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 반복되는 폴리널리스트 문제 해법 찾아야

지난해 8월 윤석열 대통령은 이기정 전 YTN 기자를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으로 임명했다. 이 전 기자는 비서관으로 임명되기 직전까지 YTN 기자로 근무했다. 정부가 하는 일을 감시하던 언론인이 일을 그만두자마자 대통령실에서 일하는 것이 언론인으로서 직업윤리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런데 지난 문재인 정부를 포함해서 폴리널리스트를 둘러싼 논란은 역대 모든 정부에서 반복돼왔다.

‘폴리널리스트’는 정치(politics)와 언론인(journalist)의 결합어로, 언론인 출신으로 정치권으로 바로 옮겨가 활동하는 인물을 뜻한다. 언론인도 헌법에 명시된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고, 공직선거법에 따라 일을 그만두고 선거에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 내부 윤리규정 등에서 정치권 직행을 금지하는 언론사가 많다. 사표를 내고 정치권으로 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지만, 언론계 내에서 비판 성명을 내거나 아예 기사로 비판을 하기도 한다. 언론인 출신이 정치 활동을 하는 것을 놓고 법과 언론윤리가 충돌하는 것이다.

언론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제4부’로 꼽히며 정치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정치권력을 감시, 비판하는 일을 해오던 언론인이 곧바로 정치 활동의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논란이 생기는 것이다.

폴리널리스트 문제를 연구했던 고 김세은 강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난 2017년 “한국 ‘폴리널리스트’의 특성과 변화”라는 논문에서 제헌국회부터 20대까지의 국회의원 가운데 언론인 출신은 모두 377명이라고 밝혔다. 제헌국회 당시 20.5%를 시작으로 점차 감소하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주요 외국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연합뉴스> 보도를 보면 21대 국회에서 언론인 출신 의원의 비율은 8.0%다.

권력에 대한 동경, 낮은 직업 만족도가 원인

고 김 교수는 2014년 <관훈저널> 가을호에 실은 글에서 언론인의 정계진출 원인으로 한국 언론인의 정치지향적 특성을 꼽았다. 한국 언론인 중 유독 정치학과 출신이 많고, 정치학과 출신이 아니어도 애초에 정치에 관심이 많거나, 힘 있고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을 취재원으로 접하면서 권력에 대한 동경이나 편입 욕구가 강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여기에 스스로가 ‘정치 행위자, 당사자’로 나서는 한국 언론의 특성이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언론이 정치에 대한 보도나 논평을 넘어 스스로가 권력이 되어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곤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언론인을 정치 활동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정치권의 왜곡된 인식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치가 민주적 절차와 합의를 바탕으로 작동하지 못하다 보니 언론과의 야합이나 통제를 통해 여론을 회유, 압박하려는 꼼수를 부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언론을 정치권력에 필요한 도구로 여기는 태도가 반영되어 있다고 보았다.

2020년 정부가 강민석 전 중앙일보 부국장이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해 폴리널리스트 논란이 일었다. 출처 SBS
2020년 정부가 강민석 전 중앙일보 부국장이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해 폴리널리스트 논란이 일었다. 출처 SBS

임영호 부산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2020년 <관훈저널> 여름호에서 정치권으로 언론인이 진출하는 것을 ‘취재원 유착형 재취업’의 일종이라고 규정했다. 취재원 유착형 재취업은 언론인이 취재를 하며 접하게 된 정당, 정부 기관, 대기업 등에 이직하는 것을 뜻한다. 임 교수는 이런 취재원 유착형 재취업이 많아진 것은 언론의 장에서 경력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인식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2019년 실시한 언론인 의식조사를 보면 직업 환경 요인 만족도 중에서 노후 준비 항목의 만족도가 가장 낮았고, 직업 성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도 두 번째로 낮았다. 임 교수는 그러다 보니 언론인이 권력 기관이든 대기업이든, 힘 있는 영역에서 미래를 모색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언론인 출신의 ‘취재원 유착형 재취업’은 그 이전에 이루어진 언론 활동에 대한 불신과 의혹을 낳는다고 지적한다. 임 교수는 이것이 언론인의 재취업을 환영할 수도 없고, 단지 개인적 일탈로 볼 수도 없는 이유라고 밝혔다.

고 김 교수는 2019년 <신문과 방송>에서 언론인의 정계 진출과 언론의 신뢰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원인과 결과가 뒤섞여 있다고 지적했다. 논란을 빚으며 정계로 진출하는 언론인은 언론의 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고, 언론의 낮은 신뢰는 다시 언론인의 자긍심을 낮추고 정체성을 위협하며 직업적 안정성을 저해한다고 말했다. 언론의 산업적 위기 상황에서 이직을 생각하게 만드는 자극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선거일 전 90일 이내 퇴사한 언론인은 출마 가능

