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㊼ 취재팀 결산 좌담 (상)

“아이들 미래 위해 원전 말고 안전!”이란 제목의 첫 기사로 2017년 9월 21일 시작된 <단비뉴스> 환경시리즈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이 지난 8일 46편 ‘여의도 51층짜리 태양광발전소 열일’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연재기간만 1년 4개월, 사전취재를 포함하면 1년 11개월 가까운 대장정이었다. 취재에 참여한 기자 16명 중 나혜인·박진홍·박지영·윤종훈·이자영·장은미·홍석희 등 7명이 지난 2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단비서재에 모여 시리즈의 성과를 결산했다.  

'안전한 미래' 위해 700일 탐사보도 대장정

▲ 단비뉴스 환경시리즈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에 참여했던 기자들이 지난 2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단비서재에 모여 700일 가까운 취재보도 과정을 돌아봤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윤종훈, 이자영, 박지영, 박진홍, 나혜인, 장은미 기자. ⓒ 임지윤

나혜인(이하 혜인): 시리즈를 마무리한 소감부터 들어보자. 기획 단계부터 참여한 박진홍 기자는 특히 남다른 기분일 것 같다.

박진홍(이하 진홍): 기사는 2017년 9월부터 나갔지만, 전체적인 기획은 그해 3월부터 했으니까 거의 2년 동안 이 시리즈에 매달린 셈이다. 시리즈 초반 쟁점이 됐던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중단과 핵마피아 문제, 재생에너지 스웨덴·덴마크 사례 등을 맡아 취재했다. 개인적으로 원전을 포함한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세계 최대 원전밀집지역’인 부산 출신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원자력 발전소는 안전하다’고 교육받아 왔다. 소풍도 고리원전으로 가고 그랬으니까. 

그런데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지면서 ‘당연히 안전하겠지’ 했던 원전이 ‘과연 안전한지’ 의문을 갖게 됐다. 동네친구 중에는 여전히 원전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번 제대로 검증해보고 싶었다. 돌아보면 애초에 기획했던 것들을 기사에 다 담을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롭다.

▲ 원전이 밀집한 부산 출신으로서 핵발전의 안전문제를 제대로 점검해 보고 싶었다는 박진홍 기자. ⓒ 임지윤 

'올해의 좋은 보도상' '데이터저널리즘어워드' 수상  

윤종훈(이하 종훈): 먼저 ‘에너지 대전환’ 시리즈로 지난 연말 뜻깊은 상을 두 개나 받아서 기쁘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선정 ‘2018년 올해의 좋은 보도상’과 한국데이터저널리즘센터의 ‘데이터저널리즘어워드 영데이터저널리스트상’을 받았다. 나는 지난해 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 들어와 단비뉴스 기자가 되면서 기후변화 취재(22~25편)를 맡았고 이후 풍력발전, 에너지효율화 등에 대해 기사를 썼다.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기후변화, 에너지효율화 등 이슈를 어떻게 하면 독자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이 어려웠다. 대장정이 끝나서 홀가분하다. 많이 배웠다. 동료와 함께했기에 거대한 이슈를 포괄적으로 다뤄볼 수 있었다.

 
단비뉴스 환경부는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시리즈로 지난해 연말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올해의 좋은 보도상’, 한국데이터저널리즘센터의 ‘데이터저널리즘어워드’ 등 권위 있는 언론상 두 개를 받았다. ⓒ 민주언론시민연합, 임지윤

장은미(이하 은미): 무엇보다 취재 과정에서 여러 경로로 도움을 주신 시민과 전문가들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스페인의 에너지전환 사례와 자원재활용 부분을 취재하면서 개인 생활 측면에서도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특히 에너지절약에 대해 많이 배웠다. 이제 커피숍에 갈 때도 텀블러를 꼭 가지고 다닌다.

혜인: 아까 피자 배달 와서 콜라를 같이 먹는데 종이컵을 안 쓰더라.

일동: 오~.

