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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남녀가 맺은 관계의 미학
[맛있는 집 재밌는 곳] 카페 ‘관계의미학’
2021년 10월 19일 (화) 20:50:28 이강원 기자 kkkkkk2007@naver.com
   
▲ 충청북도 제천시 의림동 숭문로16길에 위치한 카페 ‘관계의미학’의 문패. ⓒ 김대호

충청북도 제천시 숭문로16길과 독순로7길이 교차하는 곳에는 모텔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밤이 되면 모텔의 불빛이 거리를 밝힌다. 그 불빛 사이에 흰색 벽으로 가려진 ‘관계의미학’ 카페가 있다. 하얀 벽 안으로 들어가면, 정사각형의 녹색 정원을 건물이 둘러싸고 있다. 벽에는 ‘관계의미학’이라 적힌 문패가 붙어 있다. 문패 옆 대문은 열려있다. 지난 17일 저녁, 그 틈으로 가수 윤상의 ‘한 걸음 더’가 흘러나왔다.

   
▲ <단비뉴스>와 인터뷰하는 박흥진(오른쪽), 김수지(왼쪽) 부부. ⓒ 김대호

‘관계의미학’은 박흥진(39), 김수지(33)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 문을 연 지 6개월이 넘었다. 그전에는 박 씨가 독순로에서 4년 6개월 동안 혼자 카페를 운영했다. 카페 이름은 똑같았다. 혼자 꾸리던 카페를 이제 둘이서 꾸려가고 있다. 남편 박 씨는 커피를 내리고, 스콘을 굽는다. 아내 김 씨는 진한 초콜릿 라떼를 만들고, 초콜릿 브라우니를 굽는다.

이 카페에서 두 사람은 손님들과 이야기한다. 1950년대 미국 재즈, 1980년대 미국 흑인 음악, 가수 이소라의 노래를 틀어 두고, 그 노래에 관해 손님과 대화한다. 때로는 인문학 책을 읽고 그 내용을 공유하기도 한다. 종종 환경문제도 대화 주제에 오른다.

   
▲ 손님과 대화하고 있는 박흥진, 김수지 부부. 김대호

카페 이름은 남편 박 씨가 지었다. 커피와 커피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조화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블렌딩은 서로 다른 원두를 조합하는 행위다. 다른 맛과 다른 향을 가진 원두를 잘 조합해야 깊은 커피 맛을 낼 수 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타인과 조화를 이룰 때 오랫동안 깊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정직하고 싶었던 제천 청년

박흥진 씨는 제천에서 나고 자랐다. 세명고등학교에서 공부했다. 대학에 가기 싫었지만, 부모님은 박 씨의 진학을 원했다. 2002년 세명대학교 자원환경공학과에 입학하여 지질학을 공부했다. 제천 주변에 있는 시멘트 회사에 취직하기 좋은 전공이었다. 그러나 박 씨는 억지로 하는 공부가 싫었다. 대신 마트에서 양념육을 팔았다. 수완이 좋았다. 마트에서는 팀장 자리를 제안했다. 장사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2009년, 스물일곱에 졸업장을 받았다. 박 씨는 장사 수완을 살리고 싶었다. 돌을 만지는 대신 옷감을 다루기로 했다. 제천 시멘트 공장 대신 서울 동대문 시장으로 갔다. 옷감 소매업체에 취직했다. 저녁 8시부터 새벽 6시까지 일했다. 고된 새벽 노동의 대가로 월급 120만 원을 받았다.

일을 배운 뒤에는 직접 가게를 차렸다. 서울, 의정부, 수원, 청주, 부산 등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낮은 가격으로 옷을 사고, 손님에게 비싸게 팔았다. 금세 목돈 5천만 원을 모았다. 그러나 싫은 일도 생겼다. 손님과 셀 수도 없이 싸웠다. 옷 가격을 부풀리는 장사도 싫어졌다. 정직하지 못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송파구 신천동에서 옷가게를 열었을 때 문제가 터졌다. ‘깔세’를 내지 못할 정도로 장사가 안됐다. ‘깔세’는 보증금 없이 월세를 조금 더 많이 내는 것을 말한다. 이를 감당하려면 매달 돈을 많이 벌어야 했지만, 손님이 없었다. 결국 폐업했다. 장사가 지겨워졌다. 대신 서울 노량진에 있는 직업전문학원에 등록했다.

예전부터 커피를 좋아했던 기억을 되살려, 커피 내리는 방법을 배웠다. 학원에서 원두를 고르고, 커피를 내리고, 맛보는 일을 배웠다. 좋은 원두만 골라 맛있는 커피만 대접하는 카페를 차리고 싶어졌다. 가격을 부풀리는 옷 장사 대신, 자신과 타인에게 정직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 카페 내부 모습. 제천 출신의 부부는 이곳에서 커피를 내리고 빵을 굽는다. ⓒ 김대호

제천 남자, 제천 여자의 만남

당시 박흥진 씨에게는 전세금 5천만 원이 있었다. 카페를 차리려면 집을 포기해야 했다. 다시 제천으로 내려왔다. 부모님 집에서 지내면서, 독순로에 7평짜리 작은 카페를 열었다. ‘관계의미학’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내가 맛없는 것은 팔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커피를 내렸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다. 시간이 나면 가게 안에서 책을 읽었다. 손님들과 대화도 즐겼다. 음악과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작은 가게라 대화를 나누기 편했다. 단골도 생겼다. 매년 8월 제천에서 열리는 국제음악영화제에 맞춰 방문하는 손님도 있었다.

