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Wavve Original '더 타투이스트'

영원에 대한 믿음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왜 서로의 이름을 바위나 나무처럼 오래도록 남을 곳에 새기고 싶어 할까. 소설가 김영하는 "사랑도 자아도 불안정하니까 안정돼 보이는 곳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랑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믿는 무엇을 어딘가에 새겨 남기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나와 가장 가까운 곳, 그래서 언제 어디서든 꺼내 볼 수 있는 곳에 믿음을 새기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타투를 하는 사람들이다.

타투의 의미에 대해 처음 생각해본 건 친구 때문이었다. 어느 날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손목에 작은 타투를 그려왔다. 태양을 닮은 타투였다. 엄마와 커플 타투라고 했다. 모녀지간의 커플 타투라니. 처음 듣고는 신기했다. 그 친구는 지금은 본가에서 나와 멀리서 살지만, 타투를 바라볼 때면 그것을 통해 아무도 모르게 엄마와만 연결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바쁜 하루를 보내다가도 문득 손목의 타투를 보면 엄마를 떠올린다. 물성이 있는 것들은 힘이 있다. 그 존재를 계속해서 의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요즘 타투는 불량배같이 힘을 과시하는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닌 ‘패션’의 일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누구나 하나쯤 가질 수 있는 하나의 자기표현 방법이 된 것이다. 대한민국 타투 인구는 300만 명, 타투이스트 20만 명에 달한다. 세계적으로 K 타투의 위력도 엄청나다. 외국인 여행객들은 오로지 타투를 받으러 한국을 찾기도 한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만의 고유한 감성을 담은 아티스트들에게 타투를 받기 위해서다.

Wavve 오리지널 시추에이션 ‘타투’ 다큐멘터리에서는 안무가 모니카와 가수 이석훈이 타투샵을 찾은 손님들의 사연을 듣고 타투이스트가 사연에 딱 맞는 타투를 새겨준다. 몸에 난 상처를 타투로 덮는 커버업 타투를 받으러 온 한 손님이 시술을 마친 뒤 모니카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출처 Wavve '더 타투이스트'
Wavve 오리지널 시추에이션 ‘타투’ 다큐멘터리에서는 안무가 모니카와 가수 이석훈이 타투샵을 찾은 손님들의 사연을 듣고 타투이스트가 사연에 딱 맞는 타투를 새겨준다. 몸에 난 상처를 타투로 덮는 커버업 타투를 받으러 온 한 손님이 시술을 마친 뒤 모니카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출처 Wavve '더 타투이스트'

“타투는 몸 밖으로 나온 나의 이야기. 사람들은 타투를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타투샵에서 그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찬찬히 이해해야 보이는 것들

<더 타투이스트>는 지난 16일 웨이브에서 공개한 4부작 시추에이션 ‘타투’ 다큐멘터리이다. 한옥을 개조한 타투샵에서 타투이스트들, 가수 이석훈, 안무가 모니카, 그리고 타투를 받으러 온 손님들이 만난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손님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타투 시술을 받는다. 타투샵 안에서 오가는 자연스러운 대화는 언뜻 보면 MC와 게스트가 출연하는 토크쇼의 일부처럼 보이지만 인물들의 사연을 담은 일상이 곧바로 이어진다. 시추에이션 ‘타투’ 다큐멘터리는 이처럼 출연자들의 일상과 타투이스트들과의 대화를 오간다.

1, 2화는 가수 이석훈이, 3, 4화는 안무가 모니카가 타투샵에 찾아온 손님들을 타투이스트들과 함께 맞이한다. 이석훈은 군대에 있을 때 어머니를 잃었다. 그 아픔을 이겨내고자 어머니를 떠올리며 타투를 새겼다. 모니카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억하며 양손에 타투를 새겼다. 이들은 다른 손님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야기를 몸에 새긴 사람들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시청자를 대신해 손님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하나하나 소중한 사연으로 보는 이들을 이끈다.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최정호 PD는 타투이스트들이 하는 일에서 타투 작업을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고 한다. 타투를 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림을 몸에 새기는 작업만큼 중요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원하는 도안을 구상해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구현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타투샵을 찾은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이미 위로받는다. 연출자는 이런 사실에 주목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타투에 새긴다는 것

