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결혼이민비자] ③ 행정소송 판결문 분석... 결혼이민제도 개선해야

F-6 비자 제도는 아무런 갈등 없이 결혼생활을 유지하거나(F-6-1) 심각한 폭행 등 한국인 배우자의 거의 전적인 잘못으로 이혼할 때만(F-6-3) 결혼이주여성에게 체류를 보장한다. 중간지대가 거의 없다. 양육할 자녀가 있다면 배우자가 잘못한 정도와 상관없이 이혼 뒤 비자를 받을 수 있지만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머물 수 있는 시한부 체류자격이다(F-6-2). 결국 이주여성은 웬만한 억압이 아니면 갈등이 있어도 일방적으로 참을 수밖에 없다. 체류자격 유지가 남편에게 매여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취재팀은 결혼이주자의 체류 안정성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결혼이민과 관련한 행정소송 판결문을 조사했다. 소송을 분석해보면 법무부가 어떤 사유로 비자 연장이나 귀화를 거부하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에 판결문 열람을 신청해 2020년 4월부터 최근 2년 동안 전국의 결혼이민과 관련한 판결 106건을 확인했다. 이 가운데 체류자격 연장이나 귀화 신청 거부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 84건을 추려 분석했다.

결혼이주자의 체류자격과 귀화 요건을 다툰 판결 84건을 추려 분석했다. ⓒ 윤준호
결혼이주자의 체류자격과 귀화 요건을 다툰 판결 84건을 추려 분석했다. ⓒ 윤준호

가정법원 판단 존중하지 않는 행정법원

분석 대상 판결 84건 가운데 F-6-1 비자 연장을 다투는 사건이 38건으로 가장 많았다. 결혼이주자인 원고가 승소한 사건은 4건뿐이었다. 생계유지능력을 출입국·외국인청과 달리 평가한 판결이 2건, 5년 안에 국제결혼을 두 번 못 하게 하거나 음주운전으로 벌금을 냈다는 이유로 체류 연장을 불허한 처분은 지나치다는 판결이 1건씩이었다. 별거 상태 때문에 혼인의 진정성이 쟁점이 된 10건은 모두 원고가 패소했다. 법원은 이들 사건이 ‘위장결혼’에 가깝다고 봤다. F-6-2 비자 관련 소송은 1건 있었다. 면접교섭을 성실히 하지 않았다며 원고가 패소했다.

F-6-3 비자 발급을 청구한 소송은 12건이었다. 한 건만 원고 승소했다. 한국인 배우자가 단순 변심으로 이혼 소송을 냈다가 오히려 위자료 830만 원을 주게 됐는데도 출입국·외국인청은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지 불분명하다며 비자 발급을 거부한 사건이었다. 법원은 출입국·외국인청이 재량권을 남용했다고 판결했다. “원고가 체류 목적으로 (위장) 결혼했다”는 배우자 진술만 믿고 내린 처분은 부당하다는 취지였다.

2019년 대법원은 “혼인파탄의 주된 귀책사유가 누구에게 있는지는 우리 사법제도에서 가정법원 법관들에게 가장 전문적인 판단을 기대”한다며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출입국·외국인청과 행정법원은 가정법원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판례를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출입국·외국인청이 이런 판례를 따르지 않는 사례가 확인된 것이다.

가정법원 판단을 따르지 않는 것은 행정법원도 마찬가지였다. F-6-3 비자를 놓고 다툰 12건 가운데 3건만 가정법원 판단을 존중했다. 더구나 이 가운데 2건은 한국인 배우자의 귀책사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가정법원 판단을 인용한 판결이었다. 가정법원 판단 취지에 맞게 출입국·외국인청 처분을 뒤집은 판결은 1건뿐인 것이다.

한 베트남 여성이 남편의 변태 성행위에 놀라 가출한 사건에서 가정법원은 이혼은 남편 때문이라며 화해권고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행정법원은 혼인 기간이 짧아 잘못을 따지기 어렵다며 출입국·외국인청 손을 들어줬다. 가정법원의 화해 결정이 확정판결과 효력은 같지만 유책 배우자를 지목하는 내용까지 그대로 따르기는 어렵다는 이유였다. 소송을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한 조정이나 화해 결정이 책임 소재 판단에 걸림돌이 된 셈이다.

