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인터뷰] 이재덕 경향신문 기자

이재덕 경향신문 기자가 지난해 10월 전북 익산 삼기면 논에서 콤바인으로 벼를 수확하고 있다. 이재덕 기자 제공
이재덕 경향신문 기자가 지난해 10월 전북 익산 삼기면 논에서 콤바인으로 벼를 수확하고 있다. 이재덕 기자 제공

가슴 속에 사표를 품고 기사를 쓰는 기자가 있다. 그는 호시탐탐 귀농할 기회를 노린다. 어떤 지역이 귀농하기 적합할지, 어디서 아이를 키우면 좋을지 취재를 핑계 삼아 답사도 다녔다. 올해로 입사 12년 차에 접어든 이재덕 <경향신문> 기자 이야기다. 지난 8월 9일, 서울 영등포역에 있는 한 카페에서 이재덕 기자를 만났다.

이 기자는 2020년부터 지난 2월까지 <경향신문>의 농업 버티컬 미디어 <밭>을 운영했다. 특정 이슈 또는 주제만 다루는 것이 버티컬 미디어다. <밭>은 농업, 농촌 문제를 다뤘다. 다양한 귀농인들의 삶을 소개한 ‘사표 쓰고 귀농’, 지역에서 다른 삶을 살아 보려는 이들을 찾아다닌 ‘서울 말고 로컬’, 폐교 위기의 학교를 살리려는 지역을 담은 ‘작은 학교’ 등 다양한 연재 기사와 영상을 보도했다.

덤벙덤벙 귀촌 지망생

이재덕 경향신문 기자가 8월 8일 영등포역 건물의 어느 카페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신유미 기자
이재덕 경향신문 기자가 8월 8일 영등포역 건물의 어느 카페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신유미 기자

입사 이후 경제부, 사회부에서 일했던 이 기자는 2019년 초부터 뉴콘텐츠팀으로 옮겼다. 처음 1년 동안 유튜브 채널에 사회자로 출연하는 등 기존의 뉴미디어 플랫폼을 관리했다. 본격적으로 자신의 채널을 만들 시기가 되자 고민이 생겼다. 원래 유튜브나 소셜미디어를 즐겨 하지 않았다. 소셜미디어에서 주로 유통되는 콘텐츠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대신 원래 좋아했던 이야기를 풀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업이었다.

이재덕 기자는 경향신문 유튜브 콘텐츠 ‘사표 쓰고 귀농’에서 벼를 베지 못해 끙끙대는가 하면 밭에서 넘어지기도 한다. 덤벙대는 이 기자의 캐릭터는 ‘사표 쓰고 귀농’의 묘미다. ‘사표 쓰고 귀농’ 영상 갈무리
이재덕 기자는 경향신문 유튜브 콘텐츠 ‘사표 쓰고 귀농’에서 벼를 베지 못해 끙끙대는가 하면 밭에서 넘어지기도 한다. 덤벙대는 이 기자의 캐릭터는 ‘사표 쓰고 귀농’의 묘미다. ‘사표 쓰고 귀농’ 영상 갈무리

농업을 다루기로 결심한 뒤 처음 만든 콘텐츠가 ‘사표쓰고 귀농’이었다. ‘기자가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으니 귀농하기 적합한 곳을 회사돈으로 알아보겠다’는 콘셉트를 세우고, 직접 출연했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몸으로 때운 거예요. 제가 어설프고 덤벙대요. 촬영했더니 그런 모습이 그대로 보였어요. 사람들이 재밌다고 해주시더라고요.”

그가 진짜 다루고 싶었던 주제는 위기에 처한 한국 농업 문제였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만 하면 사람들이 너무 안 보잖아요.” 소셜미디어를 통해 더 많은 독자와 만나려면 ‘타협’이 필요했다. ‘귀농하고 싶은데, 농촌의 이런저런 문제가 많아서 힘들다’는 정보를 소개하는 쪽으로 초점을 살짝 틀었다. 반응이 좋아 1년 동안 연재했다.

