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폐쇄 위기 몰린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 … 고용노동부 대책은 ‘미정’

<단비뉴스>가 전국 곳곳의 ‘거점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이하 ‘거점 센터’)를 직접 취재한 결과, 9개 거점 센터 모두 내년부터 운영을 중단할 예정인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 35개 ‘소지역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이하 ‘소지역 센터’) 가운데 대다수도 일부 직원을 해고하거나 사업 규모를 줄일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9월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 지원비를 전액 삭감한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이들 센터의 파행 운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많았는데, 그 전국적 실태를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취재팀이 지난 9월부터 2개월 동안 전국 9개 거점 센터와 35개 소지역 센터에 일일이 전화를 하고 전자우편을 보내 내년 운영 계획을 확인한 결과, 모든 거점 센터가 ‘내년부터 문을 닫아야 한다’고 답했다. 모두 35개에 달하는 소지역 센터 가운데 취재팀의 질의에 답변한 22개 소지역 센터의 절반은 ‘정부 지원으로 임금을 지급했던 직원을 해고할 상황’이라고 답했다.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 지원 중단은 20년 만에 처음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직장 생활 혹은 국내 체류 중 겪게 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임금체불, 4대 보험, 노동인권 침해 등 노동 상담과 한국어 번역, 생활법률 상담, 정보화 교육, 휴식 공간 제공 등 종합적인 체류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다양한 나라에서 모인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이는 지역 커뮤니티 역할도 한다.

정부는 지난 9월 발표한 내년 예산안에서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 지원비를 전액 삭감했다. 이에 따라 올해 약 71억 원이었던 지원액은 내년부터 0원이 된다. 그래픽 이채현
정부는 지난 9월 발표한 내년 예산안에서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 지원비를 전액 삭감했다. 이에 따라 올해 약 71억 원이었던 지원액은 내년부터 0원이 된다. 그래픽 이채현
2023년 고용노동부의 지원을 받은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는 거점 9개, 소지역 35개 등 모두 44개이다. 그래픽 이채현
2023년 고용노동부의 지원을 받은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는 거점 9개, 소지역 35개 등 모두 44개이다. 그래픽 이채현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24조를 보면, 국가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상담과 교육,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을 하는 기관 또는 단체에 대하여 사업에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 이 법률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2004년부터 전국 곳곳의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를 지원해왔다. 외국인 노동자 상담 경험이 있는 민간 비영리단체 또는 법인에 관련 사업을 위탁하되, 고용노동부가 일반운영비, 상담사업비, 교육사업비, 인건비 등을 지원하는 ‘민간 위탁 방식’이었다.

이 사업에 배정된 정부 예산은 연간 60억~80억 원 정도였다. 2018년 64억 4200만 원이었던 예산은 2020년 87억 2400만 원까지 올랐다가, 올해는 71억 800만 원으로 다소 줄었다. 그런데, 지난 9월 제출된 정부 예산안에서 이 항목과 관련한 비용이 전액 삭감됐다. 정부의 지원이 중단된 것은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 설립 20년 만에 처음이다.

계약 기간도 한참 남았는데… 통보 한 마디에 문 닫아야

전국 9개 거점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는 단비뉴스와의 통화에서 ‘내년부터 센터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위 표에 공개된 예산 규모 및 근무 인력 등이 법인·단체의 신용도나 영업 이익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어 정확한 센터 이름을 표기하지 않았다. 그래픽 신혜림
전국 9개 거점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는 단비뉴스와의 통화에서 ‘내년부터 센터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위 표에 공개된 예산 규모 및 근무 인력 등이 법인·단체의 신용도나 영업 이익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어 정확한 센터 이름을 표기하지 않았다. 그래픽 신혜림

취재 결과, 정부 지원금의 삭감에 따라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전국 9개 거점 센터였다. 그동안 거점 센터는 일반운영비, 상담사업비, 교육사업비, 인건비 등 운영 예산의 거의 전부를 고용노동부로부터 지원 받아왔다.

거점 센터마다 차이가 있지만, 올해를 기준으로 보면, 각 거점 센터가 받은 지원금은 적게는 4억 원에서 많게는 9억 원에 이른다. 각 센터의 근무 인원은 10명에서 18명 정도다. 정부의 지원이 끊기면, 이들에게 임금을 지급할 방법이 없고, 이들이 운영해온 각종 사업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거점 센터 관계자들은 정부의 이번 결정이 일종의 ‘계약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3년마다 한 번씩 위탁 사업 계약을 갱신해왔는데, 현재 대부분의 거점 센터가 오는 2025년 말까지 외국인 노동자 지원 사업을 펼치기로 정부와 계약돼 있다는 것이다.

9개 거점 센터 가운데 하나인 김해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를 운영하는 백남경 센터장은 “고용노동부와 맺은 위탁 계약 기한이 오는 2025년 12월 말까지인데 지난 9월 7일 고용노동부에서 각 지역 센터장들을 불러모아 진행한 회의에서 (예산 삭감) 내용을 처음 들었다”며 “내년에도 센터를 운영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고 지금 (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17명 직원들은 모두 실업자가 된다”고 말했다.

인건비만 지원받는 소지역 센터도 ‘직원 고용 힘들다’

소지역 센터들의 상황은 어떨까. 취재팀이 확인한 22개 소지역 센터 가운데 10곳은 ‘정부의 지원금으로 임금을 지급했던 직원에 대한 고용은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다’고 답했다. 또 다른 1곳은 아예 ‘센터 문을 닫아야 한다’고 답했다. 4곳은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만 답했다. 정부 지원이 중단되더라도 운영 상황에 변동이 없다는 곳은 단 두 곳뿐이었다.

