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집 재밌는 곳] 제천 덕산면 ‘누리마을 빵카페’

제천 시내에서 출발해 청풍대교를 지나 구불거리는 산길을 한 시간 정도 달렸을까? 붉게 물든 담쟁이덩굴 사이로 카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마을을 둘러싼 풍경과 잘 어울리면서도 어딘가 색다른 분위기가 풍겼다. 제천 덕산면에 있는 ‘누리마을 빵카페’다. 녹이 슨 카페 간판은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었고, 건물 한쪽에는 빵카페가 만들어질 당시 후원했던 사람들 명단이 나무 팻말에 새겨져 있었다. 

▲ 제천 덕산면 도전리에 위치한 ‘누리마을 빵카페’. 붉은 담쟁이덩굴이 카페 전체를 휘감고 있다. ⓒ 최태현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실내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테이블이 8개 있었는데, 2개를 제외하곤 점심을 먹으러 온 제천간디학교 학생들로 북적였다. 까르보나라 주문이 들어왔는지 고소한 치즈 향이 실내를 가득 메웠다. 고개를 들자 파란색 페인트로 칠한 천장이 보였다. 천장 사이사이에는 작은 조명등이 띄엄띄엄 달려있었다. 통유리 사이로 들어오는 빛으로만 가게를 밝히려는 듯 조명등의 빛은 약했다. 

10년째 운영 중인 빵카페

빵카페의 시작은 지역에 사는 이주민 여성과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였다. 시골이다 보니 일자리가 없어 지역을 떠나는 청년이 많았고, 한국어에 서툴렀던 이주민 여성들도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당시 덕산면에는 다방을 제외하면 커피숍과 빵집이 없었는데 빵집을 차리면서 전문가를 양성하고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렇게 10년 동안 다수의 이주민 여성들이 빵카페를 거쳤다. 

전국적으로 카페 열풍이 불면서 빵카페 주변에도 다른 카페가 만들어졌다. 빵카페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며 이주민 여성들이 만드는 음식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태국‧베트남 음식을 만들어서 팔았고 반응이 좋았다. 이들 가운데 빵카페를 떠나 현재는 자신만의 가게를 차린 여성도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고, 지금은 제천간디학교 출신인 이원범(30) 대표를 포함해 4명의 청년이 빵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 누리마을 빵카페는 덕산면에서 10년째 운영 중이다. 10년 동안 다수의 이주민 여성들이 빵카페를 거쳤고, 현재는 4명의 청년이 가게를 꾸려나가고 있다. ⓒ 최태현

무국적 동네식당

이 대표는 누리마을 빵카페를 ‘무국적 동네식당’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전역 후 빵카페에 돌아와 장사했던 초기에는 가게를 방문하는 손님들의 시선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하나의 식당에서 쌀국수와 파스타를 만들고 빵을 굽고 커피를 팔다 보니 가게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손님들이 많았다. 특히, 파스타의 경우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그리는 전통의 이미지에 맞춰 빵카페의 음식에도 똑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음식의 본질에 대한 손님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이 대표와 직원들은 한 가지 물음이 생겼다고 했다. 

“꼭 전통을 따라가야 하느냐는 의문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우리는 덕산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데, 본토의 요리방법을 따라 한다고 해서 지역에 계신 어르신들이 드실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죠. 이후 지역에 계신 분들 취향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고, 국적 없이 음식을 만든다고 생각해서 무국적 동네 식당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됐습니다.”

이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무국적 동네식당’을 표시하면서 외부에서 빵카페를 방문하는 손님들도 음식의 정체성이나 레시피에 관한 질문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 파스타, 쌀국수, 커피 등 다양한 음식을 팔고 있는 빵카페를 이 대표는 ‘무국적 동네식당’이라고 설명했다. ⓒ 최태현

환경을 생각하는 ‘멸균팩 캠페인’

빵카페는 지역 환경을 위해 올해 초부터 ‘멸균팩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 시골이다 보니 쓰레기를 무작정 버리거나 분리수거를 제대로 못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유기농 음식을 지향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다 보니 캠페인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자가 빵카페를 방문했을 때는 10월 수거량을 알리는 입간판이 놓여 있었다. 

