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자립의 터전, 어반팜

방치된 쓰레기장에서 시작한 도시 농장, 어반팜

치앙마이시 치앙마이구 '창 클란'(Chang Khlan) 지역 버려진 땅에 조성된 어반팜 입구의 간판에 ‘치앙마이 도시인의 채소밭’이라고 쓰여 있다. 이정민 기자
치앙마이시 치앙마이구 '창 클란'(Chang Khlan) 지역 버려진 땅에 조성된 어반팜 입구의 간판에 ‘치앙마이 도시인의 채소밭’이라고 쓰여 있다. 이정민 기자

태국 제2의 도시인 치앙마이 구시가지 동남쪽에는 작은 강이 흐른다. 치앙마이 사람들은 그곳을 ‘크렁 매카’(Khlong Mae kha)라고 부른다. 매카 운하라는 뜻이다. 도시 안에 흐르는 11km의 매카 운하 주변에는 치앙마이에서 가장 큰 빈민촌이 형성돼 있다. 주변의 불법 건축물에는 약 2500가구가 산다.

원래 매카 운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한 유용한 수자원이었으나, 1950년대 이후 치앙마이가 급격한 도시화를 겪으며 각종 폐수와 생활하수로 인해 오염되었다. 오염과 악취를 피해 사람들은 매카 운하를 떠났고, 갈 곳 없는 도시 빈민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빈민촌에서 도보로 15분, 오토바이로 5분 정도 거리에 '어반팜'(Urban Farm)이 있다. 우리말로 도시 농장을 뜻하는 이곳은 3년 전만 해도 쓰레기가 가득한 공간이었다. 약 1에이커(약 1,224평) 규모의 땅이 20년 동안 방치된 상태로 있었다. 그러다 지난 2020년 봄부터 농장으로 거듭났다.

높이 2미터(m) 정도의 하얀 울타리를 지나 들어가면 콘크리트 도시의 모습과 이질적인 울창한 밭이 있다. 비탈진 흙길 양옆으로 방울토마토, 양배추, 치커리부터 태국 음식에 많이 쓰이는 레몬그라스, 고수까지 다양한 농작물이 높게 자라 있다.

바나나 나무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어반팜이 만들어졌을 당시 가장 먼저 심은 바나나 나무 너머로 아직 처리되지 않은 쓰레기와 사원이 보인다. 사원 주변의 땅은 어반팜에 속한 부지가 아니어서 쓰레기를 처리할 수 없다. 이정민 기자
바나나 나무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어반팜이 만들어졌을 당시 가장 먼저 심은 바나나 나무 너머로 아직 처리되지 않은 쓰레기와 사원이 보인다. 사원 주변의 땅은 어반팜에 속한 부지가 아니어서 쓰레기를 처리할 수 없다. 이정민 기자

코로나 이후 도시 빈민을 위한 시설 간절해져

어반팜은 건축가 수파웃 분마하타나콘(41·Supawut Boonmahathanakorn)이 구상하여 제안했다. 오래전부터 매카 운하 주변의 빈민들을 위한 공공 주거 정책을 제안해온 그는 자신의 주거 정책을 실행하기 위한 땅을 찾고 있었다.

코로나 19가 태국을 덮친 2020년 3월, 태국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외국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강력한 방역 정책을 펼쳤다. 그 여파로 경제성장률이 1998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최저치로 급락했다. 특히 2020년 2분기 서비스업의 전년 대비 성장률은 -70.4%였다. 태국 국내 총생산(GDP)의 20% 정도를 차지하는 관광업이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매카 운하 주변의 도시 빈민에게 그 피해가 돌아갔다. 이들 대부분은 호텔 청소나 택시 운전 등 관광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직업에 종사했다. 정규적인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수공예품을 만들어 야시장에서 팔았다. 관광업의 침체로 이들은 실직했고, 이후 매카 운하 주변의 빈민 주거지역은 더 급격히 쇠락했다.

어반팜에서 수파웃 분마하타나콘 씨가 농장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치앙마이에서 태어나 자랐다. 매카 운하를 처음 알게 된 건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을 때이다. 실습차 방문한 매카 운하에서 빈민들의 삶을 목격했고, 그때부터 더 좋은 도시를 위해 빈민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목표가 생겼다고 한다. 이정민 기자
어반팜에서 수파웃 분마하타나콘 씨가 농장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치앙마이에서 태어나 자랐다. 매카 운하를 처음 알게 된 건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을 때이다. 실습차 방문한 매카 운하에서 빈민들의 삶을 목격했고, 그때부터 더 좋은 도시를 위해 빈민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목표가 생겼다고 한다. 이정민 기자

수파웃 씨는 코로나 19의 여파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매카 운하의 도시빈민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눴다. 식량 수급이 가장 큰 문제였다. 매카 운하에 사는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하루 수입의 40% 정도를 식비로 지출했다. 코로나 이후 소득이 사라진 이들은 당장 먹을 음식을 구할 방법조차 찾지 못했다. 코로나 19 로 인한 봉쇄 동안 주변에 사는 이들이 매카 운하의 빈민에게 식료품을 기부하기도 했지만, 그나마도 석 달 뒤부터 사라졌다.

