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인터뷰] 김보현 ‘뉴스민’ 기자

2012년 5월 1일 창간한 <뉴스민>이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뉴스민>은 대구·경북의 뉴스를 다루는 지역 언론이자, 정치와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 언론을 표방하는 인터넷 매체다. 창간 주역은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들이었다. 창간 당시 천용길 대표와 이상원 편집장은 27살, 25살이었다.

처음에는 지역 문제 가운데 노동 문제에 집중했다. 창간 이후 6개월 동안 <뉴스민> 기자들은 노동 집회 현장을 주로 취재했다. 그런데 들여다볼수록 노동 문제를 둘러싼 여러 측면이 보였다. 지역 노동 문제는 지역 경제와 직결돼 있었다. 일자리 부족이 심각한 지역 특성상 행정기관이 나서서 기업에 혜택을 주고 노동 문제에 적극 개입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노동뿐 아니라 경제, 교육, 환경, 인권 등 보도 영역을 넓혔다.

특정 단체나 개인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독자 후원금의 최대액수를 5만원으로 제한했다. 광고도 기사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만 받았다. 대신, 대표를 비롯한 구성원들이 강연이나 방송에 나가 번 돈을 보태 회사를 유지했다. 처음에는 50만 원이었던 상근 기자의 월 급여는 지난 2019년 최저임금 수준이 됐다.

기자도 늘어 지금은 천용길 대표와 4명의 기자가 <뉴스민>을 만든다. 지난해 처음으로 신입 기자를 공개 채용했고, 올해는 첫 경력 기자를 뽑았다. 경력 기자가 합류하면서 경제 분류도 신설했다. 첫 경력 신입은 서울의 중견 언론에서 일하다 지역 독립 언론으로 이직해 언론계 안팎에서 화제가 됐다. 그의 이직 이유를 궁금해 하는 사람도 많았다. 김보현(29) <뉴스민> 기자를 지난 9일과 29일 두 차례에 걸쳐 대구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김보현 기자가 단비뉴스와 만나 뉴스민에 오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박동주 기자
김보현 기자가 단비뉴스와 만나 뉴스민에 오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박동주 기자

김 기자는 대학 때부터 7년 가까이 대구에 살았다. 학보사 기자 시절 취재원을 확보하려고 동아리를 서너 개씩 했다. 비영리 사단법인 '대구시민센터'(현재 대구시민재단)에서 일할 땐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사업을 맡아 시민 활동가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그에게 대구는 자신의 힘으로 관계를 맺고 넓힌 곳이다.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났지만 고향은 대구라고 생각할 만큼 애정이 깊었다.

2019년, 그는 대구를 떠나 서울의 <일요신문>에 입사했다. 이후 <일요신문>의 자매지인 <비즈한국>에서 3년 동안 일했다. 주로 유통, 물류, 스타트업에 관한 경제 기사를 썼다.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한 김 기자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울면서 기사를 쓸 정도로 (경제를) 공부했다”고 했다. “잘 모르는 채로 기사를 쓰지 않는 전문성”을 갖추고 싶었다.

조금 익숙해질 무렵부터 욕심이 생겼다. 기존 보도와 다른 보도를 하고 싶었다. “비슷비슷한 기사를 하나 더하는 것 같은 느낌”은 그만 받고 싶었다. “한 곳에 뿌리내리고 싶다”는 생각도 커졌다. 바로 대구가 떠올랐다. 지역에 발 딛고 남다른 기사를 쓰고 싶은 그에게 <뉴스민>은 이상적인 매체였다. 서울의 경제 매체를 떠나 대구의 독립 언론에 정착하게 됐다.

주주가 아닌 시민의 눈으로 보는 지역 경제

<뉴스민> 이직 이후 “서울에선 너무 당연하게 여러 경제지 기자들이 썼을 만한 정보성 기사조차 대구에선 잘 안 나오는 경우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2019년 기준, 대구·경북의 신문사만 590개인데, 대다수가 관청이나 기업의 보도자료에 의지해 기사를 썼다. 대표적인 기사가 대구 백화점(이하 대백)의 폐점이었다. 대구의 랜드마크로 통했던 대백은 전국에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지역 기업 소유의 백화점이기도 했다. 폐점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지역 언론 어느 곳도 원인과 과정, 전망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이 문제를 공론화하려는 시민단체도 없었다.

대구의 대표적 중심가였던 동성로 한복판 대구백화점 본점이 지난해 7월 1일 문을 닫았다. 출처 뉴스민
대구의 대표적 중심가였던 동성로 한복판 대구백화점 본점이 지난해 7월 1일 문을 닫았다. 출처 뉴스민

김 기자는 지난 12일 ‘대백 폐점 1년’을 두 편으로 나눠 <뉴스민>에 보도했다. 지난해 문을 닫은 뒤 매각과 철거, 새로운 건물 입주가 예정됐지만 모두 미뤄지고 있는 상황을 담았다. 매수하기로 한 제이에이치비홀딩스와 매각하려는 대백 양쪽의 입장을 설명하고, 부동산 시장 침체와 기준금리 인상 등 거래가 미뤄진 이유도 짚었다.

취재 과정에서 놀랄 만한 사실도 알게 됐다. 대구의 많은 기업들은 홍보팀을 따로 두지 않았다. 취재를 위해 문의해도 마땅히 답할 사람이 없었다. “지역 언론이 지역 기업을 감시하지 않으니, 기업 입장에선 홍보팀을 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김 기자는 생각했다.

