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인터뷰] 김종우 MBC PD

인터넷의 확산으로 OTT(Over The Top, 인터넷으로 각종 미디어를 제공하는 서비스) 플랫폼 이용이 급증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레거시 미디어가 오랜 시간 지켜온 위상까지 위협한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공중파 방송국 시사교양 장르가 존폐의 기로에 섰다. 모두가 시사교양의 위기를 말할 때, 그럼에도 ‘좋은 프로그램’에 해답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MBC 시사교양국의 김종우(48) PD다. 김종우 PD는 2002년 MBC에 입사했다. 국내 최초로 가상현실(VR) 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등을 제작해 여러 상을 받았다. 김종우 PD를 지난 12일 MBC 상암동 사옥 근처 한 야외 카페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김종우 MBC 시사교양 PD가 단비뉴스와 만나 ‘좋은 프로그램’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서현재 PD
김종우 MBC 시사교양 PD가 단비뉴스와 만나 ‘좋은 프로그램’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서현재 PD

김 PD가 창작자의 꿈을 꾸게 된 건 대학교 4학년 때 떠났던 미국 연수 때였다.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 TV 프로그램을 열심히 봤다. 그러던 중 애니메이션 <심슨가족>에 매료됐다. 만화인데도 현실 같았다. <심슨가족>에는 당시 사회의 현실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만화로 그런 현실을 표현해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김 PD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 ‘사실’을 재미있는 포장지로 ‘패키지화’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는 학부 시절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대학 친구들은 졸업 후 전공을 살려 대기업에 취업했다. 하지만 <심슨가족>을 보고 가슴이 뛰었던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영화감독을 잠깐 생각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스스로에게 그 정도의 감각이 없다고 느꼈다. 자신처럼 ‘어중간한’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 당시 방송국은 매력적인 옵션이었다고 김 PD는 말했다.

김종우 PD가 제작한 MBC VR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는 한국PD대상, 대한민국콘텐츠대상 등을 수상했다. 김종우 PD 제공
김종우 PD가 제작한 MBC VR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는 한국PD대상, 대한민국콘텐츠대상 등을 수상했다. 김종우 PD 제공

하지만 겸손한 그의 표현과는 달리, 김종우 PD가 MBC 입사 후 만든 작품들은 영화적 기획과 연출로 찬사를 받았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만남을 성사시킨 <너를 만났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재현한 무인도 생존 프로그램 <문명: 최후의 섬> 등 장르적 한계를 뛰어넘는 감동과 서사를 프로그램에 담아냈다는 평이었다.

현실을 담아내는 직업

김종우 PD가 생각하는 ‘좋은 프로그램’은 무엇일까. 김 PD는 예능이든 시사교양이든 외피보다 그 안에 담겨있는 ‘팩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좋은 프로그램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고스란히 담긴다. 김 PD는 공영방송의 의무가 방송으로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세상의 아름다운 면을 보여주되 미화하거나 과장하면 안 된다고 믿었다. 그가 20년간 지켜온 제작 철칙이었다.

그런 그가 보기에도 방송사 시사교양국은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시사교양국은 사회에 도움이 되는 공영적 프로그램을 생산해 내는 기지로서 존재해왔다. 그런데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본래의 역할에 혼란이 생겼다. 그는 오늘날 방송국의 처지를 일반 회사에 비유했다. 어떤 회사가 어려워지기 시작하면 핵심적인 매출이 나오는 부서를 남기고 나머지 부서를 줄여나가는 것처럼, 방송국에서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투자할 여유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시사교양 장르를 버려야 한다거나, 예능국과 합쳐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반평생을 시사교양 PD의 자부심으로 살았던 그조차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음이 흔들렸다. 전 세계적으로 교양 PD라는 직종을 방송국 안에 두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사실도 그때 알게 됐다. 다큐멘터리조차도 프리랜서 PD들이 제작하고, 방송국은 그걸 구매해서 방영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였다.