헌법 제15조는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언론인의 정계 진출도 직업 선택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정당의 당원 자격을 규정한 정당법 제22조는 언론인의 정당 가입을 금지하지 않고 있다. 공무원 등의 입후보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53조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언론인은 선거일 전 90일까지 그 직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전에 퇴사하면 출마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더구나 이것은 선거를 통한 정계 진출에 관한 조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비서관, 정당 대변인 등 각종 임명직 진출에는 아무런 법적 제한이 없다. 2016년 헌법재판소는 언론인의 선거 운동을 포괄적으로 금지한 공직선거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법률상 현직 언론인이 선거 운동에 직접 참여하는 것도 가능해진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 언론사 윤리강령에는 여전히 소속 언론인의 정당 가입을 금지하는 조항이 들어 있다. 법률보다 더 엄격하게 정치권 진출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비선출직으로 정계 진출하는 언론인도 많아

언론인의 정계 직행은 선거 출마뿐 아니라 당직, 대통령실, 정부 부처 등 다양한 곳에서 근무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언론인이 임명직으로 진출하는 것에 대해서도 언론사 안팎에서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021년 6월에는 김기흥 전 KBS 기자가 사표를 내고, 윤석열 대선캠프 부대변인으로 합류해 논란이 일었다. 당시 민주언론시민연합은 “김 기자가 최근 1년 넘게 경인취재센터에서 일해 KBS 윤리강령을 어긴 것은 아니”라면서도 “공영방송 저널리즘 구현에 앞장서야 할 기자로서 본분을 잊은 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그간 KBS 출신 언론인들의 정치권 진출이 공영방송 KBS의 공정성과 신뢰를 떨어뜨렸고, 국민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인만큼 타 언론사보다 높은 윤리적 잣대가 적용되어야 한다며 비판했다.

2019년 문재인 정부에서 윤도한 전 MBC 기자를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으로 임명했을 때도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는 “사실상 현직 언론인이 청와대에 직행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 누구보다 열심히 권력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것을 소명으로 여기던 분이 다른 자리도 아닌, 청와대를 대표해 홍보하는 자리로 갔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한겨레신문은 역시 지난 2019년 문재인 정부에서 여현호 전 한겨레 선임기자가 국정홍보비서관으로 임명되자, 지면에 유감을 표하는 입장문을 냈다. 한겨레는 현직 언론인의 정부, 정치권 이직은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언론의 역할을 훼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기자 개개인에게는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다”면서도 “여현호 전 선임기자가 사실상 현직에서 곧바로 청와대 비서관으로 이직한 것은 한겨레신문사가 견지해온 원칙, 임직원과 독자들의 기대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밝혔다.

고 김 교수는 법적으로 직업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긴 해도, 직업 선택의 자유로 접근해서는 문제가 개선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소수의 기자들로 인해 언론 전체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언론사를 퇴사한 뒤 국회의원이 되어도 시민들은 여전히 그가 언론인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본다고 말한다.

지난 2019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윤도한 전 MBC 기자를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에 임명했다. 출처 KBS
지난 2019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윤도한 전 MBC 기자를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에 임명했다. 출처 KBS

허울뿐인 언론사 윤리강령, 기준도 다 달라

폴리널리스트를 바라보는 언론계의 시선은 곱지 않지만, 언론사마다 이를 둘러싼 윤리 기준은 제각각이다. 주요 언론사 8곳(KBS, MBC, SBS, YTN, 조선일보, 중앙그룹, 경향신문, 한겨레)의 윤리강령을 살펴본 결과, 3곳만이 언론인이 퇴사 뒤 일정 기간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강령의 문구를 보면 일정 기간 정치 관련 취재를 해오지 않았다면 사직을 하고 정치권으로 가도 괜찮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언론인의 정계 진출과 관련한 윤리강령이 없는 언론사도 많다.

국내 언론사 중 일부 언론사만 자사 윤리강령에 언론인의 정계 진출을 제한하는 조항이 있다. 재가공 김신영
국내 언론사 중 일부 언론사만 자사 윤리강령에 언론인의 정계 진출을 제한하는 조항이 있다. 재가공 김신영

언론인 활동을 지속하고 싶은 동기 부여가 있어야

고 김세은 교수는 2017년 폴리널리스트가 한국에 유독 많은 이유로 정치 지상주의와 더불어 입신양명을 성공한 인생으로 여기는 문화 등 다양한 요인을 꼽았다. 정권의 필요에 의한 도구적 동원, 정치 병행성이 강한 언론 시스템, 낮은 전문직화 수준, 언론 환경의 변화로 인한 직업 안정성 감소 등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폴리널리스트를 막을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언론인의 정계 직행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는 이유는 법으로 보장된 직업 선택의 자유와 권력 감시 역할을 해온 언론의 본질적인 역할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완전히 언론인의 퇴사 뒤 정치 활동을 금지하기는 어려운 만큼, 언론인 스스로 자긍심을 느끼고 언론인 활동을 지속할 명분이 있어야 한다.

법과 윤리강령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언론인의 정계 진출을 막을 수는 없다. 정치 활동을 하는 것보다 언론계에 종사하는 것에 만족하고 성취감을 느끼는 환경이 될 때 스스로 언론인으로 남아있기로 선택할 수 있다. 언론사 안팎에서 언론인의 낮은 직업 만족도를 높일 해법을 고민해 언론 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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