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지방 재생 성공의 모범, 카미야마 마을

해발 1천 미터(m)에 위치한 카미야마는 마을 면적의 80% 이상이 산지다. 정호원 PD
해발 1천 미터(m)에 위치한 카미야마는 마을 면적의 80% 이상이 산지다. 정호원 PD

일본 제2 도시인 오사카의 우메다역에서 버스를 타고 2시간 30분, 다시 도쿠시마역에서 버스를 갈아타 1시간 10분을 달린다. 구불구불한 삼나무 산길을 지나 긴 터널을 지나자 마침내 카미야마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좁고 긴 일방통행 도로 주변에 100년도 더 된 옛날 일본식 전통 가옥들이 늘어서 있다.

카미야마는 일본 제 2도시인 오사카에서 대중교통으로 4시간 걸리는 곳에 있다. 그래픽 김은송 기자
카미야마는 일본 제 2도시인 오사카에서 대중교통으로 4시간 걸리는 곳에 있다. 그래픽 김은송 기자

한국의 광역시 또는 작은 도에 해당하는 도쿠시마현(徳島県)은 24개의 소도시로 이뤄져 있다. 도쿠시마현은 초고령화 사회인 일본 내에서도 고령화와 이촌 등으로 인한 인구 감소와 지역 침체 문제를 심각하게 겪어 왔다. 도쿠시마현 내의 카미야마초(神山町)도 인구소멸 위험을 코앞에 두고 있다. 1955년 카미야마의 인구는 2만 명을 넘었다. 하지만 2023년 1월 현재, 그 인구는 5000명이 넘지 않는다.

카미야마 마을 면사무소에 걸려있는 마을 인구 통계판. 2023년 1월 기준 카미야마 인구는 총 4,846명이다. 박시몬 기자
카미야마 마을 면사무소에 걸려있는 마을 인구 통계판. 2023년 1월 기준 카미야마 인구는 총 4,846명이다. 박시몬 기자

인재 육성 교육을 받으러 카미야마로 모여드는 청년들

카미야마 마을은 2016년부터 ‘마을과 미래세대를 연결하는 프로젝트(이하 마을 프로젝트)’를 실시해 지역 자생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7가지 행동 모델을 개발했다.

그 중심에는 민관 협력 기관인 ‘카미야마 연대공사’가 있다. 지자체와 기업, 민간 단체가 함께 지역 재생 사업을 펼치도록 하는 기구다. 카미야마 연대공사와 협업하는 핵심 기관은 비영리단체인 그린밸리, 그리고 지역 인재를 길러내는 카미야마 학당이다.

마을을 살리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역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에서는 한정된 일자리 때문에 인재는 일을 찾아 대도시로 떠나고, 지역은 미래를 이을 인재를 육성하지 못하게 되면서 악순환이 반복된다. 카미야마 마을 프로젝트에서는 ‘다양한 일과 일자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일본 안팎의 인재들이 모여들 수 있도록 육성 프로그램과 교육 기반 시설을 마련했다.

‘카미야마다움’을 지키는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미국 위튼 컬리지(Wheaton)에서 사회적 기업에 대해 가르치는 파벨 델가도(55) 교수는 미국과 일본을 오가는 생활을 2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카미야마 마을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S6IX의 멘토로 참여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미국 위튼 컬리지(Wheaton)에서 사회적 기업에 대해 가르치는 파벨 델가도(55) 교수는 미국과 일본을 오가는 생활을 2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카미야마 마을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S6IX의 멘토로 참여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놀랍게도 이 프로젝트에 미국 저명 대학의 교수가 참여하고 있다. 미국 위튼 컬리지에서 사회공헌(Social Impact)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는 파벨 델가도(55) 교수다. 일본인이었던 전 아내를 만난 이후, 그는 일본과 미국을 오가는 생활을 20년 넘게 해왔다. 일본인으로 자란 자녀들에게 미국인 아버지가 일본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던 중 카미야마 마을 살리기에 앞장서고 있는 카미야마 연대공사의 감사 요시다 히로오 씨에게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운영 제안을 받아 기꺼이 수락했다.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S6IX다. 1차, 2차, 3차 산업 혁명을 통합한 6차 산업혁명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주로 농업과 헬스케어, IT기반의 스타트업을 선정해 멘토링 하는 프로그램이다. 파벨 교수는 직접 스타트업 육성 커리큘럼을 만들고 멘토진을 꾸렸다. 커리큘럼은 사회공헌을 추구하는 교수진과 기업가 멘토들의 재능기부로 운영되며, 스타트업들은 무료로 참여한다.

S6IX 프로그램의 특징은 ‘카미야마 마을 맞춤’ 스타트업을 육성한다는 데 있다. 파벨 교수는 “모두를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카미야마에 어울리는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2020년 S6IX 프로그램에 참여한 스타트업 기업가들이 카미야마 공유 오피스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1년에 한 번 카미야마를 찾아 마을을 찾은 스타트업들은 동료 기업가는 물론 마을 주민들과 교류하는 시간을 갖는다. 파벨 교수 제공
2020년 S6IX 프로그램에 참여한 스타트업 기업가들이 카미야마 공유 오피스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1년에 한 번 카미야마를 찾아 마을을 찾은 스타트업들은 동료 기업가는 물론 마을 주민들과 교류하는 시간을 갖는다. 파벨 교수 제공

S6IX에 참여한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1년에 한 번씩 한 달 동안, 카미야마에 마련된 위성사무실과 공유 오피스에 초청돼 서로 교류하는 시간을 갖는다. 카미야마에 오는 항공료, 교통비, 숙박비 등은 모두 그린밸리가 제공한다. 2020년 처음 시작된 이 프로그램에는 6개의 회사, 8명의 기업가가 참여했다. 파벨은 이들의 멘토이자 마을 택시 운전사 역할을 도맡아 매일같이 기업가들을 만나며 교류했다.

