를 제외하면, 본편은 총 3편이다. 총제작비 24억 원, 제작 기간은 무려 500일이 넘는다. 연출은 환경 예능 ‘오늘부터 무해하게’를 연출했던 구민정 PD, 각본은 소설 ‘천 개의 파랑’으로 유명한 천선란 소설가가 맡았다. 이 작품은 한국PD연합회에서 수여하는 제284회 TV 예능 부문 이달의 PD상을 받았다.

가까운 미래, 뜨거운 모래바람만 부는 ‘거주 불능 지구’에 홀로 남겨진 데이터 센터 ‘블랙박스’. 방공호라 불리는 우주선에 타고 있는 마지막 생존 인류가 지구로 돌아와도 안전할지를 판단하는 것이 블랙박스에 남겨진 ‘기록자’의 임무다. 각기 다른 시대를 사는 3명의 기록자는 각각 우연한 계기로 2023년 아티스트들이 당시 지구 기후 재난 지역을 찾아 선보였던 퍼포먼스 영상을 보게 된다. 2023년 이들은 어떤 기록을 남겼을까, 그 영상을 본 블랙박스의 기록자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거주 불능 지구에서 돌이켜본 2023년

“딸, 우리가 지구에서 태어났다는 걸 잊어버리면 안 돼. 46억 년 전에 행성이 생겨나고, 그 행성에 지구라는 이름을 붙였어. 그렇게 지구를 탐험하고, 꿈꾸고, 사랑하고. 집이라고 부르는 그곳에서 우리 모두 어울려 살았어.” (지구 위 블랙박스 1화, 기록자 윤이 딸에게 남기는 영상 편지를 촬영하며)

지구 위 블랙박스 1화는 지구가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했는지 설명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살인적인 폭염과 가뭄, 꺼지지 않는 산불, 그리고 급격한 해수면 상승, 전염병의 확산으로 인류는 2049년 ‘거주 불능 지구’를 선포했다. 오직 소수의 인간만이 방공호에 탑승해 지구가 회복하기를 우주 공간에서 수면 상태로 기다리고 있다. 2054년, 지구의 유일한 데이터 센터 ‘블랙박스’ 기록자 윤(배우 김신록)은 딸에게 영상 편지를 남기던 중 기후 회복에 관한 방법을 찾고자 2023년 뮤지션들이 만든 다큐멘터리를 보게 된다.

남극에서 최정훈이 노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을 부르고 있다. 웨이브 지구 위 블랙박스 화면 갈무리
남극에서 최정훈이 노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을 부르고 있다. 웨이브 지구 위 블랙박스 화면 갈무리

2023년 3월 남극, 헬리캠을 띄워도 보이는 건 끝없이 펼쳐진 검은 맨땅과 그 위로 무리 지어 다니는 펭귄뿐이다. 3월이 남극의 여름이라곤 하지만 세종 기지 근처에 하얀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남극을 방문한 밴드 잔나비의 보컬 최정훈은 날씨가 춥지 않아  니트만 입은 상태로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을 노래했다. 공연을 준비하던 동안에도 뒤편에서 빙산이 계속 무너져 내렸다.

다른 아티스트들도 다양한 기후 재난 지역을 찾아갔다. YB 밴드는 연안 침식이 심각한 강릉의 안인 해안 사구에서 ‘나는 나비’를, 가수 김윤아는 산불과 가뭄으로 메말라 버린 스페인 갈리시아 지역 숲에서 ‘세상의 끝’을 불렀다. 아이돌 르세라핌은 점점 사라지는 제주도 구상나무숲을 배경으로 대표곡 ‘Unforgiven’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가수 정재형과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는 태국 맹그로브 숲가의 강에 뗏목을 띄워, 그 위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아이돌 세븐틴의 멤버 호시는 광화문 광장의 야경 속에서 노래 ‘호랑이’를 불렀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기후 이상 현상을 색다른 퍼포먼스와 함께 담아낸 것이다.

뮤지션들이 남겨놓은 기록물을 보고, 블랙박스 기록자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2054년 기록자 윤은 자신이 기억하는 지구의 바다와 석양을 그리워한다. 2080년 기록자 한스(배우 박병은)는 ‘기후 위기를 감지했을 때 왜 더 빨리 행동하지 않았느냐’며 분노한다. 2123년 니오(배우 김건우)는 인류가 지구에 돌아오면 지구가 또다시 상처를 입게 될지 걱정한다. 지구 위 블랙박스 본편의 마지막인 3화는 투명한 모니터 화면에 적힌 ‘인류 귀환 프로젝트 허가’를 놓고 ‘Yes’와 ‘No’ 중 무언가를 선택하는 니오의 뒷모습으로 끝난다.

