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집 재밌는 곳] 제천시 덕산면 ‘아오바바’

‘바그작!’

낙엽을 밟는 소리보다 조금 더 무게감 있는 파열음이 치아 사이에서 난다. 오직 얇게 튀긴 음식의 질감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즐거운 소리다. 이름조차 낯선 ‘반쎄오’(bánhxèo)라는 베트남 요리를 처음 만나면 내용물을 감싸고 있는 피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노른자와 흰자를 잘 풀어서 파와 함께 계란을 넓게 튀긴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씹어보면 계란의 질감 보다는 훨씬 가볍다는 게 단번에 느껴진다. 코코넛향이 첨가된 쌀가루와 강황가루를 반죽해 얇게 튀겨서 반쎄오 피를 만들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질감이다.

▲ 바삭거리는 식감이 특징인 반쎄오. 안에는 잘게 다진 돼지고기와 숙주가 들어있다. ⓒ 강훈

노란 피 안에는 데친 숙주와 돼지고기가 씹힌다. 씹는 동안에는 삼삼한 재료의 향이 충분히 나지만, 목 안으로 넘길쯤에는 코코넛 향이 이국의 느낌을 준다. 강한 향으로 시작하는 다른 동남아 식당 음식과는 조금 다르다. ‘아오바바’의 음식은 수수하고 꾸밈이 없다. 멋부리지 않아 화려함은 없어도 재료 하나하나가 가진 맛의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베트남 음식점 아오바바는 충북 제천시 덕산면에 있다. 덕산면은 월악산을 등지고 청풍호를 마주하고 있는 지형 때문에 이곳을 향하기 위해선 산길을 타고 오거나 구불구불한 호숫가 도로를 곡예 하듯 가야 한다. 덕산면 전통시장 한 귀퉁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오바바’라는 작은 간판 아래에는 비닐벽과 베트남 현지 사진, ‘다문화 음식 경연대회’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미닫이문 안쪽에는 이국적인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천장에는 대나무발이 걸려있고, 벽에는 베트남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의 사진이 있다. 4인용 테이블 6~7개 정도가 놓여 있다. 바깥의 한기를 완전히 막아주지 못하는 벽 때문에 실내의 공기는 조금 차게 느껴졌다. 하지만 천장의 작은 조명과 찬장에 놓인 아기자기한 소품이 작은 온기를 공간에 불어넣고 있었다.

▲ 아오바바 외부와 내부 사진. 천장에 달린 대나무발은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 강훈

‘아오바바’라는 이름은 베트남 여성들이 입는 전통의상 명칭에서 따왔다. 함께 식당을 운영하기로 한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이 제안했다. 아오자이가 베트남 여성들이 격식을 차릴 때 입는 긴 옷이라면 아오바바는 베트남 여성들이 일을 할 때 입는 짧은 상의를 말한다. 편한 옷에서 가정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고 발음하기도 쉬워 식당 이름으로 결정했다.

베트남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맛

이름이 가리키는 것처럼 아오바바는 베트남 가정식을 지향한다.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쌀국수(Phở)에서도 차이가 난다. 흔히 쌀국수라고 하면 어두운 빛깔을 한 소고기 국물과 얇게 저민 양지나 사태가 고명으로 올라간 그릇이 떠오른다. 일반적으로 소뼈에서 우러나온 감칠맛과 육(肉)향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 많다. 아오바바의 쌀국수는 상대적으로 때깔이 밝다. 국물맛은 소 육수로 만든 쌀국수보다 훨씬 담백하고 가볍다. 비결은 돼지육수다. 돼지뼈를 고아낸 육수에 무, 배추 등으로 우려낸 야채수를 섞어 국물을 만든다. 고명도 돼지고기 자른 게 올라간다. 베트남 시골 가정에서 소박하게 먹었던 돼지고기 육수를 맛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 쌀국수, 껌승, 반쎄오를 올린 한상. 수수하고 담박한 베트남 가정식을 맛볼 수 있었다. ⓒ 강훈

반쎄오, 라이스페이퍼에 돼지고기와 숙주를 말아 만든 월남쌈, 돼지고기와 절인무를 소스에 비벼먹는 ‘껌승’(Cơm sườn) 모두 담박하다. 강한 향이 먼저 치고 들어오지 않고, 씹을수록 재료의 향이 천천히 섞인다. 자극이 강하지 않은 맛 때문에 입에서 느껴지는 부담도 적다. 이국이 고향인 음식이지만, 매번 먹어도 질리지 않는 집밥을 먹는 기분이 들게 한다. 이는 식당을 함께 운영하는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들이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 맛에 가깝게 조리법을 짰기 때문이다.

