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MBC PD수첩 ‘역사전쟁, 누가 홍범도 장군을 지우려 하나’

육군사관학교 앞에서 열린 홍범도 흉상 철거 반대 측과 찬성 측의 집회 모습 위로 방송 타이틀이 뜬다. MBC PD수첩 ‘역사전쟁, 누가 홍범도 장군을 지우려 하나’ 화면 캡쳐
육군사관학교 앞에서 열린 홍범도 흉상 철거 반대 측과 찬성 측의 집회 모습 위로 방송 타이틀이 뜬다. MBC PD수첩 ‘역사전쟁, 누가 홍범도 장군을 지우려 하나’ 화면 캡쳐

지난 8월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가 교내에 설치된 독립군 영웅 5인 흉상의 철거·이전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은 독립군 양성소인 신흥무관학교의 설립자 이회영과 광복군 초대 사령관 지청천, 그리고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주역 홍범도, 김좌진, 이범석 장군의 흉상을 독립기념관으로 옮길 계획임을 밝혔다. 이 장관은 특히 홍범도 장군에 대해 공산주의 활동 이력을 지적해 논란을 빚었다. 국방부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 밖으로 옮기는 것은 사실상 퇴출과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육사에 독립전쟁 영웅 5인의 흉상이 설치된 것은 2018년 3월 1일. 당시 군사학과 교수 박일송 대령은 흉상을 육사 교정 화랑대 충무관 앞에 설치한 가장 큰 이유에 대해 육사가 의병, 독립군, 광복군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5인의 흉상은 국군과 육사의 뿌리가 독립군, 광복군, 신흥무관학교라는 상징이었다. 하지만 5년 만에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 두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며 결정을 번복했다. 국방부의 흉상 철거 결정은 국민들을 찬성 측과 반대 측으로 나뉘게 만들었고 우리 사회는 분열했다. 급기야는 야당의 반발과 함께 정쟁으로 발전했다.

MBC 'PD수첩'은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 영웅 흉상 철거 방침의 목적과 배경에 주목했다. '역사 전쟁, 왜 홍범도 장군을 지우려 하나'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MBC PD수첩은 흉상 철거 논란을 역사전쟁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를 논증하기 위해 프로그램에서 두 개의 질문을 제기한다. 5년 만에 국방부가 장군의 흉상을 육사 밖으로 철거·이전하겠다고 입장을 번복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홍범도 장군은 정말 공산주의자였을까?

홍범도 장군, 그는 누구인가

1868년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홍범도 장군은 1920년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으로 봉오동 전투를 지휘했으며, 독립군 역사상 가장 큰 성과인 청산리 대첩에도 제1연대장으로 참전해 김좌진 장군과 함께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전투가 없을 때는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광산에서 일했다. 홍범도 장군의 가족도 모두 독립투사였다. 그의 아내는 일제의 고문으로 목숨을 잃었고, 그의 아들은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홍범도 장군은 일본군의 독립군에 대한 공세가 심해지자 1921년 근거지를 러시아 땅으로 옮겼고,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카자흐스탄에서 병원 경비와 극장 수위로 근근이 살다 조국 독립 2년을 앞두고 눈을 감은 그는 생전에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최후의 한 사람까지 평소의 의지 관철에 분투함으로써 우리 한민족 독립을 최후까지 힘을 다하여 외쳐, 죽은 뒤에야 그쳐야 한다.”

홍범도 장군의 생전 사진. MBC PD수첩 ‘역사전쟁, 누가 홍범도 장군을 지우려 하나’ 화면 캡쳐
홍범도 장군의 생전 사진. MBC PD수첩 ‘역사전쟁, 누가 홍범도 장군을 지우려 하나’ 화면 캡쳐

역대 한국 정부는 홍범도 장군의 독립운동 공훈을 기려왔다. 1962년 박정희 정부는 홍범도 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2021년 문재인 정부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각각 추서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 최신예 해군 잠수함을 ‘홍범도함’으로 명명했다. 이런 움직임은 마침내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으로 이어졌다. 2021년 8월 15일 홍범도 장군은 조국의 땅으로 돌아왔다. 그가 연해주로 이주한 지 100년 만의 일이었고, 카자흐스탄에서 순국한 뒤 78년 만의 일이었다. 장군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홍범도 장군을 둘러싼 역사 논쟁

국방부는 흉상 철거를 추진하는 이유로 1927년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입당 이력과 1921년 자유시 참변 가담을 꼽았다. PD수첩은 먼저 첫 번째 쟁점인 홍범도 장군의 공산주의 정체성에 대해 정리했다. 5년 전 흉상 설치에 관여했다는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에는 홍범도 장군의 공산주의 활동 이력이 문제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부가 5년 만에 태도를 바꿔 흉상 이전 결정을 내린 배경은 무엇일까?