판결문 84건 가운데 원고 승소 사건은 11건이었다. 사건유형별로 승소하는 비율에 큰 차이는 없었다. ⓒ 손민주
판결문 84건 가운데 원고 승소 사건은 11건이었다. 사건유형별로 승소하는 비율에 큰 차이는 없었다. ⓒ 손민주

사실상 남편의 ‘전적인 책임’ 요구

가정법원에서 결정한 위자료 액수가 커도 이주여성은 F-6-3 비자를 받기 어려웠다. 가정법원은 당사자들의 진술만으로도 책임 소재를 가려내 위자료 지급을 명령할 수 있지만, 행정법원은 어느 쪽의 과실이 결정적인지 명확하고 직접적인 증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 중국인 여성은 남편이 전 부인과 몰래 여행을 다녔다며 조정이혼을 했다. 위자료는 1,200만 원을 받았다. 하지만 출입국·외국인청은 비자를 주지 않았다. 행정법원도 비자 발급 거부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남편이 원고를 떼어놓고 전 부인과 사흘 동안 명절을 보내는 등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지만, 둘째 딸의 집 등에서 자녀와 함께 만났다는 게 주요한 판단 근거였다. 남편이 ‘부정한’ 일을 한 것도 아니어서 이혼할 만큼 잘못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남편은 이혼하기 싫다는 원고에게 화를 내며 ‘전 부인과 살고 싶으니 집을 나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혼 1년 전 남편이 체류 연장에 협조하는 대가로 300만 원을 요구했고 원고가 실제 금액 일부인 100만 원을 보낸 점을 문제 삼았다. 위장결혼이 아니라 순수한 혼인관계가 맞는지 ‘의심’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판례에서 F-6-3 비자 발급 조건인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를 우리 국민인 배우자의 ‘전적인’ 귀책사유에서 ‘주된’ 귀책사유로 해석하도록 기준을 완화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심각한 폭력을 당하지 않으면 배우자의 책임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어느 정도까지가 이른바 ‘주된’ 책임인지 알 수 없다”며 “이런 점 때문에 이주여성이 위기 상황에 놓여도 이혼을 결정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워드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판결문에 나오는 주요 단어의 빈도를 시각화했다. ⓒ 박성동
워드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판결문에 나오는 주요 단어의 빈도를 시각화했다. ⓒ 박성동

벌금 50만 원만 내도 ‘귀화 불가’

귀화 불허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은 33건이었다. 6건만 원고가 승소했다. 생계유지능력 입증이 쟁점이 된 2건을 빼고 31건이 ‘품행단정’ 요건을 다퉜다. 국적법 시행규칙에 따라 귀화하려는 외국인은 ‘품행이 단정’해야 한다. 주로 범죄경력이 없을 것이 요구된다. 금고 이상 형을 받으면 집행이 끝난 날부터 10년이 지나야 귀화할 수 있다. 집행유예는 7년, 벌금형은 5년이다. 기소유예도 2년이 지나야 한다. 이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평소 행실과 공익 침해 정도를 고려해 귀화를 허락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출입국·외국인청이 위법행위의 ‘정도’를 전혀 따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법원도 ‘품행단정’은 법이 정한 최소요건이라며 범죄경력이 있기만 하면 그 내용의 경중은 따지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승합차 4열 시트의 마지막 열을 없애 짐칸을 넓혔다가 ‘사안이 경미’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경우와 차를 세운 뒤 번호판을 가려뒀다가 벌금 50만 원을 낸 경우도 귀화가 불허됐다. 법원도 예외 없이 정부 손을 들어줬다.

1건만 원고가 승소했다. 한 몽골 국적 여성이 술에 취한 가족과 실랑이를 벌이다 폭행을 했지만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 ‘공소권 없음’ 처분된 사건이다. ‘공소권 없음’은 국적법 시행규칙에서 나열한 ‘품행미단정’ 사유가 아니다. 행정법원은 출입국·외국인청이 재량권을 남용해 귀화를 불허했다며 처분을 뒤집었다.

