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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지켜주는 ‘쓸데없는 인문학’
[현장] 세명대 인문주간 은희경 작가 북콘서트
2017년 10월 31일 (화) 22:56:36 민수아 기자 sooahmin09@gmail.com

10월의 마지막 날 오후, 플루트와 오보에의 청아한 소리가 도서관 라운지를 채웠다. 앙상블 ‘그루’의 <플라워 왈츠> 연주를 시작으로 은희경 작가와 함께하는 북콘서트가 31일 세명대 민송도서관에서 열렸다. 이번 북콘서트는 세명대 인문도시사업단이 개최한 ‘2017 인문주간’ 행사 중 하나다.

   
▲ 앙상블 '그루'가 연주를 하고 있다. ⓒ 민수아

인문주간은 일반 시민에게 다양한 인문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전국적인 축제다. 세명대 인문주간은 지난 30일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연출한 장철수 감독의 포럼을 시작으로 31일 ‘은희경 작가 북콘서트’, 11월 1일 ‘인문학 특강과 독서 골든벨’, 2일 탐험가 최종열 대장과 떠나는 덕주산성 탐방이 이어진다.

김기태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북콘서트의 주인공 은희경 작가는 1995년 중편소설 <이중주>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은 작가는 같은 해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로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았다.

   
▲ 은희경 작가는 첫 장편 소설 <새의 선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았다. ⓒ 문학동네

노트북 하나 덜렁 들고 시작한 인생 첫 모험

30대 중반에 소설가가 된 은희경 작가는 “작가가 되기 전까지 비어 있는 인생을 살았다”며 작가가 된 계기를 소개했다.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회의 틀 속에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지 못했다. 은 작가는 “어느 날 갑자기 남이 와서 날 내쫓고 내 인생이라고 살아도 될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자신만의 고유성을 지닌 인생을 살지 못한다고 생각하던 은 작가 마음에 불을 지핀 건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였다.

“화목한 가정에서 살던 주인공 여성이 자기 방을 갖고 싶어 해요.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은 ‘방을 가져라’고 합니다. 주인공은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딸이 아닌 자기 자신만의 공간을 가져요. 그런데 이 방에만 갔다 오면 기분이 좋아지는 아내를 본 남편이 아내의 뒤를 밟다가 어떤 오해를 하게 되죠. 결국, 이 여성은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세상이 없다고 느껴 자살해버립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인식하지 못할 때 인간은 공허함을 느끼는 거죠.”

   
▲ 김기태 교수의 질문에 답변하는 은희경 작가. ⓒ 민수아

‘내가 누군지 알고나 살자’는 마음으로 은희경 작가는 다니던 회사에 휴가를 내고, 노트북을 빌려 지방으로 갔다. 일생일대 첫 모험에 나선 은 작가는 그제야 자신의 존재와 대면하게 되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글로 쓰고 싶어졌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그렇게 쓴 글 중 한편이 당선되어 작가가 되었다.

“‘좋다’의 반대말이 ‘나쁘다’가 아니라 ‘괜찮다’래요. ‘괜찮다’에 머물러 있으면 ‘좋다’를 얻기 힘들어요. 저는 ‘괜찮다’는 안락함 속에서 남들이 원하는 정답 인생을 살다가 ‘좋다’를 얻기 위해 스스로 뚫고 나온 거죠.”

“실패담이 소설이다”

‘소설은 꼭 재미있어야 하냐’고 김기태 교수가 질문하자 은희경 작가는 ‘당연하다’고 대답하며 문학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드러냈다. 은 작가는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을 이해해주는 게 소설’이라고 말했다.

소설 속에는 성공적인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성공적인 인물은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실패담이 소설이 되고, 아웃사이더와 약자들의 이야기가 소설에 있다. 은 작가는 소설을 읽으면 독자가 마음속 어두움을 느끼게 되는데 바로 그때 인간에 대한 생각이 유연해진다고 했다.

소설을 읽고 인간에 대한 생각이 풍부해지면, 타인을 생각하는 것도 유연해지고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은 작가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느끼고 싶다면 다양한 인간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는 소설을 읽으면 된다”고 말했다.

“쓸데없다는 인문학이 사회를 바꿔왔다”

‘메이저’와 ‘마이너’를 어떻게 구분하느냐는 사회자의 다음 질문에 은희경 작가는 ‘실용서적’과 ‘인문서적’에 빗대 답을 이어갔다.

“실용서는 현실의 패러다임 안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죠. 인문서는 그 기준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를 묻는 책이고요. 문학은 실용서의 가치로 보면 쓸데없는 생각만 하는 거죠. 그런데 효용성이 떨어지는 마이너의 생각이 인류의 역사를 바꿔왔어요. 신분제 시대에 어떤 사람이 ‘인간은 다 똑같은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다르게 살지’ 이렇게 생각했으면 당대 사람들은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한 사람들이 지금의 민주주의 사회를 만든 것이죠.”

은희경 작가는 ‘마이너’와 ‘메이저’를 만든 패러다임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인간은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용서적’의 세계에 살 수밖에 없지만 그 세계에 휘둘리지 않으며 “진리가 무엇인지 알고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은 작가는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을 예로 들며 자기 생각을 전했다.

   
▲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 빨간 약을 먹으면 진실을 알게 되고 파란 약을 먹으면 살던 세상 그대로 살 수 있다. ⓒ 영화 <매트릭스> 화면 갈무리

“빨간 약을 먹으면 고통스러운 진실을 알게 되고 파란 약을 먹으면 진실을 모른 채 지금처럼 편안하게 살 수 있어요. 인간은 대개 빨간 약을 먹어요. 시키는 대로 살고 싶지 않으니까요. 인간은 그런 존재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편하게 누리고 산다고 해도 인간은 마음속에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살 수 없어요.”

은 작가는 “각성이 인간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지만 동시에 인간을 강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자기주도적 삶을 살기 위해 인간은 소설을 읽고 인문학을 접한다는 것이다. 은 작가는 세상의 패러다임에 굴복하지 않는 ‘자기 인생의 갑옷’이 있어야 하는데 그 갑옷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라며 그 필요성을 강조했다.

   
▲ 세명대 재학생과 제천 시민들이 도서관 라운지에서 북콘서트와 연주를 듣고 있다. ⓒ 민수아

“부모님, 선생님 말씀 다 믿지 마세요”

김 교수가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부탁하자 은희경 작가는 “비판적인 생각을 가져라”고 답했다. 그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인간으로 사는 비겁한 경험은 오래간다”며 “세상이 바라는 인간으로만 살지 말고 타인의 말을 다 믿지 말라”고 조언했다.

“비판적인 생각도 있어야 하고 그걸 표현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저는 용기가 부족해 순종적으로 살면서 많은 것을 박탈당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35살이 되어서야 작가가 되었으니까요. 여러분 앞으로 수많은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자신을 어떤 틀 속에 가둬 예단하지 마세요.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 : 김미나 기자

[민수아 기자]
단비뉴스 지역농촌부, 시사현안부 민수아입니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바로 책임을 안다는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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