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소설 '하얼빈' 미디어비평

1900년대 초 대한제국과 2022년의 한국

소설은 1908년 1월 7일 일본 천황 메이지가 도쿄의 황궁에서 대한제국 황태자 이음을 접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토는 대한제국 황제 고종을 위협해서 퇴위시키고(1907년), 차남 이척(순종)을 황제 자리에 세웠다. 순종은 황위에 오른 뒤 국내 정치에 관해 통감의 지도를 받기로 협약했다. 1900년대 초 세계정세는 러시아의 남하와 이를 저지하려던 영국 간의 ‘그레이트 게임’으로 설명됐다. 조선은 러시아를 통해 일본을 견제하고자 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일본이 을미사변을 일으켰다. 이후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 들어가는 아관파천(1896-1897)을 하고 친러정권을 세웠다.

2022년의 한국 역시 거대 강국의 패권 전쟁에 둘러싸여 있다. 지난 9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 한중외교장관 회담에서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이례적으로 한중 관계에서 ‘5가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시했다. 한미일 동맹, 칩4 등 중국을 포위하는 경제적 압박에 대한 중국의 견제였다. 미국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가 대만 방문을 강행해 대만 해협에는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됐다. 연일 중국의 보복성 무력 시위가 이어졌다. 북한은 미·중 갈등을 틈타 북·중 밀착을 과시하려는 행보를 보였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한·미·일 대 북·중·러’ 신냉전 구도가 형성됐다. 1900년대 러시아와 영국 중심의 ‘그레이트 게임’은, 2022년 미국과 중국으로 대체된 형국이다. 다시 재현된 ‘그레이트 게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안중근이 꿈꾼 동양평화

1909년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한다. 한일병합조약을 한 해 앞둔 해였다. 체포된 안중근은 일제가 내세워 온 동양평화는 허구이며 진정한 의미의 동양평화와 독립주권을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했다고 밝힌다. 안중근은 체포된 뒤 여순 감옥에서 죽기 직전까지 동양평화론을 저술했다.

한국의 근대는 문명개화의 꿈에 매혹되었고 제국주의의 폭력에 짓밟혔다. 이 문명개화는 곧 서구화였고, 한국이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이미 이룩한 문명은 개화의 추동력에 합류할 수 없었다. 20세기 초의 한반도에서 과거는 미래를 감당할 힘을 상실했고 억압과 수탈을 위장한 문명개화는 약육강식의 쓰나미로 다가왔다. 한국 청년 안중근은 그 시대 전체의 대세를 이루었던 세계사적 규모의 폭력과 야만성에 홀로 맞서 있었다. 그의 대의는 ‘동양평화’였고, 그가 확보한 물리력은 권총 한 자루였다. (305p. 작가의 말)

김훈은 대학 시절 안중근 신문조서를 읽고 그에 대한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가 읽은 장면은 안중근 의사가 체포된 다음에 관동도독부 검찰부에 끌려가서 심문을 받는 대목이었다. 그 안에는 제국주의가 갖는 야만성과 거기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의 에너지가 들어있었다. 소설 <하얼빈>은 안중근의 대의나 동양평화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강인한 영웅 안중근이 아닌,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한 청년의 고민과 고뇌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오늘에 생생하게 재현해 낸다.

김훈의 새 소설 '하얼빈' 표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마주한 순간부터 재판을 받고 여순 감옥에서 생을 다한 5개월여간의 시간을 압축적으로 재현해 낸다. ⓒ문학동네
김훈의 새 소설 '하얼빈' 표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마주한 순간부터 재판을 받고 여순 감옥에서 생을 다한 5개월여간의 시간을 압축적으로 재현해 낸다. ⓒ문학동네

역사는 살아있다

김훈은 거대한 담론과 대의에 앞서 역사 속에 살아있던 한 인물을 되살려내는 것에 집중했다. 그가 주목한 건 안중근의 진술이었다. 안중근은 그의 직업을 포수라고 말한다. 직업은 독립투사 안중근을 살아있는 인물로 느껴지게 한다.

