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영화 '오마주'

‘영화를 촬영할 때, 다른 감독이나 작가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그 감독이나 작가가 만든 영화의 대사나 장면을 인용하는 일. 프랑스어로 ‘존경’을 뜻한다.’ ‘오마주'의 사전적 의미다. 창작자가 다른 창작자에게 할 수 있는 존경의 표시 가운데 최선은 ‘오마주'이지 않을까. 누군가의 영향을 받았고, 그 흔적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고 인정하는 행위는 능력을 인정받고자 하는 창작자에겐 큰 용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마주’하고 싶은 누군가를 만나는 일 또한 쉽지는 않다. 존경을 표하고 싶은 사람을 발견하고 그 발견의 과정에서 잃어가던 자신의 일부를 찾는 것. 영화 '오마주'는 한 영화인이 자신의 삶에 새겨진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영화 '오마주'는 10년간 영화를 만들었지만,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영화감독 김지완이 60년 전 만들어진 영화를 복원해가는 여정을 담은 영화다. 출처 준필름
영화 '오마주'는 10년간 영화를 만들었지만,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영화감독 김지완이 60년 전 만들어진 영화를 복원해가는 여정을 담은 영화다. 출처 준필름

그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감독'

'오마주'는 10년간 영화를 만들어 왔으나 대중적 성공은 하지 못한 영화감독 김지완(이정은 역)이 60년 전 한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를 담아낸 ‘아트판타지버스터' 영화다. 영화는 60년을 사이에 두고 있는 두 명의 ‘여성 감독’과 영화를 만들어 온 영화인들의 삶을 차분히 담아낸다. 이 작품은 영화 '기생충'과 여러 드라마, 연극을 통해 알려진 이정은 배우가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장편영화이기도 하다. 2022년 5월 국내 개봉했으며, 올해 피렌체 한국영화제 최고상인 심사위원상, 런던아시아영화제 최고 배우상을 받는 등 국제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영화는 ‘인정받지 못하는 감독' 지완을 여러 방식으로 보여준다. 가족들은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들은 어벤져스는 개봉 날 달려가서 보지만 엄마 영화는 끝까지 보지 않는다. 이유를 묻는 지완에게 엄마 영화는 재미가 없다며 쿨하게 말하는 아들이다. 관객들도 마찬가지다. 지완은 자신의 세 번째 영화 ‘유령인간'이 꼭 2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길 바라며 영화를 함께 만든 PD와 영화관을 찾지만, 관객은 그와 PD를 포함해 4명뿐이다. 그는 어디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되는 일이 없는 지완에게 모처럼 일거리가 들어온다. 지인으로부터 아르바이트 제안이 온 것이다. ‘페이는 적지만 의미는 있는 일’이라던 그 일은 지인의 설명대로 흔히 접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한 극장의 개관식 행사에서 60년 전 만들어진 영화를 상영하고자 하는데, 필름이 오래되어 소리가 들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지완이 맡은 일은 그 부분을 복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영화는 여성 영화인 자체가 드물던 1960년대에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였다. 영화감독의 이름은 홍재원. 홍 감독은 세 편의 영화만을 만들고 영화계를 떠났다. 공교롭게도 ‘유령인간’이 지완의 세 번째 영화였다. 지완은 60년 전 홍 감독처럼 자신도 세 번째 영화를 마지막으로 영화계를 떠나게 될까 두렵지만 구태여 드러내지 않는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사라진 소리’를 찾기 위해 과거의 영화인들을 찾아 나설 뿐이다.

지완은 '여판사'를 만든 홍재원 감독과 함께 일했던 이옥희(이주실 역) 편집 기사를 찾아가 과거의 흔적을 묻는다. 그는 60년 전 영화인들의 흔적을 통해 ‘일'에서 ‘의미'를 찾아간다. 출처 준필름
지완은 '여판사'를 만든 홍재원 감독과 함께 일했던 이옥희(이주실 역) 편집 기사를 찾아가 과거의 흔적을 묻는다. 그는 60년 전 영화인들의 흔적을 통해 ‘일'에서 ‘의미'를 찾아간다. 출처 준필름

나를 ‘투영’하는 존재들을 찾아서

지완은 맡은 일을 해나간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처음부터 ‘의미’를 찾지는 않는다. 복구할 작품인 '여판사'를 처음 본 극장에서도 지완은 더빙 작업에 관한 실무적인 말만 할 뿐이다. 제작비가 1,000만 원뿐이라는 관계자의 말에 ‘요즘 스태프들 인건비가 비싸서 걱정’이라거나, 영화 내용에 대한 감상 대신 ‘필름 상태가 엉망이네요'와 같은 말만 꺼낼 뿐이다.

그런 지완은 복원과정에서 과거를 마주하면서 조금씩 변한다. 지완은 '여판사'를 만들었던 사람들을 직접 찾아간다. 세상을 떠난 홍 감독 대신 그의 딸이 보관하고 있던 시나리오, 포스터, 등을 홍 감독의 방에서 확인한다. 그뿐만 아니다. 지완은 홍 감독과 함께 일했던 편집 감독, 홍 감독의 사진을 찍었던 영화 사진작가 등 60년의 세월을 건너온 영화계 인물들을 마치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듯 한 명 한 명 만난다. 그들과의 만남은 지완의 어려움을 해결해준다. 사라졌던 아날로그 필름과 시나리오를 찾아내 복구작업의 가장 큰 난관을 극복했고, 편집 기사의 도움으로 필름을 복구해 영화의 비어있던 부분을 채워냈다.