영원히 함께하자고 했지만 먼저 세상을 떠난 두 언니를 기억하기 위해 별 타투를 새기러 타투샵에 찾아온 스턴트우먼 김차이(35) 씨. 언니들은 배우 지망생 차이 씨에게 늘 넌 멋진 스타가 될 것이라 응원해준 든든한 존재였다. 차이 씨는 지금은 스턴트우먼이라는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스타, 별이 되고자 했던 그 응원의 마음을 기억하고자 타투샵을 찾았다. 출처 Wavve '더 타투이스트'
영원히 함께하자고 했지만 먼저 세상을 떠난 두 언니를 기억하기 위해 별 타투를 새기러 타투샵에 찾아온 스턴트우먼 김차이(35) 씨. 언니들은 배우 지망생 차이 씨에게 늘 넌 멋진 스타가 될 것이라 응원해준 든든한 존재였다. 차이 씨는 지금은 스턴트우먼이라는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스타, 별이 되고자 했던 그 응원의 마음을 기억하고자 타투샵을 찾았다. 출처 Wavve '더 타투이스트'

예약을 하고 타투샵에 찾아온 손님들은 겉모습만 봐서는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앳된 얼굴의 대학생부터, 주부, 운동선수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타투샵에 찾아온다. 그러나 대화를 시작하면서 손님들은 각자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놓는다. 그것은 안고 살기 어려웠던 기억이기도 하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남편과 어린 딸과 함께 타투샵을 찾은 소하랑 씨(38)는 커버업 타투를 하기 위해 타투샵을 찾았다. 하랑 씨의 등허리에는 가로로 난 긴 상처가 있다. 상처를 보면 자꾸만 자신이 약한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약해질 여유조차 없다. 작년에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항암치료는 받지 않기로 했다. 3년 전 사고로 알츠하이머병을 얻은 남편을 간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랑 씨는 자신이 떠나고 나면 남겨질 남편과 딸이 걱정되었다.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용기였다. 등에 난 상처는 자신이 지고 갈 십자가였다. 그 십자가가 좀 가벼워질 수 있게, 딸을 닮은 예쁜 꽃을 함께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사연을 듣고 눈물을 보이던 타투이스트는 이내 작업을 시작했다. 하랑 씨의 상처는 물 머금은 수채화 꽃나무로 다시 태어났다. 그녀의 삶이 더 이상 무겁고 아프지 않길 바라는 응원이자 치유였다.

완성된 타투를 확인하고 눈물을 쏟은 소하랑(38) 씨. 지고 살아야 할 무거운 십자가라고 느껴졌던 하랑씨의 상처에는 이제 아름다운 꽃나무가 대신하고 있다. 출처 Wavve '더 타투이스트'
완성된 타투를 확인하고 눈물을 쏟은 소하랑(38) 씨. 지고 살아야 할 무거운 십자가라고 느껴졌던 하랑씨의 상처에는 이제 아름다운 꽃나무가 대신하고 있다. 출처 Wavve '더 타투이스트'

상처 위에 영원히 피어있을 꽃

최정호 PD에게 타투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세월호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면서 생존자 학생 중 한 명이 타투를 받고 싶어 해 생전 처음 타투샵에 가게 됐다. 편견과 금기의 대상으로 여겨진 타투이기에 타투샵하면 어두컴컴하고 으슥한 분위기가 떠올랐다. 하지만 미용실처럼 밝은 타투샵 분위기와 손님에게 친근하게 말을 건네는 타투이스트가 그에게는 의외였다. 무엇보다도 세월호 생존자가 타투이스트에게 자연스레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에 놀랐다. 제작진에게 마음을 여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타투이스트 앞에서는 쉬이 말문을 연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타투샵에서 새로운 형식의 휴먼 다큐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고2 때 세월호 생존자가 된 전영수(26) 씨. 혼자 살아왔냐는 악플은 상처가 되었고, 친구들 몫만큼 살아야 한다는 응원은 짐이 되었다. 그 압박감은 스스로 상처를 내게 했다. 상처를 바라볼 때마다 그때의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커버업 타투를 받고자 타투샵을 찾았다. 출처 Wavve '더 타투이스트'
고2 때 세월호 생존자가 된 전영수(26) 씨. 혼자 살아왔냐는 악플은 상처가 되었고, 친구들 몫만큼 살아야 한다는 응원은 짐이 되었다. 그 압박감은 스스로 상처를 내게 했다. 상처를 바라볼 때마다 그때의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커버업 타투를 받고자 타투샵을 찾았다. 출처 Wavve '더 타투이스트'

한옥에 차려진 타투샵 안으로 전영수(대학생/26) 씨가 찾아왔다. 상처를 타투로 덮는 커버 업 타투 시술을 받고 싶다고 했다. 소매를 걷어 양팔을 드러내 보이니 팔뚝을 가로지르는 몇 개의 상처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스스로 낸 상처들이다.

영수 씨의 자해는 고2 때부터 시작돼 작년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이제 그만할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타투를 받으러 왔다. 이전의 상처를 덮고, 앞으로는 상처를 내지 않겠다는 다짐에서다.

