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2023) 포스터. 출처 IMDB
그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2023) 포스터. 출처 IMDB

2013년. ‘바람이 분다’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던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로 돌아왔다. 전 세계의 지브리 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은퇴 이후 지브리는 ‘추억의 마니’, ‘아야와 마녀’와 같은 장편 애니메이션을 내놓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가 부재한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는 지브리의 감성을 느낄 수 없었다. 꿈속을 구현해 놓은 것 같은 독특한 세계관 속에 ‘평화주의’, ‘생태주의’를 담아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연출이 곧 지브리의 감성이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지브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 그의 복귀는 더욱 의미가 있다. 다시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의 꿈속으로 들어갈 기회가 다시 한번 주어졌었으니 말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1937년 발간된 요시노 겐자부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그가 소설을 원작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것은 처음 시도한 일이 아니다. 지브리의 대표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 또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영국 소설가 다이애나 윈 존스의 동명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경우 움직이는 성과 주인공 소피의 노화를 제외한 대부분의 이야기가 원작과 일치하지 않았다. 원작에서 몇 가지 재료를 빌려오되 이를 바탕으로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번 작품 또한 마야자키 하야오가 원작에서 어떤 재료를 가져올지, 그 재료로 어떠한 다른 세계를 창조해 낼지 많은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 원화. 출처 IMDB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 원화. 출처 IMDB

이번 작품은 역대 지브리 역사상 가장 오랜 제작 기간이 소요되었고 가장 많은 제작비가 투입되었다. 하지만 지브리는 정체불명의 왜가리가 그려진 포스터 이외에는 아무런 사전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이러한 ‘신비주의 마케팅’은 주목을 이끄는 데 효과적이었고, 많은 이들에게 궁금증을 자아내었다. 그리고 이 ‘궁금증’은 영화 내에서도 이어졌다. 이야기에 대한 해석을 모두 관객에게 맡긴 굉장히 불친절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플롯은 간단하게 구성되어 있다. ‘3년 전 화재로 어머니를 잃은 주인공 ‘마히토’가 ‘전’ 이모이자 ‘현’ 새엄마인 ‘나츠코’를 찾아 외고조부가 세운 탑으로 향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전부이다. 하지만 등장인물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과 설명되지 않은 채 넘어가는 장면들이 관객을 어지럽게 한다. 영화 속 장면 간의 연결고리를 찾아 이해 가지 않는 장면을 추론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영화 내내 관객들에게 주관식 문제를 쏟아내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거듭 물어보는 어렵고도 불편한 이 작품. 그대들은 어떻게 볼 것이고, 어떻게 본 것인가. 만족스러운 답을 찾지 못했다면 후술할 내용들을 통해 그 단서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그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2023) 초기 일러스트. 출처 IMDB
그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2023) 초기 일러스트. 출처 IMDB

원작과의 상관관계

원작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코페르’라 불리는 1930년대 일본의 중산층 소년이 일상에서 경험한 학교폭력, 빈부격차 등의 에피소드들을 외삼촌에게 이야기하고 외삼촌은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편지로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원작의 내용은 미야자키 하야오를 거치면서 캐릭터, 스토리, 설정 모두 크게 달라진다. 달라지지 않은 것은 단 하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영화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스즈키 토시오는 미야자키 하야오로부터 처음 이 제목을 들었을 때 ‘이걸 왜 관객들에게 물어보는가’라는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프로듀싱의 과정에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 몰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은 영화를 제작한 이유이자 감독이 관객들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 영화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할 수 있다.

마주보는 마히토와 아오사기.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 출처 IMDB
마주보는 마히토와 아오사기.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 출처 IMDB

나는 이렇게 살았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자신의 연대기를 담을 것이라 예고한 바 있다. 작 중 주인공인 ’마히토‘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다. 작 중 마히토는 군수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둔 부잣집 도련님인데, 이는 그의 어릴 적 모습과 일치한다. 세계 2차대전이라는 극의 시대적 배경 또한 미야자키 하야오가 유년기를 보냈던 시기와 같다. 이를 통해 작품 속에 나타나는 마히토의 심리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어릴 적 느꼈던 감정들을 재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주인공 마히토 뿐만아니라, 조연들의 모습도 자신과 관련된 이들에게서 빌려 왔다. 먼저 주인공의 파트너인 왜가리 ’아오사기‘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50년째 동고동락 중인 지브리의 총괄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를 생각하며 만든 캐릭터이다. 실제로 작 중 마히토와 아오사기가 주고받는 대화 중 일부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즈키 토시오와의 일화를 재구성한 것이라고 한다. 작품 속 등장하는 또 한 명의 동료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선배이자 멘토인 타카하타 이사오이다. 그는 마히토를 탑 속에 존재하는 판타지의 공간인 이세계(異世界)로 이끄는 마히토의 ’외고조부‘로 등장한다. 그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제작 도중에 사망했는데,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 충격으로 반년 가까이 작품 제작을 중단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동료는 지브리의 색채 설계팀 팀장 야스다 미치요이다. 지브리의 서정적이고 따뜻한 색감은 모두 그녀로부터 탄생했는데, 그녀는 마히토의 하녀인 ’키리코‘로 등장한다. 극의 조력자들 또한 자신의 동료들을 모티브로 한 이유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설정한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친구를 발견하는 것‘이라는 테마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즉, 이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전적인 이야기와 세계관을 바탕으로 관객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보여주는 영화인 것이다.