김수지 씨도 단골손님이었다. 당시 김 씨는 청주에 있는 SK하이닉스 제조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도 제천 토박이였다. 2008년 제천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언니의 등록금을 감당하는 것도 어려워했던 부모님의 사정을 살핀 그는 대학을 포기했다. 대신 공장에 취직했다. 3교대로 밤낮을 바꿔가며 일했다. 공장 기숙사에서 살면서, 월 280만 원을 받았다. 월급으로 카메라를 샀다. 사진을 찍었다. 여행을 다녔다. “그래도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 들었었다”고 김 씨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가 카페라테가 맛있는 카페가 있다고 말했다. 그 말에 이끌렸다. ‘관계의미학’에 들어갔다. 카페에서 김수지 씨는 박흥진 씨를 처음 만났다. 김 씨는 곧 단골이 됐다. 7평 가게 안에서 손님 김 씨가 커피를 마시며 그림을 그리는 동안, 주인 박 씨는 책을 봤다. 두 사람 모두 음악을 들었다. 대화가 없어도 편안했다.

또 다른 어느 날, 카페 사장 박 씨가 심리학 책 <당신과 나 사이>를 손님 김 씨에게 선물했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다. 2020년 1월에 혼인신고를 했다. 허례허식이라 생각해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다.

두 사람의 ‘관계의미학’

   
▲ ‘관계의미학’ 중앙에 있는 정원. 김대호

두 사람이 살 공간이 필요했다. 제천 옛 도심에 옛날식으로 지어진 여인숙을 발견했다. 정사각형 모양의 25평 한옥이었다. 여인숙은 흰색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두 사람만의 공간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오래된 벽을 뚫었다. 카페 내부가 탁 트였다. 친구가 준 조명을 달았다. 노래를 틀었다. 김수지 씨가 좋아하는 이소라 노래, 박흥진 씨가 좋아하는 재즈 음악이 카페를 채웠다.

   
▲ 친환경 종이컵과 컵홀더. 김대호

두 사람은 환경에 관심이 많다. 남편 박 씨는 환경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아내 김 씨는 환경보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카페의 운영철학이라고 말했다. 이 카페에서는 접착제가 없는 컵홀더를 사용한다. 접착제가 없으니 재활용하기에 편했다. 생분해 종이컵도 사용한다. 미생물이 완벽히 분해할 수 있는 컵이다. 비용은 더 들어갔다. 생분해 종이컵은 한 세트에 500원이다. 일반 종이컵은 한 세트에 100원 아래다.

비정기 간행물 <관계의미학>

카페를 운영하면서 김수지 씨는 비정기 간행물을 엮어 발간했다. 책 이름은 카페 이름 그대로 <관계의미학>이다. 문화생활을 누리려 카페를 찾는 손님 8명의 글을 모아 담았다.

   
▲ 김수지 씨가 출간하는 비정기 간행물 <관계의미학>. 손님 8명의 글을 모았다. 김대호

책에 실린 내용은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고민을 적었고, 누군가는 회사 일을 적었다. 다이어트 이야기, 딸 이야기 등도 적혀 있다. 원고는 손님들이 썼지만, 책을 만드는 일은 김수지 씨가 도맡았다. 손님들의 또 다른 글이 모이면 다음 호를 발간할 생각이다. 두 번째 비정기 간행물의 제목은 이미 생각해뒀다. <결핍의 미학>이다. 김수지 씨는 이 카페에서 <~미학> 시리즈를 이어 나갈 생각이다.

글, 음악, 커피, 사람이 어우러지는 문화 공간

   
▲ '관계의미학' 카페 전경. 김대호

‘제천의 문화적 결핍’에 대한 고민이 많은 두 사람은 카페 자리가 잡히면 더욱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수를 초대해 작은 공연을 열고, 빈자리가 많은 벽에 그림을 전시할 계획이다. 그림이 생기면, 손님들은 커피를 마시며 작은 전시회를 볼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때문에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매출이 일정하지 않다. 다만 두 사람은 서두르지 않는다. “조급하게 빨리 뭘 하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김수지 씨가 말했다.

“결국에는 저희 좋자고 하는 거죠.” 부부에게는 자신들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 두 사람은 손님들이 커피를 맛있게 먹을 때, 손님들과 대화할 때, 글을 쓸 때, 햇볕 아래에서 책을 읽을 때 행복하다. 그래서 박흥진, 김수지 부부는 ‘관계의미학’ 카페를 천천히 꾸준히 가꾸고 키워나갈 생각이다. 앞으로도 두 사람의 카페에서 사람들은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고, 서로 대화하며 관계를 아름답게 가꿀 것이다.


편집: 최태현 기자

[이강원 기자]
단비뉴스 청년부, 소셜전략팀 이강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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