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20년 퓰리처상 피처 기사 수상작 – 관타나모의 어두운 비밀

<뉴요커>(The New Yorker)의 ‘관타나모의 어두운 비밀’(Guantánamo’s Darkest Secret)은 2020년 퓰리처상 피처 기사(Feature Writing) 부문 수상작이다. 스트레이트 기사는 육하원칙에 따라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했는지에 주목한다. 반면 피처 기사는 ‘어떻게’와 ‘왜’로 이야기를 구성한다. 새로운 관점으로 사건을 기술하고 재구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좋은 피처 기사는 독자로 하여금 보고, 듣고, 느끼게 한다. 퓰리처상 심사위원회는 ‘관나타모의 어두운 비밀’에 대해 17년 동안 자유를 빼앗긴 남자의 충격적인 이야기를 현장성 있게 다뤘고, 테러와의 전쟁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했다고 평가했다.

‘관타나모의 어두운 비밀’(Guantánamo’s Darkest Secret) 기사 웹페이지 사진. 미국 정부는 모하마드 슬라히(Mohamedou Slahi)를 가장 위험한 수감자로 취급했으나, 슬라히를 지키던 교도관은 그 사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뉴요커 갈무리
‘관타나모의 어두운 비밀’(Guantánamo’s Darkest Secret) 기사 웹페이지 사진. 미국 정부는 모하마드 슬라히(Mohamedou Slahi)를 가장 위험한 수감자로 취급했으나, 슬라히를 지키던 교도관은 그 사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뉴요커 갈무리

수감자 이야기

이야기는 크게 세 파트로 구성된다. 처음에는 교도관의 관점으로 관타나모 교도소에서 만난 어느 수감자를 묘사한다. 두 번째 파트에서 이야기의 시점은 수감자인 모하마드 슬라히(Mohamedou Slahi)로 옮겨간다. 마지막 파트는 관타나모에서 풀려난 뒤 고국으로 돌아간 주인공의 집에 교도관이 방문하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한 편의 소설처럼 진행된다. 오직 객관적인 사실로만 구성됐다는 점에서 소설과는 다르다. 

2004년 스티브 우드(Steve Wood)라는 교도관이 관타나모에 배치된다. 우드는 미국의 안전을 지킨다는 사명감을 안고 있었다. 그는 일명 ‘베개’(Pillow)로 불리는 수감자 감시를 임무로 받는다. 수감자의 별명이 베개인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베개는 수감자가 유일하게 지닌 물건이었다. 그가 엄청나게 위험한 테러범이라는 소문이 교도소에 퍼져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우드는 그 소문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가 보기에 ‘베개’는 테러범이라기에는 너무 똑똑하고 온화하며 순종적이었다. 

이윽고 기사의 시점은 교도관 우드에서 주인공 ‘베개’로 넘어간다. 한 명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피처 기사인 만큼 주인공의 생애는 전체 기사에서 3분의 2 정도 분량을 차지한다. ‘베개’로 불렸던 수감자 슬라히는 1970년 서아프리카에 있는 모리타니아에서 태어났다. 1991년 스무 살이 됐을 때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서 알카에다에 가입했다. 그러나 얼마 안 돼 자신에게 맞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탈퇴했다. 이후 독일에서 생활을 꾸렸다. 독일 이슬람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알카에다 관련자들을 때때로 도왔다. 그의 사촌인 아부 하프(Abu Hafs)는 오사마 빈라덴의 오른팔이었다. 아부 하프는 슬라히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비록 아부 하프의 아버지 병원비이긴 했지만, 실제로 서아프리카로 알카에다의 돈을 운반하는 일을 맡기도 했다. 이런 일은 나중에 슬라히가 관타나모에 수감되는 이유가 된다.

2001년 9월 11일 테러가 발생했다. 많은 이슬람교도들이 테러범으로 의심받았다. 이듬해인 2002년, 캐나다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슬라히는 무슬림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이후 미군 기지가 있는 관타나모로 불법 이송됐다. 그는 ‘에코 스페셜’(Echo Special)이라는 곳에 구금되어 미국 연방수사국(FBI), 중앙정보국(CIA), 군대 관계자 등에 조사받았다. 그 과정에서 고문도 받았다.

