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영화 ‘애프터 양’

영화 <애프터 양>은 제목 그대로 인공지능로봇 ‘양’(저스틴 H. 민)의 전원이 꺼진 이후 남은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인간이 인공지능로봇과 구별 지을 수 있는 다른 점은 무엇일까. 방대한 지식 저장 능력과 몇 초 만에 계산해 내놓는 수학 문제 정답 등 알고리즘 세계를 인간은 따라잡을 수 없다. 인간답다고 말할 때 대부분 기계적이지 않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기계적이지 않다는 건 사람의 감정을 읽는다는 의미다. 감정을 통해 교류한다는 의미다. 즉, 감정을 느낄 수 있느냐 아니냐가 인간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기준점이 된다.

만약 감정의 알고리즘을 로봇이 파악한다면 그 로봇은 인간인가, 기계인가.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 복제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다룬 <애프터 양>은, 기계와 다른 인간다움을 ‘기록’이 아닌 ‘기억’을 한다는 데 있다고 본다. 지식을 쌓는 게 기록이라면 기억은 기록과 기록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을 살피는 일이다.

영화 '애프터 양'의 포스터. 가족 구성원 모두 서로 바라보는 곳이 다르다. 모두 같이 한곳을 바라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출처 왓챠·영화특별시SMC
영화 '애프터 양'의 포스터. 가족 구성원 모두 서로 바라보는 곳이 다르다. 모두 같이 한곳을 바라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출처 왓챠·영화특별시SMC

<애프터 양>은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의 코고나다 감독이 연출한 두 번째 장편 영화이자 <미나리> 제작사 A24의 신작이다. 제74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공식 초청되었고, 제38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알프레드 P. 슬로안 상'(Alfred P. Sloan Feature Film Prize)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는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초청돼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미국 단편소설 작가 알렉산더 와인스틴의 단편 <양과의 안녕>이 원작으로, 세계적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영화음악을 맡아 더 화제가 됐다.

로봇의 기억을 통해 인간의 근원을 묻다

<애프터 양>은 인공지능로봇 양에 저장된 기록을 더듬으며 인간의 기억이 어떻게 삶에 영향을 끼치는지 성찰하는 독특한 SF 영화다. 주인공 부부 제이크(콜린 패럴)와 키라(조디 터너스미스)는 중국인 딸 미카(말레아 엠마 찬드로위자야)를 입양한다. 미카의 엄마 키라는 중국인인 미카의 ‘뿌리’를 계속 이어주는 게 부모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양부모는 중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지켜주기 위해 중국 문화를 알려줄 ‘세컨드 시블링’, 즉 ‘중국 입양아용 형제자매’ 제품인 양을 구입한다. 중국인의 정체성을 같이 공유해줄 중국인 형제자매 로봇을 살 수 있는 미래인 것이다.

“그냥 애를 키우는 게 아니라 미카의 문화와 유산을 연결해 줘야지. 그건 우리 책임이야.”

아시아인 생김새의 양은 미카가 중국인의 뿌리를 다치지 않고 제이크와 키라의 화분 속에 잘 녹아들 수 있도록 분갈이해주는 존재다. 백인 아빠와 흑인 엄마와 동양인 딸 미카가 가족의 꼴을 갖출 수 있는 건 인공지능로봇 오빠 양 덕분이다. 학교에서 ‘진짜 부모’가 누구인지 묻는 아이들에게 상처받은 미카는 양에게 지금의 부모님이 ‘정확히 말하면’ 진짜 부모가 아니지 않느냐고 묻는다.

양이 미카에게 접목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접목을 통해 뿌리 찾기란 무엇인지 드러낸다. 출처 왓챠·영화특별시SMC
양이 미카에게 접목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접목을 통해 뿌리 찾기란 무엇인지 드러낸다. 출처 왓챠·영화특별시SMC

“두 나무는 모두 중요해. 이 나무뿐 아니라 가지를 잘라 온 나무도, 다른 가족 나무도 너한텐 중요한 일부야.”

가족의 역할은 외부에서 받은 상처를 보듬는 데 있다. 진짜 부모가 없기에 가족이 없다는 외로움을 미카가 느끼기 전에 양은 ‘가지를 잘라 온 나무’도, ‘다른 가족 나무’도 삶을 지탱하는 데 모두 중요한 일부라고 대답하며 미카의 상처에 연고를 바른다. 상처를 살피는 게 가족이 하는 일이라면 미카와 양의 관계를 가족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로봇은 기계이기에 인간의 가족이 될 수 없다 쉽게 말할 수 있을까. 결국 피와 살로 이어질 수 없더라도 양이 양부모와 미카 사이가 벌어지지 않도록 이 나무와 저 나무 사이를 접붙인 것이다.

