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를 무서워한다. 어릴 때 내가 살던 동네에는 길고양이가 많았고, 깃털 뭉텅이 등 취식의 흔적을 발견하면 딴 데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도 눈을 감고 상상하면 그 모습이 떠올라 속이 메슥거릴 정도다. 날아가는 새가 싼 똥을 맞은 적도 있다. 찝찝한 기분에 내 손으로 머리카락을 잘라낸 기억이 생생하다. 개똥 밟을 확률보다 새똥 맞을 확률이 더 낮다는데 무슨 운을 타고난 건지 새와 악연이 깊다. 이젠 길을 가다가 비둘기만 봐도 질겁한다.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새>는 감히 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영국 소설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단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방송인 샘 오취리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국에서 궂은 인종차별을 겪었지만 ‘우리’라는 단어 때문에 계속 한국에 산다고 말했다. "안 좋은 일도 있었지만 좋은 일, 좋은 친구도 많았습니다. 내가 어려울 때 '우리'라는 이름으로 친구들이 함께 해줬어요."그에게 힘이 되어줬다는 친구들이 ‘우리’라는 말로 보듬은 집단은 누구까지일까? ‘우리’라는 단어 뒤로 따라올 수 있는 말은 많다. 특히 ‘엄마’ ‘아빠’ ‘아들’ ‘딸’ 등 가족을 이르는 호칭이 자연스럽다. ‘우리’가 있으면 ‘너네’도 있다. 개성 넘치는 사람에게
고소한 계란빵 냄새가 진동하는 서울 양재동 aT센터 2층 전시장. 계란자조금관리위원회가 주최하는 ‘2017 계란 페스티벌’이 지난 1일 개막식에 이어 각종 행사와 전시를 하고 있다. 6회째인 계란 페스티벌은 국내산 계란의 우수성을 알리고 계란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개최되었다. 다양한 체험관도 마련되어 있으며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소비자 안심시켜 제대로 홍보해야죠”올여름 계란업계는 살충제 파동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추락한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고자 계란 페스티벌 산업전에 참가한 업체들은 관
10월의 마지막 날 오후, 플루트와 오보에의 청아한 소리가 도서관 라운지를 채웠다. 앙상블 ‘그루’의 <플라워 왈츠> 연주를 시작으로 은희경 작가와 함께하는 북콘서트가 31일 세명대 민송도서관에서 열렸다. 이번 북콘서트는 세명대 인문도시사업단이 개최한 ‘2017 인문주간’ 행사 중 하나다. 인문주간은 일반 시민에게 다양한 인문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전국적인 축제다. 세명대 인문주간은 지난 30일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연출한 장철수 감독의 포럼을 시작으로 31일 ‘은희경 작가 북콘서트’
부산광역시 남구 문현동은 북쪽으로 황령산, 남쪽으로 우룡산이 있다. 문현교차로에서 대연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지게골’이라 부르는데 이 지점을 지나는 지하철 2호선 역 이름도 ‘지게골역’이다. ‘지게’는 옛날 가옥에서 마루와 방 사이의 문이나 부엌의 바깥문을 말한다. 이 일대 지형이 양쪽 산에 에워 싸여 마치 방으로 들어가는 문처럼 생겼다고 지게골로 불러온 것이다. 지게골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 문현동(門峴洞)이다. ’쌈, 마이웨이’ 남일빌라는 부산에 있다지난 여름 많은 관광객이 지게골을 찾았다.
“한식 세계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 볼래요?”황교익 맛 칼럼니스트가 20일 제천 세명대학교 민송도서관에서 특강을 시작하며 던진 질문이다. 쭈뼛쭈뼛 손을 든 학생에게 그는 지난 정부의 한식 세계화 정책에 반대하는 자신의 논리도 ‘한번 들어보라’고 말했다.<수요미식회> <알쓸신잡> 등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황교익 칼럼니스트는 기자 출신이다. 12년간 <농민신문> 기자였던 그는 회사를 관둔 뒤 ‘맛 칼럼니스트’라는 낯선 이름의 직함을 달고 먹거리 관련 글을 써 왔다. 이날 황 칼럼니스트는 지금까지 연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치아키’는 그림 하나를 보려고 미래에서 현재로 시간여행을 왔다. 여자 주인공 ‘마코토’의 이모는 이 그림을 보고 다음과 같은 대사로 감상을 전한다. “계속 보고 있다 보면 마음이 편해져. 전쟁이 한창 벌어지던 때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세상이 뒤집힐지도 모르는데.”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간의 사고는 편협해질까, 아니면 더 근원적인 고민을 하게 될까? 10년 전에 본 영화지만 여전히 질문을 남기는 장면이다. '로스트 제너레이션’은 제1차 세계대전
며느리밑씻개는 길가나 빈터같이 습한 곳에서 덩굴져 자라는 한해살이풀이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미워하여 부드러운 풀잎 대신 가시가 있는 이 풀로 뒤를 닦도록 했다는 설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줄기에 달린 뾰족한 가시를 보고 이름을 곱씹으면 며느리를 향한 시어머니의 적대감이 느껴진다. 일본에서는 같은 식물이 ‘의붓자식밑씻개’라 불린다. 전중환 경희대 교수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계부모는 의붓자식을 더 학대하는가’라는 주제로 두 번째 강연을 했다. 진화심리학자인 전 교수는 의붓자식밑씻개를 소개하며
친하게 지내던 경찰이 기자인 당신에게 독점 기사로 쓸 만한 이야기를 둘만의 비밀이라며 말해준다. 기사화했을 때 그 경찰에게 피해가 가는 상황이다. 어떻게 하겠는가? 얼마 전 면접을 본 언론사에서 받은 질문이다. 응시자들 입에서 나오는 얘기는 비슷했다. 사소한 표현만 달랐지 ‘기자로서 사명감은 보이되 인간적 매력도 포기하지 않는’ 답을 늘어놨다. 아홉 사람의 대답을 다 듣고 한 면접관이 말했다. “미안해하면 기자 못 해요. 기자는 주변에 사람이 없어.” 내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기자는 싸가지 없이 일해야 해요.”싸가지는 ‘싹’에
