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인터뷰] 이성훈 국민일보 기자

왼쪽부터 구조된 유기견 ‘마루’, ‘위너’, ‘단지’. 국민일보
왼쪽부터 구조된 유기견 ‘마루’, ‘위너’, ‘단지’. 국민일보

‘마루’, 보호자에게 애교를 보임. ‘위너’, 강제로 만지려고 하면 방어적 입질을 하지만 1주일 이상 지속적으로 만난 사람은 따름. ‘단지’, 26kg의 덩치를 가진 불테리어지만 공격성이 없고 애교가 많음…. ‘개st하우스’에 올라온 소개 글이다.

제각기 다른 얼굴과 다른 특징을 소개하고 있지만, 그들 모두 유기견이다. 사람에게 길러졌기에 사람을 좋아하지만, 버려졌다는 사실에 상처받아 경계하기도 한다. 꾸준한 애정과 관심을 주면 다시 사람을 믿고 따른다. 하지만 마루, 위너, 단지와 같은 유기견들 가운데 절반은 새로운 주인을 찾지 못해 길거리를 떠돌다 자연사한다. 지자체의 동물보호소에 보내져 짧은 생을 살다 안락사 당하기도 한다. 그 수가 상당하다. 2020년 한 해에만 13만 401마리의 반려동물이 버려졌다. 

그런 삶이 눈에 밟혀 지나치지 못한 기자가 있다. <국민일보>에서 ‘개st하우스’ 코너를 운영하는 이성훈 기자다. 임시 구조된 유기 동물이 새로운 가족 품에서 따뜻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기사를 그는 보도한다. 유기견이 놀라지 않도록 구석진 곳에 앉아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들고, 조금씩 경계심을 푸는 개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2020년 5월부터 9월 현재까지 97마리의 유기견을 만났고, 이 중 79마리를 입양시켰다. “버려지는 개가 너무 많아 기획이 망할 틈이 없네요.” 지난달 23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국민일보 사옥 근처 카페에서 만난 이 기자는 인터뷰 도중 마른 웃음을 지었다. 

동물에 대한 애정, 콘텐츠 제작으로 이어지다

이성훈 국민일보 기자가 8월 23일 국민일보 사옥 인근 카페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지윤 기자
이성훈 국민일보 기자가 8월 23일 국민일보 사옥 인근 카페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지윤 기자

이 기자는 입사와 동시에 ‘개st하우스’ 코너를 만들어볼 것을 제안받았다. 수습기자 생활을 이제 막 끝마친 새내기 기자가 온라인 코너 하나를 신설하는 건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다. 당시 편집국장이 이 기자의 과거 경력을 눈여겨봤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기자는 동물권 단체 ‘케어’(care)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었다. “너, 유기동물 채널 한 번 만들어 볼래?” 편집국장의 권유를 받은 그는 2020년 5월 온라인뉴스부에서 유기견 전문 코너 ‘개st하우스’를 만들었다.

원래 그는 동물에 관심이 많았다. 2017년 세명대 저널리즘 대학원을 졸업해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다가 1년 후 동물권 단체 케어에 들어갔다. 초등학교 때 읽은 책 <블랙뷰티>가 계속 마음에 남아있었다. 19세기 영국에서 발간된 이 책은 ‘제지 고삐’(말이 머리를 숙이지 못하게 하는 고삐) 사용을 금지하자고 주장하는 소설이다. 말이 인간을 위한 도구로 쓰이던 시대에 말의 복지를 향상시키자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 것이다. 이후 미국의 동물 학대 방지 법안 논의로 이어질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동물권 단체 케어에서는 교육 콘텐츠 제작을 담당했다. 유기 또는 위기 동물 구조를 위한 행동 지침을 자연스레 익혔다. 단체의 일손이 부족해 때로는 현장에 나가 구조활동에 참여했다. 구조부터 입양까지 절차가 매우 복잡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특히 유기견은 길에서 발견했다 해도 주인이 있을 가능성이 있어 적법한 절차를 거친 후 보호소에 입소할 수 있다. 보호소에 입소한 후 새로운 보호자에게 입양될 때도 소유권 이전이 필요하다. 동물은 민법상 물건이라 소유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면 전문가를 통한 사회화 교육이 필요하고 다친 곳이 있다면 병원 치료도 해야 한다. 절차가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 때문에 개인이 유기 동물을 입양시키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했다.

단체 일을 그만두고 <국민일보>에 입사한 이 기자는 그 시절의 경험을 되살렸다. 개인이 구조해 임시 보호 중인 유기견이 새 입양처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연결다리가 되어주기로 했다. 유기 동물 기획 취재 코너인 ‘개st하우스’가 탄생했다.

이성훈 기자가 운영하는 개st하우스 누리집. 국민일보 누리집 갈무리
이성훈 기자가 운영하는 개st하우스 누리집. 국민일보 누리집 갈무리

79마리의 유기견을 입양 보내다

이 기자는 유기견 구조부터 입양자 모집까지의 복잡한 과정을 3단계로 간소하게 구분하여 안내했다. 구조, 문제행동 교육과 트라우마 치료, 입양 등으로 나눠 글 기사와 영상 콘텐츠를 제작했다. 유기견의 특징만 단순히 소개하여 입양자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견의 문제행동을 교육하고 트라우마까지 치료하는 과정을 차근차근 보여주기 때문에 ‘개st 하우스’를 통한 입양 성공률은 매우 높은 편이다. 유기견의 특성과 성격을 파악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사회화가 되어 있는 상황이라 입양자의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2020년부터 9월 현재까지 97마리의 유기견을 만났고, 이 중 79마리가 입양됐다. 80%가량이 입양에 성공한 셈이다.

