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한국사진기자협회 선정 제223회 ‘이달의 보도사진상’ 스토리 부문 최우수상작 – 개발이 빼앗은 숲...멈추니 돌아왔다

2018년 8월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에 잔혹한 칼질이 가해졌다. 10m 높이의 삼나무 900여 그루가 무참히 쓰러졌다. 2002년 건설교통부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한 제주 비자림로 이야기다. 비자림로는 제주도 구좌읍 송당리 칡오름과 거슨새미오름 사이를 지나는 왕복 2차선 지방도다. 도로 양옆의 숲길은 지역 주민과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하상윤 <세계일보> 사진기자도 이 소식을 들었다. 그는 비자림로를 둘러싼 이슈가 한껏 달아오른 이후에도 잠시 기다렸다. 2018년 겨울, 사람들의 관심이 옅어질 때쯤 그는 비자림로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환경생태공학을 전공한 그는 ‘나무가 베어졌다’는 사실 뒤에 놓인 의미를 찾으려 했다. 나무가 사라진 자리에 주목했다.

그가 밀착취재한 ‘제주 비자림로 4차로 확장공사’ 관련 기사는 총 4편이 있다. 제55회 한국보도사진전 최우수상작인 2018년 11월의 '잘려나간 '제주의 생명'...개발이 행복을 가져다 줄까', 2019년 7월의 ‘나무는 보았다. 잘려나간 형제들의 모습을... 나무는 들었다. 보금자리 잃은 새들 울음을...’, 지난해 7월의 ‘개발이 빼앗은 숲...멈추니 돌아왔다’ 그리고 지난달의 ‘“자연이 인간의 것이냐”... 숨통이 끊기기 직전, 숲이 물었다’ 등이다.

이 가운데 ‘개발이 빼앗은 숲...멈추니 돌아왔다’는 한국사진기자협회 선정 제223회 ‘이달의 보도사진상’ 스토리 부문 최우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이 기사는 2021년 7월 24일 <세계일보> 지면 ‘포토뉴스’에 실렸다. 훼손된 비자림로 주변 숲의 어두운 단면과 변화상을 15장의 사진에 담았다. 비자림로의 모습을 영상으로도 제작했다.

2021년 7월 24일자 세계일보 지면에 ‘개발이 빼앗은 숲 멈추니 돌아왔다’ 기사가 실렸다. 개발이 멈춘 후 3년이 지난 비자림로 숲의 전경과 내부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지면 하단에는 3년간 비자림로 숲을 기록한 영상 QR코드도 있다. 하상윤 제공
2021년 7월 24일자 세계일보 지면에 ‘개발이 빼앗은 숲 멈추니 돌아왔다’ 기사가 실렸다. 개발이 멈춘 후 3년이 지난 비자림로 숲의 전경과 내부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지면 하단에는 3년간 비자림로 숲을 기록한 영상 QR코드도 있다. 하상윤 제공
2018년 벌목 당시 흙색으로 도드라져 있던 숲의 공백(왼쪽)이 3년 동안 천이를 거치면서 푸른 수풀(오른쪽)로 다시 덮였다. 하상윤 제공
2018년 벌목 당시 흙색으로 도드라져 있던 숲의 공백(왼쪽)이 3년 동안 천이를 거치면서 푸른 수풀(오른쪽)로 다시 덮였다. 하상윤 제공

중단·재개 반복하는 제주 비자림로 확장공사

2018년 8월 제주도는 비자림로 4차선 확장공사를 이유로 비자림로 가장자리 숲을 훼손했다. 당시 제주도는 제주 동부지역에 급증하는 교통량 해소를 위해 비자림로 구간을 2차선에서 4차선으로 넓히고자 했다. 공사는 삼나무 900여 그루가 베어진 후에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반발로 닷새 만에 중단됐다. 이후 공사는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왔다. 그 과정에서 2019년 5월 말까지 소나무, 삼나무, 붓순나무, 팽나무, 황칠나무 등 약 2700그루가 쓰러졌다.