전국 35개 소지역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 중 단비뉴스와 연락이 닿은 22개 센터의 절반 이상은 내년부터 고용노동부 지원 인원을 해고하거나, 운영 사업을 축소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그래픽 신혜림
전국 35개 소지역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 중 단비뉴스와 연락이 닿은 22개 센터의 절반 이상은 내년부터 고용노동부 지원 인원을 해고하거나, 운영 사업을 축소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그래픽 신혜림

그동안 소지역 센터들은 운영비와 사업비를 자체 조달하면서, 인건비만 지원 받았다. 정부가 지원하는 인건비는 최저임금 수준인 1인당 월 201만 원 정도였다. 얼핏 보기엔 정부 지원 중단에 따른 영향이 덜할 것 같지만, 두세 명의 소수 인력으로 사업을 벌였던 센터 가운데는 최저임금조차 지급할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정부 지원이 사라지면 근무 인원의 절반 이상을 해고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서울에서 소지역 센터를 운영 중인 한국이주노동자복지회 조성도 이사장은 “매달 100만 원을 넘지 않는 후원금에 개인 비용을 들여 겨우 운영해왔는데, 한 명뿐인 직원에 대한 인건비조차 지원하지 않는다는 건 (센터의) 문을 닫으라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혼자서 사무실을 지키는 ‘1인 센터’가 되면, 정상적인 지원 활동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운영비와 사업비를 자체 조달하는 것도 매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정부 입장이 바뀌지 않을 경우 내년 1월 고용노동부에 정식으로 폐업 공문을 보낼 생각”이라고 조 이사장은 덧붙였다.

‘직접 지원’하겠다는 노동부의 구체 대책은 아직도 미정

전국 곳곳의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가 크게 반발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고용노동부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 자체를 중단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9월 15일 내놓은 설명자료에서 “정부는 외국인 근로자 지원의 성과와 효율성 제고를 위해 내년부터 지원방식을 개편하고 관련 필요 예산을 재편해 편성한 것”이라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예산 삭감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그동안 민간 위탁 방식으로 운영했던 사업을 고용노동부의 지방고용노동관서와 산업인력공단 등을 통해 직접 수행하는 방식으로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양질의 지원 서비스 제공을 위한 방안도 다각적으로 마련하겠다”고 고용노동부는 설명자료에서 밝혔다.

‘다각적 방안’의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했던 취재팀은 지난 9월 고용노동부에 ‘2024년도 고용노동부 지방노동관서 및 산업인력공단의 외국인노동자 지원 개편안’을 설명해달라는 취지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청구 두 달이 지난 11월 1일에 받아본 ‘정보공개청구 검토보고서’에서 고용노동부는 해당 사항에 관한 ‘정보가 부존재’한다고 밝혔다. 여전히 내부 검토가 진행 중이어서 확정된 개편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전국의 모든 거점 센터를 포함한 상당수 지원센터가 내년 1월부터 문을 닫을 상황인데도, 이들의 공백을 어떻게 해결할지 아직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실효성 때문에 개편한다는데… 사업 실적은 ‘우수’

정부 지원 중단 결정에 대해 지원센터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의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지난 20년간 진행한 ‘민간 위탁’ 방식에 대한 평가가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9월 기획재정부가 공개한 '2023년 국고보조사업 연장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 사업에 대해 “정책적으로 상당한 중요성이 인정되고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성과지표, 이용만족도, 지원 규모 측면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았다. 사업 수혜자도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고용노동부의 지원 중단 결정은 이러한 기재부의 평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둘째,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 지원을 직접 수행하게 되면,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만큼 성과를 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한국이주노동재단 안대환 대표는 “고용노동부의 직접 수행 방식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지금도 고용노동부 직원들은 경영주에 대한 피해를 호소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법원이나 경찰에 가서 직접 입증하라’고 하면서, 관련 민원 처리에 서너 달을 보낸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이 말하는 ‘원스톱’ 방식으로 정부가 직접 운영하려면, 몇백억 원을 더 들여 인력을 확보해도 (외국인 노동자의 민원을) 다 처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충북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 고은영 대표가 센터 사무실 앞에 붙은 현판을 바라보고 있다. 정윤채 기자
충북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 고은영 대표가 센터 사무실 앞에 붙은 현판을 바라보고 있다. 정윤채 기자

셋째,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가 단순히 외국인 노동자의 민원을 처리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충북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 고은영 대표는 “지금도 행정기관이나 공공기관에서 외국인 노동자 관련 문제가 있으면 우리 센터로 연락을 한다.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는 지역의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허브(Hub)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가 지원 사업을 직접 운영한다고 해도, 지역에서 장기간 구축한 네트워크를 대체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 지원에 대한 수정 의견을 내놨다. 지난 16일 환경노동위원회 심사를 거친 ‘고용노동부 2024년 기금운용계획안’을 보면, 내년도부터 폐지되는 외국인노동자 지원센터 지원사업 대신 공모를 통해 선정한 12개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센터 운영비나 사업비 등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원금 규모는 각 지자체당 3억 원 정도다. 다만 이 내용이 실제 정부 예산안까지 반영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국회에서 예산 심사를 마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내용이 실제 예산안에 반영되더라도, 센터 유지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의 대체적 입장이다. 양산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 유경혜 센터장은 “지자체에 3억 원씩 주고 ‘알아서 위탁하라’는 식인데 관련해서 어떤 설명도 들은 적이 없다. 그대로 시행된다 해도 연간 예산이 8억 원이 넘는 거점 센터는 현재의 절반 이하로 사업을 축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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