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21년 한국디지털저널리즘 어워드 대상 수상작 - ‘환생’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생명이 있다.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신이나 예수의 부활을 말하는 게 아니다. 뇌사판정을 받은 뒤 장기를 기증하고 생을 마감한 이들이 그러하다. 뇌사는 말 그대로 뇌의 모든 부분이 죽은 상태를 말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근육이 스스로 움직이는 심장만 뛸 뿐이다. 한 명의 기증인은 최대 9개, 평균 3.58개의 장기를 다른 이에게 나눈다.

우리나라에 장기이식법이 생긴 지는 20년이 지났다. 하지만 장기기증을 심층 보도한 기사는 매우 드물었다. 장기기증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고, 이를 다루는 보도에 동의하는 유가족을 찾기도 어렵다. 게다가 뇌사판정을 받은 이의 장기기증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고, 촌각을 다투는 긴박한 상황에서 진행된다. 대상을 찾는 일도, 깊이 취재하는 일도 어려운 것이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히어로팀’)의 ‘환생: 삶을 나눈 사람들’(‘환생’) 시리즈는 장기기증 문제를 심도 있게 취재하고 이를 지면과 포털, 히어로콘텐츠 전용 사이트 ‘디 오리지널’(The Original)을 통해 동시에 보도했다. 환생‘은 지난해 제10회 한국디지털저널리즘 어워드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심도 있는 주제의식, 다채로운 화면 구성, 차별화된 스토리텔링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 <동아일보> 히어로팀은 총 6편에 걸쳐 장기기증 문제를 보도해 지난해 한국디지털저널리즘 어워드 대상과 관훈언론상 저널리즘 혁신 부문을 수상했다. ⓒ 동아일보

장기기증 문제, 심층 취재로 기시감 없애

‘환생’은 취재의 깊이와 양에서 기존의 기사들과 달랐다. 장기기증에 관한 대부분의 보도는 기증자의 선행을 알리는 단신 기사다. 이에 비해 ‘환생’은 기증자가 사망한 직후부터 유가족이 장기기증을 결정하고, 장기가 이식자에게 이송되는 모든 과정을 1화에 담았다. 2화에서는 장기 수혜자도 만났다.

히어로팀이 장기기증 문제를 보도 주제로 선정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 취재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히어로팀은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프로젝트팀이다. 4~5명의 소수정예 기자들로 구성된 팀은 오직 하나의 주제를 집중 취재하기로 했다. 월간 <신문과 방송>에 실린 취재기에서 히어로팀 2기 팀장이었던 임우선 기자는 주제 선정 과정에서 “오직 히어로팀만이 할 수 있는 일”인지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다고 말했다.

1화에 나오는 손현승(당시 39세) 씨는 중소 규모의 현수막 업체에서 일했다. 그는 부산의 한 호텔 연회장에서 현수막을 걸기 위해 6미터(m) 높이의 리프트에 올라갔다가 머리부터 바닥으로 떨어져 뇌사판정을 받았다. 현승 씨의 장기기증을 결정하고, 이를 다룬 언론 보도를 허락한 이는 그의 형, 손봉수(43) 씨다. 봉수 씨는 양산부산대병원 흉부외과 의사다. 그는 의사로서 뇌사 상태에 있는 수많은 환자를 목격해 왔다. 뇌사의 경우 식물인간과는 다르게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 경우 선택지는 두 개뿐이다. 다른 장기들도 생명을 잃어갈 때까지 기다리거나, 아직 살아있는 장기로 다른 사람을 살리거나. 봉수 씨는 후자를 선택했다.