‘작은 성공’은 본격적인 농업 버티컬 미디어로 이어졌다. 2021년, <경향신문> 버티컬 미디어 <밭>이 만들어졌다. 일주일에 적어도 두 꼭지씩 기사를 연재했다. 이 기자는 말 그대로 ‘혼’을 갈아넣었다. 예를 들어, ‘서울 말고 로컬’ 시리즈에서는 밀양, 칠곡, 목포, 괴산, 공주, 옥천 등 전국 방방곡곡 이야기를 담았다.

이재덕 기자가 ‘작은 학교’ 시리즈 기사를 설명하고 있다. 신유미 기자
이재덕 기자가 ‘작은 학교’ 시리즈 기사를 설명하고 있다. 신유미 기자

“거기 등장한 도시나 마을 모두 제가 가고 싶었던 곳이거든요.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취재지를 고른 거예요. ‘작은 학교’ 시리즈도 귀농하고 저희 애 보내고 싶어서 시작한 거예요.”

이 기자의 진짜 꿈도 귀촌이다. 농촌에서 저널리스트로서 글을 쓰면서 작은 텃밭이나 논밭을 가꾸는 것이 그의 꿈이다. 특히 이 기자는 충북 옥천 월간지 <옥이네>를 취재하면서 지역에서 언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옥이네>는 지역 문제를 취재할 뿐만 아니라, 기자들이 길고양이 모임을 만들어 군의회에 의견을 내고, 언론사 1층을 청소년 카페로 개방하며, 지역 중학교 학생 전원(18명)에게 지역화폐를 지급해 기본소득 실험을 벌였다. “일종의 '솔루션 저널리즘'을 지역에서 실천하고 있더라고요.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울이 아니라 지역에서 또다른 저널리즘을 구현할 가능성을 이 기자는 발견했다.

사표 쓰고 귀농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는 이 기자에 대한 사내 반응을 물었다.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직장인이 그렇지 않을까요. 불쑥불쑥 사표 쓰고 싶다가도 겁이 나고, 지금 누리는 것들을 앞으로 누리지 못한다는 생각에 주저하게 되고요. 다만 저는 (당장 사표쓰기 보다는) 농부의 삶에 좀 더 다가가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어요.”

도시 남자가 농업 문제에 천착하게 된 이유

자신이 가꾸던 텃밭에서 벌레를 잡는 이재덕 기자. 유튜브 영상에는 이 기자가 벌레를 무서워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재덕 기자 제공
자신이 가꾸던 텃밭에서 벌레를 잡는 이재덕 기자. 유튜브 영상에는 이 기자가 벌레를 무서워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재덕 기자 제공

그는 언제부터 농업·농촌 문제에 천착하는 기자가 됐을까. 이 기자의 고향은 경기도 수원이다. 현재 사는 곳은 경기도 부천이다. 농사와는 거리가 먼 성장 배경이다. 이 기자는 “뭐 하나 뚜렷한 계기가 없다”며 웃었다.

다만 그는 학부에서 농업경제학을 전공했다. 원래는 대입 시험 점수에 맞춰 학과를 선택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전공을 되돌아본 계기가 있었다. 대학 시절 그는 이문재 전 <시사저널> 기자의 강연을 들었다. 이문재 전 기자는 이재덕 기자의 전공에 대해 “우리 농촌을 고민하는 굉장히 좋은 학문을 공부한다”고 말했다.

“너무 황당했어요. 새삼 부끄럽기도 했고.” 이 기자는 당시의 심정을 떠올렸다. 농업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정작 농촌이나 농업과 관련한 정책을 공부하진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에서 농업 전문기자를 지망하는 신입생을 특별선발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대학원에서는 ‘대산 농촌재단’의 장학금을 받았다. 개원 이래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은 대산 농촌재단의 지원을 받아 농업 전문 언론인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이 기자도 그 장학생이었다. 농촌재단의 장학금을 받으며, 그는 농업과 저널리즘을 함께 공부했다. 그의 꿈도 분명해졌다. 그는 ‘농업 전문기자’가 되고 싶었다.

