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의 다문화 인구동태 자료를 보면, 한국의 ‘다문화 혼인’은 2020년 기준 전체 혼인의 7.6%를 차지한다. 그 가운데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이 결혼한 비율은 다문화 혼인의 66.4%에 이른다. 얼추 계산해보면, 요즘 결혼하는 20쌍 가운데 1쌍 정도는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의 짝이다. 2013년 이후 지금까지 최근 10년만 따져봐도, 다문화 혼인을 한 한국인 남성은 13만 3207명에 이른다. 

그런 세상이 왔어도 일부 한국인들은 외국 여성과 결혼한 한국 남성을 낮잡아 본다. 지난 5월, 서울 은평구 주민센터의 한 공무원이 외국인 아내의 주민 등록 절차를 문의한 한국 남성을 모욕한 일이 있었다. 키르기스스탄 국적의 여성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거지’ ‘찌질이’라며 막말을 한 것이다. 이 사건은 다문화 가정에 대한 한국인의 차별적 시선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충북 제천에 사는 김민기(43) 씨는 그런 시선이 싫다. 김 씨도 다문화 가정을 꾸렸다. 2010년 한국에서 유학 중이던 중국인 진빙(36) 씨를 지인 모임에서 만났다. 사랑에 빠졌다. 2012년 결혼했다. 지금은 10살 아이를 함께 키운다. 그 세월 동안, 한국에서 다문화 가정의 일원으로 사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김 씨는 알게 됐다.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한국인 아버지들이 네트워크를 만들어 정보를 나눈다면 참 좋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지난겨울, 그는 꿈을 이뤘다. 2021년 12월 29일, 다문화 가정 내 한국인 아버지 모임 ‘우리 모두 다 문화 아버지회’가 만들어졌다. 전국에서 최초인지는 단정할 수 없지만, 적어도 충북에서 이런 모임이 생긴 것은 처음이다.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데는 충북국제교육원 북부분원의 도움을 받았다. 충북국제교육원 북부분원이 보유하고 있던 다문화 가정 네트워크를 통해 모임을 알리고, 한국인 아버지들의 참가를 권했다. 

그렇게 모인 한국인 ‘다문화 아버지’는 40여 명이다. 그들이 백년가약을 맺은 상대의 국적은 중국, 캄보디아, 태국, 라오스, 베트남 등 다양하다. 다문화 아버지들의 나이는 30대부터 50대를 망라한다. 그 모임의 초대 회장을 맡은 김민기 씨를 <단비뉴스>가 만났다. 김 회장은 다문화 가정, 그리고 다문화 한국인 아버지의 삶을 담담하게 이야기해줬다. 

다문화 가정에서 겪는 한국인 남편의 고충

한국에서 다문화 가정을 꾸리면, 외국인 여성은 물론 한국인 남성도 힘이 든다. 특히 결혼 생활 초기에는 국내 여러 제도와 관습을 잘 아는 남편이 한국어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아내를 대신해 해결할 일이 많다. 결혼 이주 여성들이 한국 문화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지는 한국인 남편의 관심과 노력에 따라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고 김민기 회장은 설명했다. 

‘우리 모두 다 문화 아버지회’의 김민기 초대 회장이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정예지
‘우리 모두 다 문화 아버지회’의 김민기 초대 회장이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정예지

- 다문화 가정에서 한국인 남편 또는 아버지는 어떤 역할을 맡게 되나요?

“외국인, 결혼 이민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기는 한데, 한국인 남편이 알아봐 주고 도와줘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외국인 여성 스스로 그런 프로그램을 찾거나 이용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러니 여유 시간이 있는 남자와 결혼한 외국인 여성은 빨리 적응해서 잘 생활하지만, 바쁜 사람과 결혼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남편이 도와주지 못하니,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을 수 없고, 그러면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죠. 그게 나중에는 가정불화로 이어집니다. 한국인 남편이 인터넷을 잘 활용하지 못하거나, 지원 제도나 교육에 관심이 없어도 이주 여성들의 활동이 제한되는 문제가 있죠.”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지 못한 결혼 이주민 여성은 대체로 한국어 습득과 한국 문화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의사소통의 문제는 오해와 다툼을 낳는다. 문화의 차이는 ‘한국 사람은 다 그래’라는 실망으로, 가정의 불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한국인 남성이 쥐고 있다. 