박지영(이하 지영): 국내 풍력과 태양광에너지 개발 현장을 취재했는데, 무엇보다 저널리즘스쿨 수업 때 배웠던 취재의 기본을 현장에서 적용해볼 수 있어 좋았다. 어려운 주제로 기사 쓰느라 낑낑거리며 힘든 시간도 많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더 다양한 현장을 담지 못한 게 아쉽기도 하다.

방대한 전문자료에 한숨, '애증' 엇갈린 취재 과정 

이자영(이하 자영): 나에게 ‘에너지 대전환’ 시리즈는 ‘애증’이었다. 저널리즘스쿨에 들어오기 전까지 취재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기사를 쓰는 게 너무 힘들었다. 독일 에너지전환 사례와 국내 태양광 현황 등을 취재했는데, 방대한 국내외 전문자료를 분석할 때는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혼자 푸념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후련하고, 내가 썼던 기사들을 보면 자랑스럽다. 

▲ 독일의 에너지전환 사례와 국내 태양에너지 현황을 취재한 이자영 기자. 취재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참여해 고생이 많았지만 그동안 쓴 기사를 보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 임지윤

홍석희(이하 석희): 지난해 가을 저널리즘스쿨에 입학했기 때문에 가장 늦게 취재팀에 합류했다. 선배들이 앞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쓴 기사들을 보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가 했다면 잘할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장은미 기자와 자원재활용 부분을 취재했는데, 전문적인 내용을 기사로 쓸 때는 먼저 기자 자신이 사안에 대해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기자가 모르면 취재원이 잘못된 정보를 말해도 걸러내지 못하겠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시리즈 초반부터 참여했다면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을 텐데, 그런 부분에서 아쉽기도 하다.

은미: 나 역시 에너지 관련 전공자가 아니어서 사안을 이해하기 위해 많이 공부해야 했다. 간단한 수치와 데이터 하나 쓸 때도 무슨 의미인지, 어떤 맥락인지 세세하게 확인해야 했다. 해외사례의 경우 참고할 만한 기성언론 기사도 드물었다. 스페인 에너지정책에 관해 거의 모든 국내 논문을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논문을 쓴 전문가들도 그 당시 얘기만 알지 최신 상황은 모른다고 했다. 최신상황을 업데이트하기 위해 외신기사를 교차 확인했다. 현지에 가기 어렵고 취재원도 부족한 상황에서 작은 단서 하나라도 찾기 위해 발을 동동 굴렀던 게 기억에 남는다. ‘맨땅에 헤딩’이 이런 거구나 생각했다.

에너지전환 무관심한 기성언론, 참고할 기사도 부족

혜인: 장은미 기자 말대로 우리 언론은 아직 에너지 문제에 관심이 적은 것 같다. 요즘은 그래도 지상파 방송이나 중앙일간지에서 간혹 관련 기획보도를 내놓고 있지만, 우리 시리즈 초기에만 해도 정말 참고할 만한 보도를 찾기 어려웠다.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때도 탈원전 논쟁만 부각할 뿐 에너지전환에 대해 깊이 파고드는 기사는 보기 힘들었다. 

진홍: 나 역시 스웨덴, 덴마크 등 해외사례를 취재할 때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스웨덴의 경우 국내 자료는 1990년대에 나온 것들밖에 없었다. 무작정 벡셰(Vaxjo)시 언론 담당관에게 영어로 메일을 보냈는데, 한 달 동안 휴가 중이라고 했다. 여름휴가를 한 달 동안 갈 수 있는 근무환경이 부러우면서도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대체 근무자를 소개받아 취재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분이 26편 ‘화석연료 제로 밀어붙이는 주민의 힘’ 기사에 도움을 준 얀 요한손씨다.

접촉하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요한손씨는 우리 정부 공무원이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관계자들보다 훨씬 빠르고 구체적으로 답변을 해줬다. 특히 “궁금한 게 또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라”는 말이 너무 고마웠다. 나중에 돈 벌어서 스웨덴 벡셰와 삼쇠(Samsø)섬을 꼭 가보리라 다짐했다. 요한손씨, 꼭 한번 뵙고 싶다.