안중근은 체포된 후 일본인 검찰관이 진행한 첫 신문에서 자신의 직업이 ‘포수’라고 말했다. 기소된 후 재판정에서는 ‘무직’이라고 말했다. 안중근의 동지이며 공범인 우덕순은 직업이 ‘담배팔이’라고 일관되게 말했다.

이 청년들의 생애에서, 그리고 체포된 후의 수사와 재판의 과정에서, 포수, 무직, 담배팔이라는 세 단어는 더 많은 말들을 흔들어 깨워서 시대의 악과 맞서는 힘의 대열을 이루었다. 깨어난 말들은 관념과 추상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날것의 힘으로 일어서서 말들끼리 끌고 당기며 흘러가는 장관을 보여주었는데, 저 남루한 세 단어가 그 선두를 이끌고 있었다. (304p. 작가의 말)

김훈은 ‘관념과 추상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청년 안중근의 고민과 고뇌를 되살려낸다. 소설은 불안한 국제 정세를 살아가는 한국의 청년들에게 평화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하얼빈, 두 세계관이 충돌하는 곳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만난다. 소설은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이 각각 하얼빈이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서술해 두 인물의 충돌하는 내면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SBS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만난다. 소설은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이 각각 하얼빈이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서술해 두 인물의 충돌하는 내면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SBS

소설은 거사를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는 안중근과 우덕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 조선의 빌렘 신부와 뮈텔 주교의 3가지 관점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하기 전까지의 몇 달간의 여정과 이후의 재판, 그리고 사형일까지의 시간을 압축적으로 재현했다. 작가는 천주교 신자이면서 동시에 이토를 사살하는 안중근의 고뇌와 결단, 안중근의 행보를 종교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독립운동가의 행보를 일본군에 알린 프랑스 선교사들의 제국주의적 양면성, 일제 최고 엘리트 중의 수장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의 전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간 식민 시대를 그린 역사 작품에서 일제와 이토 히로부미는 처단해야 하는 절대악으로 그려졌다. 반면 <하얼빈>에서는 이토가 식민 통치 전략을 구사하고, 그가 꿈꾸는 이상적인 일제의 모습을 건조하게 묘사한다. 작가는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방식을 배제하고, 한발 떨어져 일제를 보여준다. 이토 히로부미는 청일전쟁의 승리를 회상하며 러일전쟁에서도 압도적인 승리를 이끌어 내, 조선에 대한 완전한 주도권을 획득하고 조선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고 다짐한다. 이토는 망해가는 조선의 운명을 폐허 앞에 선 순종의 사진으로 담으라고 명령한다.

큰 구도가 필요하다. 폐허를 크게, 조선 황제를 작게 나타내라고 이토는 만월대 돌계단 앞에서 일본인 사진사에게 명령했다. (중략). 이 사진 두 장이 조선의 운명과 조선의 앞날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토는 판단했다. 사진은 무리 없고 과장 없이 찍혀 있어서 보는 사람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것이었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들,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까지도 사진에 찍힐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이토는 혼자서 놀랐다. 이 사진 두 장을 한 쌍으로 묶어서 일본, 조선, 그 밖에 여러 나라의 언론기관에 배포하라고 이토는 비서관에게 지시했다. (52p)

1910년 2월 안중근 의사가 여순 감옥에서 쓴 친필 ‘백세청풍’과 그의 손도장이다. 백세청풍은 고고한 선비의 절개를 뜻한다. 왼손 약지 마디가 없는 손도장은 안중근 의사의 상징이다. 잘린 손가락 마디는 1909년 동의단지회 동맹을 결성한 흔적이다. ⓒ동아일보
1910년 2월 안중근 의사가 여순 감옥에서 쓴 친필 ‘백세청풍’과 그의 손도장이다. 백세청풍은 고고한 선비의 절개를 뜻한다. 왼손 약지 마디가 없는 손도장은 안중근 의사의 상징이다. 잘린 손가락 마디는 1909년 동의단지회 동맹을 결성한 흔적이다. ⓒ동아일보

