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22년 퓰리처상 국제보도부문 수상작 – 민간인 희생자 문서(The Civilian Casualty Files) 탐사보도

1970년대 베트남 전쟁에 관한 비밀을 담은 미 국방부의 기밀 보고서 ‘펜타곤 페이퍼’가 세상에 알려진 뒤 미국 사회에서 반전 운동이 일었다. 닐 쉬한(Neil Sheehan) <뉴욕타임스> 기자가 한 국제관계 전문가로부터 펜타곤 페이퍼 사본을 전달받으며 보도가 시작됐다. 베트남 전쟁의 명분을 만들려는 목적으로 베트남의 미국 침공을 조작했다는 사실을 보고서는 암시했다. 당시 닉슨 정부는 국가 안보를 위해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의 후속 보도를 막아달라며 사법부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미 연방대법원은 언론의 자유가 국가 기밀 유지보다 우선이라는 판결을 내놨다.

그로부터 약 40년 후, 미국의 프리랜서 기자 아즈마 칸(Azmat Khan)은 중동 지역에서 미군이 실시한 공습과 이에 따른 민간인 피해 상황에 대한 정보를 파고 들었다. 우선 펜타곤을 상대로 관련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공개를 거부하는 미 국방부에 맞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온전치 않은 문서지만 확보해 현장을 직접 확인했다. 끈질긴 취재의 결과, ‘민간인 희생자 문서’(The Civilian Casualty Files) 기획보도를 지난해 12월 18일부터 31일까지 <뉴욕타임스>와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실었다. 비슷한 사안을 동료 기자가 다룬 <뉴욕타임스>의 다른 보도까지 묶어 총 8건이 2022년 국제보도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민간인 희생자 문서’ 기획의 연속 보도 가운데 하나인 ‘펜타곤의 비밀 기록이 치명적 공중전의 실패 유형을 드러내다‘(Hidden Pentagon Records Reveal Pattern of Failure in Deadly Airstrikes)의 인터넷판. 뉴욕타임스 누리집 갈무리
‘민간인 희생자 문서’ 기획의 연속 보도 가운데 하나인 ‘펜타곤의 비밀 기록이 치명적 공중전의 실패 유형을 드러내다‘(Hidden Pentagon Records Reveal Pattern of Failure in Deadly Airstrikes)의 인터넷판. 뉴욕타임스 누리집 갈무리

‘민간인 21명 살상’ 읽고 취재 착수

방대한 취재의 시작은 어느 신문 기사에 보도된 단편 정보였다. 미국 정부는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 등 중동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한 극단적 이슬람주의 조직인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와 전쟁을 벌여왔다. 그 결과 2016년 기준 ISIS의 군인 2만5천여 명을 사살했다고 미 정부는 발표했다. 그 내용을 전하는 신문 기사의 구석에 다른 소식도 있었다. ISIS와 싸우던 미군이 현지 민간인 21명을 사살한 사실을 미 국방부가 인정했다는 것이었다.

과연 21명 뿐일까? 사망한 민간인들은 어떻게 죽었을까? 미국의 책임은 무엇일까? 아즈마 칸 기자는 미국이 벌인 전쟁에 의해 죽은 민간인들을 제대로 취재하기로 결심했다. 민간인 희생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칸 기자는 미 국방부의 공식 문서부터 받아내려 했다. 몇 달뒤에야 민간인 희생에 대한 12건의 미 국방부 문서를 받았다.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이후에도 정보공개청구와 법적 소송을 거쳐 문서 1300여 건을 받아냈다.

문서·해명과 현장·증언 번갈아 제시

국방부 문서를 끈질기게 받아낸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칸 기자는 문서를 일일이 검토하여 신뢰성이 높은 사건을 추렸다. 이를 바탕으로 2016년 말부터 2021년 6월까지 무려 5년에 걸쳐 60건의 민간인 사망 사건을 현장에서 직접 취재했다.

문서와 현장을 오가며 피해의 진상에 다가간 결과를 담아, ‘펜타곤의 비밀 기록이 치명적 공중전의 실패 유형을 드러내다’(Hidden Pentagon Records Reveal Pattern of Failure in Deadly Airstrikes)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는 군인들이 공격을 결심하는 과정과 오폭 현장 및 피해자의 증언을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또 민간인 희생은 실수라는 펜타곤의 해명을 구체적인 증거로 반박한다. 특히 민간인 피해를 초래한 정보 판단의 유형을 제시했다. 적군을 잘못 특정하거나, 목표 장소에 민간인이 없다고 착각하거나, 표적 목록을 잘못 적거나, 군사 장비를 부실하게 관리하는 등 다양한 원인이 발견됐다.

미군이 표적 선정과 공격 과정에서 저지른 오류는 다양하다. 같은 이름의 다른 지역을 잘못 짚거나, 적 활동이 의심되는 지점을 완전히 벗어난 지역에서 정보를 수집하거나, 정찰활동을 벌인 구역과 떨어진 곳을 공격했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갈무리
미군이 표적 선정과 공격 과정에서 저지른 오류는 다양하다. 같은 이름의 다른 지역을 잘못 짚거나, 적 활동이 의심되는 지점을 완전히 벗어난 지역에서 정보를 수집하거나, 정찰활동을 벌인 구역과 떨어진 곳을 공격했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갈무리

진실에 다가가는 문제해결 여정 보여줘

아즈마 칸 기자는 위 기사의 전부를 객관적 정보와 건조한 문체로 채워 민간인 피해의 실체를 독자에게 보여줬다. 연속 보도 가운데서도 ‘미국이 벌인 공중전의 인명 피해’(The Human Toll of America’s Air Wars)는 기자의 취재일기 형식으로 작성됐다. 미 국방부 문서를 검토하면서 칸 기자가 떠올린 의문점,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현장을 찾아가는 여정, 그 결과 확인한 실체를 퍼즐 맞추듯 구성했다.