그런데 남편 입장에서는 벅찬 일이다. 혼자 먼 나라에 온 아내를 정서적으로 지지해주는 것은 물론, 늘어난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가사 분담과 육아에도 더 활발히 참여해야 한다. 그 와중에 아내를 위한 여러 행정 절차를 남편이 대신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 남편이 나서야 하는 행정 업무가 어떤 건가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무조건 아내와 같이 출입관리소에 가서 체류 비자를 연장해줘야 했어요. 예를 들어, 우리는 제천에 살고 있으니까, 도청 소재지인 청주까지 편도 2시간 정도 걸려서 출입관리소로 가야 하는데, 일이 바쁘면 함께 가기가 어려웠죠. 관공서에서 서류를 떼려고 해도 남편이 직접 가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역에 다문화 가정이 많아 각종 지원 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기는 한데, 이걸 이용하려면 행정 절차가 굉장히 복잡해요. 그런데 아내 혼자 그 절차를 밟을 수 없으니, 내가 꼭 나서야 하거든요. 관공서에 가려면 평일 낮 시간을 내야 하는데, 나는 회사에서 일이 있단 말이죠. 그러다 보면 ‘안 받고 말지’ 싶은 마음이 생겨요.”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은 결혼이민비자인 F-6를 받아 지낸다. 부부 사이에 아이가 없다면 F-6 비자를 1년마다 갱신해야 한다. 자녀를 양육중이면 최대 3년마다 체류 연장을 받는 것이 가능하다. 2011년까지는 결혼 이주민 여성의 F-6 비자를 갱신할 때마다 한국인 남편의 신원보증이 필요했다. 하지만 신원보증제가 결혼 이주민 여성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있어 법무부는 2011년 한국인 배우자의 신원보증 제도를 폐지했다. 여전히 결혼 이주민 여성이 남편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남아있다. 자녀 양육지원 등의 이유로 부모님을 한국으로 초대하기 위해서는 '결혼이민자의 부모 등 가족 방문동거(F-1-5)' 비자를 신청해야 하는데, F-1-5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한국인 남편의 '초청장' 서류가 필요하다. 

지난 6월 ‘우리 모두 다 문화 아버지회’ 모임에는 회원들의 아내도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어느 결혼 이주민 여성이 시청에서 겪은 일을 들려줬다. 시청에 찾아가서 아이의 여권 발급을 신청했는데, 시청 직원이 서류 접수를 거절했다는 것이다. ‘결혼 이주 여성은 자녀의 여권 발급 신청을 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외국인 등록증을 갖고 있는 경우에는 자녀의 여권 발급을 신청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항의했지만, 시청 직원은 도움을 주지 않았다. ‘한국인 남편을 데려오라’고만 말하며 이주민 여성을 상대하려 들지 않았다. 

대놓고 다문화 가정을 혐오하는 사람들

한국인 남편과 외국인 아내가 법과 제도의 장벽을 함께 넘는다 해도, 매연처럼 번지는 배타적 여론이 이들을 힘들게 한다. 외국인 여성이 살던 나라와 한국 사이에 문제나 다툼이 생기면, 다문화 가정은 덩달아 긴장한다. 김치를 중국 음식이라고 한 ‘파오차이 사건’ 등 한국과 중국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주변 사람들이 아내 진빙 씨에게 “중국 사람들은 왜 그러냐”며 힐난을 섞어 묻는다. 그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남편에게 전해지고, 부부는 남모르는 속앓이를 한다. 

