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영화 '나의 집은 어디인가'

‘인종, 종교 또는 정치적, 사상적 차이로 인한 박해를 피해 외국이나 다른 지방으로 탈출하는 사람들’. 난민의 사전적 정의다. 난민은 여전히 낯설다. 2018년 예멘 국적의 난민신청자 500명이 제주도로 입국하면서 한국에서도 난민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이뤄진 적이 있다. 그때도 난민이 떠나온 본국의 상황에 대한 관심보다는 편견에 기반한 여러 혐오 발언 등으로 논의의 폭은 ‘좋은 난민’과 ‘나쁜 난민’을 구분하는 폭력적 차원으로 줄어든 게 사실이다. 4년이 지난 지금, 난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달라졌을까. 난민이 우리 곁에 있음을 조금은 인지한 지금, 그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들은 왜 수천 킬로미터를 떠나 타국을 찾았을까. 난민은 누구일까.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또 받아들여야 할까. 영화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그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던져준다.

영화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덴마크로 건너온 난민 ‘아민’과 가족의 ‘탈출기’를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조합을 통해 담아낸다. 출처 왓챠
영화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덴마크로 건너온 난민 ‘아민’과 가족의 ‘탈출기’를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조합을 통해 담아낸다. 출처 왓챠

그들은 어떻게 난민이 되었나

영화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요나스 포헤스 라스무센 감독이 2021년 제작한 덴마크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다. ‘아민’이라는 인물이 어린 시절 살았던 아프가니스탄에서 현재 거주하는 덴마크로 오기까지 난민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겪어온 고투, 가족과의 이별, 개인의 성장 등을 담아냈다. 애니메이션과 아카이빙 실사 영상을 적절히 조화시켜 난민을 소재로 한 새로운 형식의 영화라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 3월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 장면 국제영화상 등 3개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렸고, 전미비평가협회 논픽션 영화상을 비롯해 각종 영화제에서 80개 이상의 트로피를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주인공 ‘아민’은 자신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전한다. 영화는 액자식 구성으로 진행된다.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아민의 친구인 인물이(이름은 나오지 않으나, 감독이 자신의 친구 이야기라고 밝힌 것을 볼 때 감독으로 추정된다) 아민에게 질문을 던지고, 아민은 그 질문에 대답하며 자신의 지난 과거를 하나하나 기억해내고 전달한다. 아민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과 두 명의 형, 두 명의 누나를 둔 막내로, 남들에게 관심받기 좋아했다. 행복한 시간은 순식간에 암흑으로 변했다. 전쟁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1979년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소련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공산국가를 아프가니스탄에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발하는 반군 세력이 생겼는데 이들이 ‘무자헤딘’이다. 소련의 침공은 미국의 개입으로 이어졌고, 미국이 무자헤딘을 지원하며 무자헤딘은 세력을 키워갔다.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정부군과 반군의 대립으로 인한 끝없는 내전을 이어갔다. 아민은 그 가운데 있었다. 정체 모를 사람들이 집에 들어와 아버지가 ‘공산주의에 위협이 되는 사람'이라며 끌고 갔다. 아버지는 집을 떠난 지 3개월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0대 후반이었던 형은 젊은 남성이었기에 징집 대상이었다. 가족들은 더 이상 아프가니스탄에 머물 수 없었다. 이러다간 형도, 가족 모두도 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난민’이 되기로 했다.  

‘아민’은 고등학교 동창이자 감독인 인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덴마크에 오기까지의 과정은 친한 친구였던 감독도 알지 못했던 고통으로 얼룩져 있었다. 출처 왓챠
‘아민’은 고등학교 동창이자 감독인 인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덴마크에 오기까지의 과정은 친한 친구였던 감독도 알지 못했던 고통으로 얼룩져 있었다. 출처 왓챠

애니메이션과 실사로 보여주는 전쟁의 참상

영화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아민과 가족들의 ‘아프가니스탄 탈출기’를 시간 순서로 전해준다. 가족들은 아프가니스탄 국민에게 유일하게 관광비자를 내줬던 러시아로 떠난다. 전쟁을 피해 미리 스웨덴으로 망명했던 큰형이 모스크바에 아파트를 구해 가족들이 쉴 공간을 마련해준다. 가족들은 큰형이 사는 스웨덴으로 밀입국을 시도한다. 그 과정은 언론에서 본 난민들의 밀입국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참혹했던 당시 상황은 당사자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누나들은 화물선 안 컨테이너에 예순 명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 실린 채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며칠을 버텼다. 다른 화물용 컨테이너 수십 개에 둘러싸여 컨테이너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 도착했을 때 누나들은 충격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큰형은 엄마와의 통화에서 전했다. 이어 탈출한 아민과 엄마, 형은 물이 차오르는 배에서 일주일 넘게 물을 퍼내며 살아남았다. 그들도 수십 명의 난민들과 버텼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국경 경찰에 잡혀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기도 했다. 

난민 아민의 참극은 특별한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감독은 애니메이션을 영화의 핵심적인 형식으로 채택해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다소 낯선 장르다. 애니메이션 영상은 실사가 아니기 때문에 다큐멘터리의 핵심 요소이자 강점인 현장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가 어렵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다르다. 영화가 전하는 아민의 탈출기는 실감난다. 우선 회상을 기반으로 하는 인터뷰 형식이 가지는 힘이 있다. 영화는 극 중 고등학교 동창이자 감독이 아민에게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질문을 이어가며 아민이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극을 전개한다. 과장하거나 빼지 않고, 주인공의 인터뷰로 전체 서사를 진행해 애니메이션의 약점일 수 있는 실제와의 괴리감을 없앤다.