사실 지완은 자신을 비춰볼 대상을 찾고 있었다. 인정받지 못해 업계에서 사라져가는 자신을 누군가를 통해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랬던 지완이 찾은 대상은 얼마 전 스스로 세상을 떠난 옆집 여자였다. 오랫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옆집 여자는 자신이 몰던 차에서 연탄불을 피운채 세상을 떠났다. 지완은 그 차 주변을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맴돈다. 연탄재로 그을린 조수석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몇 발짝 떨어져 멀리서 바라만 보기도 한다. 지완은 그에게 자신을 투영해왔다. 혹은 조만간 사라져버릴 자신을 생각하며 그 차를 들여다봤을지도 모른다.

그런 지완에게 과거의 영화인들은 새로운 희망의 증거를 전해준다. 자신에게서 희망을 찾지 못할 때 우리는 지금 걷고 있는 길을 먼저 가 본 사람이 있었기를 바란다. 내가 느끼는 막막함이 별거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이 아무리 답답해도 그 시간은 언젠가 지나갈 것이라고 말해줄 수 있는 힘. 그 힘이 어려운 시간을 버텨내며 희망을 잃지 않은 그 사람 안에 있기 때문이다. 지완에게는 복원 과정에서 만난 선배들이 그랬다. 홍 감독과 함께 작업을 했던 이옥희 편집 감독은 60년 전에는 아침부터 재수 없이 여자가 편집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으며 소금을 맞고 편집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지완에게 덧붙인다. “자넨 끝까지 살아남아.”

지완은 꾸준히 ‘죽은' 사람이 있었던 차를 들여다본다. 복원이 끝나갈 때쯤 그 차는 사라지고, 홍 감독의 그림자가 그 자리를 채웠다. 지완에게 새로운 ‘투영’의 대상이 생겼다. 출처 준필름
지완은 꾸준히 ‘죽은' 사람이 있었던 차를 들여다본다. 복원이 끝나갈 때쯤 그 차는 사라지고, 홍 감독의 그림자가 그 자리를 채웠다. 지완에게 새로운 ‘투영’의 대상이 생겼다. 출처 준필름

선배들은 그렇게 지완이 자신을 들여다볼 ‘투영’의 대상이 됐다. 지완은 영화 만드는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영화 말미에서 홍 감독으로 보이는 그림자가 나타난다. 홍 감독의 그림자는 영화 초반부 지완이 '여판사'의 복구 작업을 맡았을 때도 나타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 그 그림자는 스치듯 지완을 지나갔다. 홍 감독의 그림자는 이번에는 지완이 매번 들여다보던 옆집 여자의 차가 사라진 자리에 나타난다. 그리고 60년대에 시나리오를 쓰던 그 모습 그대로 지완에게 다가온다. 마치 편집 감독이 지완에게 살아남으라고 했던 말을 다시 해주듯 홍 감독은 지완을 조용히 바라본다. 두 영화감독은 그렇게 서로를 마주한다.

‘뭔가를 찾아 헤매는 꿈을 꾸었다’

'여판사'는 결국 복원이 됐을까. 영화는 '여판사'를 복원하기 위해 직접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을 만나고 잘려 나간 필름이나 시나리오 같이 사라진 흔적들을 찾아 나서는 로드무비로도 보인다. 그만큼 영화를 복구할 수 있을지에 관한 궁금증은 주인공과 관객이 끝까지 함께 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결말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빈 스크린이 비치고 그 스크린에 관객들이 하나, 둘 스쳐 지나가는 모습만 담길 뿐이다. 중요한 건 복원된 영화가 아닐지도 모른다. 대신 지완이 영화에 대해 품었던 꿈, 그것을 잃지 않으려는 그의 의지가 복원됐다는 어렴풋한 희망이 우리에게 전해졌다. 이는 영화인 선배들을 향한 ‘오마주’가 만든 희망이다.

“뭔가를 찾아 헤매는 꿈을 꾸었다. 어딘가에 숨겨놓았거나 잃어버린 뭔가를. 침대 밑에서 계단 아래에서, 오래된 주소에서. 무의미한 것들 터무니없던 것들로 가득 찬 장롱 속을, 상자 속을, 서랍 속을 샅샅이 뒤졌다. 여행 가방 속에서 끄집어냈다. 내가 선택했던 시간과 여행을. 주머니를 털어 비워냈다. 시들어 말라버린 편지들과 내게 발송된 것이 아닌 나뭇잎들. 숨을 헐떡이며 뛰어다녔다.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들. 불안과 안도 사이를.” 영화는 지완의 아들과 지완의 목소리로 이 시를 전하며 끝난다. 지완의 ‘헤매는 꿈’ 속에서 우리는 희망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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