이후에는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운영했다. 올해 3~4월 다시 스타트업들이 카미야마를 방문할 예정이다. 앞으로는 도쿠시마 대학과 협업해 기업가 육성에 필요한 전문가를 투입하거나, 대학의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카미야마에서 실현하게 만들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카미야마처럼 작은 마을에 거대한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한 게 아니라고 파벨 교수는 생각한다. “지역 사회가 잘되기를 바라고, 지역 고유의 문화를 살리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지역 기반의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S6IX 육성 프로그램의 핵심”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작은 규모라 하더라도 마을에서 지속적인 비즈니스를 할 사람들을 모아, ‘카미야마다운’ 지역 생태계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대학은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는 인큐베이터

이 과정에서 지역 대학의 역할도 중요하다. 파벨 교수는 “현실적으로 보자면, 4년의 대학 생활 동안 학생들이 아마존이나 페이스북 같은 대기업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대신 학생들이 기업가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경험을 쌓도록 돕는 일을 대학이 해낼 수 있다. “학생들이 지역의 문제를 발굴해 사업 아이템으로 키워나갈 수 있도록 돕는 비즈니스 인큐베이팅이 대학의 역할”이라고 파벨 교수는 말했다.

‘지역 비즈니스’에 집중하는 이들의 노력을 한국의 지역 대학도 참조할 필요가 있다. 현재 제천시는 연 3000만 원의 예산을 지원해 학생 창업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세명대학교에는 사업자등록을 마친 4개 동아리가 학교 기업 건물에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세명대는 매년 창업캠프를 열어 창업 관련 멘토링, 지식재산권 관련 수업, 모의 크라우드펀딩 경진대회 등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그 지속성에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명대학교 창업지원센터 담당자는 “학업을 병행하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일반적 개념의 ‘창업’보다는 동아리 활동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를 보완하려면, 지속 가능한 기업의 토대를 재학 중에 확인할 필요가 있는데, 스타트업이 근거한 지역에서 작지만 꾸준한 비즈니스를 펼칠 길을 안내하는 카미야마 마을의 사례가 모범이 될 수 있다.

마을과 청년을 잇는 카미야마 학당

2022년 8월에 개강해 12월에 졸업한 카미야마 학당 14기 학생들의 활동사진. 카미야마 학당 제공
2022년 8월에 개강해 12월에 졸업한 카미야마 학당 14기 학생들의 활동사진. 카미야마 학당 제공

지속 가능한 지역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지역 인재 교육도 필요하다. 카미야마 마을에는 청년들이 지역 분위기를 경험하고 직업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카미야마 학당이 있다. 학당 슬로건은 ‘배움의 여정’(Learning Journey)‘이다. 카미야마에 직접 살아보면서 지역에서 펼쳐질 삶의 여정을 배운다는 뜻이다.

15년 전 설립된 카미야마 학당은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민간이 운영한다. 카미야마 마을에 정착하길 희망하는 청년들에게 매달 100만 원의 정부 지원금을 지급하면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정부 지원금은 일본 후생노동성의 ‘지역재생 사업’ 예산에서 나온다. 연간 30명 정도의 청년이 4~6개월간 카미야마 학당에서 공부한다. 지금까지 총 220명이 학당을 졸업했는데, 그 가운데 50명 정도가 카미야마에 정착해 살고 있다. 출신 지역으로 보면, 도쿄 및 그 인근의 수도권 출신과 일본 각지의 지역 출신이 절반씩 차지하고 있다.

카미야마 학당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경력 컨설턴트와 일대일로 직업 및 경력 상담을 받는다. 상담을 통해 카미야마의 위성 사무실, 또는 지역 공공기관에서 일할 기회를 얻거나, 직접 가게를 창업한다.

학당은 직업 훈련과 교육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과 만남의 장 역할도 한다. 봄이면 마을 주민들과 함께 벚나무를 심거나, 지역 쌀을 나눠 먹는 행사에 참여하는 식이다. 이런 자리를 통해 다른 지역 출신의 청년들이 마을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지역 정착을 준비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변화를 위해 지역민들과도 조화를 이루어야

카미야마 마을 면의회의원 나카타니 히데히사(61) 씨가 취재진에게 그간 체감한 마을의 변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카미야마 마을 면의회의원 나카타니 히데히사(61) 씨가 취재진에게 그간 체감한 마을의 변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지역의 성장과 변화는 지역민들의 행복과도 일치해야 한다. 파벨 교수는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에서도 “지역민과 기업가가 합의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카미아먀 마을 면의회의원을 지낸 나카타니 나카타니(61) 씨는 “마을의 변화가 지역민의 일상과 동떨어져 있으면 안 된다. 다른 지역의 관광객이나 젊은이들이 마을에 늘어나는 만큼 이곳에 사는 주민들도 행복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속 가능한 지역 재생을 위해서는 젊은 기업가를 유치하는 노력과 함께 지역민과 소통하는 방법을 꼭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제천시와 세명대학교의 지원을 받아 떠난 2022 자기설계 해외배낭연수의 결과물로 작성됐습니다.
*이 기사는 제천시와 세명대학교의 지원을 받아 떠난 2022 자기설계 해외배낭연수의 결과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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