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영화 ‘컴온 컴온’

<컴온 컴온>은 삼촌과 조카, 오빠와 여동생, 저널리스트와 어린이가 주고받은 말을 기록한 영화다. 주인공 조니가 관계에 따라 삼촌, 오빠, 저널리스트 역할을 하면서 세 개 차원의 대화가 하나의 큰 이야기로 엮인다. 조니는 미국 도시를 다니며 아이들을 인터뷰하는 라디오 저널리스트다. 쇠락한 제조업 도시 디트로이트에서는 아이들이 어떤 미래를 그리며 사는지 듣고, 역사적으로 이민자가 많은 뉴욕의 아이들에게는 다른 나라에 사는 또래친구한테 미국이 어떤 나라라고 설명할 건지 묻는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미국에 사는 어린이가 삶과 미래를 어떻게 보는지 알아내고자 한다. 어느 날, 조니는 여동생의 아들 제시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동생 사정으로 제시를 돌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인터뷰도 함께 다니게 된다. 조니는 라디오 저널리스트로서 낯선 어린이와 능숙하게 대화하지만, 삼촌으로서는 제시의 말과 행동에 자주 당황한다.

제시는 음모론을 좋아하고 고아인 척하는 역할 놀이를 즐긴다. ‘장난으로’ 마트에서 갑자기 숨어 버려 삼촌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고, 아무 버스에 올라타기도 한다. 삼촌 조니는 밤마다 마이크를 들고 육성으로 육아일기를 남긴다. 동화책을 읽어주는데 제시가 뜬금없이 왜 결혼하지 않았느냐고 물었고, 대충 둘러 답했고, 9살 조카에게 차마 실연의 상처를 자세히 말하지 못했다고 녹음하는 식이다. 조니는 제시를 돌보는 일이 힘에 부쳐 동생에게 연락해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조니는 동생에게 제시와 고아 놀이를 하기 싫다고 투정도 부리고, 제시가 왜 아무 버스에 올라타는 행동을 하는지 동생의 해설을 듣는다. <컴온 컴온>은 같이 지내기 불편한 사이였던 조니와 제시가 함께한 시간을 기억하며 살기로 약속하는 사이가 되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 '컴온 컴온' 포스터. 마이크 밀스 감독은 조니와 제시의 동행이 현실과 거리가 있는 우화처럼 비치길 바라서 흑백영화로 제작했다고 밝혔다. '컴온 컴온'은 마이크 밀스가 아이를 키우며 겪은 경험을 담은 자전적 영화다. ⓒ A24
영화 '컴온 컴온' 포스터. 마이크 밀스 감독은 조니와 제시의 동행이 현실과 거리가 있는 우화처럼 비치길 바라서 흑백영화로 제작했다고 밝혔다. '컴온 컴온'은 마이크 밀스가 아이를 키우며 겪은 경험을 담은 자전적 영화다. 출처 A24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 우화

마이크 밀스 감독은 있는 그대로의 미국을 담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찍듯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감독은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시기 자신이 겪은 혼란스러웠던 미국의 초상을 <컴온 컴온>을 통해 보여주려 했다고 밝혔다. 감독은 미국의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내기 위해 현실의 인물을 영화로 초청했다.

감독은 영화에서 조니와 함께 아이들을 인터뷰하는 동료 록산느 역에 실제 라디오 저널리스트인 몰리 웹스터를 캐스팅했다. 몰리 웹스터는 마이크 밀스 감독이 라디오 저널리즘을 제대로 구현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마이크 밀스 감독이 영화에 출연하는 아이들을 섭외할 때는 뉴욕 공공 라디오 프로그램인 ‘라디오 루키스(Radio Rookies)’의 전 총괄 프로듀서 카리 핏킨의 도움을 받았다. ‘라디오 루키스’는 청소년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고 이를 라디오 다큐멘터리로 만들 수 있게 지원해 청소년이 만든 오디오 다큐멘터리를 방송한다. 카리 핏킨은 마이크 밀스 감독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아이들을 소개했다.

조니가 각 도시의 아이들을 인터뷰하는 장면들은 배역이 아닌 실제 각 도시 아이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인터뷰는 코로나19 세계적 유행 이전인 2019년 11월부터 2020년 1월 사이 촬영했다. 출처 A24
조니가 인터뷰하는 아이들은 각 도시에 사는 실제 인물이다. 인터뷰는 코로나19 세계적 유행 이전인 2019년 11월부터 2020년 1월 사이 촬영했다. 출처 A24

영화에서 미국 전역의 어린이에게 삶과 미래에 관해 묻는 라디오 저널리스트 조니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인터뷰에 응한 아이들은 연기자가 아니다. 각 도시에 살고 있는 실제 인물이다. 조니 역을 맡은 호아킨 피닉스가 각 도시를 방문해 인터뷰했다. 영화에 실린 답변 내용도 대본이 아니다. 영화에는 초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떤 능력을 갖고 싶냐는 질문에 “글쎄요. 초능력 필요 없는데. 나로 사는 게 더 초능력 같아요”라는 답변처럼 아이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실린다. 감독은 아이들이 자기 생각대로 답변한 내용을 영화에 그대로 실었다. 감독이 주인공 조니를 라디오 저널리스트로 설정한 건 있는 그대로의 미국을 담기 위한 실용적 선택이었다.

불편한 질문이 허문 것

영화에서 조니와 제시의 관계 변화를 이끄는 건 제시의 맹랑한 질문이다. 제시는 조니가 대충 둘러대기 힘든 사실들을 집요하게 묻는다. 9살 제시는 아빠가 조울증이고, 엄마가 주방에 선 채로 스테이크를 마구 썰어 먹으면 스트레스를 받아서라는 걸 알고 있다. 삼촌 조니가 엄마랑 오랫동안 연락을 끊었다는 것도 안다. 다만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는지는 모른다. 제시는 이 사실들이 벌어진 이유를 알 법한 삼촌에게 당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묻는다. 제시는 자신도 나중에 아빠처럼 감정표현에 서툰 어른이 되는 건지, 엄마는 왜 친하지도 않은 삼촌한테 자신을 맡겼는지 속에서만 맴돌던 질문도 조니에게 털어놓는다.

조니는 제시와 나눈 대화를 자신의 녹음기에 기록하고, 동생과 공유하며 제시의 삶을 곱씹는다. 조니를 골치 아프게 했던 행동과 말이 제시에게는 눈앞에 벌어진 일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는다. 또한 조니는 동화책을 읽다 우는 모습을 제시에게 들키고, 제시를 업어주다 쓰러져 제시의 돌봄을 받으면서 제시가 자신을 위로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삼촌 조니는 제시의 행동과 말을 통제하려는 어른에서 제시를 이해하고 위로하려는 친구가 된다. 그렇게 조니와 제시 사이에 허물없는 대화가 쌓인다.

제시는 나중에 삼촌과 보낸 시간을 까먹으면 어떡하냐고 걱정한다. 조니는 혹여 제시가 까먹더라도 다시 기억할 수 있게 알려주겠다고 약속한다. 인터뷰에서든 일상에서든 허물없이 주고받은 말은 서로를 기억하는 힘이 된다는 걸 조니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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