취재진이 만난 육사 출신 박경석 장군은 현 정부가 왜곡되고 모순된 역사 인식으로 홍범도 장군을 공산주의자로 몰고 있다고 말했다. 먼저, 현 정부가 비판하는 공산주의는 남북분단 이후의 북한 정권을 의미하는데 홍범도가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던 1927년은 ‘북한’이라는 체제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다. 더구나 막강한 일본제국에 비해 턱없이 열악한 처지에 있던 독립운동가들이 상황과 정세에 따라 도움을 얻기 위해 외국 세력에 의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1920년대, 소련 주도의 코민테른은 약소민족의 독립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었다. 따라서 현 정권이 적으로 규정하는 ‘공산주의’와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가입을 연결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자유시 참변은 1921년 6월 28일 러시아 자유시(러시아명(名) 스보보드니) 인근 수라셰프카에 주둔하던 한인 독립군 사할린 의용대를 러시아 적군 제29연대와 다른 파벌의 독립군 한인보병자유대대가 무장해제 시키는 과정에서 서로 충돌한 사건이다. 이때 사할린 의용대 소속의 많은 한인 독립군이 희생됐다. 국방부는 지난 8월 장군이 참변 가해자로 가담했다는 의혹의 내용이 담긴 자료를 배포하며 흉상 철거 필요의 또 다른 이유로 제시했다. 그러나 PD수첩은 이 또한 근거 없는 일방적 주장이었다고 말한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유민 광복회 대외협력국장은 1921년 10월 독립군이 코민테른 본부에 제출한 자유시 사변에 대한 보고서를 근거로 홍범도 장군이 이끈 부대가 사할린 부대를 공격하지 않았음을 밝혔다.

홍범도 장군은 어떻게 지워져 가나

이번 PD수첩이 낸 가장 큰 성과는 육군의 내부 문건을 단독 입수해 보도했다는 것이다. 문건을 통해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 영웅 5인의 흉상 이전 논란의 전말을 최초 공개했다.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이력과 자유시 참변 가담 의혹을 내세워 흉상을 이전하려던 움직임의 시작은 언제부터였는지, 어떤 과정으로 흉상이 육사에서 퇴출될 예정이었는지 자료에 근거해 추적했다.

시작은 지난해 10월 24일 열린 국방위원회 국정감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신원식 현 국방부 장관은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입당 이력을 문제 삼았다. 국감 한 달 뒤, 박정환 육군참모총장이 육사를 방문해 회의를 주관했다. 취재진이 단독 입수한 육군 내부 문건에 따르면, 회의 이후 ‘참모총장 초도순시 후속 조치 계획’이 세워졌다. 여기에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이전하는 ‘기념물 재배치 사업 조기 시행 계획’이 포함됐으며, 재배치 대상은 안중근 장군 동상과 독립군·광복군(박승환·김좌진·이회영·이범석·지청천·홍범도) 흉상 총 7개였다. 올해 7월 4일까지만 해도 육사 내 실내로 흉상을 이전하는 방안이 논의되었다.

취재진이 단독 입수한 육군 내부 문건. MBC PD수첩 ‘역사전쟁, 누가 홍범도 장군을 지우려 하나’ 화면 캡쳐
취재진이 단독 입수한 육군 내부 문건. MBC PD수첩 ‘역사전쟁, 누가 홍범도 장군을 지우려 하나’ 화면 캡쳐

그런데 7월 21일 육사 관계자 두 명이 신원식 의원실을 방문한 이후,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었다. 육사 회의에서 처음으로 흉상 대외 이전 방안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8월 31일 육사는 홍범도 흉상은 육사 외 적절한 장소로 이전하고, 나머지 5위 흉상에 대해서는 육사 교정 내 적절한 장소로 이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8월부터 흉상 이전을 위한 조치가 빠르게 진행됐다. 8월 28일, 육사는 흉상 이전 논란과 관련해 정해진 바가 없다고 설명했지만, 그때 육사는 이미 흉상 이전 예산 1,500만 원과 독립기념관 위탁관리를 요청한 상태였다. 독립기념관에 공문을 보낸 그날 육사는 경기도의 한 건설업체와 수의계약까지 마쳤다. 육사 내 독립 영웅들은 일사천리로 철거·이전될 예정이었다.

역사를 정치적 수단으로 삼는 정치권

역사를 정치적 수단으로 삼는 현 정부의 목적은 무엇인가? 현 정부가 신봉하는 뉴라이트 사관의 생산자는 누구이며 그것은 어떻게 지지자들에게 전파되는가?