취재원 거절과 홀대, 호통에 눈물 쏟기도  

혜인: 학생기자로서 취재원에게 홀대, 거절, 항의를 받은 일도 많다. 10편 “내 손으로 원전 짓고 암 환자 됐소” 등 건강피해 기사를 위해 원전 주변 갑상샘암 환자들을 취재할 때다. 한 번은 추가 인터뷰가 필요해 전화를 하니까 다짜고짜 취재원이 소리를 지르더라. “너희가 그거 알아서 뭐 하려고 그러느냐” “언론이 기사 써서 뭐가 바뀌느냐” 하면서. 알고 보니 갑상샘암은 심한 우울감을 동반하는 병인데다가, 마침 그때 그분이 신장 투석치료까지 받고 있었다.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질문할 틈도 안 주고 계속 소리를 지르는데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렸다. 감정이 북받쳤지만 우리가 이 문제를 지금 왜 알려야 하는지 차분히 설득했다. 한참 사과하니 불쌍해 보였는지 툴툴대며 인터뷰에 응해 주시더라.

▲ 투병으로 예민해진 취재원의 호통에 눈물이 났던 경험을 털어놓는 나혜인 기자. ⓒ 임지윤 

진홍: ‘언론 취재 응해봐야 바뀌는 거 없다’ 하는 소리는 나도 많이 들었다. 마을 경로당에서 한 할머니가 “한수원은 떡이라도 주고 경로당도 지어주는데 너희한테 얘기해봤자 바뀌는 거 없다”며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고 소리를 지른 적이 있다. 이제는 졸업한 서지연 기자가 지지 않고 “그럼 다음에는 치킨 사올게요”라고 말해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난다.

혜인: 언론에 대한 불신은 어느 지역이든 있었던 것 같다. 갑상샘암, 지진, 미세먼지, 기후재난이 발생하는 지역 주민들은 공포를 느끼면서도 “뭘 해도 안 바뀐다”며 체념하고 있었다.

진홍: 기사 때문에 한수원 직원이 학교까지 찾아온 일도 있지 않나. 

혜인: 사실 그때는 좀 허탈했다. 한수원 홍보팀 직원은 2017년 건강피해 취재할 때 만난 적이 있다. 갑상샘암 공동소송 관련 한수원의 입장을 듣고자 접촉했고, 담당자가 답변을 주겠다고 해 아침 10시인가 차를 달려 경주 한수원 본사로 갔다. 막상 갔더니 “재판 중인 사안이라 답할 수 없다”는 답변을 내놓더라. 너무 화가 나서 “그 말을 하려고 경주까지 불렀느냐”고 따졌더니 그게 공식입장이라며 ‘배 째라’ 식으로 나오더라. 그러다 지난해 한수원과 언론 간 유착을 고발한 20편 ‘그 기사는 돈 받고 쓴 것이었다’ 기사가 나가니까 홍보팀 직원이 한달음에 학교까지 찾아왔다. 유·불리를 따져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모습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

찬핵 의원 주장 '팩트체크'에 공개 반박문 공방도 

▲ 많은 취재원의 거절과 홀대를 무릅쓰고 인터뷰했던 경험을 털어놓는 취재기자들. 왼쪽부터 윤종훈, 이자영, 박지영, 박진홍 기자. ⓒ 임지윤

자영: 30편 ‘원전대국 프랑스에 태양광전기 수출’ 기사가 <단비뉴스>와 함께 <오마이뉴스>를 통해 나간 뒤에는 자유한국당 최연혜 의원이 공개 반박문을 내기도 했다.

혜인: 최 의원의 저서 <대한민국 블랙아웃>에 잘못된 주장이 많아 팩트체크한 내용을 기사에 넣었는데, 최 의원이 ‘좌파언론의 탈원전 국민호도 즉각 중단하라’는 제목으로 A4 3장 분량 반박문을 냈다. 우리 기사가 총 9가지 부분에서 잘못됐다고 주장했는데, 저서 내용을 우리가 다소 확대해석한 부분 하나만 정정했고 나머지는 사실관계에 문제가 없어서 놔뒀다.

