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그림책 '왼손에게'

'왼손에게'는 왼손과 오른손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이야기 한다. 사계절 출판사 제공
'왼손에게'는 왼손과 오른손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이야기 한다. 사계절 출판사 제공

‘외다’는 ‘그르다’의 옛말이다. 오른쪽은 옳은 방향이지만 왼쪽은 그른 방향을 말한다. 거의 모든 인간의 언어는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좋은 것은 오른쪽(right), 안 좋은 것은 왼쪽(left)로 표현하는 게 일반적이다. 한지원 작가의 그림책 <왼손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으며 살아온 오른손과 그렇지 못한 왼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오른손잡이인 한 작가는 무거운 짐을 들고 나서 빨개진 오른손을 보며 '내가 오른손이면 화가 나겠는데?'라는 생각을 떠올린 것이 책의 시작이라고 했다.

똑같이 생겼으나 서로 다른 것

겉보기에 오른손과 왼손은 똑같이 생겼다. 출처 사계절 출판사
겉보기에 오른손과 왼손은 똑같이 생겼다. 출처 사계절 출판사

오른손은 억울하다. 숟가락질, 글쓰기, 양치질, 머리 빗질 등 살면서 필요하고 중요한 일은 오른손이 도맡아서 하고 있다. 반면에 왼손은 반지, 시계 등 화려한 것을 독차지한다. 왼손은 핸드크림, 스킨, 로션 등 화장품을 찍어 바를 때 누구보다 먼저 다가와 슬그머니 손을 내민다. 얄밉다. 오른손과 왼손은 겉보기에 다를 게 없다. 앞에서 봐도 똑같고, 뒤에서 봐도 똑같이 생겼다. 똑같이 생겼으나 오른손이 왼손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오른손은 왼손보다 더 많은 일을 도맡아서 하고 있다. 출처 사계절 출판사
오른손은 왼손보다 더 많은 일을 도맡아서 하고 있다. 출처 사계절 출판사

나와 다른 입장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요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매니큐어를 바르며 꾸며주는 그 날 사달이 났다. 오른손은 왼손을 예쁘게 꾸며주었으나, 모든 일에 서툴고 어려워하는 왼손은 바들바들 떨면서 오른손 손톱에 매니큐어를 삐뚤빼뚤 발랐다. 엉망이었다. 둘은 서로에게 화를 냈다.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아니야 나도 열심히 했어.” 거친 말이 오가다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둘은 주먹을 쥐고 다투기 시작했다. ‘쿵’ 소리가 났다. 오른손이 다쳤다. 사람들은 모두 “하필이면 오른손을 다쳤네”, “맞아. 왼손도 아니고 말이야”라며 오른손 편을 들었다. 왼손은 바보같이 듣고만 있었다. 왼손은 오른손이 하던 일을 해보려고 노력했다.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했지만, 오른손처럼 할 수 없었다.

한지원 작가는 지난달 15일에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진행된 <왼손에게> 라이브 북토크에서 왼손과 오른손에 관해 이야기 했다. 한 작가는 왼손과 오른손의 관계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가족’에 빗대어 표현했다. 누군가는 오른손처럼 묵묵히 더 많은 일을 하고, 누군가는 왼손처럼 서툴러 일을 덜하는 관계가 가족 안에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 관계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 품에서 모든 것을 배웠던 어린 아이가 시간이 지나고 엄마에게 스마트폰 기능을 알려주는 것을 볼 때 처럼, 왼손과 오른손의 역할은 언제나 바뀔 수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런데 오른손과 왼손이 하는 일을 놓고 보면 작가가 언급한 것 이외에도 서로의 차이가 드러나기도 한다. 왼손은 행동이 서툰 어린이, 움직임이 불편한 장애인, 차별을 겪는 미숙련 저임금 노동자에 가깝지만, 오른손은 모든 것이 익숙한 성인, 움직임에 불편이 없는 비장애인, 그리고 숙련된 정규직 노동자에 가깝지는 않을까? 오른손이 더 많은 일을 하는 만큼 더 대접받는 한편, 왼손은 일을 덜 하는 대가로 차별을 겪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만약 독자가 오른손잡이가 아닌 왼손잡이라면 정확히 그 반대가 되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오른손과 왼손은 서로의 다름을 그저 다른 것으로만 알고 있어도 될까?

한 손으로는 안 되지만 두 손을 맞잡으면 할 수 있는 일

왼손도 오른손도 혼자서는 “짝” 소리를 낼 수 없다. 사계절 출판사 제공
왼손도 오른손도 혼자서는 “짝” 소리를 낼 수 없다. 사계절 출판사 제공

혼자서 많은 일을 하던 오른손도, 서투르기만 했던 왼손도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 작품 속에 언급됐다. 바로 박수를 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한 손으로 박수를 칠수도 손을 잡을 수도 없다. 상대방을 미워하고 혐오하는 것만으로 어떤 일도 해결되지 않는다.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헐뜯기보다 맞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지원 작가는 그림책 <왼손에게>를 통해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맞잡는 연대를 이야기 하고 있다. 책 소개를 통해 “티 나게 고생하는 오른손과 묵묵히 애쓰는 왼손을 모두 응원한다”고 말하는 작가는 오른손잡이 입장에서 쓴 책이라 왼손잡이들이 소외감을 느낄까 걱정된다면서 “명칭보다는 오른손과 왼손의 관계에 주목해달라”고 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던 왼손과 오른손이 함께 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작가는 <왼손에게>를 통해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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