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팩추얼 웹툰 창작단 역습: 역사를 습작하다

이야기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한 단계 더 진화했다. 이제는 완성된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에는 부족한 내용을 출연진의 아이디어로 채워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프로그램이 등장한 것이다. 지난 11월 6일부터 27일까지 JTBC의 시사교양 팀 팩추얼이 4부작에 걸쳐 선보인 <팩추얼 웹툰 창작단 역습:역사를 습작하다(이하 역습)>이 그렇다. 제목 그대로 웹툰 창작단으로 구성된 패널들이 웹툰을 만들기 위해 역사적 사실의 부족한 고리를 상상으로 그려보는 과정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역사가의 기록에는 공백이 존재한다. 그 공백을 각자가 가진 상상력과 전문 지식으로 메우는 것이 웹툰 창작단의 역할이다. 

웹툰은 거들 뿐, 메인은 토크
<역습>은 바둑판, 검, 무덤, 절 등 특정한 대상을 하나의 소재로 소개하며 시작한다. 방송 초반부에 제시되는 그날의 소재는 일단 대단한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은 기대를 자아내며 등장한다. 그런 기대감을 시청자에게 전달한 뒤 출연자들은 각각의 전문성을 동원해 이야기의 힌트가 될 수 있는 지식을 전달하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을 돕는다.

1회 초반부에 등장한 소재 ‘목화자단기국’의 모습. 목화자단기국을 앞에 두고 둥그렇게 둘러앉은 패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방송 화면 캡처.
1회 초반부에 등장한 소재 ‘목화자단기국’의 모습. 목화자단기국을 앞에 두고 둥그렇게 둘러앉은 패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방송 화면 캡처.

<역습>의 포맷은 역사 토크쇼라고 할 수 있다. 배우, 영화감독, 웹툰 작가, 소설가, 역사연구소장 등 다양한 출연자들을 패널로 내세우는 것도 기존 역사 토크쇼들과 비슷하다. 다만, 각각의 패널들은 웹툰 창작단원이라는 이름을 갖는다. 김규리 배우는 소재를 제시하고 전문가 출연진들의 말에 반응하며 시청자 대신 질문을 던진다. 변영주 영화감독은 영화감독으로서의 이야기 능력을 살려 역사적 사실을 그림 그리듯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종범 웹툰 작가, 장강명 소설가, 심용환 역사연구소장 등은 본인의 전문성을 살려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과 관점을 제시하거나 하나의 사건을 완성된 이야기로 구성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을 완성해간다.

역습의 다섯 출연진이다. 순서대로 김규리 배우, 변영주 영화감독, 이종범 웹툰 작가, 장강명 소설가, 심용환 역사연구소장. 서로 다른 관점과 캐릭터를 담당하고 있다. 방송 화면 캡처.
역습의 다섯 출연진이다. 순서대로 김규리 배우, 변영주 영화감독, 이종범 웹툰 작가, 장강명 소설가, 심용환 역사연구소장. 서로 다른 관점과 캐릭터를 담당하고 있다. 방송 화면 캡처.

이들의 토크는 시간을 거듭해가면서 역사의 기록으로 남지 않은 빈틈으로 향해간다. 비어있는 이야기의 고리를 메우기 위해 패널들은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결국 패널 각자가 하나의 로그 라인을 만들면서 방송이 마무리된다. 이들이 제시한 두, 세 가지 로그 라인 중 하나는 웹툰으로 창작되어 JTBC 역습 홈페이지와 연동된 카카오 웹툰 페이지를 통해 공개된다. 패널들의 대화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빈틈을 찾아내기까지의 서사, 그리고 그 빈틈을 어떻게 매울지에 대한 토크로 구성된다. 그렇게 본다면 이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포맷에서 핵심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과 비어있는 연결고리를 채우는 상상력으로 이루어지는 토크이고 웹툰은 거드는 역할을 맡는다고 할 수 있다.

역사 토크 프로그램에서도 빠지면 안되는 요소, ‘시의성’

역사 토크 프로그램으로 보면 시의성이 부족했다는 점을 먼저 지적할 수 있다. 방송에서 제시된 소재들은 지금 사회가 닥친 문제나 대중의 관심을 모으는 사건과의 연관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백제 의자왕이 바둑판 ‘목화자단기국’을 일본에 보낸 이유, 조선시대에 살던 곽재우 장군 검의 모양이 다른 검들과 다른 이유 등을 <역습>의 1회와 2회에서 각각 다루고 있다. 3회에서 다룬 가야 여전사의 무덤 이야기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이전보다 확대되고 여러 가지 사회문제에 젠더 이슈가 함께 언급되는 최근의 상황과 어느 정도 연결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언급과 설명은 부족하다. 현재를 살고 있는 시청자가 공감할 부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간과한 것으로 보여 아쉬움을 남긴다. 와불을 다룬 4화의 경우도 와불을 비롯한 새로운 종류의 불상을 왜 이 프로그램에서 굳이 다루고자 하는지 그 역사적 의미가 그리 돋보이지 않는다. 불완전한 이야기를 완성하는 데에 집중한 나머지, 토크에서 다루고자 하는 역사적 사실과 현실 간의 접점을 찾는 것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게 된 것이다.