석희: 나는 오히려 학생기자라서 ‘환대’ 받은 일이 있다. 재활용 기사 준비하며 한국플라스틱포장용기협회 전무이사를 인터뷰했는데, 이 단체는 사실 친환경 정책으로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일회용품 제조업체 모임이다. 학생기자라고 하니 인터뷰하기 전에 우리나라 재활용업계에 구조적 문제가 많다며 1대1로 ‘과외’를 해 주더라. 기성언론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어 보였다. 예전에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기사가 나가서 답답했다고 한다. ‘무조건 내 입장대로 써달라는 게 아니라 진정성 있게 취재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업계에 30년 넘게 있었는데 공무원이 자꾸 바뀐다”며 “전문성 있는 사람을 배치해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자원재활용 현황과 과제를 취재한 홍석희 기자. 기성언론과 공무원들에게 불신을 가진 취재원을 만났던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임지윤

폭염·농작물 피해 등 일상을 이미 위협하는 기후변화 

혜인: 정파성을 떠나 에너지정책을 장기적으로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는 건 찬핵이든 탈핵이든 모든 에너지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취재과정에서 홀대를 받기도 했지만, 사실 우리 시리즈의 취지에 공감한 수많은 전문가가 있었기에 무사히 취재를 마칠 수 있었다. 학생기자들이 전문지식이 부족해 답답할 법도 한데, 친절하고 자세하게 알려준 취재원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들은 세상에 이 문제를 널리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이제 취재하면서 느꼈던 ‘기후변화와 원전사고의 위협’은 어느 정도였는지 얘기해 보자. 

종훈: 현장을 취재하면서 기후변화가 더 이상 먼 나라 얘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지난여름 유독 심했던 폭염으로 예년보다 사망자가 늘어나고, 이상기후로 농어민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어느덧 기후변화가 우리 일상을 좌우하는 문제가 됐구나’ 생각했다.

▲ 기후변화가 더 이상 먼 얘기가 아니며 우리 삶에 당장 영향을 미치는 위협임을 현장에서 확인했다고 말하는 윤종훈 기자. ⓒ 임지윤 

혜인: 나 역시 현장에서 화석연료·원전의 피해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전 인근 마을에서 방사능에 노출된 주민들, 지진의 공포에 떠는 사람들, 석탄발전소 옆에서 석탄재를 맞고 사는 사람들, 미세먼지 영향으로 폐렴에 걸린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도시 사람들이 아무 죄책감 없이 쓰는 전기가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생산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게 됐다.

진홍: 우리가 시리즈 초반부터 ‘탈핵’이라는, 어떻게 보면 거대한 담론을 다뤘지만 사실 현장의 목소리는 기성언론에서 보던 것과 많이 달랐다. 나 같은 경우 첫 취재를 부산 고리원전 인근 신리마을에서 했는데, 참 기구한 역사를 가진 곳이다. 이곳 주민들은 모두 고리원전 1호기가 들어설 때 이주해온 사람들이다. 시간이 흘러 또 그 자리에 신고리 5·6호기가 들어서자 다시 이주를 요구하고 있다. 주민 중에는 탈핵운동가와 함께 원전 반대 운동을 벌이다 찬핵으로 돌아선 사람도 있다. 

사실 “누가 원전 옆에 살고 싶냐”고 말하는 건 찬핵, 반핵 주민 모두가 마찬가지다. 주민 인터뷰 중 이 말이 기억에 남는다. “원전 8기 있으나 10기 있으나 무슨 차이냐. 더 지어도 되니 우리 살 터전이나 마련해주고, 보상이나 해 달라.” 수십 년간 원전을 (머리에) 이고 살며 정부가 뭐라도 해줄 거라 바랐는데, 아무것도 없었다는 거다. 지난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때 언론에 관련 기사가 쏟아졌지만, 이런 얘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이 쓰는 에너지인데, 에너지 기사에는 사람이 없었다. 적어도 우리 기사에는 사람이 있었다고 자부한다. 그게 기존 언론과 우리 기사의 차별점이지 않았나 싶다.