기후 위기에 대한 인간의 복합적인 심리를 상징하는 3명의 주인공

“당장 어떻게든 했어야지. 사실 그냥 싫었던 거야. 눈앞에 호수가 저렇게 말라가는데, 그냥 시간이나 질질 끌고 말이야. 자연이 준 시그널은 너무 많았어. 근데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됐어.” (지구 위 블랙박스 2화, 기록자 한스와 AI ‘러스’ 간의 대화 중에서 한스가)

과거를 그리워하는 2054년의 윤, 기후 위기를 방관한 인류를 증오하는 2080년의 한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돌아올 인류로 인해 상처 입을 지구를 걱정하는 니오. 지구 위 블랙박스의 드라마 스토리를 이끌어간 이 세 인물은 2023년의 우리를 닮았다. 우리 마음속엔 윤, 한스, 니오 세 사람이 모두 담겨 있다. 우린 아름다운 지구를 동경하고 사랑하면서, 망가지는 지구를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을 증오하고, 그렇게 방치되어 망가져 버린 지구에 미안한 감정을 품고 있다.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쉽사리 움직이지 않고 있는 우리의 감정은 복합적이다.

2080년 블랙박스에 남아 있는 기록자 한스가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웨이브 지구 위 블랙박스 화면 갈무리
2080년 블랙박스에 남아 있는 기록자 한스가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웨이브 지구 위 블랙박스 화면 갈무리

2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해 인류에 대한 분노와 불신을 표출한 한스는 어릴 적 해일로 아버지를 잃은 ‘기후 난민’이다. 한스는 어릴 적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말한다. “재해는 평등하게 오지 않아. 나랑 우리 엄마는 가진 것 없고 힘이 없어서 더 많은 것을 잃었어. 훨씬 더 처참했고, 비굴했어.” 한스의 모습은 지금 이 순간 삶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는 태평양 섬나라 주민들을 연상케 한다. 강도가 높아진 자연재해가 힘이 없는 자들의 탓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후 재난은 이들에게 가장 먼저 찾아갔다.

재난 지역에 귀를 기울이다

기존의 환경 다큐멘터리와 비교했을 때 지구 위 블랙박스만의 ‘플러스알파’는 귀의 감각을 극대화해 기후 변화를 상징하는 소리를 잡아내고 이를 해석하는 데 있다. 1화 남극 편에서 제작진은 ‘유빙에서 기포가 터지는 소리’를 담았다. 아주 작은 ‘타닥-타닥-’ 소리인데, 이는 얼음이 녹으며 수백 년 전 얼음에 갇힌 공기가 세상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펭귄의 울음소리, 빙벽이 무너지는 소리처럼 남극이라면 흔히 연상되는 소리 말고도, 새로우면서도 섬찟한 소리를 담았다.

2022년 6월 대형 산불이 발생했던 스페인 사모라 지역 숲속에서는 남극과 반대로 ‘소리 없음’을 강조했다. 나무껍질은 빨갛게 벗겨졌고 숲엔 아무런 생명의 신호가 없었다. 모든 것이 불타버린 사모라 숲은 적막했다. 그 적막함도 기후 위기의 강력한 메시지였다.

스페인 메마른 강바닥에서 모니카와 립제이가 작은 배를 중심에 놓고 춤을 추고 있다. 웨이브 지구 위 블랙박스 화면 갈무리
스페인 메마른 강바닥에서 모니카와 립제이가 작은 배를 중심에 놓고 춤을 추고 있다. 웨이브 지구 위 블랙박스 화면 갈무리

시각적인 충격도 빠트리지 않았다. 헬리캠으로 조감한 기후 재난 지역의 모습은 처참했다. 남극은 눈이 녹아 검은 맨땅이 드러났고, 한라산의 구상나무도 떼거리로 말라 죽어 있었다. 두 갈래 강으로 이어지던 에메랄드빛 스페인 시하라 저수지는 메말라 밑바닥을 보였다. 댄서 모니카와 립제이는 저수지 바닥까지 내려가 걸었다. 지도상 물이 가득 차 있는 저수지의 정중앙이었다.

기후 재난 지역에서 펼친 퍼포먼스

강릉 안인 지구에서 YB 밴드가 ‘나는 나비’를 연주하고 있다. 웨이브 지구 위 블랙박스 화면 갈무리
강릉 안인 지구에서 YB 밴드가 ‘나는 나비’를 연주하고 있다. 웨이브 지구 위 블랙박스 화면 갈무리

지구 위 블랙박스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장치는 아티스트들의 독창적인 퍼포먼스다. 해수면 상승과 연안 침식 문제를 소개한 윤도현은 물이 차 있는 투명한 유리 박스 안에서 맨발로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는 중에도 유리 박스의 물은 계속 차올라 가수의 어깨선까지 닿았다.

태국에선 인간의 자원 개발로 파괴되고 있는 맹그로브 숲을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가수 정재형과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가 붉은 뗏목 위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200 킬로그램짜리 피아노를 강 위로 띄우기 위해, 사극에 사용되는 배를 제작하는 전문가를 모셔 와 뗏목을 특별 제작했다.