2019년 7월 비자림로 확장 공사 재개 당시 모습이다. 굴착기 주변으로 나무들이 쓰러져 있다. 하상윤 제공
2019년 7월 비자림로 확장 공사 재개 당시 모습이다. 굴착기 주변으로 나무들이 쓰러져 있다. 하상윤 제공
2021년 위 사진과 같은 장소의 모습이다. 천이가 진행된 숲이 수풀로 덮여있다. 하상윤 제공
2021년 위 사진과 같은 장소의 모습이다. 천이가 진행된 숲이 수풀로 덮여있다. 하상윤 제공

비자림로를 다룬 다른 기사 중에서 숲의 변화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본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개는 쓰러진 나무들의 모습과 공사와 벌목으로 사라진 숲의 단면만을 보여줬다. 하상윤 기자는 비자림로 숲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비자림로 숲 다르게 보여주기

하 기자는 이미 사람들에게 각인된 비자림로 이미지를 ‘어떻게 다르게 보여줄까’를 고민했다. 다른 미디어가 내놓은 비자림로의 전형적 이미지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으려 했다. 그는 그 이면에 놓인 것을 고민했다. 사라진 나무와 촘촘하게 연결된 숲 생태로 생각이 이어졌다. 숲의 자생력에 초점을 맞추고 그 변화를 다양하게 보여주기로 했다.

공중에서 내려다본 비자림로 공사 구간 모습이다. 3년 동안 천이를 거치면서 푸른 수풀이 공백을 채우기 시작했다. 하상윤 제공
공중에서 내려다본 비자림로 공사 구간 모습이다. 3년 동안 천이를 거치면서 푸른 수풀이 공백을 채우기 시작했다. 하상윤 제공
벌목 이후 3년이 지난 그루터기의 모습이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에 있다. 하상윤 제공
벌목 이후 3년이 지난 그루터기의 모습이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에 있다. 하상윤 제공
하상윤 기자는 지난 2018년 8월 제주 비자림로 확장·포장 공사 때 잘려 나간 삼나무 915그루 중 430그루의 밑동을 기록했다. 크기도 모양도 빛깔도 제각각인 삼나무 그루터기마다 파란색 페인트가 뿌려져 있다. 나무가 쓴 ‘역사’인 나이테에는 비자림로의 30년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하상윤 제공
하상윤 기자는 지난 2018년 8월 제주 비자림로 확장·포장 공사 때 잘려 나간 삼나무 915그루 중 430그루의 밑동을 기록했다. 크기도 모양도 빛깔도 제각각인 삼나무 그루터기마다 파란색 페인트가 뿌려져 있다. 나무가 쓴 ‘역사’인 나이테에는 비자림로의 30년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하상윤 제공

비자림로 숲 오래 바라보기

그는 비자림로 숲을 여러 차례 방문해 ‘오래’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비자림로에 가면 보통 3일씩 머물렀다. 그런 취재가 3년 넘게 이어지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2019년 한 해 동안은 한 달 이상을 제주에 머물렀다. 연차휴가 대부분을 취재에 사용했다. 취재 과정에서는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모임’라는 이름의 자발적 시민모임으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했다. 기자는 이들과 이른 새벽, 늦은 밤, 때로는 온종일 숲을 탐사했다. 제주에 갈 땐 항상 짐이 많았다. 커다란 망원렌즈부터 예비 카메라, 드론, 조명, 각종 스탠드까지 싸들고 갔다.

숲 위에서 바라본 2018년과 2021년의 비자림로의 모습을 하나로 이어붙인 대표 사진은 그렇게 나왔다. 기자는 먼저 숲 전체를 조망해 비자림로의 훼손된 단면을 보여준다. 이후에는 숲으로 옮겨가서 삼나무와 삼나무를 둘러싼 생태계를 보여줬다. 같은 장소에서 식물군락이 변하는 천이(遷移)를 거치면서 숲은 푸른 수풀로 덮여있었다. 그루터기에도 천이가 활발히 진행 중이었다.

