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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이란 잣대…누가 ‘국민밉상’인가
[상상사전] ‘진보⋅보수’
2017년 06월 13일 (화) 09:54:46 민수아 기자 sooahmin09@gmail.com
   
▲ 민수아 기자

친하게 지내던 경찰이 기자인 당신에게 독점 기사로 쓸 만한 이야기를 둘만의 비밀이라며 말해준다. 기사화했을 때 그 경찰에게 피해가 가는 상황이다. 어떻게 하겠는가? 얼마 전 면접을 본 언론사에서 받은 질문이다. 응시자들 입에서 나오는 얘기는 비슷했다. 사소한 표현만 달랐지 ‘기자로서 사명감은 보이되 인간적 매력도 포기하지 않는’ 답을 늘어놨다. 아홉 사람의 대답을 다 듣고 한 면접관이 말했다. “미안해하면 기자 못 해요. 기자는 주변에 사람이 없어.” 내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기자는 싸가지 없이 일해야 해요.”

싸가지는 ‘싹’에 ‘-아지’라는 접미사가 붙은 말로, 앞으로 잘 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를 이르는 ‘싹수’의 전라도 사투리다. 씨앗을 심으면 파랗게 새싹이 나오는 것도 있지만, 새싹이 아예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싸가지가 없으면 기르나 마나다. 어려서부터 싸가지가 없으면 커서도 알맹이 없는 쭉정이가 된다.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 심사경과보고서 채택이 12일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의원들의 불참으로 무산됐다. 자유한국당은 김 후보자 부인의 취업 특혜 의혹에 대해 상임위 차원의 검찰 고발을 거듭 요구했다.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청문회 화면 갈무리

지금은 인자한 옆집 아저씨 이미지로 정치를 쉽게 해설해주는 유시민 작가도 한때 싸가지 없는 진보의 아이콘이었다. 이번에 해양수산부장관 후보자가 된 김영춘도 “옳은 소리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말하는 재주”라고 비아냥댔다. 박찬욱 감독은 2003년 월간지 <말> 인터뷰에서 ‘사악한 집단으로 여겼던 기득권층이 직접 만나보면 상당히 젠틀하고 착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낄 때 혼란스럽다’고 고백했다. 그들은 꼬인 게 없으므로 착하다. 박 감독은 “빈부의 격차가 인격과 인성마저 비틀고 있다”며 “그래서 더 화가 난다”고 말했다.

싸가지를 따지는 것은 보수적 가치관을 드러내는 행위다.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도덕성, 보수에게 던져버려라’라는 칼럼에서 도덕성은 보수의 덕목이라고 말한다. 도덕은 기존 가치들의 결집이자 보수의 이데올로기다. 진보는 기존의 사고와 행동의 틀에서 벗어나야 할 뿐 아니라 도전하고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정치인의 도덕성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까? 열렬한 고정 지지층도 있지만, 정치인의 이미지와 태도에 주목하는 유권자도 있다. 직업 정치인이 의식해야 할 대상은 이들이다. 자기성찰은 하지 않고 상대를 비판함으로써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는 태도는 진보든 보수든 유권자들에게 거부감만 남긴다. 가치 추구도 중요하지만, 설득의 태도가 반감을 일으킨다면 기르나 마나 소용없는 쭉정이가 되고 말 것이다.

조너선 하이트 버지니아대 심리학 교수는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 사이에 서로 다른 도덕의 정의를 짚었다. 진보주의자의 도덕성은 희생자들의 피해와 고통, 공평성 여부에 가치를 둔다. 보수주의자가 중시하는 도덕적 가치는 충성심과 권위다. 그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도 사물을 바라보는 ‘공감’이 자기만 바르다는 확신을 녹이는 해독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 <그랜 토리노>의 주인공 ‘월터 코왈스키’는 한국전에 참전해 훈장을 받았고, 포드 자동차에서 오랫동안 일했으며, 은퇴한 지 오래되어 병들고, 지금 막 아내를 잃은, 가족과 불화하는 까탈스러운 노인이다. 코왈스키는 이웃집 동양인 소년 ‘타오’ 가족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서 아내의 유언대로 신부 앞에서 고해성사를 한다.

   
▲ 영화 <그랜 토리노>의 주인공 '월터 코왈스키'는 괴팍한 성격 때문에 두 아들과 갈등을 겪는다. ⓒ 영화 <그랜 토리노> 화면 갈무리

그는 아내 몰래 다른 여자에게 입을 맞췄던 일, 보트를 팔고 세금을 내지 않았던 일, 그리고 두 아들과 잘 지내지 못했던 것을 반성한다. 도덕에 기반을 둔 고해성사는 괴팍한 그의 삶의 태도에 면죄부를 준다. 일반 시민으로서 그는 그렇게 살 수 있다. 일본어로 ‘퉁명스러운 모습’을 나타내는 의태어인 츤츤(つんつん)과 ‘부끄러워하는 것’을 나타내는 의태어 데레데레(でれでれ)의 합성어인 ‘츤데레(つん’でれ)’에는 싸가지 없는 외면과 따뜻한 본심이 공존한다. ‘츤데레’ 캐릭터는 일반 시민에게만 유효하다. ‘츤데레’ 정치인은 유권자에게 무감각해 실패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정치인이 청문회에서 공직후보자의 도덕성과 충성심을 물고 늘어지는 것도 꼴사납다. 아무리 보수주의자가 중시하는 도덕적 가치가 충성심이라 해도 그 충성심은 권력자 개인이 아니라 국가를 향한 것이어야 한다. 정치인이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도덕적 희생양을 만들려 한다면 그 자신이 청문 대상자 대신 ‘국민 밉상’이 될지도 모른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고륜형 기자

[민수아 기자]
단비뉴스 지역농촌부, 시사현안부 민수아입니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바로 책임을 안다는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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