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양특강] 전중환 경희대 교수
주제 ② 계부모는 의붓자식을 더 학대하는가?

며느리밑씻개는 길가나 빈터같이 습한 곳에서 덩굴져 자라는 한해살이풀이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미워하여 부드러운 풀잎 대신 가시가 있는 이 풀로 뒤를 닦도록 했다는 설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줄기에 달린 뾰족한 가시를 보고 이름을 곱씹으면 며느리를 향한 시어머니의 적대감이 느껴진다. 일본에서는 같은 식물이 ‘의붓자식밑씻개’라 불린다.

▲ 며느리밑씻개의 줄기와 잎에는 가시가 돋아있다. ⓒ 전중환

전중환 경희대 교수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계부모는 의붓자식을 더 학대하는가’라는 주제로 두 번째 강연을 했다. 진화심리학자인 전 교수는 의붓자식밑씻개를 소개하며 ‘잔인한 계부모’는 오래된 사회적 인식이라고 말했다. 계부모가 의붓자식을 학대하는 이야기는 동화 신데렐라를 비롯해 중동, 필리핀, 카리브해, 중국, 인디언족, 아일랜드 등 전 세계에 걸쳐 1,000여 편이 넘는다. 

▲ 전중환 교수가 며느리밑씻개의 이름에 얽힌 인간심리를 설명하고 있다. ⓒ 박진우

사회적 편견 반박하는 기성 매체

최근 언론은 여러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이 오래된 고정관념에 반기를 들고 있다. <한겨레>는 ‘아동학대 사망 사건 터지면 떠오르는 계모⋯실제론 7.5%뿐’(2015.5.6)이라는 보도를 한 적이 있다. <뉴스1>은 ‘2015년 서울시 아동학대 사건 총 1,179건 중 가해자는 친부모가 계부모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2017.3.6)고 보도했다. 친부 582건(49.4%), 친모 369건(31.3%) 등 친부모가 80.7%를 차지했고 계부는 29건(2.5%), 계모는 15건(1.3%)으로 총 3.8%에 그쳤다. 계부모보다 친부모의 학대가 많다는 보도들은 사실일까?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토대가 된 해밀턴의 규칙

전 교수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해밀턴의 규칙(Hamilton’s rule)을 소개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넷 중 하나인 윌리엄 해밀턴은 이타적 행동의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 ‘rb > c’라는 공식을 제시했다. r(relatedness)은 ‘상대도 역시 이타적 행동을 일으키는 바로 그 유전자를 지닐 가능성’, b(benefit)는 ‘상대가 얻는 적합도 이득’, c(cost)는 ‘자신이 받는 적합도 손실’이다. 적합도는 ‘한 개체가 평생 낳는 자식 수’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자기 형제 3마리가 물에 빠졌고, 그 개체군은 보통 4마리의 자식을 낳을 수 있다면 0.5(형제의 유전자 관련도) X 3 X 4 (물에 빠진 형제들의 기대 자손) > 4 (자신의 기대 자손)이므로 그 개체는 자기 형제 3마리를 구하기 위해서 물에 빠져들게 된다.

▲ 해밀턴의 규칙을 나타낸 도식. ⓒ 전중환

진정한 이타적 행동은 혈연에만 가능하다

이 공식은 진화를 유전자의 눈 관점(Gene’s eye view)으로 본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지금은 <이기적 유전자>의 흥행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해밀턴의 규칙이 진화를 유전자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이론의 기초를 제공한 것이다. 해밀턴은 한발 더 나아가 혈연선택설(Kin selection)을 주장한다. 혈연선택설은 자연 선택에 의한 생물의 진화를 볼 때 개체가 스스로 남긴 자손의 수뿐만 아니라 유전자를 공유하는 혈연자(예를 들면 친척)의 번식 성공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는 진화생물학 이론이다. 이에 따르면 혈연은 r만큼의 나 자신인 셈이고, 그러므로 아무런 대가도 기대하지 않는 진정한 이타적 행동은 rb > c가 성립할 때의 혈연에 대해서만 가능하다고 해밀턴은 주장한다.

낙태와 입양은 해밀턴의 규칙을 깬다?