책을 읽기 전엔 안중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의 제목이 ‘하얼빈’이라는 점이 의아했다. 안중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영웅이나 투사, 그의 잘린 약지다. 예상과 달리 <하얼빈>의 주인공은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두 사람이다. 소설에서는 두 사람의 시선이 한 장씩 교차한다. 작가는 안중근 못지않게 이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작가의 말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생애의 발자국을 찾아서 일본의 여러 곳을 들여다보았다”라는 부분이 이를 나타낸다. 그래서 소설의 제목은 안중근과 이토 두 사람이 만나 폭발적으로 충돌하는 하얼빈이 된 것이다.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세운 것은 어느 한 쪽의 관점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안중근은 일제 치하를 경험한 식민지 대한제국의 청년을 대변한다. 안중근은 독립을 위해 탄압에 저항한다. 그리고 그의 거사의 성공은 무너져가는 나라 백성들에게 저항의 불씨와 희망을 안겨준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권선징악적 ‘위로’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토 히로부미는 식민지 지배자의 관점에서 동아시아를 바라본다. 약자 위에 강자로서 군림한다. 작가는 이토의 식민주의 사관을 건조하게 보여줌으로써 역설적으로 안중근이 말하고자 했던 ‘동양평화론’의 가치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두 사람의 세계관의 충돌이 자칫 공허할 뻔한 안중근의 세계평화에 힘을 실어준다.

하얼빈은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남만주 철도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오는 동철철도가 교차하는 공간이다. 제국 확장의 야욕을 가진 일제를 상징하는 이토 히로부미가 한반도를 가로질러 하얼빈으로 향한다. 동시에 이를 저지하고자 하는 안중근과 우덕순이 총알 7발을 들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행 기차를 탄다. 10월 26일 오전 9시, 안중근은 이토를 향해 세 발의 총을 쏘고 ‘코레아 후라’를 외친 뒤 현장에서 검거된다. 사형이 선고된 안중근은 여순 감옥에서 둘째 동생 안공근에게 하얼빈에 묻어달라고 유언한다.

내가 죽으면 내 시체를 하얼빈에 묻어라. 하얼빈은 내가 이토를 죽인 자리이므로 거기는 우선 내가 묻힐 자리다. 한국이 독립된 후에 내 뼈를 한국으로 옮겨라. 그전까지 나는 하얼빈에 묻혀 있겠다. 이것은 나의 유언이다. 내 뜻에 따라다오. (266p)

일제는 안중근의 유언으로 술렁이는 한인 사회의 동태를 우려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여순 감옥의 공동묘지에 묻혔다. 이후 김구가 이를 수습하려 했지만 유해의 행방은 묘연했고, 안중근의 시신은 결국 광복 이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살아있기에 흔들리고 머뭇거리는 총구

광복을 맞은 이후의 후대는 선조의 독립운동을 의로운 것이라 기억한다. 하지만 의로운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암살> 엔딩 장면에서 일본 밀정 염석진은 왜 동지를 배신했냐는 질문에 “몰랐으니까. 해방될지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나”라고 변명한다. 독립운동가들은 해방이 언제 올지 모르고 독립을 위해 싸웠다. 영웅 수식은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당연시하게 만든다. 김훈은 안중근에게 씌워진 영웅적 면모를 걷어내고 살아있기에 흔들리고 머뭇거리는 청년으로 그렸다. 당연하지 않았던 그의 고민을 보여준다.

안중근이 하얼빈행 여비로 마련한 100루블은 거사일이 다가올수록 점점 바닥난다. 돈은 곧 그가 살아있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비가 괜찮겠냐고 걱정스레 되묻는 우덕순에게 안중근은 쏘고 나면 여비는 필요 없다는 말로 일관한다. 목적을 달성한다면, 그 이후는 각오가 되어있다는 결연한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거사일을 하루 앞둔 밤, 그에게 남은 돈은 100루블 중 단 1루블뿐이었다.