‘심상정한테 투표했는데 문재인이 당선 안 되면 어떡하지?’ 대선 결과를 기다리다가 트위터의 글을 봤다. 이 내용을 본 누리꾼들은 ‘소신투표든 전략투표든 하나만 하라’거나 ‘이중인격 아니냐’고 비난했다. 소신투표와 전략투표 사이에서 갈등하는 유권자는 얼마든지 있다. 소신대로 투표한 사람을 남들과 다르게 보이려고 비주류 감성에 취한 ‘정치 홍대병’ 환자로 깎아내리는 것은 폭력이다. 하지만 선거제도가 바뀌지 않은 환경에서 투표로 정치적 의사를 드러냈다면,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여론조사 숫자에 민심이 정확하게 반영
최근 오버부킹으로 탑승객을 강제로 끌어낸 유나이티드 항공이 많은 사람의 분노를 샀다. 해당 항공사는 승객을 고르는 기준이 무작위였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내려줄 것을 요구받은 승객 4명 중 3명이 동양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나 인종차별 의혹이 가시지 않는다. 사건 이후의 상황이 더 기막히다. 한국계 미국인 배우 존 조는 트위터를 통해 ‘이번 일은 트럼프가 만든 환경과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며 일침을 가했는데 미국 네티즌들로부터 악플 세례를 받았다. 피부색과 차별의 연관성을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미국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어쩐지
‘다리 아픔’을 보상하고도 남을 탁 트인 전망부산은 해변에서 시작해서 산골짜기와 산등성이로 기어 올라간 도시다. 금정산 백양산 엄광산 구봉산 등 높이 300∼600m의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지만 그 연봉 너머로 도시가 팽창한 지 오래다. 종아리 굵어질까 걱정하는 중학생이든 가파른 길 노심초사하는 운전자든 부산의 구릉들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그러나 관광객에게는 부산의 옛 모습이 살아있는 곳이고 무엇보다 탁 트인 시선을 제공하는 것이 일품이다. 한겨울에도 등에 땀 한 줄기 내게 하는 산복도로에 오르면 부산의 역사는 덤으로
"오나라와 월나라는 원수처럼 미워하는 사이지만 그들이 같은 배를 타고 바다를 나갔다가 풍랑을 만난다면 원수처럼 싸우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서로 긴밀히 도울 것이다." 손자(孫子)의 말이다. 《손자(孫子)》 구지편(九地篇)에 나오는 ‘오월동주’는 서로 원수지간이면서도 특정 목적을 위하여 부득이 협력하는 상태를 일컫는다.더불어민주당 121석, 자유한국당 94석, 국민의당 38석, 바른정당 32석, 정의당 6석, 무소속 8석. 20대 국회는 어느 정당 대선후보가 승리한다 해도 대선 이후 행정-입법부 사이 대립이 불가피하다. 국회선진화법
욜로! 여기로 오라는 건가? 또 무슨 신조어가 나온 걸까 찾아봤더니 ‘You Only Live Once’의 약자로 ‘인생은 한 번뿐’ 정도가 어울린다. 영미권 은어로는 오래 쓰였고, 힙합 가수 드레이크의 곡 에 가사로 쓰여 유명세를 탔다. ‘오바마 케어’를 홍보하는 동영상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직접 나와 ‘yolo, man’을 외쳐 화제를 불러 모았다.지난해 9월 옥스퍼드 사전에 신조어로 올라간 YOLO는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풍조를 가리킨다. 다가올 미래나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현재의
“법은 누가 지켜야 할까요? 시민이 아니라 권력자가 지키는 것이 법입니다. 시민은 권력자가 법을 잘 지키는지 감시하는 것이죠. ‘준법’, ‘법치’ 같은 단어는 권력자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권력을 쥔 사람들이 시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강조하는 세상이지만요.”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준법’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했다. 한 교수는 시민의 준법정신도 중요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치’란 권력자가 법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현대 자본주의 헌법은 사회권적 시민권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는 근대 자본주의 헌법의
2016년 12월 28일, 한일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합의 발표 1년 째 날, 부산시 동구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앞에 소녀상이 우뚝 솟았다.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가 세웠다. 부산 동구청은 불법 적치물이라며 강제로 옮겼다. 동구청 홈페이지가 마비되고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동구청은 12월 30일 무릎을 꿇었다. 소녀상 재설치 허용. 12월 31일 소녀상은 일본 영사관 앞에 다시 섰다. 제막식도 치렀다. 이후 시민단체 ‘부산 겨레하나’의 회원들이 소녀상을 지킨다.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부산시민들을 만나봤
시험 기간이면 대학 캠퍼스에 자주 보이는 것이 ‘과잠’이다. ‘학과 잠바(점퍼)’의 줄임말인 '과잠'은 등판에 대학과 소속 학과의 이름을 자수나 패치워크로 새긴 야구점퍼를 이른다. 아무 옷에나 걸쳐 입어도 어울리고 보온성도 좋아 대학생에게는 교복처럼 여겨진다. 뛰어난 실용성에 '과잠'을 입는 학생들이 대부분일 테다. 하지만 입는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이 '과잠'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대학생이라는 계급을 보여주기 때문이다.골품제는 신라의 신분제로 왕족인 성골, 진골과 1~6두품으로 구성된다. 법흥왕 때 정비된 17등 관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