진정한 이타적 행동이 혈연에게만 가능하다면 낙태와 입양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미국 낙태 연구단체 구트마커연구소와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에서 임신 4건당 1건꼴로 낙태가 이뤄진다고 2016년 5월 발표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우리나라의 입양자 총수는 1,057명이었다. 이들은 해밀턴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것일까?

전 교수는 자식을 돌보는 행동에는 자식의 생존율 증가뿐 아니라 부모 자신의 사망률도 따른다고 설명했다. 앞에서 살펴본 해밀턴의 규칙에 따라, 자식이 거두는 적합도 이득(b)에 유전적 관련도(r)를 곱한 값이 부모가 감수하는 손실(c)보다 커야 한다. 따라서 상황이 안 좋을 때는 아기를 낳지 않는 것이 오히려 엄마에게 더 유리할 수 있다. 가령 미혼 여성의 경우, 남편의 도움 없이 자식을 키우는 것이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기혼 여성보다 낙태할 가능성이 높다. 

▲ 야생에서 약한 자식은 부모와 다른 강한 자식의 생존을 위해 버려진다. ⓒ pixabay

입양은 어떨까? 전 교수는 유전적으로 무관한 아이를 입양하는 행동이 인간의 진화 역사에서 지속해서 있었던 일이 아닌, 최근의 문화적 발명품이라고 했다. 입양은 아이가 없는 부부들이 택하는 마지막 수단인 사례가 많다. 이들은 대개 부유하므로 가난의 압력을 받지 않으며, 입양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파양할 수도 있다. 즉, 입양은 해밀턴이 주장하는 진정한 이타적 행동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계부모는 왜 의붓자식에게 투자하는가?

입양과 달리 의붓관계는 인류 진화 역사에서 항상 있었다. 전 교수는 자연 선택에 따라 부모는 자신의 유전적 친자식이며, 자신의 돌봄으로 생존과 번식의 가능성이 큰 자식을 더 편애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차별적 자애에 따라 자기 유전자를 지니지 않은 의붓자식에 대한 사랑은 친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덜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은 진화심리학 학술서 <살인>에서 ‘부모의 동기(parental motives)에 대한 다윈적 시각이 내놓는 아마도 가장 분명한 예측은 의붓부모는 진짜 부모보다 대개 자식을 덜 돌볼 것이라는 예측이다’라고 설명했다.

계부모가 의붓자식에게 투자하는 것은 일종의 짝짓기 노력이라고 전 교수는 설명한다.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미래에 자기 자식을 낳기 위한 대가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계부모는 의붓자식을 기르는 데 어느 정도 비용을 부담하는 것을 동의한다. 하지만 유전적 부모만큼은 아니다. 

▲ 미국 사회에서 자식에 따른 부모의 대학등록금 감당 비율을 비교한 그래프. ⓒ 전중환

전 교수는 현대 미국 사회에서 아버지가 의붓자식보다 친자식의 대학등록금을 감당하는 빈도가 훨씬 더 높다는 자료를 제시했다. 이전 부부관계에서 생긴 친자식에 대한 지원을 기준으로 했을 때, 현재 부부관계의 친자식에게는 2.5배 이상을 지원한다. 반면, 이전이든 현재든 의붓자식에게는 그보다 적은 지원을 한다. 즉, 계부모는 유전적 부모가 자연스럽게 느끼는 사랑이나 헌신을 그대로 느끼기 어렵다.

계부모는 낙인의 피해자인가?

친자식을 편애하는 것이 진화를 거친 부모의 심리적 적응이고, 의붓자식에 대한 사랑이 친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덜할 수 있다고 배웠다. 민담에서 자주 그려지듯이 계부모가 자식을 학대할 가능성은 친부모가 자식을 학대할 가능성보다 더 큰 걸까?

기존의 아동학대 보도가 계부모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하여 불순한 추측을 낳는다는 이야기를 언론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전체 아동학대 사건 중에 친부모가 저지른 경우가 계부모가 저지른 사건보다 많다는 자료를 들며 ‘계부모의 악마화’를 비판한다. 