PD수첩 취재진은 독립 영웅들의 흉상을 철거·이전하려는 정치 세력을 추적했다. 육사 흉상 철거를 넘어 ‘홍범도장군로(路)’라는 도로명까지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집회를 찾아갔다. 집회 참가자들은 홍범도 장군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말하고 있었다.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참가자들은 일제히 김용삼 씨를 언급했다. 김용삼 씨는 월간조선 편집장 출신 기자로 2020년부터 유튜브 영상과 칼럼을 통해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운동가의 투쟁사를 왜곡해 왔다. 김용삼 기자는 한국자유회의에 참여해 온 인물 중 하나다.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창립한 단체 한국자유회의가 제5차 대국민 토론회를 연 당시 사진이다. MBC PD수첩 ‘역사전쟁, 누가 홍범도 장군을 지우려 하나’ 화면 캡쳐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창립한 단체 한국자유회의가 제5차 대국민 토론회를 연 당시 사진이다. MBC PD수첩 ‘역사전쟁, 누가 홍범도 장군을 지우려 하나’ 화면 캡쳐

한국자유회의는 2017년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시기, 이른바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만든 단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뉴라이트를 하나의 이념체계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일제 식민 지배가 조선의 근대화를 가져왔다는 ‘식민지 근대화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1948년 건국론’과 같은 그들의 역사 인식 속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결정의 배경을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뉴라이트 사관에서는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광복군들의 역사는 아무런 의미나 가치가 없다. ‘자유민주주의’를 확립하는 대한민국의 역사는 이승만 정부가 출범한 1948년에 시작되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도 한국자유회의 회원 10여 명이 포진하고 있다. 강규형 EBS 이사, 한오섭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 장제원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비서실장,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등 뉴라이트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인물들이 현 정부의 주요 요직을 맡았다. 이들은 흉상 이전을 넘어 정치·외교·경제·안보 등 한국 사회 전반을 자신들의 구상대로 바꾸고자 한다.

역사해석을 둘러싼 이념 전쟁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과 더불어 현 정부가 일으킨 역사 전쟁에 대해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이 말하고 있다. MBC PD수첩 ‘역사전쟁, 누가 홍범도 장군을 지우려 하나’ 화면 캡쳐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과 더불어 현 정부가 일으킨 역사 전쟁에 대해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이 말하고 있다. MBC PD수첩 ‘역사전쟁, 누가 홍범도 장군을 지우려 하나’ 화면 캡쳐

“공산주의 빨갱이 얘기를 꺼냄으로써 다시 한국 사회를 이념적으로 분열시키려는 움직임과 뉴라이트의 오랜 욕구가 결합해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은 취재진에게 위와 같이 말했다.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대한민국은 역사해석을 둘러싼 이념 전쟁을 치르고 있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이전은 이런 움직임 속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이런 이념전쟁을 통해 사회를 분열시키면서까지 윤석열 정부가 얻고자 하는 것은 보수층의 확실한 지지인가? 내년 총선에서의 승리인가?

우리는 역사를 배울 때, 그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을 함께 학습한다. 일제 강점기의 항일 정신, 독재 군부 시대의 민주화 정신이 우리 역사가 목격해 온 부인할 수 없는 시대정신이다. 그래서 현 정부가 당장 눈앞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무리하게 시도하는 역사 재해석은 실현 불가능하고 위험한 일탈일 뿐이다.

피상적으로 진단한 위험성

MBC의 PD수첩은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 영웅 5인을 지우려는 움직임을 추적해 누가 어떻게 그리고 왜 항일 독립운동 역사를 지우려 하는지 보여주었다. 단독 입수한 육군 내부 문건을 통해 흉상 철거·이전 과정의 전말을 밝혀냈다. 느닷없이 흉상 철거를 추진한 정부의 의도를 유추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했고, 맥락을 파악해 전달했다는 점에서 공영 방송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방송은 또한 뉴라이트 사관을 지닌 정치 세력이 역사해석을 둘러싼 이념전쟁을 통해 한국 사회 곳곳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현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단순한 현장 고발을 넘어 특정 정치 세력에 의한 역사 왜곡, 이념전쟁이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장기적인 위험성을 깊게 파고들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우리 사회에는 이번 홍범도 흉상 철거·이전 문제뿐 아니라 위안부 합의이행 시도, 강제징용 ‘제3자 변제’ 방안 등 이른바 뉴라이트 사관과의 길고도 험한 전쟁이 현존하는 위협으로 남아있다. 이런 개별 이슈와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거대한 권력,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해관계에 대한 끊임없는 경계와 감시. 언론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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