지난 2019년 4월 비자림로 인근 숲에서 관찰된 수컷 두점박이사슴벌레(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의 모습이다. 하상윤 제공
지난 2019년 4월 비자림로 인근 숲에서 관찰된 수컷 두점박이사슴벌레(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의 모습이다. 하상윤 제공
지난 2020년 7월 비자림로 인근 숲에서 관찰된 으름난초(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의 모습이다. 하상윤 제공
지난 2020년 7월 비자림로 인근 숲에서 관찰된 으름난초(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의 모습이다. 하상윤 제공
지난 2019년 4월 비자림로 인근 숲에서 관찰된 수컷 긴꼬리딱새(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의 모습이다. 숲새 중에서도 조심성이 많아서 육안으로 관찰하기 어려운 종이다. 하상윤 제공
지난 2019년 4월 비자림로 인근 숲에서 관찰된 수컷 긴꼬리딱새(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의 모습이다. 숲새 중에서도 조심성이 많아서 육안으로 관찰하기 어려운 종이다. 하상윤 제공

숲에는 멸종위기종, 법정보호종을 포함해 새와 식물의 서식지가 있었다. 기자는 누리장나무, 머귀나무, 제피나무, 꾸지뽕나무, 산뽕나무, 사향제비꽃, 낙시제비꽃 등 각종 초본·목본 식물들이 뿌리를 내린 상태를 확인했다. 그는 쓰러진 삼나무와 함께 숲속 생명의 소리를 듣기도 했다. 거슨세미오름 방면 숲길에서 기자는 두견이, 팔색조, 긴꼬리딱새 등 법정보호종들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초망원 렌즈를 이용해 촬영했다.

기자가 숲에서 촬영한 새 중에서도 긴꼬리딱새는 더욱 특별했다. 기자는 정오를 넘긴 때에 홀로 500mm 망원렌즈를 들고 그늘진 어두운 숲에 들어갔다. 새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우연히 검고 푸른 새를 발견했다. 셔터를 5번 누르는 사이에 새가 날아갔다. 카메라에는 멸종위기종인 긴꼬리딱새가 담겨있었다. 그의 사진은 ‘법정보호종 서식지가 비자림 숲에 없다’고 주장한 환경영향평가의 부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벌목의 경계에 섰던 숲의 모습이다. 하상윤 제공
벌목의 경계에 섰던 숲의 모습이다. 하상윤 제공
지난 2020년 4월 비자림로 숲이 벌채된 자리에 시민들이 심은 사람주나무 묘목의 모습이다. 하상윤 제공
지난 2020년 4월 비자림로 숲이 벌채된 자리에 시민들이 심은 사람주나무 묘목의 모습이다. 하상윤 제공
2018년 벌목 당시 잘려 나간 삼나무 그루터기 모습이다. 나무가 쓴 ‘역사’인 나이테에는 비자림로의 시간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하상윤 제공
2018년 벌목 당시 잘려 나간 삼나무 그루터기 모습이다. 나무가 쓴 ‘역사’인 나이테에는 비자림로의 시간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하상윤 제공
‘숲은 여전히, [비자림로 3년의 기록]’에 담긴 비자림로 숲 모습이다. 훼손된 비자림로 삼나무 숲이 오른쪽 무성한 숲과 대비된다. 하상윤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숲은 여전히, [비자림로 3년의 기록]’에 담긴 비자림로 숲 모습이다. 훼손된 비자림로 삼나무 숲이 오른쪽 무성한 숲과 대비된다. 하상윤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이 기사는 비자림로 숲을 새롭게 조명했다. 개발이 멈춘 3년이라는 기간 동안, 훼손된 자리를 숲 스스로 채웠다는 것을 사진과 영상으로 보여줬다. 그리고 나무와 연결된 숲, 서식종, 서식지의 모습을 기자는 사진으로 보여줬다. 기사와 함께 준비한 영상 기록 ‘숲은 여전히, [비자림로 3년의 기록]’에서는 사진으로 다 보여주지 못한 숲의 모습을 ‘숲으로 된 성벽’이라는 노래와 함께 보여준다.

하상윤 기자가 비자림로를 들여다보며 제작한 '숲은 여전히, [비자림로 3년의 기록]' 영상이다.

2022년 5월 제주도는 도로 폭 축소 이행계획을 담은 ‘환경영향저감방안’을 환경부와 협의한 끝에 중장비를 투입해 공사를 재개했다. 그러나 2022년 8월 현재, 비자림로 확장 공사는 녹색당원 7명이 제주도지사를 상대로 제기한 ‘도로구역결정무효확인’ 소송으로 다시 중단된 상태다.

세계일보의 개발이 빼앗은 숲...멈추니 돌아왔다 기사는 여기를 눌러 읽을 수 있다. 

* 여기: https://www.segye.com/newsView/20210722520178,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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