안중근 지갑을 열어서 남은 돈을 점검했다. 동전을 합쳐서 일 루블이 남아 있었다. 밝는 날 아침에 일이 끝난다면 일 루블은 적당한 액수였다. (160p)

거사가 있던 날 안중근의 아내 김아려는 큰딸은 수녀원에 맡기고 두 아들을 데리고 하얼빈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후일 안중근은 가족들을 얼굴을 보지 않고 거사에 나갈 수 있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영웅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었기에 흔들리는 것은 자명했다. 거사일을 하루 앞둔 밤, 안중근은 김성백의 집에 묵으며 다음날의 동선과 계획을 세우며 빈총에 총알을 장전한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은 그 또한 흔들리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준다. 

소설 '하얼빈'
소설 '하얼빈'

총구를 고정시키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했다. 총을 쥔 자가 살아 있는 인간이므로 총구는 늘 흔들렸다. 가늠쇠 너머에 표적은 확실히 존재하고 있었지만, 표적으로 시력을 집중할수록 표적은 희미해졌다. 표적에 닿지 못하는 한줄기 시선이 가늠쇠 너머에서 안개에 가려져 있었다. 보이는 조준선과 보이지 않는 표적 사이에서 총구는 늘 흔들렸고, 오른손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는 방아쇠를 거머쥐고 머뭇거렸다. (159p)

이토 사살에 성공한 안중근은 거사를 함께 준비한 우덕순과 재판에 넘겨졌다. 일제는 그를 전쟁 포로나 정치범이 아니라 테러범으로서 재판장에 세우는 것이 중요했다. 전쟁 포로에게는 사형을 선고하지 못하고, 정치범이라면 제국의 문명적 위상이 훼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안중근은 재판장에서 자신을 전쟁 포로 자격으로 대우해줄 것을 요구했다. 일본은 끝까지 그를 정치범이 아닌 테러범으로 규정한다. 재판 신문 과정에서 안중근은 스스로를 전쟁 포로로서 변호한다.

나는 한국 독립전쟁의 의병 참모중장 자격으로 하얼빈에서 이토를 죽였다. 그러므로 이 법정에 끌려 나온 것은 전쟁에서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객으로서 신문을 받을 이유가 없다. 이토가 한국 통감이 된 이래 무력으로 한국 황제를 협박하여 을사년 5개 조약, 정미년 7개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한국에서 의병이 일어나서 싸우고 있고 일본 군대가 진압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의 전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38p)

몸과 총과 입으로 말하다

안중근은 다양한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2009년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기념한 뮤지컬 <영웅>은 독립군과 일본군의 치열한 전투를 생동감 있게 전달했다. 올해에는 뮤지컬 <영웅>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할 예정이다. 2016년 MBC <무한도전> ‘위대한 유산 편’에서는 무도 멤버 양세형과 비와이가 안중근 의거를 모티프로 한 곡 ‘만세’를 불렀다.

2022년에는 일제 시대를 살았던 한 인간으로서의 안중근이 소설 <하얼빈>으로 재탄생했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내면을 구성하고 이야기로 엮어낸다. 평화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고자 했던 사상가이자, 인간 안중근의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가 한 말과 그가 걸어온 길을 담담히 그려낸다.

나는 안중근의 ‘대의’보다도, 실탄 일곱 발과 여비 백 루블을 지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그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살아있는 몸에 관하여 말하려 했다. 그의 몸은 대의와 가난을 합쳐서 적의 정면으로 향했던 것인데, 그의 대의는 후세의 필생이 힘주어 말하지 않더라도 그의 몸과 총과 입으로 이미 다 말했고, 지금도 말하고 있다. (306p. 작가의 말)

안중근 의사는 동양평화의 길이 어느 한 국가의 확장이 아니라 더불어 화합해 나아가는 것이라 믿었다. 소설 <하얼빈>은 약육강식의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세계평화를 고민하는 청년 안중근의 세계관을 보여주었다.

다시 8.15다. 안중근이 그토록 바라던 광복은 왔다. 하지만 1990년대 초 대한제국과 2022년 한국이 마주한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는 닮아있다. 한국은 다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의 갈림길에 선 듯하다. 정부는 화이부동의 외교를 펼치겠다고 한다. 지금은 어떤 강자의 편에 설 것인가의 논리가 아닌, 어떤 평화의 길을 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안중근의 마음을 되돌아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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