주목할 점은 애니메이션과 실사 화면의 조화다. 감독은 영화 중간마다 과거 방송뉴스 보도를 비롯한 실사 화면을 삽입한다. 아민이 어린 시절을 보낸 70년대의 아프가니스탄 실정과 내전 현장, 소련이 붕괴한 후의 러시아, 아민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 덴마크의 오늘까지. 자료화면은 애니메이션으로는 부족할 수 있는 현실감을 실사로 더한다. 특히 주인공의 인터뷰만으로 전달되는 당시 상황 묘사의 한계를 실사는 효과적으로 제시한다. 소련이 붕괴한 후 러시아의 모습은 어땠는지, 누울 곳만 있고 화장실에 악취가 진동했던 난민 수용소는 어땠는지 등을 보여주는 식이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미디어를 통해 뭉뚱그려졌던 난민이라는 ‘집단’을 아민과 같은 ‘개인’으로 구체화한다. 아민의 이야기는 난민을 동떨어진 존재에서 한 걸음 가깝게 만들며, 그 아픔에도 다가가게 만든다. 출처 왓챠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미디어를 통해 뭉뚱그려졌던 난민이라는 ‘집단’을 아민과 같은 ‘개인’으로 구체화한다. 아민의 이야기는 난민을 동떨어진 존재에서 한 걸음 가깝게 만들며, 그 아픔에도 다가가게 만든다. 출처 왓챠

난민, 뿔뿔이 흩어진 아픈 가족 이야기

영화는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스웨덴에 온 난민 가족의 탈출기를 다룬다. 멀게만 느껴졌던 난민의 존재에 대해 이들이 누구인지를,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구조적 차원으로 접근하게 만든다.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난민이라는 큰 개념보다 ‘아민’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 안에 담긴 개인의 삶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간다. 아민의 가족은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모스크바에 도착해 스웨덴으로 갈 준비를 한다. 이들은 함께 행동할 수 없었다. 돈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형이 가족들에게 보낼 수 있는 돈은 한정돼 있었다. 비자가 만료돼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살아가는 가족들이 러시아에 남아 일을 할 수도 없는 상황. 가족들은 한 사람씩 모스크바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난민이 한 가족을 어떻게 이별시키는지 아민의 가족을 통해 보여주며, 난민은 곧 가족의 아픈 결별이란 사실을 전한다. 

가족이 생사도 확인할 수 없는 이별을 하는 상황에서 아민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아민은 부끄러움을 이야기한다. 누나들이 먼저 떠나고 엄마와 형 아민만 남았다. 이들은 브로커를 통해 걸어서 국경을 넘고, 마지막으로 열 명만 탈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배에 수십 명의 난민들과 함께 탄다. 물이 새고, 끝없이 흔들리는 배를 탄 지 며칠째. 마침내 저 멀리 노르웨이 대형 유람선이 모습을 보인다. 난민들은 드디어 기회가 왔다며 손을 흔들고, 몇 명은 바다로 뛰어들어 그 배에 닿으려고도 했다. 이들이 환호하는 건 당연했다. 말 그대로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민은 그때의 감정을 다르게 기억한다. 기쁘지 않았다고, '부끄러웠다'고 말한다. 수십 층 높이의 유람선 위에서 작은 배 위에 놓인 사람들이 신기한 듯 사진을 찍고 돌아서는 그들의 모습에 아민은 수치심을 느꼈다. 아민의 독백은 우리에게 난민의 사회구조적 상황뿐 아니라 개인에 주목하게 해 우리가 갖고 있던 난민을 하나의 집합체로 인식했던 우리의 시선이 편협했단 것을 일깨워준다. 

아민은 난민이지만 또 다른 특수성을 갖고 있다. 그는 성소수자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난민의 탈출기로만 설명할 수 없는 특징을 가진다. 보수적인 아프가니스탄에서 동성을 좋아한다는 것은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아민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성적 지향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한다. 영화는 아민이 겪은 성소수자로서의 혼란을 다루며, 난민 문제를 난민 전체가 아닌 개인에 주목하게 만든다. 아민이 겪은 혼란은 성소수자이자 난민, 아프가니스탄 출신이라는 개인을 이루는 복잡한 사회적 구조의 문제임을 깨우치게 한다. 

도망쳐 온, 나의 집은 어디인가

영화의 원제는 <Flee>다. ‘도망치다’는 의미의 단어다. 집을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아민은 ‘나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갖게 된다. 아민은 덴마크에서 만난 자신의 동성 파트너와 미래에 대한 약속을 두고 갈등을 겪는다. 영화의 끝에서 이 갈등은 마무리되는데, 아민은 그 과정에서 자신이 겪은 어려움을 말한다. 파트너를 사랑하지만, 쉽게 마음을 다 주지 못한 이유는 어릴 때 겪은 피난의 아픔 탓에 누구도 잘 믿지 않게 됐고, 그래서 단 한 순간도 남에게 경계를 늦추지 않게 됐기 때문이었다고 고백한다. 고백 후 그는 파트너와 새로운 집을 구해 앞으로의 삶을 꾸려갈 것임을 암시하는 모습을 보이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의 시작에서 감독은 아민에게 묻는다. ‘집은 어떤 의미인가’. 아민은 답한다. ‘내가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 수십 년이 지나 그는 자신에게 묻는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됐다. 물질적인 집을 넘어 믿을 수 있고, 경계를 늦추게끔 만드는 사람과의 삶. 그가 ‘집을 도망쳐온’ 후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거기에 있다고, 영화의 끝은 이야기하고 있다. 수십 년 전 집에서 도망친 그가 찾아 헤매던 집은 평범하게 숨 쉴 수 있는 안전한 일상 그곳에 있었다. 여전히 ‘나의 집’을 그리워하는 또 다른 아민을 기억하며.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