김 기자에겐 꼭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홍보팀에서 내놓은 공식 입장과 보도 자료가 아닌 취재원을 만났다. 대백 근처에서 장사하다 주변 상권이 붕괴하며 고전하고 있는 상인들, 구청 공무원들, 구의원들을 일일이 직접 만났다. 대구상공회의소, 한국 거래소 등에서 자료를 찾아 공부하고 분석했다. 이런 취재를 통해 시민의 시선에서 피해와 대안을 검증했다.

‘대백 폐점 1년’ 기사를 쓰면서, 김 기자는 경제 이슈를 행정, 노동 등 다양한 영역과 연결지으며 스스로 분석하는 힘이 생겼다는 느낌을 받았다. <뉴스민>이 “기업과의 관계에서 자유로운 덕에 문제를 다각도에서 볼 수 있었다”는 점도 김 기자에게 도움이 됐다. 오랫동안 꿈꿨던 ‘경제 기자로서의 전문성’을 구축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울 중심주의’ 렌즈 벗기

김보현 기자는 경북 봉화군 억지춘향시장을 비롯한 경북 각지 시장에서 직접 사람들을 만났다. 출처 뉴스민
김보현 기자는 경북 봉화군 억지춘향시장을 비롯한 경북 각지 시장에서 직접 사람들을 만났다. 출처 뉴스민

보도 자료에 기대지 않고, 이슈 현장의 당사자를 직접 만난 취재의 또다른 결실은 ‘농민수당’ 기사였다. 김 기자는 5월 9일부터 15일까지 경북 봉화군과 의성군, 안동시 등을 돌며 취재한 ‘농민수당’ 기사 7편을 보도했다. <뉴스민> 10주년 특집 기획이었다.

이 기사를 위해 농민수당, 농촌 기본소득 등 개념부터 공부했다. 지역별로 도입된 과정이나 형식이 달랐다. 자료가 적어 현장 인터뷰를 많이 모았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장날마다 경북 사람들에게 묻고 배웠다.

김 기자는 대구·경북에서 일하고 활동하는 젊은이들을 인터뷰하는 ‘서울 밖의 청년들’ 시리즈도 기획했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왜 서울에 안 가고 대구경북에서 일하는지’를 묻게 됐다. 대구에서 디자인 공방을 하는 청년, 경북 경산에서 치유 농업을 하는 청년을 만날 때도 그렇게 물었다. 디자인 공방이건 치유 농업이건 서울이나 수도권에 가는 게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전제를 둔 질문이었다.

이상원 편집장은 김 기자의 그 물음에 질문을 던졌다. 왜 그런 의문을 가져야 하는지 물었다. 그 관점 자체가 ‘서울 중심주의’를 공고히 한다고 했다. 대구를 고향처럼 아끼고, 대구에서 꽤 오래 지냈으며, 지역 언론에서 희망을 찾은 김 기자조차도 “서울에 가지 않고 대구에 있는 걸 신기하게 여기는 주류의 시선”을 갖고 있었다. 이후 김 기자는 “‘서울 중심주의’를 더 벗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됐다.

“자기 내면 깨는 걸 즐기는 사람이 기자”

김보현 기자는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한 말을 벗어나지 않는 기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박동주 기자
김보현 기자는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한 말을 벗어나지 않는 기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박동주 기자

<뉴스민>에는 정치부, 사회부, 경제부 등의 부서가 없다. 대신 각자의 주제나 영역이 있다. 이상원 편집장, 2015년 입사해 8년차인 박중엽 기자, 지난해 신입으로 입사한 장은미 기자, 그리고 김보현 기자 등 네 사람이 각자 주력하는 영역을 갖고 있다. 이직 전 언론사에 그대로 남았다면 “천천히, 모르는 척도 하고 선배도 따라다니면서 배울 ‘애기 연차’지만 <뉴스민>에서는 김 기자의 책임이 크다. 경제 분야를 전담하는 선배나 데스크 없이 혼자서 경제 뉴스를 도맡기 때문이다.

늘 혼자인 것만은 아니다. <뉴스민> 기자라고 소개하면, 지역 주민, 노조 간부, 시의회와 구의회 관계자들이 하나라도 더 이야기해주려고 애썼다. 정당과 정치 성향에 관계없이 그들은 <뉴스민>을 신뢰했다. “지역에서 10년 동안 선배들이 좋은 기사를 꾸준히 써 온” 덕분이었다. 지역에 뿌리내린 언론이 지역 사회에 필요한 기사를 쓰면 지역민 사이에서 어떤 신뢰를 쌓을 수 있는지, 김 기자는 실감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어려웠을 경험이다. “지역이야말로 (기자로서 일하는)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김 기자가 <단비뉴스>에 책 한 권을 건넸다. 지난 24일 취재한 쿠팡 칠곡 물류센터 사고사 유족 장덕준 씨 어머니가 낸 책이라고 했다. 김 기자는 경제에 더해 노동 문제도 함께 담당하게 됐다. 제조업체가 많은 대구와 경북에서는 경제 문제를 노동과 떼어놓기 어렵다. 김 기자는 앞으로도 경제 문제와 노동 문제를 여러 영역과 관점에서 다각도로 들여다볼 생각이다. 김 기자가 생각하는 기자는 ”스스로를 괴롭혀서 고정관념이나 한계를 깨는 걸 즐기는 사람”이다. <뉴스민>에서 스스로를 깨고 지평을 넓히며, 김 기자는 경제 전문 기자로 성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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