팩추얼 3화의 한 장면. 다룬 여전사의 무덤을 소재로 가야 여전사의 이야기를 다뤘다. 방송 화면 캡처.
팩추얼 3화의 한 장면. 다룬 여전사의 무덤을 소재로 가야 여전사의 이야기를 다뤘다. 방송 화면 캡처.

<역습>을 비롯한 역사 토크 프로그램은 보통 시청자들이 흔히 알고 있는 왕조 중심의 시대사를 다룬다기보다 구체적인 사건이나 인물 중심의 미시적 접근방식을 취하는 게 일반적이다. <역습>이 시도한 방식은 여기에 더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신선할 수 있지만 왜 그 이야기를 지금 만들어내야 하는지에 대한 시청자의 공감을 얻기에는 부족했다. 역사 토크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KBS <역사저널, 그날>은 2022 카타르 월드컵 시즌에 맞춰 2부작 월드컵 특집을 기획했고 사건 중심으로 근현대사를 주로 다루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는 영화 ‘영웅’의 개봉에 맞춰 안중근 의사를 다룬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웹툰을 역사 토크에 활용한 새로운 접근은 충분히 신선했지만 그것이 주효하기 위해서는 시청자들이 공감할 만한 시의성 있는 소재를 발굴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짜임새 있는 토크 연출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토크 프로그램으로서 내용 구성면에서도 아쉽다. 토크에서 궁금증을 유발하고 그에 대한 여러 가지 가능성을 따져보는 구성이 단단하지 못해서 토크 자체의 재미를 끌어내는 게 부족했다. <역습>에서의 토크는 겉으로 보기엔 유기적이지만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서 보면 병렬적인 것에 가깝다. 질문을 던지고 패널의 의견에 반응하는 역할을 맡은 김규리 배우는 각기 다른 전문성을 가진 패널들의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흐름을 잡아가야 했다. 하지만 김규리 배우의 역할은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확장시켜가는 데에 그치고, 이야기를 한 데 모으는 데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김규리 MC의 역할이 명확해 지려면 웹툰 창작이라는 토크의 궁극적 목적 앞에 하나의 더 작은 목표가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완결된 이야기가 되기에 부족한 부분은 무엇이고, 패널들의 상상력과 역사적 해석은 어떻게 그 부족함을 메워가는지가 보다 생생하게 드러나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MC를 통해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장 아쉬운 건 프로그램의 마무리다. 프로그램 막바지 5분가량 출연진들이 서로 다른 로그라인 3개를 만드는 시간이 있다. 이 로그라인 중 하나 또는 두 개가 웹툰 작가들의 손에서 재조합 되어 실제 웹툰으로 창작되고 카카오페이지에 업로드 되었다. 방송 외적으로는 하나의 완결성 있는 결말을 이루어냈지만, 50분 분량의 방송 안에서 어떤 결론이 나와 웹툰으로 이어지는지가 나타나지 않은 점은 자칫 프로그램의 의도와 다른 결말로 비칠 수 있어 보인다.

출연진들이 만든 로그라인을 웹툰으로 구현한 화면. 한 회차에 3개의 로그라인이 만들어진다. 방송 화면 캡처.
출연진들이 만든 로그라인을 웹툰으로 구현한 화면. 한 회차에 3개의 로그라인이 만들어진다. 방송 화면 캡처.

토크를 중심으로 하는 교양 프로그램의 포맷은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최근까지 인기를 끌고 있는 SBS의 <꼬꼬무>와 <당신이 혹하는 사이(이하 당혹사)>에서는 궁금증을 가진 사람과 궁금증을 풀어주는 사람의 포지션이 명확히 구분된다. 그리고 묻는 이와 듣는 이들은 서로 ‘공감’한다. <꼬꼬무>에서 듣는 이는 이야기꾼이 전하는 새로운 사실에 놀라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감동하기도 하면서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는 과정을 거친다. 시청자들은 듣는 이의 자리에 자신이 함께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으며 프로그램에 몰입하게 된다. <역습>이 토크 프로그램을 힘 있게 만드는 ‘공감’이라는 점을 강화할 수는 없었을까.

