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인어공주 ∙ 2023

"오리지널의 명장면들을 화려하게 재현한 뒤 뭍에 오르고부터는 내내 창백하게 늘어진다."  - 이동진 평론가

"때 낀 수족관 닦는 기분"  - 박평식 영화평론가

인어공주(2023) 포스터. 출처 IMDb
인어공주(2023) 포스터. 출처 IMDb

디즈니가 2023년 야심 차게 공개한 실사판 리메이크 영화 인어공주가 논란에 휩싸였다. 1989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는 2023년에 리메이크되며, 원작 인기 물고기 캐릭터들의 성격 설정과 외모 변화, 개연성 부족한 이야기 전개, 한국어 더빙 성우 캐스팅 등 여러 부분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가장 큰 논란은 영화의 완성도가 아니라 엉뚱하게 주인공의 피부색을 두고 불거졌다. 실사판 인어공주(이하 <인어공주>(2023))는 주인공 에리얼 역에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를 캐스팅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배역에 동양인, 흑인 등의 유색인종 배우들을 캐스팅하였다. 때문에 일부 영화 관객들은 주인공의 피부색이 원작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불만을 표현하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이들은 SNS에서 "#NotMyAriel"이라는 해시태그를 달며 배우 캐스팅에 대한 반대 의사를 내비치거나, 영화 상영 도중에 나가버리기도 하며, 영화 상영 중에 육성으로 거부감을 내비쳐 근처에 있던 흑인과 싸우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디즈니의 캐스팅을 반기는 관객 역시 있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나, 할리 베일리와 같은 흑인들은 이를 환영하며 세상의 편견과 선입견에 당당히 맞서는 영화라며 열렬한 지지를 보내오고 있다. 결국 영화에 대한 호불호 논쟁은 오랫동안 끝나지 않은 인종 차별과 얽혀 주인공 피부색의 적절성을 둘러싼 논쟁으로 비화했고, 종국에는 영화에 대한 비판을 '흑인에 대한 혐오'라고 규정하며 공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평론가의 의견과 관객의 평점을 종합한 메타크리틱 사이트에서 유저 평점 2.3점,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여론이 반영된 네이버 영화의 관객 평점 6.43점이라는 평가가 말해주듯이 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평가는 매우 박한 편이다. 굳이 ‘정치적 올바름’의 기준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주인공의 피부색이 이 영화에 대한 평가를 결정하는 유일한, 그리고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관객들로 하여금 2023년 실사판 인어공주에 대해 등을 돌리게 한 것일까?

인어공주(2023) 에리얼 역의 할리 베일리. 출처 IMDb
인어공주(2023) 에리얼 역의 할리 베일리. 출처 IMDb

리메이크 영화의 특성

리메이크(Remake)란 무엇인가? 리메이크란 과거에 제작된 작품을 동일한 매체로 다시 제작하는 것을 말한다. 드라마나 영화, 음악까지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이 리메이크 되어 대중들에게 선보여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리메이크  된 작품은 기본적으로 정서적 친밀감을 갖춘 상태에서 대중들에게 접근할 수 있으며, 이미 '원작'이라는 모범 사례가 존재하기에 제작 과정이 훨씬 순탄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경우 원작보다 리메이크 작품이 제작비와 마케팅비가 평균 20~30% 저렴하다는 연구도 있다. 비용 외에도, 큰 성공을 한 작품을 리메이크해서 기존의 팬덤을 새로운 작품으로 유입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리메이크 작품은 원작의 명성이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원작을 재미있게 본 사람들은 당연히 리메이크 작품에도 원작만큼의 재미와 감동을 기대하게 되는데, 원작을 그대로 흉내 내기만 하면 식상하여 원작보다 못한 작품이 되며, 원작을 지나치게 변형시키면 원작에 충성하는 팬들의 반발이 심할 수도 있다. 리메이크 영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원작의 본질을 해치지 않으면서 독창적인 장치를 마련해 참신하게 새로운 해석을 하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인어공주처럼 애니메이션 영화를 실사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알라딘의 경우를 보자. 2019년 개봉 당시 누적 관객 수 1200만 명, 2020년 재개봉 후 역대 박스오피스 11위를 차지한 디즈니 실사 영화 <알라딘>은 1992년에 개봉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을 원작으로 한다. <알라딘>(2019)은 원작의 스토리라인을 거의 그대로 따라가며, 원작이 주었던 감동의 장면을 충분히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면서도 원작을 그대로 베껴내는 것이 아니라 적절히 실사영화에 맞는 재해석을 했고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알라딘>(1992)의 경우, 여성 캐릭터를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묘사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쟈스민 공주는 수동적인 사람으로 묘사되며, 알라딘을 추종하는 평민 여성들은 뚱뚱하게 묘사된다. 또한 여성 캐릭터들의 심한 노출 등 현대의 관객들이 불편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었다. 그에 비해 실사판으로 제작된 <알라딘>(2019)은 쟈스민을 리더십 있고, 능동적이며, 백성들을 사랑하는 캐릭터로 재해석하고, 화면에 등장하는 여성들도 평범한 여성 인물로 바꿨다. 캐릭터들의 의상도 합리적으로 수정해 관객들의 호평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실사 영화만의 독창적 해석도 돋보였는데, 여자가 남자에게 종속되는 것으로 묘사했던 원작과는 달리 새 <알라딘>에는 쟈스민이 술탄에 즉위하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특히 새로운 OST인 "Speechless"에는 더 이상 침묵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쟈스민의 ‘선언’이 담겨있어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알라딘(2019)의 쟈스민. 출처 IMDb
알라딘(2019)의 쟈스민. 출처 IMDb