접목한다는 건 정체성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이질적인 두 나무가 제대로 접목되기 위해 원래 가지고 있던 뿌리도,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토양도 버릴 수 없다. 영화는 뿌리를 찾는다는 것은 어떤 하나의 ‘근원’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이루고 있는 것들을 살피는 일임을 강조한다. 중국인으로 존재하는 미카가 아닌, 제이크와 키라 사이의 딸로서 중국인 미카의 존재를 살필 때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정체성은 국적이나 혈연, 자신이 소속해 있는 문화권에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 융화되고 연결돼 있는지 살필 때 사유할 수 있는 것이다.

양과 제이크, 키라, 미카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가족 사진을 찍고 있다.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던 '애프터 양' 포스터 속 구도와 사뭇 다르다. 출처 왓챠·영화특별시SMC
양과 제이크, 키라, 미카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가족 사진을 찍고 있다.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던 '애프터 양' 포스터 속 구도와 사뭇 다르다. 출처 왓챠·영화특별시SMC

코고나다 감독은 미국계 한국인으로서 자신이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정체성에 관한 고민이 깊었다. 이런 고민은 <파친코>에서 한인 이민 가족 4대의 삶을 그리는 열망이 됐고, <애프터 양>에서 정체성의 뿌리를 좇는 동력이 됐다. 인간의 뿌리는 어디에 존재하는지 고민했던 감독의 고뇌가 <애프터 양> 안에 담겼다.

정체성 뿌리를 찾는 게 아닌, 접목을 느끼는 일

3색 인종과 하나의 안드로이드가 모여 완벽한 가족으로서 작동하던 평온함은 양이 갑자기 작동을 멈춘 이후 깨진다. 아빠인 제이크는 딸 미카를 대신해 양을 고치려 수리점에 방문한다. 그곳에서 제이크는 양의 특별한 능력을 발견한다. 다른 안드로이드와 달리 기억을 저장하는 장치가 있던 것. 제이크와 키라 부부는 테크노 사피엔스를 연구하는 학자가 제공한 디바이스로 양의 몸속 메모리 폴더를 열어본다. 그 장치에 저장된 건 양과 함께한 자신들의 과거뿐만 아니라 양과 시간을 나눈 다른 주인들의 세월도 있었다.

그 기록 속에는 양의 지난 주인들의 죽음이 있었다. 한 주인이 죽으면 다른 주인을 만나고, 다른 주인이 죽으면 또 다른 주인을 만난다. 사람과의 헤어짐과 만남이 반복돼 저장된 양의 기록은 제이크와 키라에게 로봇에 저장된 정보인지, 양이 가진 기억인지 혼돈을 준다. 단순한 정보 저장이라고 볼 수 없는 방대한 기록은 양의 기억같이 느껴진다. 기록이 로봇이 하는 일이고, 기억이 인간이 하는 일이라면 양은 로봇인가, 인간인가.

양이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자신의 머릿속에 저장된 게 기억인지 기록인지 혼돈스럽다. 출처 왓챠·영화특별시SMC
양이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자신의 머릿속에 저장된 게 기억인지 기록인지 혼돈스럽다. 출처 왓챠·영화특별시SMC

“저도 차에 관해 더 깊이 느껴 보고 싶어요. 차에 관한 진짜 기억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이크는 언젠가 양과 차맛과 찻잎을 우리는 물의 온도를 이야기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양은 차에 관한 많은 ‘지식’은 알고 있지만, 제이크가 느끼는 ‘맛'과 ‘온도’는 모른다고 말한다. 양은 차에 관한 정보가 줄 수 없는 찻잎의 흙맛과 뜨거운 차 온도를 느끼고 싶어 한다. 양에게 차맛은 단순히 지식으로서 존재하는 기록이라면, 제이크에게 차맛은 혀끝으로 느끼는 기억이다.

코고나다 감독은 미국계 한국인으로서 자신은 미국인인지 한국인인지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에게 한국인은 부모 세대가 물려준 정체성이다. 한국은 부모의 언어와 식성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고 배운 지식이다. 마치 인공지능로봇이 습득한 지식과 같다. 한국인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그는 한국을 알지 못한다. 양이 차에 관해 알고 있지만 느끼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다문화 가족이 많아지고 있다. 국적과 인종이 다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가 늘어나고 있다. 또, 부모와 자식이 피로 이어져 있지 않은 입양아 가족도 늘고 있다. 정상가족 범주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를 띤 가족이 많아지고 있다. 아이가 겪을 정체성 혼란을 가족 안에서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 <애프터 양>은 고민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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