중국 출신 결혼이주여성이 취재팀과 인터뷰하고 있다. 소송 비용과 긴 소송 기간은 결혼이주여성에게 부담이 된다. ⓒ 윤준호
중국 출신 결혼이주여성이 취재팀과 인터뷰하고 있다. 소송 비용과 긴 소송 기간은 결혼이주여성에게 부담이 된다. ⓒ 윤준호

종속적 체류자격 해소가 핵심

판결문 분석을 통해 확인한 것은 지금의 결혼이민비자 제도에서는 결혼이주여성이 재판까지 받더라도 체류 불안정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현실이다. 소수의 위장결혼을 골라낸다는 이유로 정부가 선량한 결혼이주여성 다수를 궁지로 내모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차라리 혼인 심사 때 혼인의 진정성 심사를 조금 강화하고, 체류를 시작하면 1~3년마다 짧은 주기로 심사받지 않게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이주여성이 입국 2년 뒤 간이귀화를 신청하더라도 심사에는 2년까지 걸려 최소 4년은 체류가 불안정한 상태”라며 “F-6 비자를 한 번 발급하면 5년은 체류를 보장하는 방법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다문화가족 실태조사를 보면 F-6 비자 소지자는 입국 15년이 지나면 70% 이상 귀화할 만큼 국적을 얻겠다는 의지가 높지만, 입국 5년 안에 귀화하는 비율은 5%에 불과했다.

국제결혼 단계를 촘촘히 나누는 방법도 체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호주는 결혼이민비자 발급 결정 전까지 임시 비자를 준다. 약혼자 비자도 있어 9개월 동안 체류할 수 있다. 이 기간 안에 실제 결혼하면 영구거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 미국은 결혼이주자에게 ‘조건부 영주권’을 발급한다. 입국 2년 뒤에도 별거하지 않고 혼인을 유지하면 까다로운 절차 없이도 영주비자를 주는 제도다.

지난 4월 20일 ‘새정부 이주여성인권정책을 묻다’ 토론회에서 김민정 남서울이주여성상담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 손민주
지난 4월 20일 ‘새정부 이주여성인권정책을 묻다’ 토론회에서 김민정 남서울이주여성상담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 손민주

하지만 위장결혼을 막으려는 조치가 결혼이주여성에게는 언제든 가정폭력에 놓이게 할 위험이 있어 논란거리다. 캐나다가 2017년 조건부 영주권 제도마저 폐지한 이유도 이런 문제 때문이다. “혼인의 진정성이 심각하게 의심되지 않는다면, 한국인 배우자 동의에 상관없이 이주여성이 체류하거나 귀화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김민정 남서울이주여성상담소장의 말처럼 관점 전환을 검토해야 한다.

결혼을 위해 한국으로 이주한 여성은 2020년 기준 29만 5000여 명이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15만 7000여 명 외에, 13만 7000여 명이 F-6 결혼이민비자로 체류하고 있다. 이들의 다문화가정에도 갈등이 있다. 혼인이 파탄에 이르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은 결혼이주여성에게 체류자격을 유지하려면 혼인관계를 아무런 문제 없이 유지하라고 요구한다.

취재팀은 이주여성 13명을 만났다. 그들은 가정폭력을 당해도 참을 수밖에 없고, 이혼을 선택할 수도 없었다. 인터뷰에서 당당히 이름을 밝힐 수도 없다. 이혼하더라도 아이가 있으면 좀 더 머무를 수 있지만 자녀가 성년이 될 때까지다. 혼인 중엔 충실한 아내로, 이혼 뒤엔 역경을 감수하는 어머니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그들은 반복해서 입증해야 한다.

비자와 국적 문제로 제기된 2년치 행정소송 판결문도 조사했다. 힘겨운 사연 너머 제도의 허점을 찾기 위해서였다. 결혼이민비자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기사 세 편에 담았다. 이 기사들은 <한국일보> 제3회 기획취재 공모전에서 우수상으로 선정됐다. 각각의 기사는 <한국일보> 지면과 누리집에도 같은 날 게재됐다. (편집자주)

가정폭력을 안으로 삼킨 여자들
이혼 이주여성, “아이와 생이별 두려워”
③ 행정소송 판결문 분석…결혼이민제도 개선해야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