공공 거주 시설을 고민했던 수파웃 씨는 빈민에게 안정적으로 식량을 제공할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는 빈민가에서 멀지 않은, 정부 소유의 버려진 땅에 주목했다. 먼저, 정부에 사용 허가를 신청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땅이었으므로 사용 허가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금전적 지원은 받을 수 없었다.

2020년 4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모금 운동을 벌였다. 사람들은 돈은 물론 농작물의 씨앗도 기부했다. 직접 찾아와 버려진 땅을 개간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인근에 있는 치앙마이대 건축학과 학생들은 수업 과제로 만든 정자 두 개를 농장에 설치했다. 웜 하트(warm heart)라는 사회적 기업은 산성화된 땅을 중화시키는 친환경 흙을 기부했다.

어반팜에서 바라본 매카 운하 주변의 빈민가다. 가난한 이들은 운하를 따라 불법 건축물을 지어 살고 있다. 이정민 기자
어반팜에서 바라본 매카 운하 주변의 빈민가다. 가난한 이들은 운하를 따라 불법 건축물을 지어 살고 있다. 이정민 기자

도시 빈민의 자활 공동체

어반팜은 아직 초기 단계다. 매카 운하 주변에 사는 세 명의 빈민이 어반팜에서 일하며 ‘빈민 공동체’를 실험하고 있다. 퍼톰(40) 씨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는 5년 전 남편과 헤어지고 매카 운하에 정착했다.

퍼톰 씨의 동료들은 해가 지고 야시장이 서면 플라스틱 바구니에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담아 돌아다녔다. 운이 좋은 날에는 우리 돈으로 1만 원 넘는 돈을 벌었다. 그들과 달리 퍼톰 씨는 당시 세 살이 된 아들과 갓 태어난 딸을 돌보느라 시장에 갈 수 없었다. 대신 집 앞에 가판대를 설치하고 수공예품을 팔았다.

코로나 19 이후 이들의 공예품을 사줄 관광객이 사라졌다. 끼니를 이을 방법도 사라졌다. 아무 수입이 없어 '굶어 죽을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을 때, ‘매카 커뮤니티’(Mae Kha Community) 위원장이 어반팜을 소개해줬다.

커뮤니티는 우리말로 공동체라는 뜻이다. 매카 공동체는 매카 운하에 산책로를 조성하려는 정부의 계획이 마련된 20여 년 전, 치앙마이 시가 인정한 지역민의 공동체다. 정부가 임명한 커뮤니티 위원장인 쿤 아눈 차익함공(71·Khun Anun Chaikhamgong) 씨는 매카 운하에 사는 빈민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일하고 있다.

퍼톰(40·Pathum, 가장 오른쪽) 씨를 비롯한 빈민들이 어반팜의 밭에 모종을 심고 있다. 소수민족 출신인 이들은 모두 매카 운하 주변의 불법건축물에 살고 있다. 이들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해 태국 문자를 읽지 못한다. 이정민 기자
퍼톰(40·Pathum, 가장 오른쪽) 씨를 비롯한 빈민들이 어반팜의 밭에 모종을 심고 있다. 소수민족 출신인 이들은 모두 매카 운하 주변의 불법건축물에 살고 있다. 이들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해 태국 문자를 읽지 못한다. 이정민 기자

차익함공 위원장은 수파웃 씨와 긴밀하게 협력하여 어반팜을 만들었고, 어디에서도 일할 수 없었던 퍼톰 씨를 어반팜에 가장 먼저 데려왔다. 2020년 4월, 처음 퍼톰 씨가 어반팜에 온 후 처음 일한 대가로 받은 것은 황폐한 땅을 개간하여 기른 농작물이었다. 이후 농장의 사정이 나아져 임금까지 받게 됐다. 2021년 12월부터 하루 임금으로 325밧(THB), 우리 돈으로 1만 2000원 정도를 받는다. 근무 시간은 대략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출근해 일한 날대로 계산해 임금을 받는다.