영수 씨는 고2 때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배를 탔다. 그 배의 이름은 세월호였다. 구조된 생존자들에게 언론의 관심이 쏠렸다. 그중 자신에게 다가와 보듬어준 한 어른을 믿고 친구를 잃은 그날의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다음 날 기사는 영수 씨가 어떻게 배를 빠져나왔는지에 대한 사건 경위 중심으로 보도됐다. 기사엔 “친구를 버리고 너만 빠져나왔냐”는 댓글이 달렸다.

“‘친구의 인생을 대신 사는 거다’라는 생각으로 ‘나는 잘해야 해, 잘 살아야 해’ 이런 압박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너 왜 이것밖에 못 했어.’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상처를 입죠.”

마음의 상처는 몸의 상처로 이어졌다. 계속 상처 내고 후회하기를 반복했다. 참사 이후 8년이 지났다. 2년 뒤엔 10년이 된다.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면서 더 이상 스스로 상처를 내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 오랜만에 만난 단원고 동창 친구에게 자해로 난 자신의 상처를 보면 어떤 마음이 들었냐고 물었다. “흉하다는 이런 생각은 안 했어. 그냥 너는 아픔이 이런 식으로 드러나 있구나. 나도 내 나름의 표출 방법이 있었고. 딱 거기까지만 생각했어.” 친구는 담담한 위로를 건넸다.

영수 씨의 팔엔 자해로 낸 상처가 가득했다. 이젠 그 상처 위로 새로운 타투가 생겼다. 색색이 피어난 꽃들을 노란 리본이 감싸고 있다. 친구들을 기억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출처 Wavve '더 타투이스트'
영수 씨의 팔엔 자해로 낸 상처가 가득했다. 이젠 그 상처 위로 새로운 타투가 생겼다. 색색이 피어난 꽃들을 노란 리본이 감싸고 있다. 친구들을 기억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출처 Wavve '더 타투이스트'

영수 씨에겐 이미 다른 타투가 있지만, 이번에는 이전의 어두운 느낌과 달리 밝은 색깔의 타투를 주문했다. 다시는 그 희망 위로 상처를 내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 찬찬히 이야기를 경청한 타투이스트는 영수 씨만을 위한 도안을 구상했다. 조용하고 밝은 시술실은 마치 치유를 위한 수술대 같다. 슬로우모션으로 흘러가는 영상에서 타투 바늘코는 얇은 피부를 뚫고 그 안에 자리한 마음의 아픔을 꺼낸다. 아름다운 그림은 상처가 머문 자리를 대신한다. 시술받는 사람은 마치 사제가 베푸는 치유의식을 받아들이는 신자처럼 누워있고 조용한 시간이 그 위로 흐른다. 이제 영수 씨의 상처 위에는 꽃이 피어났다.

시술을 마치고 타투를 보여주고 나면 카메라는 천천히 환하게 웃는 영수씨의 얼굴을 비춘다. 타투를 막 받고 밝아진 영수의 표정이 화면에 가득하다. 결국 이 모든 이야기가 사람에게서 시작되었으며, 사람의 치유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출처 Wavve '더 타투이스트'
시술을 마치고 타투를 보여주고 나면 카메라는 천천히 환하게 웃는 영수씨의 얼굴을 비춘다. 타투를 막 받고 밝아진 영수 씨의 표정이 화면에 가득하다. 결국 이 모든 이야기가 사람에게서 시작되었으며, 사람의 치유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출처 Wavve '더 타투이스트'

몸 위에 쓴 시

류시화 시인은 <눈 위에 쓴 시>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람 가슴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 없는 허공에 대고 시를 쓴다지만

나는 십이월의 눈 위에 시를 쓴다.

어쩌면 흉터 위에 희망의 그림을 그리는 일은, 몸 위에 시를 쓰는 일이 아닐까. 흉터는 영원히 몸 어딘가에 남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아픔이 더 이상 아픔이지 않도록, 그림을 그려주는 사람들이 있다. 흉터가 그림의 일부분이 될 때, 아픔과 상처는 새로운 희망을 그리기 위한 밑그림이 되어준다. <더 타투이스트>에서 흉터를 꺼내 보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준 이들에게, 타투는 앞으로는 영원히 꺼내 볼 수 있는 한 편의 시가 되어줄 것이다.

시추에이션 ‘타투’ 다큐멘터리 '더 타투이스트' 포스터. 지난 16일 웨이브를 통해 공개된 오리지널 콘텐츠이다. 은밀하지만 당당한, K-타투 이야기를 담았다. 출처 Wavve '더 타투이스트'
시추에이션 ‘타투’ 다큐멘터리 '더 타투이스트' 포스터. 지난 16일 웨이브를 통해 공개된 오리지널 콘텐츠이다. 은밀하지만 당당한, K-타투 이야기를 담았다. 출처 Wavve '더 타투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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