<경향신문>에 입사할 때도 그 포부를 밝혔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여러 분야를 취재하면서 크고 작은 기자상을 받으며 기자로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농업 이슈에 천착하긴 어려웠다. 그러는 동안, 대산농촌재단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 또는 함께 장학금을 받았던 친구들이 연락해왔다. “야, 너, 왜 안 와? 우리 문제를 기사로 좀 써줘.”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사과나무 과수원이 쓸려 내려가 버렸어.” 그들과 농촌, 그리고 농업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주고받았다. 그런 대화를 나누면 ‘초심’이 떠올랐다. “옛날에 농업 전문기자가 되겠다고 했던 그 약속을 계속 되뇔 수밖에 없었어요.”

농업 문제를 고민하는 저널리스트

이재덕 경향신문 기자가 지난해 10월 전북 익산 삼기면 논에서 김영재 농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재덕 기자 제공
이재덕 경향신문 기자가 지난해 10월 전북 익산 삼기면 논에서 김영재 농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재덕 기자 제공

입사 10년 여 만에 뉴콘텐츠팀에서 그 꿈을 이뤘지만, 이 기자는 여전히 조금 외롭다. 농업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의논할 동료 기자가 드물다. 이 기자가 1년간 운영해온 버티컬 미디어 <밭>의 발행도 잠시 중단됐다. 최근 이 기자는 뉴콘텐츠팀에서 산업부로 옮기게 됐는데, 그를 이어 이 매체를 맡을 적임자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농업에 관심 있어 하는 동료들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더라고요. 그러나 <밭>은 잠시 중단됐을 뿐이지 언제든 다시 시작할 겁니다. 농업 취재를 하려고 공부도 계속하고 있어요.”

농업 전문기자를 꿈꾸는 그로선 한국 언론의 출입처 제도가 답답하다. 농림축산식품부를 출입하는 기자들이 농업 기사를 담당하지만, 정작 이들이 농촌 현장을 가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보도 이슈나 주제에서 사각지대가 생기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경향신문> 뉴콘텐츠팀의 경험이 이 기자에겐 소중하다. 뉴콘텐츠팀에서는 출입처가 없었다. 출입처가 없었기 때문에 농촌 문제에 천착할 수 있었다고 이 기자는 생각한다. 천착하다 보니 예전보다 농촌을 보는 눈도 깊어졌다.

“농업이 굉장히 넓은 분야거든요. 논농사와 밭농사, 농·축산물이 다 다르잖아요. 이주민이나 에너지 문제도 있겠죠. 그걸 다 뭉뚱그릴 수 있을까요. 그래서 요즘엔 ‘농업 전문기자가 되겠다’는 말을 잘 안하게 됐어요. 그냥 농업·농촌 문제를 계속 고민하는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 같아요.”

아주 두꺼운 단행본 분량의 르포르타주를 쓰겠다는 꿈도 새로 생겼다. 농촌, 그리고 농촌 사람들의 이야기를 르포에 담고 싶다.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면 언론사에 소속된 기자라는 직업에 연연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메린 매캐나의 <빅치킨>, 폴 로버츠의 <식량의 종말>과 같이 외국 저널리스트들은 세계 곳곳을 취재하여 농업·농촌 논픽션을 쓴다. “한국에는 외국처럼 먹거리를 다룬 르포 기사가 없어요. 그런 걸 하는 게 제 꿈이에요.” 귀농 또는 귀촌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울에서 기자 일을 하는 것보다 귀촌하는 게 농업·농촌 르포를 쓰기엔 더 좋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이 기자는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에서 공부하는 후배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전했다. 그가 제일 후회하는 것은 대학원에서 PD의 경험과 공부를 해보지 않은 일이다. “영상 문법을 아는 기자와 모르는 기자는 정말 큰 차이가 있어요. 요즘은 신문사에서도 유튜브에 굉장히 공을 들이고 있고, 영상 문법을 아는 기자들을 원하고 있어요. (PD 경험을 하면) 분명히 도움이 될 거예요.”

후배들의 언론사 입사를 걱정해주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사표란 무엇인가?

“생각만 해도 행복한 것. 내가 정말 해보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기회. 물론 사표 쓰지 않고 꿈을 이룰 기회가 생기면 더 좋겠죠. 그런데 상황이 여의치 않고 결심이 선다면,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사표를 쓸 것 같아요. 그래서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 그런 것. 그게 사표 아닐까요.”

그러니까 이재덕 기자에게 사표란 티켓 같은 것이다. ‘진짜 기자’의 길로 가는 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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