출퇴근 시간은 할 일이 얼마나 있는지에 따라 유동적이다. 두 살 딸과 여섯 살 아들을 데리고 와 옆에서 돌보며 일할 수도 있다. 어반팜에서 받는 돈으로 하루에 100밧(우리 돈 약 3700원)을 식료품 구입에 지출한다.

지난해 12월 23일 오후, 매카 커뮤니티 위원장인 쿤 아눈 차익함공 씨가 어반팜의 수확물을 매카 운하에서 팔기 위해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있다. 레몬그라스, 고수, 상추 등을 한 묶음당 10밧(THB·우리 돈 약 370원)에 판다. 이정민 기자
지난해 12월 23일 오후, 매카 커뮤니티 위원장인 쿤 아눈 차익함공 씨가 어반팜의 수확물을 매카 운하에서 팔기 위해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있다. 레몬그라스, 고수, 상추 등을 한 묶음당 10밧(THB·우리 돈 약 370원)에 판다. 이정민 기자

또 다른 인부인 아띠(39·Atti) 씨는 어반팜에서 일하며 안정적 수입이 생긴 것이 가장 기쁘다고 했다. 처음부터 어반팜이 좋은 일자리를 제공한 건 아니었다. 설립 초기에는 어반팜의 운영비를 민간의 기부금으로 충당했다. 두 번째 해인 2021년부터 농장에서 생산한 작물을 내다 판 돈으로 운영비를 해결했다. 약간의 수익까지 발생해, 주변 빈민을 고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런 성과를 바탕으로 2022년에는 치앙마이시 정부로부터 1년에 약 2만 2000달러, 우리 돈으로 2300만 원 정도의 지원금을 약속받았다.

가난한 아이들이 미래를 일구는 농장

어반팜에서 농업 수업을 듣는 왓 시 돈 차이 학교 학생들의 모습. 농업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들은 일주일에 한 번 어반팜에서 직접 실습을 하며 배운다. 이정민 기자
어반팜에서 농업 수업을 듣는 왓 시 돈 차이 학교 학생들의 모습. 농업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들은 일주일에 한 번 어반팜에서 직접 실습을 하며 배운다. 이정민 기자

어반팜이 매카 운하 주변의 빈민에게만 개방된 것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21일, 불교 사원에 있는 기숙학교인 왓 시 돈 차이(Wat Si Don Chai) 학생들이 어반팜을 찾았다. 농업 과목 담당 선생님인 암폰(55·Ampone) 씨에 따르면, 왓 시 돈 차이의 학생들은 대부분 빈곤층이다. 농촌 출신인 그들의 부모는 치앙마이에서 저임금 육체노동을 하며 살고 있다. 그들의 자녀는 부모처럼 도시의 육체노동을 견디거나,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어야 한다.

이날 어반팜을 찾아와 농업실습 수업에 참여한 도몬(13·Domone)은 농사를 택했다. 그는 “가족이 농사를 짓기 때문에 (다른 실습수업 대신) 농업 수업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도몬처럼 가족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려는 학생들에게 어반팜은 2020년 6월부터 무료로 땅을 내줬다. 어반팜이 학생들의 농업교육장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왓 시 돈 차이의 농업 수업 수강생인 도몬이 쉬는 시간에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산간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아버지를 둔 그의 이름 ‘도몬’은 우리말로 산이라는 뜻이다.  이정민 기자
왓 시 돈 차이의 농업 수업 수강생인 도몬이 쉬는 시간에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산간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아버지를 둔 그의 이름 ‘도몬’은 우리말로 산이라는 뜻이다. 이정민 기자

가난한 사람, 그리고 그들의 자녀가 언제든지 얼마든지 농사짓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원대한 꿈이 어반팜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이를 구상하고 제안하여 구현한 수파웃 씨는 어반팜을 지역 상인들과 연결하려고 애쓰고 있다. 어반팜에서 수확한 채소를 안정적으로 구매할 동네 가게나 식당을 찾는다면, 농장의 지속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이 농장을 지속가능한 반석 위에 올려 공공사업의 새로운 모델로 만든다면, 어반팜과 같은 공동 농장이 태국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게 수파웃 씨의 기대다. 그는 더 많은 도시에 ‘빈민을 위한 도시농장’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할 수 있다는 걸, 그들이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제천시와 세명대학교의 지원을 받아 떠난 2022 자기설계 해외배낭연수의 결과물로 작성됐습니다.
*이 기사는 제천시와 세명대학교의 지원을 받아 떠난 2022 자기설계 해외배낭연수의 결과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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