공감 말고도 토크 프로그램을 강화할 수 있는 장치는 또 있다. 궁금증을 개연성있는 논리로 채워나가는 것이다. <당혹사>는 연결고리가 빠져있는 사건을 다룬다는 면에서는 <역습>과 더 유사한 프로그램이다. 의문을 남긴 미스터리를 두고 음모론에 입각해 의견을 제시하는 패널들과 그 음모론을 반박하는 의견으로 미스터리를 풀고자 하는 상대 패널들이 출연한다. 패널들은 각자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가 위한 자료를 상대 패널들에게 설명하고 이를 논증해간다. <당혹사>의 강점인 패널들의 역할 배분과 사전 학습은 <역습>에서 각각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만 숙지해서 오는 방식과 차이가 있다. 출연자들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역습>의 접근방법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의문을 채워가는 논증과 그에 필요한 치밀한 조사가 필요하지는 않았을까.

웹툰: 이야기 콘텐츠로서의 재미가 가장 중요한 장르

웹툰에 대한 관심을 방송 프로그램으로 끌어오려는 시도에서 출발한 점은 새로운 접근방법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웹툰에 열광하는 이유가 재미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라는 점은 깊이 고려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기획 의도는 ‘창작자들의 상상력이란 살을 붙여 역사 속 빈틈을 메우고 독자에게 사랑받을 웹툰의 줄거리를 완성해본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궁극적 목표는 사랑받을 웹툰의 줄거리를 완성하는 과정인데, 정작 줄거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재미 요소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그런 결점은 방송으로 그대로 나타났다. 패널들 중에 소설가가 있기는 하지만, 스토리텔링적 요소에 대한 언급을 하거나 이야기의 흐름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웹툰이라는 요소가 프로그램에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웹툰의 본질인 ‘콘텐츠로서의 재미’가 우선 충족되어야 한다. 웹툰의 소재로 다뤄질 이야기가 재미있어야 웹툰도 재미있을 수 있다. 프로그램의 주요 소재와 관련 이야기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인기 있는 웹툰이 가진 트렌디함과 유머코드가 반영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MZ세대와 X세대의 차이’ 등의 소재나 ‘하이퍼리얼리즘’등의 방식이 녹아있는 역사적 순간을 방송에 담아냈더라면 시청자들의 더 큰 공감을 유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웹툰의 활용은 적절했나

웹툰에 대한 면밀한 연구나 고려가 없었던 것은 웹툰을 단지 재연을 대신하는 도구로 사용한 것 같은 결과로 이어진다. 역사 토크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실을 고증할 수 있는 사료와 사진, 유물과 유적이다. 그런 자료들이 남아있지 않은 것을 웹툰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건 프로그램의 강점이 될 수도 있었으나 실제 프로그램에서 웹툰이 표현한 부분들은 상상해 낸 것들이라기보다 이미 사료로 알려진 것들이 많았다.

팩추얼 4화의 한 장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를 돕는 장치로서 웹툰을 활용하고 있다. 방송 화면 캡처.
팩추얼 4화의 한 장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를 돕는 장치로서 웹툰을 활용하고 있다. 방송 화면 캡처.

웹툰은 감정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매체이기도 하다. 전문가로 구성된 패널들끼리 사실과 지식을 중심으로 이야기하 보니 역사적 사실을 정리하는 부분에서도, 웹툰의 로그라인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부각되지 않는다. 웹툰이라는 시각적 장치가 인서트 화면으로 쓰이는 만큼, 사전 제작된 인서트용 웹툰들을 오히려 출연진들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사용했더라면 보다 감정 위주의 대화가 나오고 웹툰을 창작하는 과정에서도 출연진들이 사건을 보고 느낀 감정에 대한 교류가 더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았을까 한다.

역사 토크와 웹툰이 시너지를 내려면

결국 역사 토크와 웹툰이라는 서로 다른 콘텐츠의 협업은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는 의미 있었지만 각각의 장르가 가진 장단점을 어떻게 융합할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웹툰의 재미와 역사의 재미가 서로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반감시킨다면 시도의 의미조차 살리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나의 콘텐츠가 다른 종류의 콘텐츠와 만나 새로우면서도 매력 있는 장르를 만드는 것은 이른바 크로스 미디어 시대에 필요한 도전이기도 하고 자연스런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나은 콘텐츠로 확장될 가능성을 가진 만큼 원재료의 강점을 희석시킬 위험도 갖고 있다. 기술 발전과 콘텐츠 분화에 적응하기 위한 창작자들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역습>이 남긴 공과 과는 충분히 음미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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