전 교수는 친부모에게 학대당한 사건의 수를 계부모에게 학대당한 사건 수와 단순 비교하는 데에는 논리의 허점이 있다고 짚었다. 계부모를 둔 가정이 친부모를 둔 가정보다 훨씬 드물기 때문이다. 분모가 잘못 설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정확한 비교를 하려면, 친부모와 사는 아이 중에 학대를 당한 아이의 비율과 계부모와 사는 아이 중에 학대를 당한 아이의 비율을 따져야 한다.

▲ 계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는 드물어서 희생자 수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 전중환

데일리와 윌슨 부부는 캐나다 경찰청에 보고된 아동 사망사건을 연구했다. 1974년부터 1990년 사이에 아빠의 구타에 따른 5세 이하 아동 사망 사건 127건을 검토한 결과, 아이들 100만 명 가운데 친부에게 살해당한 아이는 2.6명이었다. 계부에게 살해당한 아이는 100만 명당 321.6명이었다. 확률이 120배 더 높다. 이 자료에서 친부에게 맞아 죽은 아동의 총수는 74명이고 계부에게 맞아 죽은 아동의 수는 55명이다. 74명이 55명보다 더 많으므로 친부가 계부보다 더 위험하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 외에 영국, 스웨덴, 미국의 사례에서도 의붓자식이 친자식보다 학대를 당하거나 사망할 확률이 수십 배에서 100여 배 더 높았다. 

▲ 1983년에 캐나다 해밀턴 경찰청에서 1,286가구를 상대로 아동 학대 여부를 전화로 조사한 결과 두 명의 친부모와 사는 아이보다 한 친부모와 한 계부모와 사는 아이가 학대당할 위험성은 4세 이하의 경우 40.1배 더 높았다. ⓒ 전중환

가난과 사회적 편견이 더 큰 요인일까?

전 교수는 의붓자식 학대에 관한 진화심리학적 접근에 제기할 수 있는 반론도 소개했다. 계부모 가정과 연관된 다른 요소가 부모가 아이를 학대하는 진짜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가난이 주는 스트레스가 자식을 학대하고, 이혼과 재혼을 자주 하게 만들 수 있다. 빈곤은 확실히 아동학대를 일으키는 위험 요인 중 하나다. 하지만 계부모 관계와는 큰 연관이 없는 것으로 실제 검증을 통해 드러났다. 빈곤층이라고 특별히 계부모 가정이 더 많지 않았다. 폭력적인 남성이 재혼을 자주 하므로 계부가 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반론도 마찬가지로 기각되었다. 폭력적인 계부라도 대개 친자식만큼은 아끼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편견 때문에 더 많이 감시받는 계부모 가정에서 일어난 아동 학대가 경찰에 더 많이 신고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이 경우 살해 사건에는 신고 편향이 상대적으로 적게 개입할 것이다. 아동 살해 사건의 경우 일반적인 학대보다 계부모와 친부모의 위험률 사이에 차이가 더 작아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위험률은 40배에서 100배 이상으로 살해 사건에서 더 증가했다.

현실도피로 아이들을 보호할 수는 없다

부모 중 한 명이 계부모인지 아닌지가 아동학대를 일으키는 위험 요인임이 실제 증거를 통해 입증됐다. 전 교수는 이 사실이 대다수 선량한 계부모들을 잠재적인 아동학대 가해자로 낙인 찍기 위함이 아님을 강조했다. 전통적인 사회과학자들은 의붓가족이 더 갈등을 일으킨다는 함의를 거부하려고 애를 쓴다. 선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지만, 이러한 ‘현실 도피’는 아이를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다고 전 교수는 말했다.

개인을 그 개인이 속한 집단의 평균으로 재단하는 것은 폭력이다. 하지만 끔찍한 사회 현상을 줄이려면 먼저 그 현상이 왜 일어나는가에 대한 냉철한 탐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전 교수는 데일리와 윌슨이 쓴 <신데렐라에 관한 진실>의 한 문장을 언급하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계부모의 양가적이고 때로는 고통받는 정서가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위로받는다면, 그리고 친부모가 계부모 배우자가 자신의 자식에게 투자하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대신 그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도록 조언을 받는다면, 그 편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7년 1학기 [사회교양특강]은 홍기빈 박상훈 전중환 김진혁 서남수 김동춘 곽정수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김평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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