은미: 원전 8기나 10기나 무슨 차이냐. 이 말은 나도 마음에 꽂히더라. (후쿠시마 사고로 다수 원전이 몰려 있을 때 더 위험하다는 게 입증된 상황에서) 그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다니, 그만큼 정부나 언론에서 주민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는 주민에게 의견을 묻는다거나 객관적인 위험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보상금으로 회유하며 무조건 안전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친원전 세력에 포획된 언론도 문제를 제대로 지적하지 않았다. 원전 지척에 사는 주민조차 제대로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고, 발전소와 무관한 도시 사람들은 이들의 목소리에 관심도 없는 상황이다. 에너지 문제는 단순히 정책 이슈를 넘어 언론을 포함한 우리 사회 소통 부족 문제가 함축적으로 녹아 있는 것 같다.

▲ 에너지 문제에는 언론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소통 부족 문제가 녹아있다고 지적하는 장은미 기자. ⓒ 임지윤 

'에너지 민주주의' 결핍이 지역 소외와 갈등 불러  

혜인: 우리 사회가 전기를 생산·소비하는 과정에서 일방적, 수직적으로 특정 지역의 희생을 강요해 온 ‘에너지 비민주주의’는 우리 시리즈에서 중요하게 다뤘던 화두였다.

진홍: 신리마을뿐만 아니라 원전 인근 여러 마을을 다녀봤지만, 공통적으로 마을이 크지 않다. 고작 200명 남짓 사는 작은 마을이다. 그 작은 공동체가 다 찬핵, 반핵으로 갈라져 있었다. 신리마을에 도착해서 처음 봤던 광경이 대낮에 주민들이 가게에서 숟가락 던지며 싸우는 장면이었다. 수십 년째 같이 살아온 사람들이 원전 수용하고 보상을 받느냐 마느냐를 두고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 에너지정책이 정말 주민들 목소리를 반영하고 민주적으로 추진되고 있나.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지영: 원전뿐 아니라, 재생에너지시설도 마찬가지다. 재생에너지가 아무리 안전하다 해도, 마을 주민에게 새 발전시설은 일상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문제다. 자연을 훼손하는 예도 분명 있다. 그런데도 외지에서 온 발전사업자는 그저 주민에게 돈 몇 푼 쥐여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36편 ‘무시당한 주민의 분노가 결사반대로’에서 다룬 경북 영덕군 사례도 마찬가지였다. 수십 년 동안 같은 마을에서 산 사람들을 외부에서 들어온 발전회사가 두 동강 냈다. 주민들은 원수지간이 됐다. 정부에서 주민 의견수렴, 갈등관리, 이익공유체계 등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으면 재생에너지도 원전 주변 마을과 마찬가지 결과가 날 수 있다. 

▲ 국내 태양광, 풍력발전 현황을 취재한 박지영 기자. 주민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 이익공유를 고려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개발은 갈등을 부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임지윤

은미: 17편 ‘싼 전기 공급 매달리다 원전·석탄 중독’ 기사에도 나오듯, 도시 지역에 공급할 전기를 농어촌 지역에서 생산하는 구조는 박정희 정부 때 만든 전원개발촉진법이 씨앗이다. 대규모 발전시설을 지을 때 정부 주무부처가 거의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사업 진행을 할 수 있도록 한 ‘무소불위’의 법이다. 현재 시스템 아래서는 도농 간, 지역 간, 주민 간 갈등이 필연적이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진홍: 김민주·박수지 기자가 졸업 전에 취재했던 핵폐기물처리장 문제도 그렇다. 경주시에 중·저준위 방폐장을 설치할 때도 주민들에게 안전성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제공하지 않고 인센티브(보상) 얘기만 강조했다. 주민 동의를 얻었다고 하지만 민주적 과정이 아니라 절차를 밟은 척만 한 것이다. 결국 경주 방폐장 부지는 부적합 토지였음이 밝혀졌고, 지금 지하 암반에서는 지하수가 새어 나오고 있다. 주민들은 속았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 문제도 논의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 (하편에 계속)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오염, 그리고 후쿠시마 참사가 보여 준 원전재난의 가능성은 ‘더 이상 위험한 에너지에 기댈 수 없다’는 깨달음을 확산시키고 있다.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으로 본격화한 탈핵 논쟁은 우리 사회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에너지체제를 전환할 수 있을 것인지 가늠할 시험대가 되고 있다. <단비뉴스>는 기후변화와 원전사고의 재앙을 막고 ‘안전하며 지속가능한 에너지구조’를 만들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모색하는 심층기획을 연재한다. (편집자)

