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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로’와 ‘아타락시아’의 경계에서
[역사인문산책] 욜로(YOLO)
2017년 02월 22일 (수) 14:04:05 민수아 기자 sooahmin09@gmail.com
   
▲ 민수아 기자

욜로! 여기로 오라는 건가? 또 무슨 신조어가 나온 걸까 찾아봤더니 ‘You Only Live Once’의 약자로 ‘인생은 한 번뿐’ 정도가 어울린다. 영미권 은어로는 오래 쓰였고, 힙합 가수 드레이크의 곡 <The Motto>에 가사로 쓰여 유명세를 탔다. ‘오바마 케어’를 홍보하는 동영상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직접 나와 ‘yolo, man’을 외쳐 화제를 불러 모았다.

지난해 9월 옥스퍼드 사전에 신조어로 올라간 YOLO는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풍조를 가리킨다. 다가올 미래나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이 엿보인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이 단어에 거부감이 드는 건 찍어대듯 나오는 신조어에 대한 염증 때문일까? 이유는 의외로 쉽게 눈에 들어온다. 포털 사이트에 ‘YOLO’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뜨는 것이 ‘YOLO’ 이름을 딴 신용카드 상품이다. 제품이나 서비스에 갖다 붙여 소비를 부추기는 걸 보니 트렌드나 신조어 같은 말들은 소비를 자극하는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비관적 결론에 이른다.

   
▲ 욜로(YOLO)는 'You Only Live Once'의 약자로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풍조를 이른다. ⓒ tvN <트렌더스> 화면 갈무리

YOLO가 단순히 ‘후회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 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인생에 정답은 없으므로 획일화한 답을 고르지 말고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하라는 철학도 담겼다. 그런데 3%도 넘지 못하는 경제 성장률과 10%에 육박하는 청년실업률에 허덕이는 한국에서 YOLO의 철학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패자 부활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고 살아라? 좁디좁은 취업문을 뚫고 기다리는 건 쌓여온 학자금 대출이다. 원룸 월세로 소득 대부분을 지출해야 하는 사회초년생에게 YOLO는 그림의 떡(畵中之餠)에 가깝다.

고대 그리스 에피쿠로스학파의 신봉자들은 인생의 목적이 행복에 있다고 봤다. 쾌락이 행복에 이바지하기 때문에 쾌락을 선(善)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들이 추구한 쾌락은 육체를 만족시키는 순간적인 쾌락이 아니라 정신에서 얻는 지속적인 쾌락이다. 조급한 마음에 바삐 무언가를 성취하여 얻는 순간적인 쾌락 뒤에는 오히려 고통이 따라온다는 의미다. 이들은 인생에서 쾌락의 양이 고통의 양보다 많도록 수양을 통해 마음의 평온, 평정 상태를 추구했다. 이 경지를 아타락시아(ataraxia)라고 부른다.

가성비(價性比, 가격 대비 성능)를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이는 세대다. 무한리필 음식점이면 맛집으로 인정하는 세대에게 YOLO는 순간의 작은 사치를 합리화하는 애잔한 마법의 주문으로 비친다. ‘아프니까 꾀병’이라는 비난을 받기에는 이 세대가 건강해 본 적이 없다. 헬조선의 힘겨운 N포세대가 굳이 사르트르를 빌리지 않더라도 자신을 향해 던지는 실존론적(實存論的) 질문을 노래 소절이 잘 담아낸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 그 나이를 처먹도록 그걸 하나 몰라’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송승현 기자

[민수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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