김 PD는 직업의 정체성을 스스로 개척하기 시작했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재미와 정보, 감동을 모두 잡을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을 찾기로 했다. 예능프로그램의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교양적인 내용을 채우되 매력적인 외피를 갖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살아남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고민 끝에 탄생한 프로그램이 바로 작년 11월에 제작한 <문명:최후의 섬>이다.

김종우 PD는 '문명: 최후의 섬'에서 다큐멘터리와 예능적 요소의 결합을 시도했다. 촬영장소인 질마도에서 김 PD가 스태프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종우 PD 제공
김종우 PD는 '문명: 최후의 섬'에서 다큐멘터리와 예능적 요소의 결합을 시도했다. 촬영장소인 질마도에서 김 PD가 스태프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종우 PD 제공

살아남을 방법을 찾다

<문명: 최후의 섬>은 시사교양 PD로 20년을 지내온 김 PD가 처음으로 기획한 ‘다큐멘터리 예능’이다.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 10인이 고립된 무인도에서 10일간 생존하며 문명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담은 서바이벌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형식은 예능이지만, 내용은 다큐멘터리다. 팬데믹 시대, 단절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는 사람이 많았다. 김 PD는 연결된 채 협동하고 조화하며, 때로는 경쟁으로 발전하는 작은 문명의 모습을 프로그램에 담아냈다.

<문명: 최후의 섬>을 기획할 당시, 김 PD는 미국 서바이벌 예능 <Utopia>, 영국 드라마 <Colony>등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많이 참고했다고 말했다. <문명: 최후의 섬>에는 기존 다큐멘터리에서는 볼 수 없는 예능적 요소들이 들어갔다. 프로그램 마지막에 최후의 1인을 정하거나, 필요한 물품이 있을 때 제한된 횟수 내에 물품을 배달받는 등 게임적 요소도 추가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기존 서바이벌 예능에는 없는 요소들이 있다. 생존이 곧 우승이 되는 치열한 경쟁 대신, 생존과는 별개로 문화와 여가 생활을 즐기는 참여자들의 모습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장면을 통해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인간다운 삶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여가를 잊고 살았던 실제 자신의 삶에 대입하기도 한다. 재미와 의미, 창작자라면 누구나 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은 셈이다.

'문명: 최후의 섬'에는 생존 이외의 여가 생활을 즐기는 출연진들의 모습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겨있다. 출처 MBC
'문명: 최후의 섬'에는 생존 이외의 여가 생활을 즐기는 출연진들의 모습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겨있다. 출처 MBC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MBC가 아니라 OTT 플랫폼인 웨이브의 투자를 받아 제작됐고, 웨이브와 MBC에 동시 방영되고 있다. 현재 방송국 제작 시스템이 그 배경이다. 교양 프로그램에 투자할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작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조차 각 피디가 직접 자금을 조달해야 할 지경이었다. 웨이브의 투자를 받아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 내야 한다고 김 PD는 말했다. 시사교양 PD들은 계속해서 독자적 영역을 개척하되, 방송국도 그에 걸맞은 투자를 해야 공중파 방송의 경쟁력이 갖춰진다고 그는 생각한다.

김종우 PD는 장르의 벽을 넘는 새로운 시도들을 통해 공영방송으로서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방향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도전하고 있다. 김종우 PD 제공
김종우 PD는 장르의 벽을 넘는 새로운 시도들을 통해 공영방송으로서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방향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도전하고 있다. 김종우 PD 제공

김 PD는 다큐멘터리 특유의 연출법과 모호함을 좋아한다. 그야말로 골수 다큐멘터리 PD다. 그런데도 정통 다큐멘터리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를 계속한다. 더 많은 사람이 방송을 통해 따뜻함을 느끼길 바라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레거시 미디어에 희망이 없다고 말할 때, 그는 공영방송이 사회에 끼칠 수 있는 선한 영향력에 대해 고민하며 새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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