① “아이들 미래 위해 원전 말고 안전!”

② '블랙스완' 부인하다 일본도 당했다

③ 생존배낭 챙겨 두고 ‘쿵’ 소리에도 깜짝

④ 동해안 원전에 쓰나미 덮칠 수도

⑤ 100만 명 ‘7시간 내 대피’ 가능할까

⑥ 사고 은폐, 불량부품에 근무 중 마약도

 사용후핵연료 저장건물 테러 무방비

⑧ ‘핵쓰레기통’ 10만년 묻을 땅 찾아야

⑨ “핵재처리는 원전 수백년 더 짓자는 것”

⑩ “내 손으로 원전 짓고 암 환자 됐소”

⑪ 아이 몸에도 삼중수소, 어른은 암 속출

⑫ ‘173등짜리 공기’에 병드는 한국

⑬ 발암 먼지에 사람도 게도 까맣게 '속병'

⑭ 석탄 함정에 빠진 '세계 4대 기후악당' 

⑮ "일본이 당한 재난, 한국에 닥칠 수도"  

⑯ 끔찍한 재앙 후에도 여전한 ‘거짓말’

 '싼 전기 공급' 매달리다 원전·석탄 중독

⑱ "후쿠시마 7년, 일부 마을 오염 더 증가"

⑲ 잇단 참사에도 원전을 더 짓자는 세력

⑳ 그 기사는 돈 받고 쓴 것이었다

㉑ 돈 풀어 '친원전 이데올로기' 주입

㉒ 폭염·혹한···지금은 '기후붕괴 시대'

㉓ '기후 악당' 한국에 '온난화 징벌' 본격화

㉔ '트럼프 암초'에서 파리협정을 구하라

㉕ EU 탄소 40% 줄일 때 한국 83% 증가

㉖ '화석연료 제로' 밀어붙이는 '주민의 힘'

㉗ ‘말뫼의 눈물’ 딛고 첨단 친환경 도시로

㉘ 100% 에너지자립 마을, 실업률은 0%

㉙ 태양광·풍력으로 가는 유럽 최강 경제

㉚ 원전대국 프랑스에 태양광전기 수출

㉛ 바닷바람 타고 세계 1등 기업 배출

㉜ 자전거 타는 '날씬이'와 '튼튼이'의 나라

㉝ 태양과 바람의 나라, 어제의 영광이여

㉞ 경제위기, 태양세... 긴 터널 지나 새 출발

㉟ ‘바람은 모두의 것’ 제주 이익공유 첫발

㊱ 무시당한 주민의 분노가 ‘결사반대’로

㊲ 해상풍력, ‘제2 조선업’ 도약 가능할까

㊳ 시민 주도 햇빛발전소, ‘원전 대체’ 시동

㊴ 환경 논란에 중금속 ‘가짜뉴스’도 기승

㊵ “국내 옥상에 원전 44기분 태양광 가능”

㊶ 플라스틱 대신 종이·쌀 빨대 각광

㊷ 인공지능 로봇이 ‘분리수거·계산’ 척척

㊸ 안 쓰고 덜 써야 ‘플라스틱 역습’ 막는다

㊹ ‘열’ 샐 틈 없는 태양광 공동주택 ‘실험 중’

㊺ ‘신축건물 화석연료 제로’ 각국 전진 중

㊻ 여의도 51층짜리 태양광발전소 ‘열일’

편집 :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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