“나는 명색이 흉부외과 의사이자 폐 이식 전문의였다. 전국 곳곳에서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식을 받지 못해 생을 마감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도.” (‘1화: 내 동생 현승이’ 가운데)

▲ ‘디 오리지널’ 페이지에 실린 ‘환승’ 1화의 대표 사진. 주인공 손봉수(왼쪽) 씨와 동생 손현승 씨가 학창 시절에 찍은 사진이다. ⓒ 동아일보

장기기증자뿐만 아니라 수혜자를 깊이 있게 다룬 것도 이례적이다. 2화에서는 2020년 4월 총 7명에게 생명을 나눠주고 떠난 홍준(당시 9세)과 그의 장기를 이식받은 현우(가명·당시 4세), 민준(가명·당시 5세)의 이야기를 다뤘다. 현우와 민준은 각각 홍준의 심장과 신장을 이식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장기이식법)에 따라 장기기증인 유족과 수혜자가 서로의 정보를 알 수 없다. 유족이 수혜자 측에 부담을 주는 일을 사전에 막고, 수혜자가 잘못되더라도 유족이 상처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공익적 목적일 경우 당사자 간 동의를 전제로 정보 제공이 허용된다. 히어로팀은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KONOS·코노스)과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DA·코다)에 요청해 장기 수혜자 가족과 접촉할 수 있었다.

기사에는 장기이식 수혜자의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다. 이름도 가명으로 처리됐다. 대신 홍준의 장기를 이식받기 전 현우와 민준이 투병해 온 시간을 전했다. 현우의 병명은 ‘확장성 심근병증’이었다. 심장 근육의 이상으로 박동이 약해지는 병인데, 간의 기능까지 나빠지게 만들었다. 성인에게 맞춰진 인공심장이 몸에 맞지 않아 몸 밖에 100킬로그램(kg)의 인공심장을 지니고 다녔다. 민준이는 다섯 살 되던 해에 만성 신부전증 말기 판정을 받았다. 매일 자기 전, 배에 삽관된 줄로 9시간 동안 피를 걸러냈다. 홍준은 이 두 아이에게 새 생명을 선물했다. 홍준의 선물을 받은 이들은 현우와 민준 말고도 5명이 더 있다. 기사에는 홍준의 아버지 고동헌(44)씨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 홍준의 심장을 받은 현우의 심전도 그래프. 취재진은 현우의 부모에게서 받은 현우의 심전도 그래프와 심장 초음파 영상을 홍준의 아버지 고동헌 씨에게 전달했다. ⓒ 동아일보

“기증을 받은 아이 부모님들. 미안해하지 마세요. 아프고 싶어 아픈 아이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절대 죄책감 갖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아이들 많이 안아 주세요. 많이 안아 주세요···.” 고 씨는 “홍준이 덕에 7명이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됐다는 건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라며 “우리 가족에게 위로가 된다”고 전했다. (2화: 다시 만난 너’ 가운데)

디지털 내러티브로 기사 몰입도 높여

‘환생’은 탄탄한 취재를 바탕으로 쓴 텍스트만으로도 완성도가 높은 기사다. 히어로팀은 여기에 디지털 내러티브를 접목해 기사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디지털 내러티브 기사는 <동아일보> ‘디 오리지널’ 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다. 내러티브 기사는 주인공과 관련된 사건을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해 정보 전달력과 읽는 재미를 더한다. ‘환생’은 1화와 2화에서 소설 형식의 기사체를 구현했다. 전편에 걸쳐 독자가 직접 참여하는 인터랙티브 요소도 가미했다. 인터랙티브 요소는 매체와 상호작용하는 감각을 주어 독자가 더 주체적으로 기사를 감상하게 돕는다.

1화는 장기기증자 손현승 씨의 형인 손봉수 씨의 시점에서 쓰였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봉수 씨가 기억하는 현승 씨를 기사에서 불러냈다. 현승 씨가 뇌사판정을 받던 순간의 비통함과 현승 씨의 장기가 대기자에게 이송되는 순간의 긴박함을 동영상으로 생생하게 보여줬다. 2화에서는 홍준의 장기를 이식받은 두 아이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장기이식 수혜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며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취재진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취재진은 현우의 심전도 그래프와 초음파 영상을 홍준의 아버지에게 전달했고,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기사에 실었다. 동영상에는 수혜 아동의 심장 초음파 영상도 담겼다. 3화에서는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2020년 12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이식 대기자는 총 4만 3000여 명인데, 같은 해 장기를 기증하고 떠난 사람은 478명에 불과했다. 턱없이 부족한 장기기증 실태를 인포그래픽과 르포 기사, 5명의 인터뷰 기사로 전했다.