▲ 빵카페는 지역 환경을 생각해 ‘멸균팩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 최태현

‘멸균팩 캠페인’은 우유팩과 플라스틱 뚜껑, 멸균팩 등을 수거해 휴지나 펄프, 종이 등으로 재생하는 사업을 말한다. 동네 주민들의 가정이나 빵카페에서 나오는 멸균팩과 우유팩, 플라스틱 뚜껑을 회수해 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하 한살림)에 전달하면 우유팩의 경우 한살림포인트로 전환돼 제천간디학교 학생들에게 전해진다. 멸균팩의 경우 수저나 파이프, 종이 등 재생품으로 탈바꿈하며 플라스틱 뚜껑은 옷이나 가구, 액세서리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빵카페가 겪은 어려움과 고민들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 팬데믹 위기에서 빵카페도 자유롭지 못했다. 과거에는 구제역으로 원유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버터와 우윳값이 치솟아 가게 운영이 어려웠는데, 최근에는 쌀국수 면을 만드는 베트남 공장이 코로나19로 문을 닫으면서 면 공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면이 한국에 들어오더라도 가격이 몇 배나 뛰어 한때는 쌀국수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다. 최근 상황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수입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 청년들과 함께 빵카페를 운영하는 이 대표는 제천간디학교 출신이다. ⓒ 최태현

가격 인상도 이 대표가 가진 고민 가운데 하나다. 지난 4년 동안 가격을 인상한 적이 없었는데, 최저임금이 올라가고 코로나19로 인해 식자재 가격도 계속 오르다 보니 적자가 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가격을 올릴 수 있는 여건은 아니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지위와 지역 주민들과의 관계 속에서 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주변 상황도 신경을 써야 한다. 빵카페 단골손님 중에는 제천간디학교 학생들이 많은데, 이 학생들이 정해진 용돈 안에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가격이 6000원 정도다. 그렇다 보니 음식의 양을 줄이거나, 가격을 성큼 올릴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지혜롭게 잘 이겨낼 것이라며 미소를 보였다. 

누구나 와서 쉴 수 있는 정자 같은 공간

“10년 정도 된 공간이다 보니까 다들 편안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동네 분들이 스스럼없이 들어오셔서 모일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할까요? 어르신들에게는 정자 같은 공간이기도 하고, 아이들에게는 놀이터 같은 곳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 빵카페에서 판매하는 빵은 유정란과 지역 농산물 등 값이 좀 비싸도 몸에 좋은 재료를 사용해서 만든다. ⓒ 최태현

귀촌한 지 어느덧 3년이 되어가는 매니저 유소연(34) 씨는 ‘누리마을 빵카페’를 이렇게 정의했다. 그녀는 서울에서 환경과 생태를 연구하는 연구원으로 일했었는데, 귀농‧귀촌에 관심을 두게 된 후 귀농‧귀촌 커뮤니티를 통해 덕산으로 왔다고 했다. 그녀는 “시골로 내려가고 싶은데,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며 “그래도 일자리가 있어야 시골로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빵카페에 일자리가 있다는 정보를 접해서 타이밍이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그녀는 빵카페에서 베이킹과 홀을 담당하고 있고, 틈틈이 새로운 빵을 선보이기 위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루고 싶은 두 가지 목표

이 대표와 빵카페를 운영하는 청년들에게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 하나는, 여러 국적의 음식을 빵카페만의 스타일로 재창조해서 지역 사람들과 외부에서 방문하는 손님들이 거부감 없이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는 “지역 주민들이 더 다가올 수 있는 장소가 됐으면 좋겠다”며 “빵카페가 생긴 지 10년이 됐지만, 여전히 지역에 계신 어르신들은 가운데는 늙은이는 오면 안 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기에 더 많은 사람이 맘 편히 들를 수 있는 공간으로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 지역 사람들과 외부 손님들이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과 지역 청년들에게 시골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고 싶다는 이 대표. ⓒ 최태현

다른 하나는,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지역 청년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다. 그는 “시골에서 쭉 자라왔거나 귀향‧귀촌을 위해 시골로 돌아왔거나, 간디학교와 같은 대안학교에 다니기 위해 시골로 온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서도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싶다”며 “이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 다양한 경험과 여러 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선택지를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라고 말했다.


편집: 김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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