더 근본적인 차별도 있다. 김 회장은 아내와 결혼할 때 "‘짱×’랑 결혼하네?”라는 말을 들었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흑인을 폄훼하는 멸칭인 ‘N word’의 사용을 아예 금기시한다. 한국에는 국적 또는 인종을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단어를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랑 앞에서 대놓고 신부를 비하하는 표현을 쓰고도 무엇이 잘못인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김민기 씨는 2010년 중국인 진빙 씨를 지인 모임에서 만났다. 2012년에 결혼하여 지금은 10살 아이가 있다. ⓒ 김민기
김민기 씨는 2010년 중국인 진빙 씨를 지인 모임에서 만났다. 2012년에 결혼하여 지금은 10살 아이가 있다. ⓒ 김민기

김 회장의 아내 진빙 씨는 중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아르바이트했던 가게에서 물건이 도난당하자 절도범으로 몰린 것이다. 다행히 진빙 씨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쓰고 말한다. 누군가 혐오 섞인 말을 하거나 오해해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결혼 이주민 여성, 특히 동남아 여성은 혐오에 더 쉽게 노출된다. 

2020년 현재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 수는 215만 명이다. 전체 인구의 4.1%에 이른다. 외국인이 전체 인구의 5%를 차지하면 본격적인 ‘다문화 사회’로 평가한다. 한국은 그 초입에 서 있다. 그런데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의하면 이주민의 68%가 ‘한국엔 인종 차별이 있다’고 답했다. 다문화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이해가 여전히 낮은 것이다.  

‘우리 모두 다 문화 아버지회’의 김민기 회장은 진정한 다문화 사회를 위해선 결혼 이주민 여성만 교육할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현재의 다문화 교육은 결혼 이주민 여성에게 한국 문화를 수용하라고 안내하는 일방적 교육일 뿐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정말 필요한 일은 국적, 인종, 문화 등에 대한 한국인의 편견을 해소하는 교육이다. 그 출발은 한국인 남편이다. 아내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를 습득하려고 노력하는 만큼, 한국인 남편도 아내를 위해,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김 회장은 생각한다. 

아이들이 어머니 나라의 문화를 배울 기회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에게 어머니 나라의 문화는 하나의 정체성이다. 하지만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는 어머니 나라의 문화를 배제한다. 놀림을 당할까 봐 어머니의 언어는 되도록 쓰지 않는다. 어머니 문화를 배울 기회를 학교가 제공하지도 않는다. 결국 어머니 나라의 문화를 잊지 않도록 하는 것도 다문화 가정의 아버지 몫으로 돌아온다. 이들을 도와줄 제도와 인식이 척박한 한국에서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복덩어리'가 될지, 사회를 겉도는 존재가 될지는 '한국인 아버지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 모두 다 문화 아버지회’는 지난 1월 강사를 초빙해 부모 교육을 진행했다. ⓒ 충북국제교육원 북부분원
‘우리 모두 다 문화 아버지회’는 지난 1월 강사를 초빙해 부모 교육을 진행했다. ⓒ 충북국제교육원 북부분원

‘우리 모두 다 문화 아버지회’는 지난 1월 강사를 초빙해 부모 교육을 진행했다. 4월에는 오프라인 모임을 열었다. 다문화 가정 아버지들이 모여 경험을 이야기하고, 다문화 가정의 아버지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했다. 6월에는 김수완 제천시의원 당선인을 초대해 다문화 가정의 고충을 전달했다. 앞으로는 아이들과 함께 어머니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고 그 언어를 배우는 행사도 열 예정이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한국어와 영어뿐만 아니라 어머니 나라의 말까지 익히면 글로벌 인재로 자라날 수 있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문화와 언어를 이해해야 부모와 자녀 간의 이해를 넓히고 건강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다. 

김 회장은 전국의 다문화 가정 식구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한국 사회의 편견 때문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 것을 압니다. 그분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눈치 보지 말고 세상으로 나오세요.” 그들을 위해서라도 김민기 회장은 ‘우리 모두 다 문화 아버지회’를 전국으로 확대해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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