마히토와 외고조부.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 출처 IMDB
마히토와 외고조부.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 출처 IMDB

지브리의 창조주

마히토의 외고조부는 마히토가 향하게 된 탑 속 세계의 창조주인데, 이는 지브리의 창조주인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과 닮아있다. 마히토 뿐만 아니라 외고조부에게도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의 캐릭터를 부여 한 것이다. 외고조부가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쌓고 있는 돌탑 속 돌은 13개이다.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지브리에서 제작한 13개의 작품을 의미한다. 이 돌탑은 세계의 기둥으로서 수명을 다해 붕괴할 위기에 처해 있는데, 이는 지속된 적자를 기록하며 애니메이션 제작팀마저 해산된 스튜디오 지브리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설명되지 않은 ’나를 배우는 자, 죽게 될 것이다‘라는 경고문은 자신의 길을 답습하기만 할 뿐, 그들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구축하지 못하고 거듭된 실패를 경험하고 있는 자신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와 지브리 구성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상처입은 펠리컨. 그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2023) 출처 IMDB
상처입은 펠리컨. 그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2023) 출처 IMDB

새를 통해 표현된 인간 군상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영문판 제목 ’소년과 왜가리(The Boy and the Heron)‘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새가 작품의 전개에 큰 역할을 차지한다. 극 중에는 왜가리, 펠리컨, 잉꼬 세 가지 종류의 새들이 등장한다. 왜가리 ’아오사기‘는 주인공과 갈등을 빚기도 하고 때로는 협력하며 미운 정 고운 정이 쌓이게 되는 캐릭터이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마히토를 성장시켜 주고 든든한 파트너로서 곁을 지켜준다는 점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생각하는 친구의 소중함을 투영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펠리컨은 와라와라(새 생명으로 태어나기 전의 태아와 같은 존재로 귀여운 외모를 가진 아이와 같은 순수한 모습으로 묘사된다)의 포식자로 등장하며, 마히토마저 먹어 치우려는 흉포함을 보인다. 그러나 펠리컨과 마히토의 대화를 통해 좁은 이세계에 갇혀 생존을 위해서는 와라와라를 잡아먹을 수밖에 없었던 펠리컨들이 사연이 드러난다. 영화의 배경이 된 2차 세계대전 당시, 보통의 사람들이 절도를 저질렀던 것처럼 가혹한 환경이 악인을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앵무새는 등장하는 새 가운데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며, 주변 모든 생명체를 식재료로 삼아 요리하고 먹어 치운다. 이는 자신들의 식욕을 위해 다른 종들을 가축으로 삼고 먹어 치우는 인간의 모습과 닮아있다. 이들의 우두머리인 잉꼬대왕은 군국주의 지도자들과 같은 화려한 복장을 하고 있으며 이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야욕을 보인다. 그의 연설을 들은 앵무새들은 만세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인 ’viva duce’가 적힌 피켓을 들고 행진한다. 이 장면에서 잉꼬대왕은 파시즘의 창시자인 베니토 무솔리니를, 그의 추종자인 잉꼬는 파시스트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문 너머 세계를 바라보는 마히토. 그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2023) 출처 IMDB
문 너머 세계를 바라보는 마히토. 그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2023) 출처 IMDB

그대들은 어떻게 즐길 것인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관람객들과 평론가들의 평이 극심하게 갈리는 영화이다. 관객 대부분이 영화 감상 이후 의아함과 난해함을 느꼈을 것이다. 복선을 깔았다면 영화가 끝나기 전에 이를 추론할 수 있는 단서나 연결고리를 제시하는 보편적인 영화의 구성 방식과 이 영화의 구성 방식은 확연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복선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은 영화는 ‘떡밥 회수 실패’ 혹은 ‘용두사미’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 작품에 같은 평가 기준을 두어서는 안 된다. 애초에 복선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제작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영화에서 해석하는 재미를 찾는 이들에게는 보물 상자 같은 영화가 될 것이고, 알기 쉽게 떠먹여 주는 영화를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굉장히 난해한 영화로 기억될 수 있다. 영화를 즐기는 방식은 사람마다 각기 다르지만 적어도 이 작품에 한해서는, 아무 생각 없이 영상미를 즐기기보다는 자신만의 해석을 시도해 보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쳐보길 강력히 추천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83년 인생을 보고 당신을 무엇을 느꼈는가, 그리고 이 영화를 관람한 당신들은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물음에 대한 대답의 과정에서 그대들은 이 영화를 진정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통조림을 확인하는 하녀들. 그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2023) 출처 IMDB
통조림을 확인하는 하녀들. 그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2023) 출처 IMDB

여담, 필자는 어떻게 즐겼는가

지브리의 오랜 팬인 필자에게 이번 작품은 영상미 하나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했다. 지브리가 축적해 온 40년의 애니메이션 연출력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보는 내내 감탄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필자 또한 영화를 처음 관람했을 당시에는 이해가 가지 않는 영화 내용에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메시지를 강조하는 비중을 줄이고 전작들처럼 미야자키 하야오의 꿈같은 세계관을 좀 더 강조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더러 남았다. 하지만 영화의 의미를 곱씹어 보고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과정에서 이전 지브리에서 느껴보지 못한 즐거움을 느꼈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 면 그 말도 맞습니다’라는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 방식 또한 매력적이었다. 영화개봉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는 또 한 번 은퇴 선언을 철회했다 다음 복귀가 10년 후가 될지, 15년 후가 될지는 그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거장은 기다린 만큼의 즐거움을 분명 선사해 줄 것이기에 볼수록 매력이 더해지는 작품,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곱씹어 가며 돌아올 그를 기다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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