사회적기업 아오바바

아오바바는 단순한 베트남 식당이 아니다. 덕산면에서 정현숙(55) 사장을 포함한 한국인 3명과 베트남 결혼이주여성 3명이 함께 시작한 사회적기업이다. 결혼이주여성이 겪는 문제를 해결해주고, 안정적인 정착을 돕기 위해 일하고자 하는 이들이 한데 모였다. 식당은 결혼이주여성 지원을 위한 사업 자금을 모으는 동시에 이주여성 커뮤니티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아오바바는 덕산면에 있는 농촌공동체에서 함께 일하던 여성들이 만들었다. 먼저 이주민 여성을 돕기 위한 사업으로 마을에 있는 빵카페에서 그들을 고용했다. 정 사장은 빵카페를 운영하는 공동체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를 비롯한 동료들은 이주민 여성과 접촉하며 그들의 어려움을 함께 고민했다. 결국 이주민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만으로는 그들이 겪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따로 나와 이주민 여성을 위한 사업을 하는 사회적기업을 시작했다.

▲ 아오바바 내부에서 찍은 정현숙 사장. ⓒ 정현숙

그들이 하고 있는 사업은 이주여성이 현실에서 필요한 걸 가르치는 것에 초점을 둔다. 예를 들어 가정통신문 읽는 법, 병원에 가서 자신의 상태를 말하는 법, 관공서에서 필요한 업무를 보는 법처럼 지금 당장 필요한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교육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따로 가르치지 않더라도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언어의 장벽 앞에 선 이주민 여성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렇게 이주민 여성들의 가려운 곳을 직접 긁어주는 사업을 통해 그들의 삶과 가정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는 게 아오바바의 주된 목표다.

연대와 소통의 공간으로

아오바바는 이주민 여성에게 한국 문화를 교육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문화를 한국사람에게 알릴 수 있는 소통의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특별한 행사를 기획해 베트남의 문화를 알린다. 2019년에는 가게 바깥에 등을 달고 베트남 도시 다낭을 재현했다. 음식 뿐만 아니라 베트남 전통복장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도 함께 마련했다.

지난해 11월 3일에는 ‘다문화 음식 경연대회’를 열었다. 베트남, 필리핀, 중국에서 온 여성부터 한국 사람까지, 총 9팀이 나왔다. 다른 나라에서 온 여성들은 각자 고향의 음식을 만들었다. 이 행사에는 마을 주민까지 전부 나와 음식을 나눴다. 인사를 나누고, 음식을 권하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 지난해 개최한 ‘다문화 음식 경연대회’ 사진(위) 2019년 개최한 다낭 거리 재현 행사(아래). ⓒ 정현숙

정 사장은 이런 행사들을 계기로 이주여성의 자신감이나 태도에도 작은 변화가 일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행사에 참여한 필리핀 여성들의 경우 자신감도 없고, 말도 잘 하지 않는 소극적인 태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아오바바에서의 활동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도 배우고, 자신감도 생긴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정 사장은 전했다.

더 많은 이주여성에게 일자리를 주는 게 꿈

정현숙 사장은 앞으로 더 많은 결혼이주여성을 돕고, 그들의 자녀까지 돕는 사업으로 일을 확장할 계획이다. 또 이주민 여성의 교육지원 사업을 강화해 대학 교육까지 그들이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고 한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결혼이주여성이 자신과 같은 처지인 또 다른 결혼이주여성을 지원하는 활동가가 됐으면 한다”며 “2023년에는 함께 활동하는 이주민 여성의 대학 입학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 아오바바에서는 베트남 음식뿐 아니라 베트남 커피도 함께 맛볼 수 있다. 베트남 원두를 볶아 직접 내려 진하고 강렬한 맛이 특징. ⓒ 강훈

사업을 확장할 계획도 있다. 현재는 식당에서 하는 음식 판매가 주된 수입원이지만 빵, 원두커피 등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해 수입원을 늘릴 예정이다. 최근에는 식당 인근에 제빵시설과 커피 원두를 볶을 수 있는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어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 사장은 사업 확장은 추가적인 인력을 필요로 하고, 또 다른 결혼이주여성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렇게 벌어들인 수익으로는 결혼이주여성의 사회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에 재투자하는 선순환을 하는 게 그의 꿈이다. 


편집: 최은솔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