결과적으로, 메타크리틱 6.6, 네이버 영화 관객 평가 9.45를 기록하며 전문가들에게는 '원작의 화려함에 비해 조금 아쉬운 작품'이었지만 일반 관객들에게는 '정말 재미있게 본 영화'가 되었다. 제45회 새턴상 판타지 영화 부문과 의상 부문에서 수상하는 실적을 거두기도 하였으며, 전 세계 10억 달러 돌파 영화에 이름을 올리고, 2019년 여러 국가의 박스오피스 1위 영화를 달성한 것을 생각하면 <알라딘>(2019) 리메이크 영화로서 성공한 축에 든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알라딘>(2019)도 여러 가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인도계 배우, 터키계 배우 등을 기용하여 원작 캐릭터들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쟈스민에게 구애하는 외국 왕자 역에 백인 배우를 캐스팅한 것 대해 '화이트워싱'이라는 의혹도 있었다. 또한 자파는 원작에서 강력한 힘과 검은 마음을 가진 음흉한 야심가였으나, 실사 영화에서는 그의 정치적 야심만을 강조해 원작 캐릭터보다 흡입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관객들은 영화에 대해 호평이었다. 원작의 기본 서사에 충실하면서도 독창적인 새로운 장치를 도입한 것이 성공적이었고, 뛰어난 영상미의 액션 장면, 신나는 OST 등이 이런 사소한 변화가 크게 문제되지 않을 만큼 관객들을 매료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인어공주>(2023)은 어떨까? 주요 캐릭터의 피부색이 바뀌었고, 영화에 새로운 해석과 장치가 도입되었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두 실사판 리메이크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큰 차이를 보인다. 차이를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갈매기 가넷에게 포크의 사용법을 배우는 에리얼. 인어공주(2023)  출처 IMDb
갈매기 가넷에게 포크의 사용법을 배우는 에리얼. 인어공주(2023) 출처 IMDb

2023년 인어공주는 무엇이 달라졌는가?

<인어공주>(2023) 역시 원작 <인어공주>(1989)의 성공을 재연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예를 들어 실사판 영화의 OST들은 영화에 부정적인 관객들 중에서도 만족하는 사람이 있을 만큼 음악과 영상이 잘 구현되었다. 실사판 영화의 가장 큰 변화는 주인공 에리얼의 성격이다. 1989년의 인어공주가 왕자와의 사랑에 빠져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순수한 소녀라면 2023년의 인어공주는 아버지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쟁취하고자 분투하는 투사다. 이런 에리얼의 캐릭터는 여러 부분에서 두드러지는데, 이는 갈매기, 달랑게 등의 캐릭터가 마녀와 싸워 목소리를 되찾아 주던 원작과 다르게 에리얼이 직접 마녀와 몸싸움하여 목소리를 되찾고, 난파선을 이용해 마녀를 공격하는 내용에서 잘 보인다. 에리얼뿐 아니라, 왕자도, 에리얼의 친구들도, 해신, 주방장 등 원작에서 친근했던 많은 캐릭터들이 변경되거나 사라졌다. 육지와 바다가 갈등하고 있고, 다양한 인종의 인어가 7대양을 맡아 관리하고 있다는 새로운 설정 등은 관객에게 상당히 생소하고 낯선 모습이었다.