기자는 현장과 문서의 내용이 달라도 퍼즐의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좌표에 해당하는 실제 현장이 공격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파악한 뒤에는 실제 공격 지점을 직접 알아내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계속 새로운 인물을 소개받은 끝에 사안의 의미를 드러낼 만한 핵심 인물을 발견하기도 했다. 극단적 이슬람주의를 싫어하고 미국의 작전을 긍정적으로 보던 가족들이 미군에게 적군이자 표적으로 여겨져 목숨을 잃은 사건도 확인했다.

이상의 기사 외에도 관련 기사 5건이 함께 상을 받았다. 아즈마 칸 기자와 여러 명의 <뉴욕타임스> 기자가 팀을 이뤄, 미 국방부가 현지 민간인 피해를 대수롭지 않게 처리한 사실을 폭로하는 보도를 내놓았다. 또한, 드론에 의한 오폭 영상을 확보하여 보도했고, 미군의 비밀작전팀의 허술함을 폭로했으며, 민간인이 희생된 원인을 현지에서 직접 확인하여 보도했다.

아즈마 칸 기자 개인 홈페이지에 소개된 ‘민간인 희생자 문서’(The Cilivian Casualty Files) 기획의 일부다. 왼쪽은 2021년 12월 19일자 뉴욕타임스 1면에 보도된 ‘펜타곤의 비밀 기록이 치명적 공중전의 실패 유형을 드러내다’(Hidden Pentagon Records Reveal Pattern of Failure in Deadly Airstrikes)이고, 오른쪽은 ‘미국이 벌인 공중전의 인명 피해’(The Human Toll of America’s Air Wars)가 실린 2022년 1월 2일자 뉴욕타임스 매거진 표지다. 아즈마 칸 개인 홈페이지 갈무리
아즈마 칸 기자 개인 홈페이지에 소개된 ‘민간인 희생자 문서’(The Cilivian Casualty Files) 기획의 일부다. 왼쪽은 2021년 12월 19일자 뉴욕타임스 1면에 보도된 ‘펜타곤의 비밀 기록이 치명적 공중전의 실패 유형을 드러내다’(Hidden Pentagon Records Reveal Pattern of Failure in Deadly Airstrikes)이고, 오른쪽은 ‘미국이 벌인 공중전의 인명 피해’(The Human Toll of America’s Air Wars)가 실린 2022년 1월 2일자 뉴욕타임스 매거진 표지다. 아즈마 칸 개인 홈페이지 갈무리

전쟁 보도 분야에서 인정받은 기자

일련의 기획 보도를 두고 퓰리처상 심사위원회의 캐서린 부(Katherine Boo) 위원은 ‘미국 정부가 찾지 않은 민간인 희생자 수천 명을 드러냈고, 이러한 일이 미국적 가치와 모순된다는 점을 폭로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번 보도는 다른 <뉴욕타임스> 기사와 비교하면 다소 불친절하게 보일 수도 있다. <뉴욕타임스>가 내놓는 대부분의 심층탐사보도는 인포그래픽을 비롯한 각종 시각 장치를 통해 독자의 몰입도를 높이려 한다. 이에 비해 칸 기자의 기사는 사무적이고 복잡한 문서를 보여주는 사진 몇 장, 그리고 건조하고 담담한 문장으로 채워져 있다. 다만, 이 기사에는 집요하고 치밀한 검증을 통해 세계 최강 군사조직인 미군의 오류와 책임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힘이 있다. 그 내용에 있어 이 기사는 다른 보도들을 압도한다.

기획을 이끈 아즈마 칸 기자는 주로 국제분쟁 현장을 보도해온 프리랜서 기자였다. 그는 스스로를 '전쟁의 인간적 손실‘(the human costs of war)을 보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컬럼비아 저널리즘대학원에서 국제보도 연구소장을 맡아 분쟁 보도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등 학계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 리뷰 기사를 작성하던 26일, 아즈마 칸 기자가 <뉴욕타임스> 정규직 기자(staff)로 고용됐다는 발표가 나왔다.

<뉴욕타임스>의 ‘펜타곤 민간인 희생자 문서’ 탐사보도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idden Pentagon Records Reveal Pattern of Failure in Deadly Airstrikes
The Human Toll of America’s Air Wars
The Civilian Casualty Files
How a U.S. Drone Strike Killed the Wrong Person (유튜브)
⑤ The U.S. Military Said It Was an ISIS Safe House. We Found an Afghan Family Home. (유튜브)
How the U.S. Hid an Airstrike That Killed Dozens of Civilians in Syria
Civilian Deaths Mounted as Secret Unit Pounded ISIS
Documents Reveal Basic Flaws in Pentagon Dismissals of Civilian Casualty Clai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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