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힘’

▲ 민수아 기자

“너는 힘든 일 없어? 얘기 좀 해봐.” 나는 힘들었던 얘기를 잘 하지 않는다. 미주알고주알 얘기해봤자 내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취업준비생이 힘들어할 일이야 너무 분명하다. 대화조차 귀찮은 게으름뱅이라서 말하지 않은 것도 있다. 이런 태도가 계속되자 한 친구는 내가 속 얘기를 안 해서 서운하다고 말했다.

‘서운하다’는 말에서 의무감이 생긴 걸까? 힘들었던 얘기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힘내’라는 응원의 말 정도는 돌아왔다. 내 상황을 이해받는 것 정도의 효용은 있었던 거다. 하지만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무기력증이 금방 따라온다. 심지어 ‘친구에게 내 우울을 전염시킨 건 아닌가’ 노파심마저 든다. 말하라고 해서 한 건데 서로 도움 되는 게 별로 없다. 다시 입을 닫게 된다.

힘듦을 드러내는 건 미덕이 아니다. 누구도 자신을 약자로 규정하거나 선언하지 않는다. 자기소개서에서, 면접에서, 내가 취약한 부분은 ‘약간 모자라지만 극복할 수 있는 약점’ 정도로 표현해야지 진짜로 힘든 걸 말하면 떨어진다. 스스로 약하다는 걸 인식하면 부정적인 암시를 불러와 더 우울한 결과만 가져온다. 약한 모습은 숨겨야 한다. 아니면 적당히 포장하든지. 스스로 약하다는 걸 드러내는 사람은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힘 있는 사람들뿐이다. 진짜 힘없는 사람은 약한 걸 드러내면 자기보다 조금 더 강한 사람에게 당하고 산다.

지난해 초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는 자서전에서 ‘우리 내외도 5.18의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현 정부의 적폐청산이 정치보복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정치인도 자기변호가 필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들 때문에 생긴 진짜 피해자가 뻔히 있는데 스스로 힘들다고 얘기하는 건 기만이다. 진짜 힘없는 사람은 생각을 책에 옮길 시간도 돈도 없고, 자기 발언을 메모해가는 기자도 없다. 그들은 여전히 ‘힘 있는’ 사람들이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요즘 청년들은 ‘힘내’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되려 ‘힘 빠지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한때 가장 높은 자리에서 위세 부리던 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파이팅! 힘내세요!! ^^’라고.

▲ '힘내'라는 말은 때론 위로가 되지 않는다. ⓒ flickr

‘빈민 사목의 대부’ 정일우 신부는 한국으로 귀화한 미국인 가톨릭 신부다. 그는 정부의 철거정책에 내몰리는 판자촌 빈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공동체 운동에 참여했다. “힘 있는 사람이 나라를 바로잡지 않기 때문에 이 나라의 희망은 가난뱅이에게 있다.” 그가 생전에 한 말은 따뜻한 울림은 주지만 수긍하기 어렵다. 힘 있는 자들이 직무유기한 걸 왜 힘없는 가난뱅이가 대신해야 하나? 위대함은 강한 것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그 힘을 바로 쓰는 데 있다. 힘 있는 사람이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명제를 따르지 않으면 힘없는 사람에게 그 책임이 넘어간다. 그러니 이제 또 힘 있는 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제대로 힘내시라’고.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박경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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