태국 맹그로브 숲 강에서 정재형과 대니 구가 ‘La mer’ 연주를 하고 있다. 웨이브 지구 위 블랙박스 화면 갈무리
태국 맹그로브 숲 강에서 정재형과 대니 구가 ‘La mer’ 연주를 하고 있다. 웨이브 지구 위 블랙박스 화면 갈무리

태국 뗏목에서의 피아노 연주곡 ‘La mer’는 애당초 자연을 생각하며 작곡한 곡이라 맹그로브 숲의 풍경과도 잘 어울렸다. 자연과 연관이 없어도 노래 속 화자를 자연이라 연상하며 풀어낸 곡도 있었다. 예컨대 남극의 빙벽 앞에서 가수 최정훈이 부른 노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은 사랑에 최선을 다했기에 미련 없이 보내줄 수 있다는 사람의 마음을 담은 곡이다. 최정훈은 “이 노래의 화자가 자연을 의인화한 화자라면 어떨까” 생각했다며, ‘무표정한 얼굴’의 자연 앞에 서 있는 느낌을 받아서 이 노래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다만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퍼포먼스의 장소와 어울리지 않아 아쉬운 선곡도 있었다. 퍼포먼스의 배경이었던 한라산의 숲, 광화문의 야경과 기후 위기 간의 연결성은 앞서 충분히 설명되었지만, 노래가 전달하는 메시지와 기후 위기 사이의 고리가 약해 그들의 노래가 위기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기후 위기 시대, 방송의 역할은

지상파 미디어는 오래전부터 환경 프로그램 제작에 꾸준히 도전하고 있다. 예능에서도 환경 이슈를 다루기 시작했다. 예전엔 분위기가 무거운 다큐멘터리나 시사 프로그램이 환경 파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렸다면, 환경 예능은 캠핑, 여행, 요리 같은 일상적인 소재를 결합해, 시청 진입 장벽을 낮춘다. ‘우리 모두 지구를 지켜낼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환경 예능의 무궁무진한 표현 방식은 일상 속의 환경 보호를 권한다. 현재 방영 중인 SBS ‘녹색 아버지회’는 연예계 대표 아빠 4인방이 다음 세대가 살아갈 지구를 위해 환경 보호에 솔선수범하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이미 종영한 프로그램 중에선 KBS1 ‘비공개 다큐 - 지구별 별책부록’(2023), 작년 12월 1부작으로 끝난 tvN STORY의 ‘지구 청소자들’(2022), EBS의 채식 요리 대결 프로그램 ‘채소가지구’(2021)가 있다.

KBS 지구 위 블랙박스의 연출 구민정 PD의 전작 ‘오늘부터 무해하게’(2021)도 환경 예능 프로그램이다. 공효진, 이천희, 전혜진이 죽도에서 일주일 동안 탄소중립 생활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구민정 PD가 환경 예능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은 공영성 때문이다. 2021년 프로그램 종영 후 OSEN과의 인터뷰에서 구 PD는 오늘부터 무해하게가 공영방송에서 해야 할 법한 예능을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면서, 앞으로도 공영성 측면에서 기후 변화 이슈를 다뤄야 한다고 밝혔다.

지구 위 블랙박스는 첫 방송 시청률 1.6%, 마지막 방송 시청률 1.0%로 마무리되었다. 25억 원의 예산을 생각하면 ‘인풋’ 대비 ‘아웃풋’이 그리 좋지 않다. 그러나 SF 드라마와 음악, 그리고 다큐멘터리 이 세 개의 장르를 혼합한 제작진의 도전은 높은 퀄리티의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TV 시청률은 높지 않았으나, 유튜브 등에서는 몰입감 높은 스토리와 퍼포먼스로 화제를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미디어들도 콘텐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한다는 사실이다. 미디어 기업과 개별 프로그램에도 환경 보호의 책임이 있다. 해외 방송사에선 친환경 제작 지침이 만들어졌다. 독일 공영방송은 2020년 11월 ‘지속 가능 보고서’를 발표했다. 환경에 관한 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친환경적인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의미다. ‘그린 프로덕션’이라는 이름으로, 인력이 머무는 숙소가 친환경 인증이 되었는지, 촬영 현장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는지 등을 점검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국내에선 KBS가 이에 앞장섰다. KBS는 올해 5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저감하는 ‘ESG 경영 강화 계획’을 발표했다. 기후 변화를 알리는 프로그램을 더 많이 편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방송 프로그램용 탄소 계산기를 도입해 프로그램별 탄소 배출량을 파악하고 탄소 배출을 저감하겠다고 KBS는 밝혔다.

지구 위 블랙박스 3화에서 인류 지구 귀환 프로젝트에 대한 결정을 앞두고, 기록자 니오는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말을 돌리며 회피하는 니오에게 인공지능 러스는 블랙박스의 기록자는 ‘랜덤’으로 선발된다고 말한다. 지구의 미래는 어떤 소수의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동등하게 책임을 지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기후 문제 앞에선 인간 하나하나가 다 똑같은 결정권자다. 기후 변화에 대한 책임, 다가오는 재앙에 제동 걸 시간과 기회는 전부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다. 지난달 30일부터 12월 12일까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리고 있다. 이젠 파리협정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 의무 대상이 모두 포함된 전 세계 197개국이 나설 차례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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