▲ 손현승 씨의 뇌사판정이 내려진 뒤 의료진이 장기 적출 수술을 위해 현승 씨를 수술실로 옮기고 있다. 이 장면은 기사에서 9초가량의 동영상으로 재생된다. 영상에는 발을 구르며 애처롭게 우는 현승 씨 어머니의 모습이 담겼다. ⓒ 동아일보
▲ ‘3화: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끝에 장기이식 대기자와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들을 인터뷰한 기사를 독자가 클릭해서 읽어볼 수 있게 배치했다. 정거장은 장기이식 대기자들이 하염없이 순서를 기다리는 상황을 비유한 표현이다. ⓒ 동아일보

장기기증 둘러싼 부정적 인식 뒤집어

우리나라에서 장기기증이 흔치 않은 배경에는 장기기증에 관한 오해가 있다. ‘기증해봤자 병원만 좋은 일 시키는 것 아니냐’, ‘부자들한테만 장기가 가지 않느냐’는 오해는 물론이고, 유가족이 사례비를 노리고 사망자의 장기를 기증한다는 왜곡된 인식도 널리 퍼져 있다. ‘환생’ 시리즈 4화부터 6화까지는 이런 오해를 풀 수 있는 정보와 함께 현실적인 대책을 전했다. 4화에서는 장기이식 담당 코디네이터의 이야기, 5화에서는 남겨진 유가족들의 이야기, 그리고 6화에서는 전문가의 인터뷰를 문답식으로 구성해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장기기증 문제의 답을 구했다.

5화에 등장하는 장기기증자 김기석(당시 16세) 씨의 아버지 김태현(62) 씨는 급성 뇌출혈로 생을 마감한 아들의 생명을 6명에게 나눠줬다. 그것은 오직 아들을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그는 “기석이가 더 오래 살았으면”, 그리고 “더 좋은 세상도 보고 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들의 장기를 기증했다. 그러나 그의 친구들은 아들의 치료를 일찌감치 포기했다거나, 아들의 장기를 기증해 큰돈을 벌었다고 오해했다. 뇌사와 장기기증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는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2013년부터 매달 한 번꼴로 장기기증을 주제로 강연을 한다.

“장기기증에 대해 사회가 많이 오해를 하고 있어요. 지금도 장기기증을 ‘홍보’는 하지만 제대로 알게 교육하지는 않지요. 저는 홍보가 아니라 ‘계몽’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어요. 학교에 가서 자라나는 학생들만이라도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요.”

강연에 가서는 학생들에게 세 가지를 말한다. 첫째, 뇌사와 식물인간 두 가지를 구별하라고. 둘째, 장기기증이라는 게 있다는 걸 기억하라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석이를 기억해 달라고. 기석이가 여러분의 마음속에 살아있다면 영원히 살아있는 거라고. (’6화: 나는 아들을 팔지 않았습니다’ 가운데)

‘환생’ 시리즈가 보도된 이후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유가족들의 사연에 공감하며 자신의 기증 사례를 나누는 댓글 2000여 개가 네이버에 노출된 기사에 달렸다. 실질적인 제도 변화도 이끌었다. 정부는 장기기증자와 유가족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장기기증자의 장례비를 지원하고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비나 시설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1월부터는 장기기증자와 이식 수혜자 간의 서신 교환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좋은 기사는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 ‘환생’은 장기기증 문제를 다각도에서 심도 있게 취재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했다. 그뿐만 아니라 텍스트에 사진, 영상, 인터랙티브 요소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독자들이 기사에 공감해 몰입하도록 했다. 기사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과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보게 했다. “기사를 읽다가 눈물을 흘린 건 처음”이라는 어느 누리꾼의 찬사는 디지털 내러티브 기사가 가진 힘을 보여준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보도한 ‘환생’ 시리즈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1화: 내 동생 현승이

2화: 다시 만난 너

3화: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4화: 생을 잇는다는 것

5화: 그래도 사랑은 남는 것

6화: 더 많은 환생을 위하여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편집: 최은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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