왕자의 뒷모습을 보며 노래하는 에리얼. 인어공주(2023)  출처 IMDb
왕자의 뒷모습을 보며 노래하는 에리얼. 인어공주(2023) 출처 IMDb

<인어공주>(2023)의 이렇게 도전적인 변화가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앞서 말했듯이 전문가의 의견도, 관객들의 의견도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이 영화는 롭 마샬 감독의 열정 가득한 새로운 도전이라 평가되기보다는 "시카고의 후광" (롭 마샬 감독은 <시카고>를 연출하여 극찬받은 이후, 최근까지 연출 실력에 많은 의심을 받으며 그 명성을 뛰어넘는 작품을 만들지 못했다.) 에서 벗어나지 못한 감독의 무리수라고 평가받고 있다. 물론, 의도 자체가 나쁘다 평가되지는 않는다. 주인공에 흑인 배우 캐스팅, 다양한 인종의 배우 등장, 갈등했던 두 집단의 화합 등, 최근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디즈니 스튜디오의 의지를 감독 롭 마샬이 충실히 반영하려 했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의도와는 별개로, 실사판의 내용과 캐릭터가 원작과 급격하게 달라지면서 서사가 불분명해지고 스토리의 개연성이 사라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마법을 부리는 마녀 울슐라 인어공주(2023)  출처 IMDb
마법을 부리는 마녀 울슐라 인어공주(2023) 출처 IMDb

<인어공주>(2023) 에리얼은 억압된 물속을 떠나 주체적으로 자유를 찾고자 하는 캐릭터로 설정되었지만 많은 행동의 동기(아버지의 꾸짖음, 마녀의 꼬임 등)가 아직 원작과 동일하게 수동적이어서 '자유를 찾는 새로운 에리얼'과 '사랑에 빠진 순수한 소녀' 에리얼의 이미지가 갈팡질팡하며 관객들에게 혼란을 준다. 또한, 원작 에리얼의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 생머리였던 것과 다르게 갈색의 드레드록스 헤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녀 울슐라를 비롯한 다양한 캐릭터들은 에리얼을 빨간 머리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새롭게 바꾼 요소를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이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문제는 왕자 에릭의 캐릭터에도 나타난다. 왕자 에릭은 원작에서 호쾌하고 쾌활한 성격이었지만 실사 영화에서는 입양아 출신이라는 설정이 추가되어 양부모와 갈등 속에서 방황하는 캐릭터로 변화했다. 에릭은 때로 주위 사람들이 피해를 입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이상만을 좆는 대책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원작에서 보여준 매력이 사라지니 관객들은 왕자를 응원하기 껄끄러워졌다. 주요 캐릭터들이 휘청이니 모든 서사의 개연성이 부족해졌고, 결국 영화의 내용이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미지의 바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에리얼. 인어공주(2023)  출처 IMDb
미지의 바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에리얼. 인어공주(2023) 출처 IMDb

관객들이 인어공주를 외면하고 있는 이유

<인어공주>(2023)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고 손해액이 2천억에 달한다. 그 이유는, '흑인 배우 캐스팅'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디즈니 스튜디오와 롭 마샬 감독이 기존 애니메이션을 리메이크하며 원작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인어공주>(1989)의 오리지널리티가 많이 훼손되었고, 원작과 다른 부분을 채워 넣기 위해 독창적인 요소들을 넣으려 했지만 관객들을 납득시키지 못해 원작과의 괴리감만 더 강조한 꼴이 되어버렸다. 어설픈 재창조가 원작의 사랑스러운 인어공주를 기대했던 관객들을 실망시켰고 그렇다고 다른 매력있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내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영화의 스토리텔링은 부자연스러웠고, 주인공은 매력도 설득력도 없었으며, 긴 러닝타임을 채우는 데 급급해 늘어지고 지루하였다. 영화 성공의 기본 조건인 스토리텔링이 실패한 것이다. 영화를 제작하며 새로운 연출에 대한 도전정신은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전의 결과물을 전부 존중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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