유기 동물보호소에서 안락사 직전 구조된 ‘보담이’는 2년 2개월 동안 입양을 가지 못했다가 개st하우스에 출연한 이후 새 가족의 품으로 떠났다. 개st하우스 유튜브 갈무리
유기 동물보호소에서 안락사 직전 구조된 ‘보담이’는 2년 2개월 동안 입양을 가지 못했다가 개st하우스에 출연한 이후 새 가족의 품으로 떠났다. 개st하우스 유튜브 갈무리

“길게는 6년 동안 입양을 가지 못하던 유기견도 개st하우스에 출연한 후 새로운 가족을 찾았어요. 가족을 찾지 못한 개들을 위해 매달 몇십만 원씩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단순히 반려동물 한 마리의 문제가 아니라 개들과 얽힌 사람들의 삶의 문제인 것 같아요.”

유기 동물 문제를 다루고 실질적인 해법까지 제시한다는 점에서 ‘개st하우스’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누적 조회수가 90만을 넘었다. 편집국 내에서 확대 논의가 나왔다. 본격적인 뉴미디어 채널로 키우자는 이야기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기자는 다른 기사를 작성하며 짬짬이 시간을 내어 텍스트 기사와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었다. 동료들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야근이 잦았고 온전히 기획에 신경 쓰지 못했다. 2021년, 이 기자를 중심으로 팀이 꾸려졌다. 촬영 기자 1명, 그래픽 기자 1명이 붙어 총 3명이 됐다. 구조한 유기견에게 문제행동이 있을 경우 언제 어디서든 달려와 교육해 줄 외부 행동 전문가팀도 생겼다.

그랬어도 취재는 여전히 쉽지 않았다. 구조자 또는 임시 보호자가 입양처를 구할 때까지 함께 하는 기획이다 보니 취재원의 어려움을 같이 고민하고 해결해야 했다. 무엇보다 힘든 건 부정적인 취재원을 만날 때였다. 유기견의 스토리가 기사로 나가면 최소 10~30건 정도의 입양 신청이 들어온다. 대부분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밭에다 묶어두고 키울 테니 보내달라고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다. 입양처를 결정해야 하는 구조자 또는 임시 보호자 입장에서는 답답한 노릇이다. 이 기자는 그런 하소연과 불평을 온전히 들어야 한다. “제 MBTI가 ‘ENFJ’(이타적이고 온화한 성격)이거든요. 그런데도 감정적인 호소를 계속 듣는 게 힘들어요. 취재원의 상황도 보듬어주는 게 기자 업무 중 하나가 된 것 같아요.”

솔루션 저널리즘을 꿈꾸다

힘든 순간도 있지만 꾸준히 기획을 운영할 수 있는 이유는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시절 꿈꿨던 역할을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이 기자는 솔루션 저널리즘에 마음이 갔다. 문제를 고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문제의 다양한 해법을 모색하고 검증하는 것이 솔루션 저널리즘이다. 그의 보도로 인해 유기견이 문제행동을 고치고 좋은 가족을 만날 때마다 뿌듯하다. 입양 이후 사랑받고 사는 모습을 보도할 때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개st하우스는 겉으로는 말랑말랑한 기획이지만, 들여다보면 사실 꽤 무거운 기획이에요. 시민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준다는 점에서 나름의 ‘솔루션 저널리즘’이기도 하죠.”

이성훈 기자(사진 왼쪽 위)가 유기견 ‘마루’를 구조한 임시 보호자의 집에 방문했다. 개st하우스 유튜브 갈무리
이성훈 기자(사진 왼쪽 위)가 유기견 ‘마루’를 구조한 임시 보호자의 집에 방문했다. 개st하우스 유튜브 갈무리

유기견 한 마리의 작은 이야기이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모이고 모여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이 기자는 믿는다. ‘개st하우스’에 대한 편집국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외부 행동전문가에게 소정의 출장비를 주거나, 입양자에게 보낼 1년 치 사료를 기업에 후원받는 등 선의(善意)가 지속가능할 수 있는 구조가 갖춰진 것도 편집국 차원에서 배려하고 신경 써준 덕분이다.

이 기자는 앞으로 동물보호법의 허점을 짚는 기획을 하고 싶다. 동물권을 무시한 채 인간이 보기 예쁜 방식으로 개를 생산하는 개공장, 펫샵 등을 다루면서 법과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다. 다만 아직은 여력이 안 된다. 팀원은 있지만 기획은 이 기자 혼자 담당한다. 제보를 분류하는 것부터 일이다. 평균 한두 달 치의 제보가 항상 밀려있다. 그만큼 버려지는 동물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기자의 뒤를 이어 ‘개st하우스’ 코너를 담당할 대체자를 찾기도 힘들다. 동물 분야에도 전문 지식이 필요하니, 단순히 동물에 흥미를 가진 기자에게 이 기획을 맡기기 쉽지 않다.

그래도 이 기자는 ‘개st하우스’를 지키고 싶다. ‘사람도 먹고살기 힘든데 왜 버려진 개까지 챙겨줘야 하느냐’는 반응을 들을 때마다 그런 다짐을 한다. 한 생명을 살리려는 노력에 공감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기를 그는 꿈꾼다. 새 가족을 기다리는 외로운 유기견이 아직도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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