모하마드 슬라히(Mohamedou Slahi)는 2002년부터 무려 14년 동안 관타나모 수용소에 불법 구금됐다. 출처 위키백과
모하마드 슬라히(Mohamedou Slahi)는 2002년부터 무려 14년 동안 관타나모 수용소에 불법 구금됐다. 출처 위키백과

슬라히가 알카에다와 관련없는 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고문 빈도는 줄었다. 이뒤 그가 처음으로 수용소에서 받은 물품이 베개였다. 교도관 우드를 처음 만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뒤이어 슬라히는 공책과 연필을 받았다. 그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관타나모에서 있던 일을 모두 적었다. 2015년, 그 일기를 모아 자서전 <관타나모 다이어리>(Guantánamo Diary)를 출판했다. 그가 관타나모에서 벗어날 계기가 된 것도 일기였다. 담당 검사는 수용소에서 슬라히가 고문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 고문에 의한 진술은 증거로 인정받을 수 없었다. 검사는 결국 기소를 철회했다.

이야기의 품격

일기는 <뉴요커>의 기사로도 이어졌다. 벤 톱(Ben Taub) 기자는 <관타나모 다이어리>를 읽으면서 슬라히라는 인물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게 됐다. 풀려난 슬라히는 고국인 모라나티아에 돌아가 있었다. 벤 톱 기자는 아프리카의 모라타니아에 직접 찾아갔다. 그곳에서 슬라히의 사촌이자, 알카에다의 주요 관계자였던 아부 하프도 만났다. 나중에 그는 슬라히를 감시했던 교도관 우드도 찾아갔다. 기사 ‘관타나모의 어두운 비밀’은 <관타나모 다이어리> 속 등장 인물들을 기자가 직접 취재하여 교차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벤 톱 기자는 1991년생이다. 젊은 기자는 일찍부터 아프리카, 유럽, 중동을 누비며 지하디즘, 범죄, 인권 등을 취재하여 보도했다. 컬럼비아 저널리즘스쿨 재학 중에 ‘지하드를 향한 여정’(Journey to Jihad)이라는 기사도 썼다. 청소년들이 테러조직인 이슬람국가(ISIS)에 가담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2017년 <뉴요커>에 합류한 직후에는 퓰리처 재단의 지원을 받아 시리아의 전쟁범죄에 관한 기사를 썼다. 이 기사로 리빙스톤상, 케네디 저널리즘상 등을 수상했다. 그 무렵, 경제지 <포브스>가 매년 선정하는 ‘30살 미만의 유력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뽑혔다. 

‘관타나모의 어두운 비밀’(Guantánamo’s Darkest Secret)은 2019년 4월 22일 발행된 뉴요커 표지 기사로 실렸다. 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 소개가 적혀있다. ‘미국 정부는 모하마드 슬라히가 알케에다 주요 참모라고 믿었다. 미군은 슬라히를 가장 중요한 수감자로 여기며 잔인한 고문을 행했다. 미국 정부는 죄 없는 남자를 고문한 것일까? 벤 톱 기자가 테러 전쟁의 어두운 단면을 다뤘다.’ 아마존
‘관타나모의 어두운 비밀’(Guantánamo’s Darkest Secret)은 2019년 4월 22일 발행된 뉴요커 표지 기사로 실렸다. 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 소개가 적혀있다. ‘미국 정부는 모하마드 슬라히가 알케에다 주요 참모라고 믿었다. 미군은 슬라히를 가장 중요한 수감자로 여기며 잔인한 고문을 행했다. 미국 정부는 죄 없는 남자를 고문한 것일까? 벤 톱 기자가 테러 전쟁의 어두운 단면을 다뤘다.’ 출처 아마존

‘관타나모의 어두운 비밀’이 실린 <뉴요커>는 1925년 2월 21일부터 발행된 주간지다.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인 해럴드 로스(Harold Ross), 그리고 같은 신문의 기자였던 제인 그랜트(Jane Grant)가 함께 만들었다. 둘은 부부 사이였다. 정치, 문학, 미술, 영화, 연극 등에 대한 비평과 에세이를 주로 게재하는데, 논픽션 르포도 꾸준히 싣고 있다.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르포, 한나 아렌트의 정치 에세이도 <뉴요커>에 실렸다. 

<뉴요커>는 사건 보도보다 해석과 비평으로 유명하지만, 문학적 구성에 저널리즘적 사실을 담은 ‘문학 저널리즘’ 또는 ‘내러티브 저널리즘’의 진앙지로도 유명하다. 이 매체의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그 자부심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사진, 영상, 인터랙티브 등을 가미한 여느 언론사 홈페이지와 달리, 오직 글 기사만 실려 있다. 기사를 그대로 읽은 오디오북 서비스를 배치한 것이 특징적일 뿐이다. 오직 글을 통해 세상을 보겠다는 태도가 역력하다. ‘관타나모의 어두운 비밀’은 글의 힘을 믿는 기자들에게 더욱 유용할 것이다.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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